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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선한 아이였는데 지금 나는 완전히 변해 버
렸다. 바깥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이 행동했으며 여러 날을 자
신의 내면에 귀기울이고, 강물 소리를, 거기 내 마음속 지하에서 출렁이는, 금지
되어 있는 어두운 일본섹스 오랄섹스강물 소리를 듣는 데만 열중했다. 지난 반 년 동안에 나는 매
우 빨리 자랐다. 그리하여 키가 훌쩍 크고, 마르고 미완성인 채 세계를 들여다보
고 있었다. 소년의 사랑스러움은 내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별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도 느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
았다. 막스 데미안에 대한 커다란 그리움을 자주 느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를
미워도 했으며 몹쓸 병처럼 떠맡은 내 삶의 빈곤화의 책임을 그에게 돌리기도
하였다.
하숙집에서 나는 처음에는 사랑받지도 주목받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나를 놀리다가, 그 다음에는 나로부터 물러났으며 나에게일본섹스 오랄섹스서 음침하고 패기 없는
사람, 불쾌한 괴짜를 보았다. 그런 역할을 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나는 그 역
을 더 과장했으며, 고독 속으로 칩거하였다. 남몰래 자주 비애와 절망의 좀먹히
는 발작에 짓눌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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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도 그 고독은 바깥에서 보면 지극히 남자답게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견고
해 보였다. 학교에서는 