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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미로운 예술인 음악의 서울오피 
매력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음악이 끝나면 그 미남 청년은,
왼손에는 책이나 악보를 끼고 오른손에는 담배를 피워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담배연기가 유순하고 가냘픈 걸음걸이 뒤로 맴돌곤
하였다. 나는 그에게 은근한 사랑을 느꼈으나 그를 가까이하지는 않았다.
명랑하고 자유롭고 부유한 그와 같이 서면, 나의 빈곤과 못남이 나를
비굴하게 만들 것 같아서 그와의 교제를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먼저 내게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나는 좀 놀랐었다. 그것 서울오피 은 여태까지 아무도 나를 방문한 일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잘생긴 그 대학생이 들어와 내게 악수를 청하고 자기 이름을
말했는데, 마치 구면인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쾌활했었다.
저와 음악을 좀 같이 하자고 찾아왔는데요.
하고 그는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여태까지 악기를 만져 본 일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알프스 지방의 민요를 부르는 것 외에 아무 재주가 없다는 것과
그리고 종종 들려오는 그의  서울오피 피아노 소리는 무척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이렇게 속일 수 있담!
그는 유쾌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겉모습을 보고 첫눈에 음악가라고 단정했었는데,
이상하군요1 그러나 민요를 부르신다지요? 어디 한 번 불러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정말 한번 듣고 싶군요!
나는 아주 당황하며 그렇게 정식으로 청하면 부르긴 하겠는데
방안에서는 부를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산위에서나 적어도 밖에서,
그것도 흥이 날 때에만 부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럼 산에서 불러 주십시오! 내일이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저녁 때쯤 같이 갑시다. 좀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하고 나서
노래를 듣기로 하지요. 그리고나서 마을 어느 곳에서 저녁을 같이
합시다. 시간은 있으시겠지요?
물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나는 곧 승낙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무엇이든 한 곡 쳐달라고 부탁을 해 크고 훌륭한 그의 방으로 내려갔다.
사진틀에 끼인 몇 장의 그림과 피아노와 일종의 우아한 혼잡과 연한
담배냄새가 아담한 방안에 자유스럽고 유쾌하고 고상하게 살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내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리하르트는
피아노에 앉아 몇 소절을 쳤다.
이게 무슨 곡인지 아시죠?
그는 내쪽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는데, 그가 그렇게 연주를 중지하고
귀여운 머리를 이쪽으로 숙이고 나를 황홀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아뇨,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바그너입니다. 아미스터징거의 한 소절이지요.
그는 대답하고 나서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경쾌하고 힘차고 동경하듯 명랑하게 들려 흐뭇한 흥분을
일으키며, 마치 목욕탕 속에라도 있는 것처럼 나를 감싸 녹여 주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기쁨을 감추고 연주자의 긴 목과 등과
음악가다운 아름다운 흰손을 바라다보았다. 그랬더니 이전에 저
갈색머리의 학생을 바라보았을 때와 같은 수줍고 감탄적인 사랑과 존경의
감정이 마음에 넘쳐흘렀다. 그와 함께 이 잘생기고 훌륭한 사람이 정말
나의 벗이 되어 줄까, 그리고 이러한 우정에 대한, 옛날부터 잠시도 잊은
적이 없는 나의 소원을 실현시켜 줄 것인가 하는 불안스러운 기대가
일어났다.
이튿날 나는 그를 데리러 갔다. 우리들은 천천히 잡담을 하며 꽤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서 시가와 호수와 공원을 내려다보며 저녁 무렵의 풍부한
미를 즐겼다.
그럼 이제 노래를 부르시지요. 여전해 부끄러우시면 돌아서서 불러도
좋습니다. 그러나 크게 불러 주십시오!
리하르트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만족했을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높여 재주껏 장밋빛
같은 저녁놀을 향해 민요를 불렀다. 내가 노래를 마치자, 그는 무어라
말하려다 말고 귀를 기울이며 먼 산을 가리켰다. 먼 산에서 대답이
나직하고 길게 늘어졌다가 높이 들려왔다. 아마 목동이나 길손의
인사였을 것이다. 우리들은 조용히, 기쁘게 그것을 듣고 있었다.
처음으로 벗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아름다운 장밋빛 구름에 싸인 인생을
멀리 바라본다는 생각이 이렇게 서서 듣고 있는 사이에 샘솟듯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저녁 호수는 부드러운 빛을 희롱하기 시작하고, 해가 지기
직전의 녹아버리는 안개 속으로 예리한 톱날 같은 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저기가 나의 고향입니다. 저 가운데 있는 낭떠러지는 붉은 절벽이라고
부르며, 오른쪽이 가이스 호른 산이고, 왼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둥근 젠알프스 봉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저 산의 꼭대기에 올라간 것은
10살 하고 삼주일이 되었을 때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리고 더 남쪽에 있는 한 봉우리를 찾으려고 눈을 크게
떴다. 잠시 후에 리하르트는 무어라고 말했으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뭐라고 그랬어요?
나는 물었다.
당신이 무슨 예술을 하는지 지금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그게 무슨 예술이지요?
당신은 시인입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화가 났으나, 동시에 그가 바로 맞힌 데 놀랐다.
아니에요,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시를 좀 썼습니다만
지금은 그만 둔 지 오래됐습니다.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언제 한번 보여 주시겠어요?
다 태워버린 걸요. 그러나 설사 가지고 있어도 보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확실히 현대적인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니체에 관한 것도 많이
들어가 있는······.
니체? 그것이 무엇이지요?
아니 아직 니체를 모르시나요?
네, 잘 모르겠는데요.
내가 니체를 모른다고 하자 그는 의기양양해 하였다.
나는 화가 나서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과거에 빙하를 얼마나 걸어 보았소?
그가 한 번도 걸어 본 일이 없다고 말하자, 나는 그가 아까 내게 했던
태도로 조롱하듯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는 손을 나의 어깨에
얹고 아주 진실한 태도로 말했다.
자존심이 대단히 세군요. 그러나 당신이 얼마나 부럽도록 범상하지
않은 존재며,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세상에 많지 않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오. 두고 봐요, 이제 한두 해 안으로 니체며 그밖의 모든 사람을
나보다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나보다 더 철저하고 영리하니까.
그러나 사실 나는 지금의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니체도 바그너도
모르지만 눈 덮인 산에 여러 번 올라갔었고, 또 그런 튼튼한 산골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정말 시인이오. 그건
눈과 이마를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지요.
그러나 내가 더욱 놀라고 행복스러웠던 것은 일주일쯤 후에 소란스런
비에 홀에서 그를 만나 형제간의 우정을 서로 맺고, 그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키스를 하고 나를 끌어안으며 미친
사람처럼 나와 함께 테이블을 돌며 춤을 춘 때였다.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나는 겁을 집어먹으며 그에게 말했다.
둘은 아주 행복스러운 모양이군, 아니면 아주 정신없이 취한
모양이든가,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대개는 아무 생각도 안할
것입니다.
대체로 리하르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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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였고, 교육을 더 많이
받았으며 모든 일에 정통하고 세련되어 보였으나, 나에게 비하면 종종
순진한 어린애같이 보였다. 길거리에서 그는 아직 어린 여학생에게
농조로 사랑을 구하는가 하면, 가장 진실한 피아노 곡을 치다가 갑자기
어린아기 같은 농담을 하며 중단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장난삼아 교회에
들어갔었는데, 설교 도중에 그는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때, 저 목사 꼭 늙은 토끼같지 않아?
나는 그 비유는 꼭 들어맞았으나 나중에 말해도 좋을 일이 아니냐고
말했더니, 그는 화가 나서 말하였다.
하지만 정말이잖아. 넌 나중에 말하라고 하지만 그때면 벌써 잊어먹고
말 텐데 뭘.
그의 기지는 결코 씨가 먹은 것이 아니었고, 때로는 붓슈의 시를
인용하여 웃기기도 했지만, 내게 있어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를 좋아하고 감탄한 것은
그의 기지와 정신 때문이 아니었고 그의 맑고 어린애 같은 본성에서
나오는, 어찌할 수 없는 쾌활한 성격이었던 까닭이다. 그 쾌활한 성격은
어느 순간에나 나타나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로써 그를 감싸 주었었다.
그것은 그의 몸짓, 그의 미소, 그의 쾌활한 눈을 통해 나타나므로 오래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아마 자면서도 웃고 쾌활한 몸짓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하르트는 종종 다른 젊은이들, 즉 학생, 음악가, 화가, 문인, 그밖의
온갖 외국인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것은 이 거리를 헤매며, 재미있는
예술을 사랑하는 특수한 사람이라면 모두 그와 교제했었던 까닭이었다.
그 중에는 굉장히 진지하고 투쟁적인 정신의 철학자, 미학자,
사회주의자도 있어서, 그들에게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여러
방면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내것으로 만들었고, 한편 독서 속에서 점점
무엇이 이 시대의 가장 민활한 사람들의 머리를 괴롭히고 속박하고
있는가에 대한 어떤 생각들을 찾았으며, 국제적 정신에 대한 유익하고
자극적인 통찰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희망, 예측, 활동, 이상에 대하여
충동에 이끌려 적극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그것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사상과
정열의 온갖 노력을 사회, 국가, 과학, 예술, 교육방법 등의 상태를
연구하고 계획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외적인 목적보다도
자기자신을 쌓아가고, 시대와 영원에 대한 자기의 개인적 관계를 밝혀
나가려는 필요성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나 자신에 있어서도
이러한 충동은 거의 졸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오로지 리하르트만을 존경하며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더
우정을 맺지는 않았다. 나는 질투를 하여 그가 믿고 자주 교제하는
여성들까지도 그를 떠나게 하려 했었다. 그와 한 약속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꼭 지켰고, 나를 기다리게 하는 경우에는 화를 내곤 했었다. 한
번은 리하르트가 몇 시에 보트를 타러 가자고 나보고 찾아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갔더니 집에 없어서 쓸데없이 세 시간 동안이나
기다렸었다. 그 이튿날 나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을 몹시
비난하였다.
그럼 왜 혼자 가지 않았나?
그는 의아스러운 태도로 웃었다.
나는 그것을 그만 깜빡 잊었었네. 그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이라도
되나?
나는 약속을 꼭 지키는 습관이 있네. 그러나 나는 어디서 내가
기다리는 것을 자네가 안다손 치더라도 무심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친구가 아주 많으니까 말일세!
하고 격분하여 대답했다.
그는 매우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여보게, 그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나의 우정은 내게 있어서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야.
그 말씀 그의 마음에 스며들어 곧 고치기로 맹세했네.
그는 이렇게 엄숙하게 시를 인용하고 나서 나의 머리를 감싸안고 동양식
여성의 표현방식으로 그의 코 끝을 내 코 끝에 대고 문지르며, 내가
귀찮아 웃으며 그를 밀칠 때까지 나를 애무하였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우정은 다시 회복되었다.
내 고미다락방엔 빌려온 책과 때로는 근대의 철학자, 시인, 비평가들의
비싼 책을 비롯해 독일과 프랑스의 문학잡지, 새로운 희곡, 파리의
문예신문, 비엔나의 유행 심미작가들의 책까지 다 있었다. 나는 이러한
빨리 읽을 수 있는 것들보다도 이탈리아의 고전 단편소설과 역사를 더욱
열심히 즐겨 연구하였다. 나의 소원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언어학을
해치운 후 역사연구에만 열중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반사와 역사
연구방법에 관한 책을 읽는 한편,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중세 후기에 관한
사료와 논문을 주로 읽었다. 그러는 중에 나는 처음으로 내가 경애하는
모든 성자 중 가장 거룩하고 신성한 앗시시의 성 프란시스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풍부한 생활과 정신이 내 앞에 전개되어 나의 꿈은
나날이 사실화되어 갔고, 내 마음은 야심과 기쁨과 청춘의 자부로
가득찼었다. 강의실에서는 진지하기도 하지만 약간 엄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소 지루한 학문을 연구하는데 바빴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중세기의 음침하면서도 신앙적이거나 무서운 이야기 또한 즐거운 고대
단편소설에 파묻혀 그 아름답고 좋은 세계가 그늘진 어두운 동화처럼 나를
에워싸기도 하고 또는 근대적인 이상과 정열의 물결이 내게서 떠나가는
듯한 느낌을 가졌었다. 간간이 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리하르트와
같이 웃기도 하고, 그의 친구의 회합에도 참석하고, 프랑스 사람, 독일
사람, 러시아 사람들과도 사귀며 묘한 현대적 글이 낭독되는 것도 듣고,
여기저기에 있는 화가들의 화실에도 들어가 보고, 애매하고 흥분한
청년사상가들이 많이 나타나 환상적인 사육제처럼 나를 둘러싸는 밤의
모임에도 참석하였었다.
어느 일요일에 나는 리하르트와 같이 어떤 새로운 작은 회화 전시회에
갔었다. 내 친구는 몇 마리의 산양이 있는 알프스의 목장을 그린 그림
앞에 섰다. 그것은 정성껏 깨끗하게 그려져 있었으나 사실에 있어,
진정한 예술적 핵심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전시회에 가도
이런 깨끗하고 거의 무의미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어쨌든 그 그림은
고향의 알프스 목장을 꽤 충실히 그린 것으로서 나를 기쁘게 하였다.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는 리하르트에게 그 그림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이것이야.
그는 한구석에 있는 화가의 시인을 가리켰다. 나는 붉은 갈색의 그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이 그림은 대단한 것은 아니야. 더 좋은 그림이 있지.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린 여류화가보다 더 예쁜 여자는 아무도 없어. 에르미니아
아그리에티라고 하는데, 자네가 원하면 내일 그 여자에게 같이 가서
당신은 위대한 여류화가입니다 하고 추켜 주어도 좋아.
자네가 이 여자를 아나?
물론이지. 그 여자의 그림이 그녀만큼 아름다웠다면 벌써 부자가
되어서 그림같은 건 더 그리지 않았을 것일세. 별로 흥미도 없지만 달리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길을 배우지 못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지.
그러나 리하르트는 그 일을 계속 잊고 있다가 몇 주일 후에야 겨우 그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난 아그리에티를 만났네. 사실 우리는 전날 찾아가기로 했었지?
자, 가세! 자네 깨끗한 칼라가 있지? 그 여자는 특히 거기에 관심을
갖거든.
칼라는 깨끗이하였었다. 우리는 함께 아르리에티의 집으로 갔다. 나는
속으로 좀 언짢았다. 그것은 여류화가들과 여대생들, 리하르트나 그의
동료들의 자유스러우면서도 좀 방종한 교제가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들이 교제할 때에보면 남자들은 좀 염치가 없고
야비했으며, 어떤 때는 익살을 부렸고, 젊은 아가씨들은 실제적이고 꾀가
있으며 교활하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여자들이 갖고 있는
고상한 향기 같은 것을 그 여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약간 주저하면서 나는 화실로 들어갔다. 화실의 분위기에는 많이
익숙했으나, 여자의 화실에 들아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미건조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서너 개의 완성된 그림이 틀 속에
들어 걸려 있고, 한 개는 전혀 칠을 하지 않은 채로 이젤 위에 놓여
있었다. 벽의 남은 곳은 연필로 그린, 퍽 산뜻해 보기좋은 스케치들과
반쯤 빈 책장으로 가려져 있었다. 여류화가는 우리들의 인사를 냉정하게
받았다. 그 여자는 화필을 놓고 앞치마를 걸친 채로 책장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우리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리하르트는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에 대하여 터무니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 여자는 웃으면서 그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거 보시오. 나는 정말 그 그림을 사려고 했습니다. 어쨌든
그 소들은 실감이 났거든요.
그것은 염소들이에요.
그 여자는 침착하게 말했다.
염소? 물론 염소지요! 나는 다만 나를 놀라게 한 그 연구심을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실감이나서 산 염소와 꼭 같았습니다. 산골에서
온 내 친구 카멘친트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말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주저하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에 나는 여류화가의 눈길이 나를
바라보며 음미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여자는 오랫동안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당신은 산골 분이세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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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럼 당신은 내 염소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대단히 좋았습니다. 적어도 저는 리하르트처럼 그것들을 소로
보지는 않았으니까요.
당신은 참 좋은 분이시군요. 음악가이신가요?
아닙니다, 학생입니다.
그 여자는 나와 더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를
관찰할 여유를 가졌었다. 몸은 앞치마에 가리워져 추해 보였고, 얼굴은
내가 보기엔 그리 예쁜 편은 아니었다. 얼굴은 뾰족하며 딱딱하고, 눈은
좀 날카롭고, 머리털은 검고 부드럽고 숱이 많았다. 그러나 눈에 띄도록
싫증나게 하는 것은 얼굴빛이었다. 그것은 꼭 고르곤 졸라 치즈를
연상시켰다. 그 속에서 푸른 빛의 금이 갈라져 있는 것을 본다 해도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또한 그렇게 창백한 얼굴도 처음 보았다.
그것은 운나쁘게도 아침의 화실 광선으로 인해 놀랄 만큼 돌처럼보였다.
그것도 대리석 같은 것이 아니라, 풍화되어 아주 빛이 낡은 돌처럼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여자의 얼굴 모습을 따지는 데 익숙하지
못했으므로, 아직 소년다운 방법으로 얼굴의 윤기, 장밋빛 볼, 애교 같은
것을 찾으려 했었다.
리하르트 또한 오늘의 방문을 기분나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잠시 후에 그가 나에게,
아그리에티가 자네를 그려봤으면 좋겠다고 하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놀랐었다.
스케치를 하려는 데 얼굴은 필요없고, 나의 폭이 넓은 몸이 약간 특징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가 더 진전되기 전에 나의 전생애를 변경시키고 수년 동안에
내 미래를 결정한 조그마한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침
깨어났더니 나는 일약 문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리하르트의 권유에 의해 문장 연습삼아 때때로 우리 주위의
사람들, 작은 체험, 대화 그리고 그외의 것을 스케치하여 되도록 충실하게
묘사해 보았고, 또한 문학과 역사에 관한 논문도 몇 편 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내가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리하르트가 들어오더니 이불 위에 35프랑을 내놓으며 딱딱하게 말했다.
이건 자네 것일세.
내가 온갖 억측의 질문을 하자, 그는 호주머니에서 신문 한 장을 꺼내
그 속에 나의 단편이 발표된 것을 보였다. 그는 내 원고 중에서 하나를
정서하여 그와 친한 어떤 신문 편집자에게로 가지고 가서 몰래 나를 위해
팔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인쇄된 것과 그 고료를 함께
받았다.
나는 이처럼 이상한 기분을 가져본 일이 일찍이 없었다. 사실 나는
리하르트의 지나친 친절에 한편으론 화를 내면서도 처음 당하는
문사로서의 기분좋은 긍지와 꽤 많은 돈과 앞으로 있게 될 문사로서의
작은 명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져 결국 그에게 지고 말았다.
어느 카페에서 리하르트는 나와 그 편집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편집자는 리하르트가 보여 준 다른 작품들도 맡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신작품 또한 종종 자기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내가 쓴 것
중에서 특히 역사에 관한 논문은 독특한 맛이 있어 좋다고 하며, 그것을
보내 주면 원고료를 제대로 잘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에야 비로소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매일 규칙적으로 밥을
먹게 되었고, 작은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리한 공부를
집어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영역에서 일하며 내 수입으로써 충분히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 나는 그 편집자로부터 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신간 서적의
꾸러미를 받았다. 몇 주일 동안 나는 열심히 그 일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원고료는 3개월 후에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원고료만
믿고 지금까지 보다 넉넉하게 생활한 까닭으로 어느 날 한 푼도 없이 된
것을 알고는 다시 단식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간은 하숙집에서
빵과 커피로 참을 수 있었으나 배가 고파서 나는 어떤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값 대신 저당물로 평을 쓰라고 준 책 중에서 세 권을 들고 갔었다.
헌책방에 그것을 들고 갔으나 소용이 없었다. 식사는 훌륭했지만 식사가
끝나고 블랙 커피를 마실 때에는 가슴이 약간 떨렸다. 나는
조마조마하면서 돈을 가진 것이 없으니 그 대신 책을 저당으로 두겠다고
심부름하는 소녀에게 말했다. 그 소녀는 그 중에서 시집 한 권을 들고
호기심에 차서 페이지를 넘겨 보더니 읽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그 소녀는
독서를 매우 좋아하지만 책을 얻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세 권을 식사 대금 대신
저당하기를 청하여 승낙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차례차례로 17프랑
대신에 그 소녀는 나의 책을 받아갔다. 작은 시집 몇 권에 빵과 치즈,
장편소설 몇 권에는 빵과 포도주, 단편소설 몇 권에는 빵과 커피 한 잔에
해당하는 데 불과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것들은 대체로 충동적인 유행
문체로 씌어진 보잘것 없는 작품들이었으나, 사람 좋은 이 소녀는 아마
현대 독일 문학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어느 날 오전을
회상하면 지금도 괜히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날 오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둘러 책을 또 한 권 끝까지 읽고 그것에 관해 몇 편 썼다.
점심 때까지 끝내고 그 책으로 점심을 사먹으려고 했던 까닭이었다.
리하르트에게는 이러한 나의 궁핍을 감추려고 하였었다. 그것은 쓸데없이
내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고, 또한 그의 도움을 좋아하지 않았고,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단시일에 갚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나는 나를 시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내가 주로 쓴 것은
장문이었고 시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언젠가 내게도 동경과
생을 위한 위대하고 담대한 시를 지을 날이 있을 것이라는 남모르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내 마음의 즐겁고 맑은 거울은 아직 큰 괴로움으로 흐려진 일은
없었으나, 때로는 우울로써 흐려지곤 하였었다. 이 우울은 하루 혹은
한밤 동안 꿈 같은 고독한 예수로 나타났다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수주일 혹은 수개월 후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는 친한
여자친구에게 익숙해지듯이 점점 이 우울증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괴롭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독특한 감미를 가진 불안한 권태로써 느끼게
되었다. 밤에 이 우울증이 엄습하면 나는 몇 시간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창에 기대어 검은 호수, 연푸른 하늘에 그려진 산의 그림자,
그리고 그 위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모든
밤의 아름다움이 올바른 비난의 눈으로써 나를 보는 듯한, 불안스럽고
감미로운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별과 산과 호수는 그
아름다움과 그들의 묵묵한 존재의 괴로움을 이해하여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동경하는 것 같았고, 그 사람이 바로 나이며, 이 묵묵한
자연을 문학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의 참다운 천직인 듯이 느껴졌다. 어떤
방법으로 그것이 가능할는지는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나는
다만 아름답고 엄숙한 밤이 참을 수 없는 듯 묵묵히 요구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을 느꼈다. 이러한 기분 속에서는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어두운 음성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느꼈고,
이러한 밤을 지낸 후에는 대개 며칠 동안 외로운 도보여행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게 하는데서 내게 묵묵히 애원하는 대지에게 약간의
사랑을 표시하는 것같이 느꼈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다시 웃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 여러 여행은 그후의 나의 삶의 토대가 되었다.
나는 그후 대부분의 세월을 방랑자로서 수주일 혹은 수개월 걸려 많은
지방을 여행하였다. 나는 약간의 돈과 한 개의 빵을 호주머니에 넣고
멀리 걸으며, 며칠씩 고독하게 여행을 계속하였고, 때때로 밖에서 자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이러한 문필생활로 인해 여류화가를 잠시 잊었었다. 그때 그
여자에게서 쪽지 하나가 왔다.

이번 목요일에 남녀 몇몇 친구가 우리 집으로 차를 마시러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당신도 참석하여 주시기 바라며, 당신의 친구도
함께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그곳에 가서 예술가들의 작은 모임에 참석하였다. 모두
대단히 만족하여 기분들이 좋았었으나 전혀 이름이 없는 사람, 성공하지
못한 사람,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들이 모인 데서 나는 약간 감동되었다.
차와 버터를 바른 빵과 햄과 샐러드가 나왔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말을 잘 하지 않는 나는 무척 배가 고팠던 터라,
다른 사람들이 겨우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하고 나서 한
30분 동안을 말 한마디 없이 끈기있게 먹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음식을 먹으려 하기 시작하였을 때에 나는 나 혼자서 그 많은
햄을 다 먹어버린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적어도 한 그릇쯤 예비로
있으리라고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킥킥 웃으며 조소하는
눈초리가 여기저기 보였으므로 나는 분개하여 이 이탈리아 여류화가와
그녀의 햄을 함께 저주하였다. 나는 일어서서 그 여자에게 간단히 변명을
하고, 이 다음부터는 내 저녁은 내가 가져오겠다고 선언하며 모자를
집어들었다.
그랬더니 아그리에티는 놀라서 내게서 모자를 빼앗고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면서 그대로 있으라고 간곡히 사정하는 것이었다. 비단으로 된
갓을 통해 스탠드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비치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화가 난 중에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갑자기 이 성숙한 여인이 놀라우리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곧 내가 대단히 실례를 한
어리석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책망받은 학생처럼 좀 떨어진
한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곳에서 고메르 호수의 앨범을
뒤지며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왔다갔다하면서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그때에 어느 뒤끝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막이 열리며 네 청년이 현악 사중주를 연주할 양으로 갑자기
만든 악보대를 앞에 놓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때 여류화가는
내게로 와서 홍차 한 잔을 내 앞 탁자 위에 놓고는, 친절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내 옆에 앉았다. 사중주가 연주되기 시작하여 오래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것은 듣지 않고 눈을 크게 뜨고는 이 날씬하고 품위있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만을 바라보았다. 한때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의심하였었고,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내가 다 먹어버렸던 그
여인이었건만, 지금은 기쁨과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가 나를 그리겠다고 한
기억을 떠올렸다. 다음에 로에지 기르타네르, 알프스의 들장미가 있는
절벽을 올라간 일, 눈아가씨의 이야기 등이 생각났으나 지금의 내게
있어서는 그 모든 것이 오늘의 이 순간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였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음악이 끝난 후에도 여류화가는 내가 염려하고 있었던대로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그냥 조용히 앉아서 나와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신문에 난 나의 단편에 대해 축하를 했고, 두세 명의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여 다른 누구보다도 크게 웃어대는 리하르트에 관해 농담을 하였고,
그리고 나서 나를 그리게 해달라고 다시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나서 나는 이탈리아어로 말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가
생기있는 남국 사람과 같이 즐거워하며 놀라는 눈을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모국어, 즉 그녀의 입과 눈과 모양에 어울리는 뎃신의
사투리가 섞인 즐겁고 경쾌하고 유창한 발음으로 명랑하고 우미하고
흐르는 듯이 빠른 토스카나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기뻐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은 아름답고 유창하게 말할 수 없었으나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 이튿날, 그녀가 나를 그릴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 그녀를
찾아갔다.
안녕.
나는 떠날 때에 이탈리아어로 말하면 될 수 있는 대로 깊이 허리를
굽혔다.
안녕, 내일 만나요.
그녀도 웃으며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녀의 집에서 떠나올 때에 나는 언제나 마냥 끝없이 걸어서 어떤 높은
언덕에 이르곤 하였다. 그러면 갑자기 어두운 평지가 아름답게 밤빛에
싸여 눈앞에 내려다보였다. 호수에는 붉은 등을 단 보트가 몇 척 떠 있어
검은 물 위에 몇 개의 흔들리는 붉은 줄을 던지고있는 것 외에는 여기저기
엷은 은빛의 윤곽을 그리며 띄엄띄엄 작은 물결이 일고 있었다. 가까운
정원에서는 만돌린을 타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은 반쯤
흐리고 언덕 위에는 거세고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과일나무의 잔가지며 카스타니아의 검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휘두르고
휘어잡아, 그것들이 신음하고 웃으며 떨듯이 온 정열이 나를 희롱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언덕마루에 꿇어앉기도 하고, 땅 위에 몸을 눕혔다가
벌떡 일어나서 신음하며 땅을 구르고, 모자를 내동댕이치고, 얼굴에 풀을
비비고, 나무밑동을 흔들면서 울고 웃고 흐느끼고 미쳐 날뛰고 뉘우치기도
하며, 행복스러웠고 또한 죽을 듯이 괴로웠다. 그러나 한 시간 후에는
모든 것의 긴장이 풀리고 우울한 더위에 질식하고 말았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결심도 없이 아무것을 느끼지도
않으며 몽유병자처럼 언덕을 내려와, 거리의 한 중간을 지나 뒷골목에
늦게까지 열려 있는 작은 주점을 보고 힘없이 들어가서 두 릿트르의
버트런드 주를 마시고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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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지게 취해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오후에 갔더니 아그리에티는 깜짝 놀랐다. 서울오피 
웬일이세요? 어디 몸이 편찮으세요? 몹시 아프신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어젯밤에 몹시 취했었거든요. 그뿐입니다. 자
시작하시지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는 움직이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그
말에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나는 곧 쿨쿨 잠이 들어 그날 오후를 쭉
화실에서 자고 말았다. 화실의 테르펜틴의 기름냄새 탓이었던지 나는
꿈을 꾸었다. 고향의 집에 있는 우리 배가 새로 잘 칠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옆 모래 위에 누워서 아버지가 페인트 통과 솔을 들고 일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도 그곳에 계셨다.
어머닌 돌아가신 게 아니었나요?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아니다. 내가 없으면 너는 결국 네 아버지처럼 술주정뱅이가
되고 말 테니까.
눈을 떴을 때 나는 그만 의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곤 내가
에르미니아 아그리에티의 화실에 앉아 있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옆방에서 그녀가 커피 잔과 식기를 씻고 있는
소리를 들으며 저녁 준비를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셨어요?
그녀가 저쪽에서 소리를 쳤다.
네, 제가 오래 잤습니까?
네 시간 동안이에요. 부끄럽지 않으세요?
그래요 서울오피 , 그러나 저는 아주 재미있는 꿈을 꾸었어요.
말씀해 주세요.
네, 이리 나오셔서 용서해 주신다면.
그녀는 나왔으나 꿈 이야기를 해야만 용서해 준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꿈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잊어버렸던
어린시절로 깊이 들어갔다. 방이 어둠에 차서 이야기를 그쳤을 때에는
그녀에게 내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전부 말해 주고 난 후였다. 그녀는
손을 뻗어 구겨진 나의 윗옷을 바로잡아 주고는 내일 다시 그리도록
와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오늘의 내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해 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 며칠동안 날마다 나는 그 여자 앞에 몇 시간씩 앉아 있었다.
말은 일체 못하였고,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앉았다 섰다 하며 콘테가
부드럽게 달리는 소리와 가벼운 유화냄새를 맡으며, 사랑하는 여인의
곁에서 끊임없이 그녀의 눈길을 받고 있다는 생각 외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 하얀 화실의 광선이 벽에 흐르고, 조는 듯한 파리가 몇 마리
창문에 윙윙 날으며, 옆방에서는 알코올 램프의 불꽃소리가 노래하듯
들렸다. 한 차례씩 앉아 있고 나서는 커피를 대접받기로 되어 있었다.
집에서 나는 종종 에르미니아를 생각했다. 내가 그녀의 예술을 존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조금도 나의 정열을 움직이거나 감소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대단히 아름답고 친절하고 명랑하고 착실했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나는 오히려 그녀의 열정있는
제작활동에서 어떤 영웅적인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생존경쟁에서
굳건하게 참으며 용감히 싸우는 여전사였다. 어쨌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생각하는 것처럼 무익한 일은 없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라는 것은 그 속에 여러 가지 잡다한 일 서울오피 이 일어나, 맞지 않는
경우에까지 자꾸 쓸데없이 후렴을 부르게 되는 일종의 민요나 군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내 기억에 남은 아름다운 이탈리아 여자의 모습은 분명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가까운 사람보다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종종 느끼게 되는
여러 가지 가는 선과 특징을 생각해낼 수 없다. 난 그녀가 어떤 머리를
하고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 또한 몸집이 컸는지 작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에 머리털이 검고 고상하게 빗은 여성다운
머리와, 희고 푸른 생생한 얼굴에 눈매는 날카로웠으나 그렇게 크지 않던
두 눈과, 완전히 성숙된 어여쁜 활 모양의 팽팽하고도 작은 입술이 다만
떠오를 뿐이다. 또한 그녀를 사랑하던 그때를 전체적으로 생각하면,
따뜻한 바람이 호수 위로 불고 있고, 내가 울며 기뻐하고, 미쳐 날뛰던
언덕 위가 생각난다. 그리고 내가 이제 말하려는 또다른 어느 날 저녁이
회상된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류화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구혼을 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또렷해졌다. 만일 그녀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나는 그녀를 계속
존경하며, 그녀를 위해 모든 괴로움을 몰래 참고 견디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보며 말하고 악수를 하고 그 집에 드나들게 되니, 마음속에
가시가 박힌 것 같아 더 오래 참을 수 가 없었다.
예술가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모여 조그마한 여름축제를 가졌었다.
호숫가의 어느 아름다운 정원에서 열렸던 한여름의 무르익은 온화한
저녁이었다. 우리들은 포도주와 얼음물 마시며, 음악도 듣고 나무들
사이에 매달아 놓은 긴 꽃다발에 걸린 붉은 색종이 램프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수다를 떨고, 조롱을 하고, 웃고, 나중에는 노래까지 불렀다.
어느 너절한 청년 서울오피 화가는 낭만적인 태도로, 대담한 베레모를 쓰고 난간에
기대어 채가 긴 기타를 켰다. 좀 이름난 몇 명의 예술가는 참석하지
않았거나 혹은 눈에 띄지 않게 옆에 떨어져서 나이가 듬직한 축에 끼여
있었다. 부인들 중 젊은 몇 명은 얇은 여름옷을 입었고, 그 나머지
부인들은 평소에 입던 허름한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떠들고 있었다. 좀
나이들고 밉게 생긴 여대생은 특히 눈에 거슬렸다. 그녀는 단발머리에
남자 모자를 쓰고 여송연을 피워 문 채 익숙하게 포도주를 마시며 언성을
높여 떠들어댔다. 리하르트는 언제나처럼 젊은 처녀들 축에 끼여 있었다.
나는 내심 흥분되었으나 냉정한 태도로 거의 술도 안 마시며, 오늘 함께
배를 타기로 약속한 아그리에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나타나서는 내게 몇 송이의 꽃을 주고 나와 함께 작은 배에 올라탔다.
호수는 기름처럼 매끄러웠고 어둠에 싸여 빛이라곤 전혀 없었다. 나는
경쾌하게 노를 저어 고요한 호수 위 저편으로 나가, 나를 바라보며
뱃머리에 기대어 만족한 듯 편안히 앉아 있는 매력적인 여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늘은 아직 높고 푸르며 연약한 빛의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고, 언덕 여기저기에서는 음악과 정원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는 찰싹찰싹 소리를 내며 흐린 물을 쳤고, 다른
보트들이 고요한 호수면 여기저기에 어렴풋이 떠 있었으나 거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조용히 키를 잡고
앉아 있는 여인에게만 눈길을 보내며, 계획했던 무거운 쇠사슬 같은
사랑의 고백을 가슴에 지니고 있었다. 저녁 풍경의 시적인 아름다움, 배
위에 앉아 있다는 것, 별, 온화하고 고요한 호수 그리고 그밖의 모든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것은 그 속에서 감상적인 한 장면을 연출할
아름다운 무대장치처럼 보인 까닭이었다. 불안해지고 둘 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데에서 깊고도 고요한 압박감을 느 서울오피 껴 나는 힘껏 노를 저어
나갔다.
참 기운도 세시네요!
여류화가는 감탄하듯이 말했다.
뚱뚱하단 말씀이십니까?
아뇨, 근육을 보고 하는 말이에요.
그녀는 웃었다.
네, 세구말구요.
이런 말들을 결코 내가 하려는 말을 꺼내는 데 적당한 시초가 될 수는
없었다. 쓸쓸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나는 계속해서 노만 저었다. 잠시
후에 나는 무슨 경험담을 얘기해 달라고 청했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무거나 다 좋습니다
하고 나는 말하였다.
그러나 제일 듣고 싶은 것은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나도 단 한
번 있었던 내 연애담을 말씀드리지요. 그것은 짧고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들으시면 아마 흥미로우실 것입니다.
어머나! 그럼 선생님부터 말씀하세요.
아닙니다, 먼저 말씀하십시오! 제가 당신에 관해서 아는 것보다도 더
많이 저를 알고 계실 테니까요. 저는 당신이 정말 사랑한 적이 있으신지
혹은 제가 두려워하듯 너무도 총명하고 자존심이 강해서 연애를 통
못하셨는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에르미니아는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언제나 그러한 당신의 낭만적인 생각이에요. 밤에, 더군다나 이
검은 물 위에서 서울오피  여자더러 이야기를 하게 하시다니. 미안하지만 저는
못하겠어요. 무엇이나 아름답게 말하려고 하고, 자기 감정을 잘 말하지
않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당신네 시인들의
습관이에요. 그러나 저를 그렇게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에요. 세상에
저보다 더 열렬하고 사무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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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 분을 사랑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분도 저 못지 않게 저를 사랑해요. 우리 둘이 같이 살게 될는지는 저도
알 수 없어요. 우리들은 서로 편지도 하고 또 가끔 만나기도
합니다만--.
실례입니다만 그 사랑이 행복하십니까, 불행하십니까 혹은 양쪽 다
입니까?
아, 연애란 행복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사랑이란 우리들이
얼마나 슬픔과 무거운 짐을 참고 견디는가 보기 위해 있다고 믿고 있어요.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답 대신 가벼운 탄식 같은 것이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었다.
아아, 당신도 벌써 그것을 아세요? 아직 그렇게 젊으신데! 고백해
주시겠어요? 그러나 말하고 싶다면 말이에요.
다음에 하지요, 아그리에티 씨. 그렇지 않아도 오늘 서울오피 은 기분이 좀 좋지
않은데, 혹시 제가 당신의 기분까지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요? 아제 그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어요.
아무래도 좋아요. 얼마나 멀리 왔을까요?
나는 아무 대답도 더 하지 않았고 북동풍이라도 불어오듯이 노로 물을
탁 쳐서 배의 방향을 돌려 잡아 끌었다. 보트는 빠른 속도로 수면을
달렸고, 나는 마음속에 끓어 오르는 비탄과 수치의 도가니 속에서 구슬
같은 땀이 얼굴에 흘러내리며, 동시에 오한이 나는 것을 느꼈다.
하마터면 나는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자가되어 부드럽고 상냥하게
거절당하는 추태를 연출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등에 진땀이 났다. 적어도
그것만은 모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남은 비애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나는 홀린 사람처럼 노를 저어 나갔다.
배가 언덕에 닿자, 간단히 인사를 한 후 혼자 그녀를 남겨 둔 채 떠나려
했더니, 아름다운 그녀는 좀 이상해 하는 눈치였다. 호수는 전과 같이
매끄럽고 음악 또한 전과 같이 즐거웠으며, 색종이 램프도 변함없이
화려하게 밝건만 지금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어리석고 우습게 보였다.
특히 음악이 그랬다. 여전히 넓은 비단끈으로 기타를 자랑스럽게
둘러메고 있는 빌로드 양복을 입은 녀석을 때려눕히고 싶었다. 그는
불꽃을 공중으로 올리려 하고 있었다. 얼마나 어린애 같은 짓인가!
난 리하르트에게 돈을 몇 프랑 꾸어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교외로
나가서 아주 멀리 몇 시간 동안을 잠이 올 때까지 걷기 시작하였다. 나는
풀밭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한 시간쯤 후에 몸이 이슬에 젖어 꼿꼿해지며
오슬오슬 오한이 나서, 다시 일어나 가까운 마을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이었다. 클로버를 베려는 사람들이 먼지 나는 길을 지나가고 있었고,
잠이 덜 깬 머슴들이 서울오피  외양간에서 눈을 크게 뜨고 내다보며, 가는 곳마다
여름철 농부들의 부지런함을 알리고 있었다. 나도 농부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부끄러워하며 마을을 지나 뜨거워진 햇살에 비로소
피로를 느끼며 잠시 쉴 수 있는 곳까지 그냥 걸어갔다. 마침내 한 그루의
어린 개암나무 옆 마른 풀 속에 몸을 던지고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잤다. 머리에 풀냄새가 그윽하게 배고, 수족이 신의
사랑스런 대지 위에 오래 누워 있을 때에 느끼는 것 같은 상쾌하고도
무거움을 느끼면서 깨어났을 때는 축제도 뱃놀이도 그리고 모든 것이
수개월 전에 읽은 소설처럼 아득하고 서럽고 아른아른했다.
나는 사흘 동안 그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므로 햇볕에 살결이 검게
그을렸다. 그냥 이대로 곧장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의 농사나
거들어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었다.
물론 그런 것으로 고통이 쉽게 가셔질 리가 없었다. 거리로 돌아온 후
처음에는 페스트를 피하듯이 여류화가의 눈을 피했으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후에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마다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오곤 했었다.
4. 옛날에 아버지에게 당해내지 못했던 일을 실연의 슬픔으로 인하여
지금은 어느 정도 견디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실연의 슬픔은 나를
술고래로 만들었다.
내 생애와 성질에 있어 이 일은 지금까지 말한 어떤 것보다도 중대한
것이었다. 강하고 감미로운 술의 신은 나의 진실한 벗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누가 술보다 힘이 더 셀 것인가? 누가 그렇게 아름답고
공상적이며, 열광적이고 즐거우며, 우울할 것인가? 술은 영웅이요
마술사이다. 술은 유혹자요 에로스의 형제이다. 술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서울오피 . 술은 가련한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로
채워 준다. 술은 고독자이며 농부인 나를 왕자, 시인 그리고 현인으로
만들었다. 텅텅빈 인생의 배에 술은 새로운 운명을 실어 주며, 조난자를
다시금 위대한 인생의 급류로 돌려 보낸다.
술은 과연 그렇다. 술은 모든 귀중한 선물과 예술과도 같다. 그리하여
술은 사랑을 받으며 찾게 되고, 이해되고, 또한 애써 얻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은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되지 못하고,
무수한 사람을 죽여버린다. 술은 그들을 늙게 하고, 그들을 죽이며
그들의 정신의 불꽃을 꺼버린다. 그러나 술은 그 사랑하는 자들을 잔치에
초대하여 그들을 행복의 섬으로 이끄는 무지개의 다리를 놓아 준다.
사랑하는 자들이 피로할 때에는 머리 밑의 베개가 되어 주고, 그들이
슬픔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벗과 같이 위로해 주고, 어머니같이
친절하고 인자하게 포옹해 준다. 술은 혼란한 인생을 위대한 신화로
변하게 하고, 큰 거문고가 되어 창조의 노래를 켜 준다.
술은 또한 긴 비단실 같은 고수머리에 작은 어깨와 귀여운 손발을 가진
어린애이다. 술은 그대의 품에 안겨 작은 얼굴로 그대를 쳐다보며 꿈꾸는
듯한 사랑스러운 큰 눈으로 그대를 응시한다. 그 눈동자 속에는 낙원의
추억과 하느님의 아들다운 순진한 성질이 숲속에서 새로 솟아나는 샘같이
빛나며 윤택하게 솟아오른다. 그리고 이 감미로운 신은 봄날 깊은 밤에
소리내며 흐르는 시내와 같고, 태양과 폭풍이 차가운 물결 위에 희롱하고
있는 바다와도 같다.
술이 그 사랑하는 자들과 말할 때에는 비밀과 추억과 문학과 예감을
담은 거친 바다가 되어 소리를 내고 물결을 치며 그 위를 지나간다.
그리하여 낯익은 세계는 작아져 끝내는 사라져버리고, 영혼은 불안한 기쁨
속에 아득히 모든 것이 생소하고 믿을 서울오피  수 있으며, 음악과 시인과 꿈의
말이 서로 통하는 미지의 세계로 달려간다.
이제 나는 다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나는 몇 시간 동안을 내 자신을 잊고 명랑하게 지내기도 하였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며 리하르트의 음악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정 슬픔이
없이 지낸 날은 하루도 없었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문득문득 슬픔이
찾아들어 일어나서 울다가 지쳐 잠이 드는 때도 있었다. 아그리에티를
만난 날이면 이런 슬픔은 더했다. 슬픔은 대개 아름답고 서늘하며 피로한
여름저녁이 시작되는 늦은 오후에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호수로 가서 보트를 타고 마냥 노를 저어 나가므로 피로해져서 그대로는
도저히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된다. 따라서 술집이나 요릿집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포도주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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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때때로 그 이튿날이면 거의 병자같이 되었었다. 그럴 때에는 무서운
슬픔과 싫은 생각이 들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찾아가서 술을 마시곤 하였다.
나는 점점 술의  서울오피 종류와 그 효력을 구별하게 되었고, 아직 단순하고
소박한 편이었으나 일종의 맛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마시게 되었다.
드디어 나는 짙은 다홍빛 벨틀린 주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 술은 첫잔은
쓰고 자극이 심하나, 그 다음에는 내 생각을 베일로 덮어 고요하고
끊임없는 몽상으로 인도하여 마술을 행하고 창작을 하고 시를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면 이때까지 내 마음에 들던 모든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둘러싸는 것 같고, 내 자신은 그 속을 방황하며, 노래하고 꿈꾸며,
내 속에 뜨겁게 약동하는 생명이 순환하는 것을 느끼곤 하였다. 그래서
마치 민요를 듣는 듯한, 그리고 내가 그 옆을 지나가며 놓쳤던 큰 행복을
어디서 다시 찾은 것 같은 유쾌한 슬픔으로 끝을 맺고는 하였다.
차츰 나는 혼자서는 그리 마시지 않았고, 여러 친구들과 함께 마시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이면 술의 효력이 달라지곤 하였다. 그럴
때는 나는 말이 많아지고 흥분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냉랭하고 이상한
오한을 느끼곤 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도 여태까지 모르던 본성이 갑자기
드러났다. 그것은 화원의 꽃이나 관상용의 꽃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삽주(엉거시과의 여러해살이풀)나 새삼(새삼과의 한해살이 기생식물) 같은
종류에 속하는 것이었다. 또한 다변과 함께 날카롭고 냉정한 정신이
나타나 나에게 확신을 갖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며, 비판적이고
기지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만일 그곳에 내 눈에 거슬리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멋지고 교활하게 혹은 거칠게
계속해서 놀려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화를 내게 만들었다. 어릴적부터
나는 대체로 인간을 각별히 사랑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인간을 비판적이고 풍자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작은
이야기를 일부러 지어내 즐겨 말하였는데 그 속에 나오는 인간의 관계를
애정 없는 것으로 만들고,  서울오피 사실같이 꾸며 풍자적으로 말하고 신랄하게
그들을 조소하였다. 어디서 이런 경멸스런 생각이 나왔는지 나 자신도
몰랐으나, 그것은 본성에서 곪은 종기처럼 나타나 나는 오랫동안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저녁에 혼자 앉아 있으면, 나는 다시금
산과 별과 슬픈 음악을 꿈꾸었다.
이러는 몇 주일 동안에 나는 현대의 사회, 문화, 예술에 관한 일련의
고찰을 저술하여 한 독설적인 소책자를 만들었다. 술집에서의 대화가
토대가 된 것이었으나 내가 꽤 열심히 애써 온 역사적 연구에서 많은
재료를 거기에 가미시켜 나의 풍자에 일종의 든든한 배경을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어느 큰 신문에 늘 기고할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어
그것으로 거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전에 써두었던 단편 몇
개가 곧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꽤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제 나는 완전히
언어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벌써 고학년이 되었고, 독일잡지에도
관계를 맺게 되어 지금까지의 무명과 빈곤에서 벗어나 일약 저명인사 축에
끼어들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생활을 하게 되었고, 불쾌한 장학금을
단념할 수 있게 되어,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달고 작은 직업적 문인이라는
비굴한 생활로 돌진하였다.
성공을 하든 자부심을 갖든 그리고 풍자를 하든 사랑의 괴로움이 있든
기쁜 때나 슬픈 때나 나에게는 언제나 청춘의 따뜻한 빛남이 있었다.
잠시 풍자와 죄없는 흥미 상실의 상태에 빠졌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한 가지 목표인 행복, 즉 완성을 꿈꾸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어야 할는지는 나도 몰랐었다. 다만 인생이 언젠가는 나의 발 밑에
기쁜 행복, 즉 명성이든가 사랑이나 동경의 만족이든가 인격의
향상이든가를 가져다 줄 것으로 느꼈었다. 나는 또한 귀부인과
기사임명식과 큰 명예  서울오피 같은 것을 꿈꾸는 못난이였다.
나는 올라가는 궤도의 시초에 서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도, 나의 성질과 생활에
아직 깊고 독특한 기본적인 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또한 사랑도 명성도 끝이 없이 도저히 채울 수 없는 동경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얻은 약간의 작은 명성을 온갖 청춘의 기쁨을 다 동원해
즐기려 하였다. 좋은 포도주를 마시며 총명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나란히 앉았을 때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얼굴이 열심히 주의를
집중하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때때로 나는 이렇게 모여 있는 모든 현대인의 정신 속에 얼마나 큰
동경이 구원을 외치며 구하고 있는지, 그 동경이 그들을 얼마나 기이한
길로 인도하는 것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어리석고 보기 싫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외에는 쇼펜하워,
석가, 짜라투스트라 그리고 그밖에 많은 이름과 여러가지 교훈이 신봉되고
있었다. 풍부한 취미가 느껴지는 조용한 방안에서 조각과 회화 앞에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무명의 젊은 시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
꿇어앉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오트리콜리에서 발견된 제우스 신상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또한 금역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며
기상천외의 옷을 입은 금욕주의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신은 톨스토이나
석가였다. 깨끗하고 잘 조화된 벽에 걸린 모포의 그림, 음악, 음식,
포도주, 향수, 여송연 등의 자극에 의한 특별한 기분에 도취되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음악의 선율과 색채의 조화 같은 것에 관해
유창하게 말하며 혼자 아는 척하고 있었고, 어디서나 소위 개성적인 점을
찾고 있었다. 그 개성적인 점이란 대개 악이 없 서울오피 는 착각이든가 광기였다.
말하자면 이 모든 발작적인 희극은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진실한 동경과 순수한 정신력이
타올랐다가 꺼지는가를 생각하고 전율을 느꼈다.
내가 당시에 놀라움과 기쁨으로써 사귄 이 모든 공상적이고
의기양양하던 유행 시인, 예술가, 철학자 중에서 조금이라도 유명하게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중에 나와 동년배인 북부 독일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이 좋고 몸집이 작은 유순하고 사랑스런 사람으로 모든
예술적인 것에 관해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였다. 그리고 몇 번 그의
시 낭송을 들었는데, 그것은 아직도 향기로운 정신이 깃든 아름다운
것으로 기억이 새롭다. 그야말로 우리들 중에서 정말 시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후에 우연히 그의 이야기를 잠깐 듣게 되었다.
문학적 실패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이 예민한 사나이는 사회와 등지고
어떤 문예보호자의 손에 들어갔는데, 이자는 그를 격려하여 본심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타락의 길로 인도하였다는 것이다.
즉, 그는 이 부호의 별장에서 신경질적인 부인들과 어리석은
심미주의자들에게 호언장담이나 하여 숨은 영웅으로 자처하다가 비참하게
타락되어, 다만 쇼팽의 음악과 라파엘 전기 파류의 도취에 빠져
의식적으로 지성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머리털을 지져서 늘어뜨리고 이상한 복장을 한 풋내기 시인들과 오만한
인텔리 여성들을 생각할 때에는 소름이 끼치고 동정이 간다. 그것은 후에
와서 이들과의 교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가를 알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러한 축에 끼어들지 않게 나를 보호한 것은 나의 산골 농부
기질이었다.
그런데 명성이나 서울오피  술이나 사랑이나 지혜보다도 한결 고귀하고 나를
기쁘게 해 준 것은 우정이었다. 결국 이것만이 타고난 나의 우울한
기분을 돋우어 내 청춘시절을 상하지 않고 생생하게 새벽의 붉은 빛 속에
보호해 주었다. 나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남성간의 훌륭하고 건전한
우정보다 더 귀중한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만일 울적한 날에
무슨 청춘의 향수 같을 것을 느낀다면 그것은 오직 나의 학창시절의
우정을 생각함에서이다.
에르미니아를 사랑한 이래로 나는 리하르트를 좀 등한히 여겼었다.
그것은 처음 무의식중에 그렇게 된 것이었으나, 몇 주일 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내 사랑의 경위를 고백했더니 그는 실로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겨서 커가는 걸 지켜 보는 것은 유감이라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음으로부터 그를 독점이라도 하려는 듯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내가 그때 명랑하고 자유스러운 약간의 처세술을
익혔던 것은 모두 그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그는 몸과 정신이 모두
아름답고 건강하였다. 그리고 인생은 그에게 아무 그림자도 드리워지지
않도록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총명하고 활달하여서 시대의 정열과 과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것들은 그의 곁을 그냥 스쳐가 아무 상처도 주지
않았다. 그의 걸음걸이, 그의 말, 그의 모든 성질은 부드럽고 경쾌하고
사랑스러웠다. 아! 그가 웃을 때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술을 마시는 데 대해서 그는 그리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종종
나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갔었으나 두 잔만 마시면 충분하여 그냥 나 혼자
마시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하였다. 그러나 내가 슬퍼져서 어쩔 수 없을
만큼 괴로워 하는 것을 보면 그는 피아노도 쳐 주고, 책도 읽어 주고,
밖으로 끌고 나가 산책도 같이 해 주었다.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갈
때에는 소년들처럼 기 서울오피 뻐하였다. 한 번은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서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누워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전나무 방울을
던지기도 하고 엄숙한 곡조로 경건한 헬레네의 시를 노래하기도 했었다.
물길이 빠른 맑은 시내가 졸졸 시원하게 귓전을 울려와, 결국 우리는 옷을
벗어던지고 찬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때 리하르트가 희극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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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낀 바위 위에 올라가 앉았다.
그는 로렐라이의 처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작은 배를 타고 그 밑을
배 저어가는 사공이었다. 그는 처녀같이 수줍어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주 근심에 싸인 표정을 지어야 할 내가 그것을 보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사람들 소리가 높이 들리며 여행자 일행이 길가에 나타나서,
우리들은 벌거벗은 채로 급히 뛰어내려가 구석진 언덕 밑으로 숨어버렸다.
그 일행이 우리들을 보지 못한 채 옆으로 지나갔을 때에 리하르트는 코와
입으로 여러가지 이상한 소리를 냈다. 행인들이 놀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며 물속을 들여다 보았으므로 우리는 결국 발견되었다. 그때
나의 친구 리하르트는 숨은 자리에서 몸을 반쯤 내밀어 분개하고 있는
일행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설교하듯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서울오피 
그리고는 곧 다시 숨으면서 내 팔을 꼬집으며 말했다.
또 한 번 곯려먹었지.
어떻게?
판(목축신)이 몇 사람의 목자를 놀린 셈이지.
그는 웃었다.
그러나 안된 것은 그 속에 부인들이 섞여 있었다는 점이야.
나의 역사 연구에 관하여 그는 거의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앗시시의 성 프란시스를 거의 편벽스러우리만큼 애모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는 곧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 성자에
대해서까지 농담을 함으로써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우리들은 이 복받은
성자가 사랑스러운 소년처럼 감격에 차서 명랑하게 움브리아의 들을
방황하며 그의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한 사랑을
베풀던 광경을 연상하며, 함께 이 성자의 불멸의 태양의 노래를 읽으며
거의 암송하다시피 하였다. 한 번은 우리가 호수 위로 증기선을 타고
소풍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저녁바람이 금빛 물위로 물결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여보게, 이런 풍경을 그 성자는 뭐라고 말씀하셨지?
그래서 나는 다음의 말을 인용하여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주여, 저희들은 찬미하나이다. 상쾌한 바람을, 하늘을, 흐리나 개이나
매시간 우리가 있음을!
우리들은 서로 싸움을 시작하고 욕설을 퍼붓게 되면 그는 언제나 반은
농을 섞어 학교의 어린이들이 하는 식으로 우스운 별명을 그냥 불러버리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서울오피 없이 웃게 되어 화가 풀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나의
친구는 다만 자기가 사랑하는 음악가의 음악을 듣거나 자기가 연주할
때에만 비교적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 그때도 역시 농을 아주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순수한 진심에서
우러나왔으므로 순수하고 중요한 것에 대한 그의 감정은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친구 중의 누군가가 곤궁에 빠졌을 경우에는 그를 위로하거나
동정하여 도와주거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부드러우면서도 놀랄 만큼
훌륭한 기술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기분나빠하면 여러 가지
괴상하면서도 재미있는 작은 일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곤 했는데, 그럴
때의 그의 말에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그 무엇이
있어서 나는 이야기하는 것을 반대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아주 조금 존경하였다. 그것은 내가 자신보다 좀 진실했다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으나, 그보다도 나의 체력을 그가 부럽게 생각한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서도 그는 나의 체력을 자랑삼아
말하였고, 자기를 한 손으로 눌러 죽일 수 있는 친구를 가진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육체적 능력과 훈련을 중요시하여 내게 테니스도
가르쳐 주고, 함께 보트도 젓고, 수영도 했으며, 승마에도 데리고 가고,
또한 그가 치는 것 만큼 당구를 잘 칠 때까지 쉬지 않고 지도해 주었다.
당구는 그가 즐겨 치는 것으로 능수능란하게 잘 쳤을 뿐 아니라, 그때에는
언제나 새삼스러울 정도로 쾌활하고 기지적이고 즐거워하였다. 그는 가끔
세 개의 알에다가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의 이름을 각각 써붙이고, 한 번 칠
때마다 그 위치의 접근과 떨어져 있는 모양을 보고 기지와 익살과 우스운
비교를 하여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유유히 쾌활하게 서울오피  그리고 우아하게
당구를 쳤다. 그러한 그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나의 문필생활은 나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는 한 번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게, 나는 언제나 자네를 시인으로 생각하였고,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그러나 그것은 자네의 잡문을 보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조만간 나타나리라고 생각되는,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아름다운
것과 깊은 것을 생각해서 하는 말일세. 그것이 나오면 그땐 정말 시가 될
것일세.
그러는 동안에 몇 학기가 유수같이 흘러 벌써 리하르트가 귀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왔다. 우리들은 일부러 약간 방종하게 놀면서 얼마
남지 않은 몇 주일을 즐기고, 괴로운 이별을 하기 전에 뭔가 화려하고
빛나는 계획을 세워 이 아름다웠던 몇 해의 마지막을 즐겁고 희망에 찬
것으로 끝맺기로 합의하였다. 나는 버언의 알프스로 휴가 여행을 가자고
제의했으나 아직 이른봄이라 산에 가기는 사실 너무 일렀었다. 내가 무슨
다른 제안을 하려고 머리를 쓰는 동안에 리하르트는 자기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나를 위해 기쁘고 깜짝 놀랄 만한 준비를 몰래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거액의 돈을 가지고 달려와서 내가 안내자가 되어 북부
이탈리아로 함께 가자고 청하였다.
나의 심장은 뛰고 환희에 넘쳤다. 소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몇천 번이나
꿈꾸고 동경해 오던 소원이 이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나는 마치
열병에 걸린 사 서울오피 람처럼 작은 준비를 하며 친구에겐 몇 마디 이탈리아어를
가르쳐 주면서, 그날이 오기까지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우리들은 작은 짐들을 미리 부치고 기차를 탔다. 푸른 들과 언덕이
차창을 스치고 지나갔다. 맑은 호수와 고트하르트 산이 보이고 나자 텟신
지방의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들과 시내와 석회언덕이며 눈 덮인 산들이
지나가고, 그리고 나서 평탄한 포도원 속에 비로소 검을 돌집이 하나 둘
나타났다. 또한 여러 호수들을 지나고 풍성한 롬바르디의 들을 지나,
묘하게 매력이 있으면서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은근한 밀라노를 향하여
기대에 가득찬 여행을 계속하였다.
리하르트는 밀라노의 대가람에 대하여 한 번도 상상한 일이 없고, 다만
그것을 유명한 큰 건축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가 생각했던
것과 엄청나게 다른 데 놀라 분개하는 모양은 매우 유쾌하였다. 그가
처음에 놀랐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분을 회복하자, 지붕으로 올라가서
여기저기 난잡하게 흐트러진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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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걸어다녀 보자고 제의하였다.
우리들은 고딕식의 뾰족한 탑 위의 수백 개나 되는 불행한 성자들의 상이
그리 애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곤 얼마간 만족하였다. 그것은 그
대부분이, 적어도 새로운 것은 모두 평범한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었다. 우리들은 꼭 두 시간 동안을 4월의 태양이 내리쬐는
넓은 경사진 대리석 마루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기지개를 켜며
리하르트는 나에게 이렇게 고백하였다.
알겠나, 자네. 나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 대가람같이 또다시
놀라게 될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할 수 없는 일이야. 우리 여행중에
우리가 보고 압도되리라고 생각한 모든 굉장한 것에 대해서 나는 약간
불안한 생각을 가졌었네. 그런데 이렇게 알고 보니 친밀하고 인간적이고
우스꽝스럽단 말일세!
또한 우리가 누워 있는 주위의 흐트러진 석상들은 그에게 여러 가지
바로크적 서울오피 인 공상을 일으켜 주었다.
아마 저기 가장 높은 본당 위에 서 있는 것이 가장 훌륭한 성자일
것일세. 그런데 저렇게 뾰족한 탑 위에 돌로된 불타는 광대같이 언제나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일세. 그래서
때때로 가장 높은 성자는 거기에서 해방되어 천국으로 옮겨질 것이
사실일세. 그런데 그때마다 어떤 장관스런 일이 일어날는지 한번 생각해
보게! 왜 그런고 하니, 저절로 남은 성자들이 모두 한 계급씩 올라갈
테니까 말일세. 그리고 성자마다 한번 선배가 앉았던 뾰족탑을 향하여
자기보다 앞선 자를 질투하며 분주히 뛰어올라갈 테니까 말일세.
그후 나는 밀라노를 통과할 때마다 그날 오후의 일이 생각나서 우울한
미소를 띠고 수백 개의 대리석 석상의 성자들이 모험적인 뜀뛰기를 하는
것을 그려보곤 하였다.
제노아에서 나는 더 풍부한 사랑을 가질 수 있었다. 바람부는 맑은 날
바로 정오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넓은 성벽에 양손을 의지하고 서
있었다. 뒤에는 다채로운 제노아 거리가 가로놓여 있고, 발밑으로는 넓고
푸른 조수가 물결치고 있었다. 바다였다. 이 영원하고 불변한 자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과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내 속의 그 무엇인가가 이 푸르고 설레게 하는 조수와 생사를
걸고 친해지려 하는 것을 느꼈다. 광막한 바다의 수평선 또한 힘차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년시절과 같이 나는 다시금 아련히 멀고도
푸른 풍경이 열어제친 문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다시금 내가 사 서울오피 람들 속에 섞여 거리와 집 속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도록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낯선 지방을 유랑하며 바다 위를 표류하도록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한 하느님의 가슴에 몸을
던져 나의 작을 생을, 이 무한하고 영원한 것과 친해지고 싶었던 옛날의
슬픈 동경이 막연한 충동과 함께 마음속에 되솟아 오르는 것이었다.
라팔로에서 나는 처음으로 바다의 조수와 싸우며 헤엄을 쳤고, 짠
염수를 맛보며 물결의 위력을 느꼈다. 주위에는 맑고 푸른 물결, 해변의
청황색 바위 깊고 고요한 하늘, 영원하고 우렁찬 파도뿐이었다. 멀리
미끄러지듯 가는 배, 검은 돛배, 흰 돛과 멀리 달리는 기선이 뿜는 가냘픈
연기는 언제나 새삼스럽게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방랑자인 구름을 제외하고는 멀리 달아나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너른
수평선 멀리 사라져 버리는 배보다 더 아름답고 엄숙한 동경과 방랑의
모습을 나는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플로렌스로 왔다. 이 도시는 수백의 그림에서 보고 수천
번 꿈꾸었던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밝고, 넓고, 기분좋고,
다리가 놓인 푸른 강이 밝은 언덕에 둘러싸여서 가운데로 흐르고, 팔라쪼
벡키오의 뾰족탑은 유달리 많은 하늘 위로 높이 솟아 있고, 아름다운
피에솔레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그 언덕 위에 서 있고, 모든 언덕은
과일나무의 꽃이 한창이어서 희고 붉게 수놓여 있었다. 생생하고 즐겁고
평화스러운 토스카나의 생 서울오피 활이 나에게 기적처럼 나타나 고향에 있을
때보다도 이곳이 더욱 고향처럼 느껴졌다. 낮에는 교회에서, 광장에서,
길가와 회랑에서 시장으로 빙빙 돌아다녔고, 저녁 때는 레몬이 이미
푸르익은 언덕에서 공상에 잠기거나 혹은 소박한 주점에서 샨티 주를
마시며 지껄여댔다. 그러는 동안 회랑에서, 바르겔로에서, 승원, 도서관,
성기실에서 즐겁게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오후에는 피에솔레, 상
미나아토, 세티니야노, 프라토 등의 명승에서 지내기도 했다.
집에서 이미 약속했던 대로, 나는 그후 일주일 동안 리하르트를 혼자
남겨 둔 채, 선명한 초록빛의 움브리아 언덕들을 거닐며 나의 청춘시절의
가장 귀하고 가장 즐거운 여행을 하였다. 나는 성 프란시스의 길을
거닐며 마치 그 성자가 내 곁을 같이 걸어가며 마음에 무한한 사랑이
가득차서 모든 새, 모든 샘, 모든 들장미에게 감사와 기쁨의 인사를 하는
것처럼 느꼈었다. 나는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이는, 반짝이는 언덕의
경사진 곳에서 레몬을 따서 먹었고, 작은 마을에서 자면서 혼자 노래하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부활제 때에는 앗시시에 있는 내 성자의
교회에서 축하의 예배를 올렸다.
움브리아의 이 일주일간의 여행이 나에게는 언제나 내 청춘시절의
절정이요, 아름다운 저녁놀처럼 느껴졌 서울오피 다. 내 마음속에서 매일 샘이
솟아나는 듯 흡족했고, 나는 하느님의 인자하신 눈이 보살펴 주시는 듯한
포근한 마음으로 밝고 화려한 봄풍경을 바라보았다.
움브리아에서는 하느님의 편력가 였던 성 프란시스의 유적을
존경스럽게 살폈고, 플로렌스에서는 15세기의 문예부흥기의 생활을 항상
머리에 그리며 즐겼다. 본국에 있을 때 나는 이미 현대의 생활형식에
대해 풍자의 글을 썼었다. 그런데 플로렌스에 와서 비로소 나는
현대문화가 아주 빈약하고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비로소 현대사회와 영원히 동떨어진 자라는 예감에 휩쓸렸고,
여기에서 또한 그러한 사회를 떠나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남국으로 와서
살았으면 하는 소원이 마음속에 눈뜨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곳에서는
여러 사람들과 교체할 수 있었고, 고전문화와 역사의 전통으로 기품있고,
세련된 생활의 자연성을 어디서나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까닭이었다.
빛나고 행복스럽고 아름다운 몇 주일이 흘러갔다. 나는 여태까지
리하르트가 그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들은
힘차고 즐겁게 미와 향 서울오피 락의 잔을 쭉 들이마셨다. 또한 거리에서 떨어져
있고 뜨겁도록 일광이 잘 쬐는 곳에 있는 언덕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여관
주인들, 수도승들, 시골처녀들 그리고 불만이 없는 작은 마을의 목사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들의 소박한 소야곡에 귀를 기울였으며, 햇볕에 그을은
귀여운 어린이들에게 빵과 과일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태양이 빛나는 높은
산마루에서 봄빛을 담뿍 실은 토스카나 일대가 펼쳐져 있고, 그보다 멀리
반짝이는 리그리아 바다가 넘실거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행복됨에 부끄럽지 않게 우리가 풍부한 신앙생활로 향하고 있다는
강한 감정을 가졌었다. 활동과 투쟁과 향락과 명예가 눈앞에 가까이
빛나고 확실하게 나타나 우리는 천천히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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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한 날들을 즐겼다. 또한
앞으로 닥쳐올 우리들의 이별도 쉽게 할 수 있고, 일시적인 것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더욱 필요하게 되었고, 서로가 상대를
위해 생명을 바쳐도 좋다고 확실하게 느꼈던 까닭이었다.


이상이 나의 청춘시절의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여름의 하룻밤처럼
짧은 것같이 느껴졌다. 약간의 음악, 약간의 정신, 약간의 사랑, 약간의
자부. 그러나 그것은 에 서울오피 로이지스 여신의 축제처럼 아름답고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그렇지만 홀연히 풍전등화처럼 비참하게 꺼지고 말았다. 취리히에서
나는 리하르트와 헤어졌다. 그는 내게 키스를 하기 위해 두 번이나
기차에서 내려왔고, 기차가 떠나기 시작해서도 오랫동안 내다보며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
이 주일 후 그는 남독일에 있는 아주 작은 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그만
익사하고 말았다. 나는 다시 그를 볼 수 없었고, 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수일 후 그가 이미 관에 들어가서 매장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모든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자, 나는 방바닥에 쓰러져
무섭고 야비한 모욕적인 언사를 써서 신과 생을 저주하고 울며 미쳐
날뛰었다. 그때까지 나는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유일하고도 확실한
재산이 우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우정이 지금 사라진
것이었다.
여러 가지 추억이 매일 머리에 떠올라 기쁨을 빼앗아 간 취리히에서
나는 더이상 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서울오피  상관이 없었다. 나는
마음속이 병들어 모든 것들이 무서워졌다. 당분간은 나의 흩어진 마음이
회복되어 새로운 긴장된 돛을 달고 성년시절의 힘든 행복을 향해 달리기는
매우 힘들 것 같았다. 하느님은 내가 나의 가장 좋은 본성을 순수하고
즐거운 우정에 바치기를 바라고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두 척의 빠른
배와 같이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리하르트의 배는 화려하고 경쾌하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워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며, 아름다운
목적지까지 동반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짤막한
소리를 지르며 침몰하였고, 나는 키를 잃고 갑자기 어두워진 물 위에서
정처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엄한 시련에 견디고, 키를 바로잡아 새로 출발하여 생의 월계관을 얻기
위해 싸우고 방황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우정을 믿었고, 여자의 사랑을 믿었고, 청춘을 믿었었다.
그것이 하나하나 나를 버리고 달아난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님을 믿어
그의 강한 팔에 안기지 않을 수 있단  서울오피 말인가? 그러나 나는 평생
어린애처럼 겁이 많고 고집쟁이였다. 그래서 참다운 생활이 자기 편에서
폭풍같이 내게로 달려와 나를 분별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큰 날개를
펴서 완전한 행복으로 나를 이끌어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현명하고 검소한 참다운 생활은 묵묵히 내가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것은 나에게 폭풍도 행운의 별도 보내 주지 않은 채
내가 다시금 안정을 되찾고 참을성있는 몸이 되어 내 고집이 꺾여지기만을
기다렸다. 참다운 생활은 나로 하여금 거만하고, 아는 척하고, 희극을
연출시키고, 그 옆에서 보며, 달아났던 어린애가 다시 어머니의 품에
안기기를 기다렸다.
5. 그후 얼핏 보기엔 지금까지의 생활보다 한결 활기가 있고 정신없이
바빠져 자칫하면 요즘 유행하고 있는 통속소설이라도 될 수 있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은 내가 어떻게 독일신문의 편집자로 초청을 받게
되었는지부터 말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내가 붓 서울오피 으로 독설을 마음대로 퍼부었기 때문에 혹평을 받고 비난을
당한 사실과, 그것으로 인하여 술을 막 마셔댐으로써 술고래라는 이름이
붙었고, 결국 대판 싸운 후에 사표를 내고 파리의 통신원으로 파견된
사실의 경위를 말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주받은 도시에서
불건전한 생활을 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독한 담배도 피워댄 사실들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 중에 외설스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지난 일을 생략하는 것은 결코 비겁하여서가 아니다.
나는 연달아 잘못된 길을 걸어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을 보았고, 또한 그
속에 빠졌었음을 고백한다. 그 이후 나는 예술가적 방랑생활의 낭만적인
것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은 내 생활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순수하고 선한 것에 내가 의지하고, 저 잃어버린 시절은
잃어버린 시절로,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내버려 두는 것을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서울오피 
어느 날 저녁 나는 혼자 보아(파리 교회에 있는 숲)에 앉아서 파리를
떠날 것인가 혹은 차라리 생을 버리고 말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이리하여 나는 오래간만에 처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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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아직 호수에서의 저녁 보트 놀이를, 붉은 등과 음악과 그리고
질식할 듯 싹텄다가 스러진 나의 사랑의 고백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연애하는  서울오피  슬프고도 우스운 사랑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더욱 우습고도 슬픈 것은 성인이 된 페터 카멘친트의 사랑
이야기다.
나는 우연히 엘리자베트가 최근에 약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축하를 하고 그 여자를 맞으러 온 약혼자와도 알게 되어 축하를
해 주었다. 나는 하룻저녁 쭉 호의적이고 후견인 같은 미소를 얼굴에
띠고 있었으나, 가면 같아서 내 자신이 정말 싫었다. 그 뒤 나는
숲으로도 술집으로도 가지 않고 혼자 침대 위에 앉아서 램프가 악취를
내며 꺼질 때까지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앉아 다시 의식이 소생될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의식이 소생되자, 비통과 절망의 검은 날개가 나를
덮쳐 나는 작고 약하게 부서져 흐느껴 울었다.
아침이 되자 나는 짐을 추려서 역으로 나가 고향으로 떠났다. 나는
다시 한 번 젠알프스 산정에 올라가서 소년시절을 생각하며, 또한
아버지가 건 서울오피 재하신지 보고 싶었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 멀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아주 백발이 되셨고,
등이 굽으셨고, 초라하게 보였다. 아버지는 나를 부드럽게 대하셨고,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으며, 아버지가 사용하시는 침대를 내게 양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나의 귀향에 놀라며 당황해 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집만 남기고 목장과 가축은 벌써 다 팔아 얼마 되지 않은 이자와 함께
여기저기서 조금씩 일을 하심으로써 생활을 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나를 혼자 두고 어디 가신 틈에 나는 이전에 어머니의 침대가
있었던 방으로 갔다. 지나간 날들이 고요하나 강처럼 흘러들었다. 난
이미 청년이 아니다. 남은 세월도 얼마나 빨리 흘러가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허리가 굽은 백발노인이 되어 괴로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내가 어릴 때에 지냈고, 러시아어를 배웠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 빈약하고 낡은 방,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방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서울오피 는 것은 자연스러웠고, 또한 기분을 침착하게 만들었다.
나는 감사한 생각을 가지고 나의 청춘시절의 풍성했던 모든 것을
회상하였다. 그때에 플로렌스에서 배운 로렌쪼 메디치의 시가 생각났다.

아아 아름다운 청춘
지나가니 슬프구나
마음대로 즐겨라
내일을 모르는 인생이어니

그리고 동시에 이탈리아와 역사가 넓은 정신계의 회상을 이 낡은 고향
방안으로 옮겨 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용돈을 드렸다. 그리고 저녁에 우리는 함께
술집으로 갔는데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다만 옛날과 다른 점은 이번에는
내가 술값을 내고 아버지가 별표주와 샴페인을 시키실 때 나보고 사실
그러하냐고 물은 것과 아버지보다 내가 술을 더 잘 마실 수 있게 된
점이었다. 나는 이전에 내가 술을 퍼부었던 대머리 영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재담쟁이에다 책략가였었는데 벌써 죽고, 지금은 그의 실없는
이야기들도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버트런드 주를 마시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나 별로 말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아버지가 술에 취해 무어라고
말씀하시며 몸짓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이때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이상한 기분에 잠겼다. 지난날 내 곁을 스쳐간 사람들의 영상이 끝없이
나를 감싸는 것이었다. 백부  서울오피 , 로에지 기르타네르, 어머니,
리하르트 그리고 아그리에티. 나는 이들의 영상을 사실은 그 반도 생각을
못하나 모든 것이 놀랄 정도로 훌륭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듯
훤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가고 잊어버린 과거의 것들이었으나
아직도 분명하고 깨끗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르는 사이 기억이 보존한 나의 반생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
한참되어 아버지가 잠잠해지고 잠이 들어버렸을 때에 비로소 나는
엘리자베트를 생각하였다. 바로 어저께 그녀에게 인사를 하였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했었고, 또한 그녀의 약혼자에게 축하를 했었다. 그런데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나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고통은 다시 눈을
뜨고, 물결치는 홍수와 함께 마치 열풍이 알프스의 목장에서 떨고 있는
썩은 오두막집을 뒤흔들 듯이 이기적이고 메마른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집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낮은 창을 넘어 작은 뜰을
지나 호수로 가서 거기 버려둔 작은 배를 풀어 몰래 푸른 밤 호수를 저어
나갔다. 은빛 안개에 둘러싸인 산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고, 거의 만월이
된 달은 푸른 하늘에 걸려 있으며, 검은 산봉우리들의 끝이 그곳에 닿을
듯 말 듯 하였다. 멀리 젠알프스의 폭포소리가 그윽하게 들려올 듯한
고요한 밤이었다. 고향의 영들과 청춘시절의 영들이, 그들의 푸르고 흰
날개로 나를 둘러싸고, 나의 작은 배를 치우고 양손을 벌린 채 알 수 없는
괴로운 태도로 슬픔을 나타내었다. 내 생활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많은 기쁨과 슬픔이 내 위를 지나갔는가? 왜 나는
진실을 갈망하였고, 또한 아직도 갈망하고 있는가? 왜 나는 좋아하는
여성을 위해 항거의 눈물을 흘 서울오피 리며 사랑하고 번민해야만 했는가? 그리고
오늘도 다시금 슬픈 사랑을 위하여 수치와 눈물로써 머리를 숙이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또한 왜 알 수 없는 하느님은 나의 생애를 고독자의
생애,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의 생애로 해 놓으시고도 내 마음속에
사랑에 대한 열렬한 향수를 넣어 주셨을까?
물은 뱃머리에 둔하게 부서지며, 노에서는 은빛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산들은 주위에 가까이 다가서며 말이 없고, 골짜기에 싸인 안개 위엔
은은하게 달빛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청춘시절의 영들이 말없이 나의
주위에 둘러서서, 깊은 눈으로 조용히 물어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아름다운 엘리자베트를 보았고, 시기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그
여자를 사랑하여 내것이 되게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푸르고 흰 호수 속으로 잦아들어 아무도 나 같은 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낡아빠져 못 쓰게 된 배 안에서 물이 새어드는 것을 보자 나는 빨리 노를
저어 나왔다. 갑자기 오한이 났다. 그리하여 집에 빨리 돌아와서 자리에
누웠다. 몸은 피로하였으나 정신은 말짱해 지난 생애를 회상하며 좀더
행복하고 순수하게 살며, 좀더 생의 본질에 가까이 가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물론 생의 모든 호의나 기쁨의 핵심은 사랑이라는 것, 엘리자베트에
대한 새로운 슬픔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사랑해야만 하는가?
그때 늙은 아버지의 생각이 떠오르며 처음으로 나는 지금까지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서울오피 . 소년시절에 나는
아버지를 괴롭혔고, 그후 고향을 떠났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를 홀로 계시게 하였고, 종종 아버지 일로 화를 내었고, 나중에는
아주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아버지는 임종의 자리에 누워계시고 나는
혼자 고아가 되어 그 옆에 서서 지금껏 친한 일이 없고 사랑하려고 애써
본 적도 없이 그저 그의 영혼이 날아가버리는 것을 지키고 앉아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나는 사랑한다는 어렵고 즐거운 일을 아름답고 놀랄 만한
연인에게서가 아니라, 백발이 다 된 보잘것 없는 주정뱅이에게서 배우기
시작하였다. 다시는 아버지 말씀에 거칠게 대답하지 않았으며, 될 수
있는 대로 아버지를 상대로 하여 달력에 적혀 있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읽어드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생산되고 그 고장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포도주 이야기도 들려드렸다. 아버지가 늘 하시던 사소한 일은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것마저 내가 해드린다면 아버지는
할일이 없으셔서 무료해 하실 것이다. 또한 저녁에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대신에 집에서 나와 함께 마시도록 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며칠동안 그렇게 해 보았다. 며칠, 저녁에 술과 여송연을 사다두고
노인의 무료함을 위로해드리려 하였다. 사오일째 저녁이 되자 아버지는
무언으로 반항하셨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 그러시냐고 묻자, 아버지는
탄식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너는 네 애비를 술집으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러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말했다. 서울오피 
저는 아버지 자식이고 좋을 대로 하십시오.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치를 살피시더니 그제서야 기쁜 듯이
모자를 들고서 나와 함께 술집으로 가셨다.
아버지는 한마디 말씀은 없으셨어도 나와 함께 오래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도 어느 곳에선가
타향에서 분열되었던 상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려는 기분에 쫓기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삼 일 안에 다시 떠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버지를 머리를 긁으시더니 축 처진 어깨를 들먹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씁쓸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하려므나.
출발 전에 몇몇 이웃사람과 수도원 사람들을 찾아가서 아버지를 잘 좀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어느 아름다운 날을 이용해 나는
다시 젠알프스 봉에 올라갔다. 반원형의 넓은 꼭대기에서 산들과 푸른
골짜기와 빛나는 물과 그리고 멀리 보이는 거리에서 떠오르는 연기를
내려다보았다. 이 모든 것은 일찍이 소년인 나로 하여금 큰 갈망에 차게
하였었고, 나는 아름답고 넓은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떠나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역시 세계는 옛날과 같이 아름답고 신기하게 내 눈앞에 전개
되었고, 나는 다시 한 번 행복의 나라를 찾아가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연구를 하기 위하여 언제 한 번 앗시시에 가려고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 서울오피 래서 우선 바젤로 돌아가 긴급한 일을 마친 후 몇 개의
짐을 꾸려 페루지아로 부쳤다. 그리고 나는 풀로렌스까지 기차로 가서
거기서부터 도보로 천천히 남쪽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여기 남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데 아무 기술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언제나 표리가 없고 단순하고 자유롭고
소박하여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과 악의없이 친해질 수가
있었다. 나는 다시 안전한 향토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후에는 바젤에 있어서도 인간생활의 따뜻한 친밀성을 사교계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소박한 민중 속에서 구하리라 결심하였다.
페루지아와 앗시시에서의 역사 연구는, 나에게 흥미와 활기를 띠게
했다. 여기서는 매일의 생활이 즐거웠으므로 상한 나의 마음은 곧
회복되어 생활로의 새로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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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나의 지나온 생애를 마음속으로
더듬었고, 그리하여 지금 죽어도 별반 손해될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아주 오래된, 그동안 잊어버렸었던 어느 날―산골
고향의 이른 여름아침, 어머니가 누워 죽음에 신음하시던 침대 옆에 내가
꿇어앉아 있었던―이 연상되었다.
나는 놀라며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날 아침을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했다 서울오피 . 어리석게도 자살을 하려던 생각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진실하고 완전히 탈선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건강하고 선량한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한 번 볼 때에 자기의 생명을 끊을 수는 없다는
것을 믿는 까닭이었다. 나는 운명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 위에 고결하면서도 조용하고
엄숙한 죽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죽음은 엄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또한 탕자를 집으로 되돌아 오게 하는, 마치 신중한
아버지처럼 굳세고 자비롭게 보였다.
나는 다시금 죽음은 그 바른 때를 알므로, 우리는 믿고 기다릴 수 있는
현명하고 착한 형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고뇌나 환멸이나
우울은 우리들을 불쾌하게, 가치없게 또는 천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성숙하게 하고 정화시키기 위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에 나의 짐은 바젤로 발송되었다. 그리고 나는 프랑스 남쪽의
아름다운 지방을 도보로 여행하며, 날이 갈수록 악취와 함께 나를
싫증나게 했던 파리 시절의 추억이 희미해지며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구애의 경우도 당했다. 성과 풍차와 곡식창고 속에서 밤을
지새기도 했고, 말하기 좋아하는 검은 머리의 젊은이들과 함께 따듯한
햇빛에 빛나는 그들의 포도주를 마시기도 하였다.
피로하고 여위고 햇볕에 그을리고 심경이 변화된 채 2개월 후에 나는
바젤에 도착했다. 이 여행은 수많은 여행 중에서도 최초의
장기여행이었다. 로카르노와 베로나간, 바젤과 부릭 간, 플로렌스와
페루지아 간 등 구두를 먼지에 더럽히며 두세 번 걸어 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처럼 꿈꾸며, 그러나 그때는 아직 이러한 꿈이 하나도
실현되지 못했을 때였다.
바젤에 이르자, 교 서울오피 외에 방을 한 간 얻고 짐을 푼 후에 일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조용한 거리에서 사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몇
가지 신문과 잡지와의 관계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했었다. 처음 몇 주일 동안은 침착하게 안정할 수 있었으나 점점
옛 슬픔이 되살아나 며칠, 몇 주일씩 계속되어 일을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우울함을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무서운 고독감을 느꼈다.
나와 사람들과 거리, 광장, 집 그리고 길과의 사이에는 언제나 커다란
함정에 놓여 있었다. 큰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에 중대한 사건이
실려 있다. 그것은 내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 축제가 있고, 사람이 죽어
매장되고, 장이 서고, 음악회가 열렸다.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나는
밖으로 달려나가 숲과 언덕과 시골길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그러면 내
주위에는 목장들과 수목들과 밭들이 탄식하지 않는 슬픔 속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보며, 애원하듯이 무언가를 말하며 내게 인사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슬픔에 대해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들의
슬픔을 이해하였으나, 풀어 줄 수가 없어서 같이 슬퍼하였다.
나는 나의 자세한 병세를 기록하여 어떤 의사에게 가서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의사는 그것을 읽고 나서 몇가지 묻고 나더니 나를
진찰하였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부러울 정도로 건강합니다.
그는 이렇게 칭찬하는 것이었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독서나 음악으로 기분을 전환시켜 보세요.
나는 직업상 매일 많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쨌든 밖에서 운동을 조금씩 하셔야 합니다.
저는 매일 서너 시 서울오피 간씩 걸어다닙니다. 휴가 때는 그 배를 걷기도
하고요.
그럼 사람들과 억지로라도 섞여 노십시오. 사람이 싫어지는 증세가
되기 쉬우니까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게 큰일이지요. 지금 당신은 사교를 싫어하는 증세가 커질수록 더
자꾸 많은 사람들과 사귀어야 합니다. 당신의 상태는 아직 병이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상관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소극적으로 곰곰이
생각만 하고 있으면 결국에 가서는 이상이 오고 말 것입니다.
의사는 이해심이 많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안스럽게 여겨
어떤 학자를 소개해 주었다. 이 학자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였고, 그는 일종의 정신적·문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찾아갔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친절하게도
나를 마음으로 맞아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곳에 자주 가게 되었다.
한 번은 어느 늦가을 쌀쌀한 저녁에 그곳에 갔었다. 한 젊은 역사가와
머리가 검고 몸매가 가냘픈 아가씨가 있었을 뿐 다른 손님이라고는
없었다. 그 아가씨는 차관(찻물을 끓이는 주전자 비슷한 모양의 그릇)을
살피며, 말이 많았고 역사가에 대해서는 좀 못 마땅해 하는 어투였다.
그리고 나서 그 아가씨는 잠깐동안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서는 나의 풍자소설을 읽었으나 전혀 재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꽤나 영리했다. 아니, 지나치게 영리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곧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중 사람들은 내가 술집에 자주 드나들며, 사실은 술고래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유식한 남녀 사회 서울오피 에서는 남의 험담이 가장 꽃을 피우는 까닭이었다. 내가
술고래라는 부끄러운 발견은 나의 술집 출입을 방해하진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은 좋아하였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금주열에 빠져 거기에 오는
신사 숙녀들은 주로 금주회 위원들로서, 술주정뱅이들이 자기들의 수중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한 까닭이었다. 어느 날 처음으로 은근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술집 생활의 수치와 알코올 중독의 저주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생적·윤리적·사회적 관점에서 볼 것을 암시하며, 어느 예식에
참석하도록 초대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우 놀랐다. 이때까지 이런
회합과 운동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던 까닭이었다. 예식은
음악이 있고 종교적 의식이 있어 대단히 우스꽝스러웠으나, 나는 그러한
인상을 애써 감추지는 않았다. 몇 주일동안 그들은 내가 귀찮을 만큼
친절히 권했기 때문에 아주 질색이었다. 또 어느 날 저녁은 같은 설교가
시작되고 간곡히 나의 개심을 바라왔으므로, 나는 견디다 못해 제발
시끄럽게 굴지 말아달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그런데 교수집에서 만났던
그 젊은 아가씨가 그때 옆에서 그 말을 유심히 듣고 있다가 아주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통쾌하군, 통쾌해!
그러나 나는 그 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기분이 나빠 있었다. 그런
관계로 더 한층 나는 금주가들의 대대적인 모임에서 일어난 어떤 작은
실패의 사건을 큰 기쁨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그 큰 모임은 무수한
내빈을 모시고 그 본부에서 열렸었는데 연설과 합창이 있었고, 친분관계가
맺어졌고, 이 착실한 계획의 진전을 만세를 부르며 축하하였다. 기를
들고 있는 고용인 중의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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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연설이 너무 긴 데 참을 수 없어
부근의 술집으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엄숙한 금주 시위행렬이 한길로
나서기 시작했을 때 심술궂은 주정뱅이들은 재미있는 광경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것은 감격한 군중들의 선두에 유쾌하게 술에 취한
지휘자가 하나 나섰는데, 그의 팔에는 적십자의 깃발이 마치 난파선의
돛대처럼 나부끼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주정뱅이 일꾼은 곧 해고되었다. 그러나 경쟁적인 이러한 모임들과
위원들의 내부에 일어나서 격렬해진 가장 인간적인 허영과 질투와 음모와
혼란은 해고될 수 없었다. 이 운동은 분열되었다. 몇 명의 야심가들은
모든 명성을 독점하려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개심하지 않은 모든
주정뱅이를 저주하였다. 고결하고 사심없는 협력자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무례하게 악용되 서울오피 었다. 이리하여 얼마 안 되어
측근자들은 이런 모임에도 이상적인 이름 밑에 여러 가지 추악한 인간성이
악취를 풍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나는 우연히
제삼자로부터 이 모든 희극을 들어 알고 몰래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종종
술에 취해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럼, 우리 술꾼들이 역시 더 좋은 사람들이란 말야.
라인 강을 바라보고 있는 높고 전망이 좋은 나의 작은 방에서 나는 여러
가지 공부도 하고 괴로운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는 생활이 이렇게 내
옆을 비껴서서 나를 끌고가는 급류도 없고 나의 열을 올릴 만한 격렬한
정열도 관심도 없이, 나를 몽롱한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절망을 느꼈다. 물론 나는 그날 그날의 필요한 일 외에 초기 프란시스
파의 승려의 생활을 그린 작품 준비에 바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창작이
아닌 끊임없는 작은 수집에 불과한 것으로, 그것은 내 동경의 충동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나는 취리히, 베를린, 파리 등을
회상하며, 오늘날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소원과 정열과 이상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은 종래의 가구와 까래와 의복을 버리고
인간을 더욱 자유롭고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른 어떤 사람은 헤켈(1834∼1919, 독일의 철학자)의 일원론
을 통속적인 책과 강연으로써 보급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영원한 세계평화를 가져오려고 노력하며 그것을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하층 계급을 위하여 투쟁하거나
인민을 위해 극장과 박물관이 세워지고 개관되어야 한다고 설명을 하며
기금을 모으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바젤에서는 술이 공격을 받고
있었다. 서울오피 
이러한 모든 운동에는 생기와 충동과 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중의
어느 것 하나도 내게는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목적이 달성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나와 나의 생활을 감동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실망해서 의자에 주저앉아 책과 잡지를 밀쳐 놓고 생각에
잠기고 또 잠겼다. 그때 창밖으로부터 라인 강의 물결과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데 감동을 받으며, 어디에나 숨어 있는 우수와 동경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첩첩이 싸인 청백의 밤구름이 놀란 새처럼
하늘을 달려가는 것을 보았고, 라인 강의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의 죽음을, 성 프란시스의 일을, 고향의 눈 덮인 산을, 리하르트의
죽음을 생각하였다. 또한 로에지 기르타네르를 위해 알프스의 들장미를
꺾으려고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나를 그려보았고, 취리히에서 책과 음악과
이야기에 흥분한 나를 그려보았고, 리하르트의 죽음에 절망하고 있는 나,
여행을 갔다가는 돌아오고, 마음이 회복되었다가는 다시 병드는 나를
그려보았다. 왜? 무엇 때문에? 아아 하느님! 이 모든 것이 대체
단순한 장난이며, 우연한 일이며, 한 그림에 불과한 것이겠습니까? 나는
정신을 구하고, 우정을 구하고, 미를 구하고, 진리와 사랑을 구하고
애쓰며, 그것을 샘솟듯 갈망하는 데에서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동경과 사랑의 불안한 물결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고통이었고,
아무에게도 기쁨이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술집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등불을 끄고, 손을
더듬어 낡고 험한 나선형의 층계를 내려와 벨틀린  서울오피 주나 버트런드 주를
마실 수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 고집세고 때때로
난폭하였으나 좋은 손님으로서 존경을 받고 환영을 받았다. 나는 잡지
《짐플리치므스》를 읽었는데, 그것은 언제나 나를 분개시켰다. 그리하여
나는 술을 마시고, 그 술이 나를 위로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이
감미로운 술은 여자의 손처럼 부드럽게 나를 어루만지며, 기분좋고
나른하게 만들어 나의 방황하는 영혼을 아름다운 꿈나라의 손님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때로는 사람들을 난폭하게 다루고 그들을 호령하는 것에 일종의 쾌감을
갖게 된 것에 대해 나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내가 종종 찾아간
술집에서는 여자들이 나를 버릇없는 자, 언제나 투덜거리는 불평가라고
하여 무서워하고 싫어하였다. 다른 손님들과 말하기 시작하면 비웃으며
난폭하게 굴었고, 상대편도 물론 따라서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사람의 술친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이미
나이들은 어찌할 수 없는 주정뱅이들이었으나 나는 종종 그들과 같이
하룻저녁 술을 마시곤 하는 데서 꽤 친밀해졌다. 특히 그중에 좀 늙은
무골충으로 직업은 화가이며, 여자를 싫어하고, 불결하였으나 일등급
술고래인 사람이 있었다. 저녁에 어떤 술집에서 그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때에 만나면, 그때마다 꼭 폭음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다를
떨게 되고, 다음엔 농을 던지게 되다가 붉은 포도주 한 병을 다 마실 때쯤
되면 점점 말은 없어지고 술만 마시게 된다. 그리하여 묵묵히 마주앉아
각각 자기의 여송연을 피우며 자기의 병을 비워가는 것이었다. 그때 둘은
서로 엇비슷했다. 우 서울오피 리들은 항상 동시에 병에 술을 다시 채우고, 반
존경하고 반 악의를 가진 즐거움으로써 서로를 쳐다보곤 하였다. 늦가을
새 술이 나왔을 무렵, 우리는 하루종일 변두리에 사는 영주의 포도촌을
걸어서 킬헨이라는 마을에 있는 히르쉔이라는 요정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늙은 화가는 자기의 경력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재미있고 기이하다고
생각했었으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모두 잊어 버렸다. 다만 그가 만년에
어떤 곳에서 술을 마신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다. 어떤 마을의 축제
때였다고 한다. 그는 지방명사들의 만찬에서 한 손님으로서 목사와
촌장을 곤드라지도록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목사는 아직 연설을
해야만 되었었다고 한다. 겨우 그를 이끌어 연단에 세웠으나 그는
어처구니 없는 말만 지껄임으로써 결국 끌려 내려오고, 그 대신 촌장이
뛰어 올라갔다. 그는 큰소리로 연설을 시작했으나, 너무 열을 올린
탓으로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연설을 이상하고 서툴게 끝맺었다는
것이다.
후에 이 이야기와 또다른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즐겁게 듣고 싶었었다.
그러나 어느 사격대회가 있던 날 밤에 우리에게 심한 싸움이 일어나 서로
수염을 잡아뜯고 법석들을 떨다가 아주 화가 나서 헤어졌다. 그후
술집에서 만나도 서로 원수가 되어 자연히 각각 다른 자리에 앉은 일이 몇
번 있었다. 우리는 옛날 습관대로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고 같은 속도로
술을 마시며 앉아 있었다. 나중에는 모두 돌아가고 둘만 남아 결국
시간이 다 되어 주인이 돌아가달라고 애원을 할 때까지 함께 있었으나
끝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말았다.
나의 우울과 처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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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에 관해 끝없이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고 피로하기만 했다. 나는 내가 기력이 다해 낡아버렸다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막연한 충동에 차서 이제 적당한 시기가
오면 어떤 깊고 좋은 것을 만들어내어 이 메마른 생에서 적어도 한 줌의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적당한 시기가 언제 올
것인가? 나는 저 여러가지 인공적인 자극을 통하여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신경질적인 현대파 문사들을 생각하면 입맛이 썼다. 그런데 내게는
소모되지 않는 굳센 힘이 쌓여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금 어떤
장해나 악마가 내 터질 듯한 굳센 육체 속에 있는 영혼을 흐리고 아주
우울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때 나는 어떤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특수한 인물이기 때문에 아무도 나의 괴로움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나눌 수 없을 것이라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우울의 악마적인
점은 그것이 다만 사람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자기도취가 되게 하고,
근시적으로 만듦으로써 거만스럽게 하는 점이다. 우울증에 걸린 자는
하이네가 그린 무미건조한 거인 아트라스 같은, 자기자신만이 세계의 모든
고통과 수수께끼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고통을 전혀 서울오피  모르는 채 미로에서 방황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법이다. 또한 나의 성벽과 특징의 대부분이 내것이라기보다는 카멘친트
가문의 가보 혹은 화근이라는 생각도 고향을 떠나 고독하게 지내오는
동안에 전부 잊어버렸었다.
나는 다시금 몇 주일에 한 번씩 손님을 초대하는 그 학자의 집에 가곤
하였다. 나는 점점 거기 출입하는 모든 사람을 알게 되었다. 대개는
젊은 대학생들이었고, 그 중에는 독일 사람도 많았다. 그밖에 화가가 몇
명, 음악가가 몇 명 있었고, 그리고 부인과 딸들을 동반한 시민이 몇 명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나를 맞아 주는 이 사람들을 종종 놀라움에 차서
쳐다보았고, 그들의 행동에서 그들은 매우 여러 번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대부분이 동일한
사교형의 인물들로서 서로가 조금씩 닮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들이 사교적이고 일률적 정신을 가진 탓이었다. 나만이 그것을 가지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그
청신함과 개성적인 힘이 소모되지 않은 훌륭하고 우수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는 오랫동안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 다니며 누구에게나 일
분 이상 서있지 않았고, 부인들에게는 재주있는 찬사를 보냈으며, 차와
대화와 피아노에 동시에 집중하며 흥겨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문학과 예술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내게는 힘겨운 일이었다. 그들은 이 방면에 있어서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으로 실로 거짓말이 많았고, 어쨌든 언제나 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또한 그들을 따라 거짓말을 하고
말았으나 조금도 기쁘지 않 서울오피 았고, 그런 쓸데없는 많은 말이란 지루하고
야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것보다는 어떤 부인이 자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는 것이 오히려 즐거웠고, 특히 나는 내가
여행한 일이며 그날 그날의 경험과 그밖의 사실에 관해 많은 말을 하였다.
그러는 데서 때론 친밀하고 즐거운 기분을 가지기도 했으나, 결국 끝에
가서는 술집으로 찾아가 기갈과 썩은 듯한 권태를 벨틀린 주로 씻어
버리곤 하였다.
이 모임에서 어느 날 나는 위에 말한 검은 머리의 아가씨를 다시
만났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음악도 하고 언제나처럼 떠들어댔으므로
나는 화첩을 들고 램프가 있는 구석진 곳으로 가 앉아 있었다. 화첩은
토스카나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보통 볼 수 있는 흔한 것이 아니었고,
좀더 친밀감이 일어나는 스케치된 풍경화로 대부분이 이 집 주인이 여행할
때 같이 다닌 사람들이나 그의 친구들이 보내온 것이었다. 나는 바로 산
클레멘테의 쓸쓸한 골짜기 안에 돌로 지은, 창이 아주 작은 집의 소묘를
발견한 참이었다. 나는 이 골짜기를 여러 번 산책한 일이 있었으므로 곧
그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골짜기는 피에솔레에서 아주 가까우나
고적이 없는 탓으로 그곳을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골짜기는 험한 대신 뛰어나게 아름다웠으며, 높고 험한 벌거숭이 산에
끼어 건조하고 인가도 없는, 세계와 동떨어진 외로운 곳이었다.
왜 언제나 혼자 앉아 계세요, 카멘친트 씨?
그 아가씨가 내게로 와서 어깨 위로 넘겨다 보며 말했다.
나는 화가 났다. 그녀는 남자를 우습게 여기고 있다고 나는 쭉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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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하였다. 그녀는 내가 감개무량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산 클레멘테를 설명해 주었다. 여름 오후, 찌는 듯한
일광 속에 묵묵히 뼈만 남은 웅장한 자태를 말해 주었다. 그 근방인
피에솔레에서는 산업을  서울오피  밀짚모자와 바구니를 들고 기념품과
오렌지를 팔며, 관광객을 속이기도 하고 구걸을 하기도 한다. 멀리
밑으로는 플로렌스가 가로놓여 있어, 그곳에서는 신식과 구식생활이 함께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클레멘테에서는 피에솔레도 플로렌스도 모두
보이지 않는다. 클레멘테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없고, 로마 시대의
건물도 없어 역사는 이 가련한 골짜기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태양과 비가 흙과 싸우며 굽은 소나무가 겨우 생을 유지하고
있고, 몇 그루의 전나무가 여윈 가지를 펴고 공중에 솟아 있으면서 메마른
뿌리로 유지하고 있는 빈약한 생명을 단축시키는 무서운 폭풍이 오나 안
오나를 망보고 있다. 때때로 가까운 큰 농장의 달구지가 지나가고 혹은
농민의 가족이 피에솔레로 걸어가나 그들은 그저 우연한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가볍고 즐겁게 보이는 촌여자들의 붉은
앞치마도 여기에서는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사람들은 저마다 저것은 없어도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또 젊었을 때에 한 친구와 경치를 구경하며 전나무 밑에서 자거나,
그 여윈 밑동에 몸을 기대고 서 있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슬프도록
아름답고 쓸쓸한 골짜기에 감도는 이상한 고독이 고향의 산골짜기들을
연상시켰었던 점을 말해 주었다.
우리들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선생님은 시인이세요?
그녀는 말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생각하는 것을 의미가 달라요.
하고 그녀는 말을 계속하였다.
선생님이 단편소설이나 그 서울오피 런 유의 것을 쓰셔서 시인이라는 것이
아니에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이에요. 나무가
속삭이고 산이 햇빛에 빛난들 다른 사람에게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그 속에서 생명을 찾아 같이 즐길 수 있잖아요.
나는 아무도 자연을 이해한다 고 말할 수 없다는 것과 아무리 자연을
구하여 이해하려고 해도 수수께끼만 발견되어 슬퍼진다는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햇빛 속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도, 풍화된 돌도, 동물도, 산도
그것들은 모두 한 생명을 갖고 있으며, 역사를 가지고 살면서 괴로워하고
반항하며, 또한 즐기며 죽으나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야기하면서 나는 그녀가 조용히 앉아서 내 말에 경청하는 것을 보고
내심으로 기뻐하며 그녀의 모습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길은 내
얼굴에 쏠린 채 나의 시선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얼굴은 아주 고요하고
여념이 없으며, 약간 긴장한 듯 어린애같이 앉아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아니, 어른이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자신을 잊어버리고
어린아이의 눈을 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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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에는 슈토크호른의 연봉을 연상시키는 톱날 같은 험한 산들이 솟아
있고, 그 위의 상쾌하게 비치는 하늘에는 말할 수 없이 천재적인 수법으로
그린 상아빛 구름이 떠 있었다. 그 구름은 이상스럽게도 뭉키고 서로
얽힌 덩어리로 되어 있어 첫눈에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것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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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해 보이는 강한 주름살을 살며시 펴는 것이었다. 위대한 작품의 미와
진실이 그녀의 영혼을 뒤흔들어 미와 진실을 그녀에게 그대로 나타나게 한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옆에 앉아 아름다운 세간티니의 구름과 황홀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머리를 돌려 나를 보고 말을 건네는 데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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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였고, 특히 유라 산으로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거듭 숲과 산과
목장과 과수와 수풀들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나를, 아니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나는 이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 그것들의
고요한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갈망이 일어났다. 또한 마음속에 깊은
생명과 동경이 막연히 머리를 들어 의식되고 이해되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이
때때로 나타내는 미를 즐기는 것을 단지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지상의 미를 즐기며 풀밭을 짓밟고,
나중엔 많은 꽃과 가지를 꺾는다. 그것은 곧 버리든가 집으로 가지고
와서 쓰러지게 한다. 이것이 서울오피  그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날씨가 좋은
일요일이면 그들은 이런 사랑을 회상하고 자기들의 좋은 마음에 스스로
감동을 받는 것이다. 사실은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필요없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인간이 자연의 주인 인 까닭이다. 아아,
참으로 인간이 자연의 참 주인이란 말인가!
이리하여 나는 차츰 사물의 깊이를 탐내며 눈을 떴다. 나는 바람이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을 보았고, 시냇물이
골짜기를 흘러내리고, 고용한 강이 들로 조용히 흘러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리가 진정 하느님의 소리이며, 이런 알 수 없는
원시적이며 아름다운 말을 이해하는 것이 낙원을 다시 찾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책이 있으나, 이러한 것을 말한 책은
없고, 다만 성경에 생명을 지닌 자의 표현할 수 없는 탄식 이라는 묘한
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나와 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이 끌려 창조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구름의 움직임을
살피고, 또한 끊임없이 동경하며 영원한 것에 대해 숭배의 손을
들어올리기 위해 그들의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정숙한 시간을 찾는 사람들,
즉 은둔자, 속죄자, 성자 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대는 피자에 가서 캄포산토를 방문한 일이 있는가? 그 벽에는 과거
수세기 동안에 퇴색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에 테베의 황야에
은둔해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그림이 있다. 그 소박한 그림은 낡아
희미해진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화의 매력을 발하여, 그것을 보는
사람은 곧 슬퍼지며 거룩한 세계의 어딘가로 가서 죄와 부정한 것에 대해
뉘우쳐 울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믿게 된다. 무수한
화가들은 거룩한 그림 속 서울오피 에서 이렇게 자기들의 향토를 말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루드비히 리히테르의 사랑스러운 아기의 작은 그림 또한 피자의
벽화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현재와 형체적인 것을 사랑하던 티치안은
왜 그의 명랑하고 대상적인 그림에 종종 감미롭고 먼 푸른 배경을 그려
놓곤 하였던가? 그것은 다만 한 번 붓이 슬쩍 간 짙은 남빛의 따듯한
빛깔로 먼 산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는 무한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실주의자였던 티치안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미술가들이 아는 척하며 말하는 것처럼 색채의 조화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이 명랑하고 행복스러웠던 화가의 영혼 속에 숨어 있던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선물이었었다. 이렇게 모든 시대의 예술은
우리들 마음속에 신적인 무언의 요구에 어떤 말을 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성 프란시스는 이것을 더욱 완전하고 아름답고 어린아이같이 말하였다.
나는 그때 비로소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 땅 전체를, 즉 식물,
천체, 동물, 바람, 물 등 모든 것을 하느님에 대한 그의 사랑으로 싸안아
중세기와 단테까지도 넘어서서 시간을 초월한 인간의 말을 찾아냈다.
그는 자연의 모든 힘과 현상을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다. 그가
만년에 의사들로부터 불에 달군 쇠막대기로 자기의 이마를 스스로
지지도록 선고를 받았을 때 그는 이 괴로운, 중병과 같은 불안 속에 서서
이 무서운 쇠막대기를 그의 사랑하는 형제인 불 이라고 환영하였다.
난 지금 사람과 같이 자연을 사랑하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친구나
여행의 동반자에게 귀를 기울이듯이 자연에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것으로써 나의 고민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은 고귀해지고
정화되는 것이었다. 나의 눈과 귀는 예리해져서 여러 가지 빛깔과 소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의 고동을 더욱 가까이에서 분명하게
듣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체험하여 시인의 말로 표현하길 바랐다.
다른 사람들도 생명의 고동에 가까이할 수 있고 더욱 좋은 이해로써 모든
원기와 쟁화와 순진의 원천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러나 당분간
그것은 희망이요 꿈으로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먼저 가까운 것에서부터 출발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하여
이제는 어떤 물건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게 되었다.
이 일이 얼마나 나의 우울한 생활에 혁신을 가져왔고 위안을 가져왔는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격정을 떠난 무언의 굳건한 사랑보다 세상에
귀하고 행복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몇
사람이라도 혹은 두 사람이나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권고에 의해 이
순수하고 행복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다면 그 이상 바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기술을 가져 무의식적으로
한평생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총아요, 인간 중의
선인이요, 어린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픈 고뇌 속에서 그것을 배웠다.
여러분은 혹시 불구자나 불쌍한 사람들을 못 보았는가? 만일 여러분께서
나의 빈약한 말들을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가 보아라.
그들의 마음의 고뇌는 욕심 서울오피 없는 사랑에 의하여 정복되고 쟁화되어
있으리라.
내가 수많은 가련한 수난자들을 존경하게 될 수 있는 완성된 경지에
도달하기엔 아직도 매우 멀다. 그러나 이 몇 해 동안 이러한 완성에
이르는 바른 길을 알고 있다는 나의 위안의 신념을 잃어버린 적은 결코
없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바른 길을 언제나 걸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도중에 여러 벤치에 걸터앉기도 하고, 돌아가는 길을 여러 번 걷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 큰 성벽이 있어 그것이 순수한 사랑을
방해하였다. 그것은 술을 마시는 것이나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었다.
물론 주량은 훨씬 줄었으나 몇 주일에 한 번씩 아첨을 잘하는 이 신에게
넘어가서 그의 팔에 몸을 맡기곤 하였다. 전처럼 술에 곤드라지게 취해
길가에 눕던가 그와 유사한 밤의 추태를 부리는 일은 물론 없었다.
그것은 술이 나를 사랑하고 유혹하기는 하였으나, 다만 나의 영혼과
주령이 서로 정답게 이야기할 정도에서 그치곤 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술을 마신 후에는 오래오래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술에 대한 사랑은 버릴 수 없었다. 오랫동안 나는 물려받은
재산을 정성껏 경건한 마음으로 보호하여 아주 내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대책을 강구하여 본능과 양심 사이에 반은 진실하고 반은 농담인
계약을 맺게 되었다. 나는 앗시시의 성자의 찬가 속에 나의 사랑하는
형제인 술 이라는 말도 넣었다.
6. 나의 다른 한 가지 악덕은 더욱 심했다. 나는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거의 싫어했고, 은둔자와 같이 살며 인간의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조소와
멸시로써 대하였다.
새로운 생활의 시초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일은 인간들이 서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오로지
자연의 묵묵한 생활에 나 서울오피 의 애정과 귀의와 동감을 바치기만 하면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또한 자연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었다.
밖에 나가 누우면 갑자기 언덕, 숲의 변두리 또는 내가 오래 찾아가지
않은 사랑스런 나무가 하나하나 마음에 찾아드는 것이었다. 지금쯤
나무는 아마 밤바람 속에 우뚝 서서 졸며 꿈꾸며 탄식하며 가지를 흔들고
있을 것이다.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럴 때면 나는 집을 나와 그
나무를 찾아가 어둠 속에 희미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애정을
갖고 바라다본 후 어렴풋한 모양을 가슴에 지니고 돌아오곤 하였다.
여러분은 웃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잘못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사는 아니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내가 이런 사랑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길로 가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든 시작만 하면 언제나 좋은 일들이 그 뒤에 따르는 법이다.
내 눈앞엔 나의 위대한 문학의 이상이 점점 가까이, 점점 가능한 것같이
보였다. 내 사랑이 언젠가 시인으로서 숲과 시내의 말을 할 수 있게
한다면 대체 누구를 위하여 그것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다만 내가
사랑하는 자연물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지도자가 되고
사랑의 스승이 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이 냉담함을
정복하고 인간에 대해서도 또한 우정을 보이려는 갈등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고독과 운명이, 이 점에 관해 나를
완고하고 나쁘게 만든 까닭이었다. 집과 술집에서 좀더 유순하려고
애쓰고, 도중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정도로는
불충분했다. 어쨌든 이렇게 대하는 데에서만도 내가 얼마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있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내가 친절히
굴려고 하면 그것을 믿 서울오피 지 않고, 냉담하게 대하거나 그것을 조롱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까닭이었다. 가장 나빴던 것은 위에 말한 유일한 친지인
학자의 집을 일 년간이나 피하고 안 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곳을 다시 찾아가서 이 지방의 사교계에 들어가는 어떤
길을 구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업신여겼던 나의 인간미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다시금 그 집을 생각하게 되자, 홀연히 나의 마음엔 세간티니의 구름 앞에
서 있던 아름다운 엘리자베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가
나의 동경과 우울과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진실하게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나에게는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여 그것을 신랄하게
조소했었다. 시인이요 서울오피 , 방랑자요, 술꾼이요, 이상한 사람인 내가 무슨
능력이 있으랴! 그러나 지금 나는 내 운명을 알게 되었다. 그 운명이란
사랑이 결혼을 가능하게 하여 인간세계에로 다리를 놓으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유혹적이고  서울오피 확실하게 보였다. 엘리자베트가 내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녀가 감수성이 풍부하고 고상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일찍이 느끼고 또한 보아온 바였다. 나는 산 클레멘테 에 관하여 내가
이야기하였을 때에 그리고 세간티니의 그림 앞에 섰을 때에 그녀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생 서울오피 생했던 것이었나를 생각하였다. 나는 이 몇 년 동안
예술과 자연에서 풍부하리만큼 내적인 재산을 모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내게서 도처에 졸고 있는 미를 보고 배울 것이고, 나 또한 미와 진실로써
그녀를 감싸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얼굴과 마음은 탁한 것을 버리고
힘껏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고 우습게도 나는 내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것을 전혀 느끼 서울오피 지 못했다. 고독자요, 기이한 사람이었던
나는 갑자기 결혼생활의 행복과 가정의 건설을 꿈꾸는 사치한 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황급히 손님이 많은 그 집으로 찾아갔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그러나 비난조로 나를 맞아 주었다.  서울오피 그후 나는 여러 차례 그곳에 가서
며칠이 지난 후에야 엘리자베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아, 그녀는
미인이었다. 내가 그녀를 연인으로 마음에 그렸던 대로 그녀는 아름답고
행복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한 시간 동안 그녀를 눈앞에 지켜보며
즐거운 행복을 맛보았다. 그녀는 부드럽게, 아니 진정 친밀한 우정으로
내게 인사를 했으므로 난 행복스러웠다. 서울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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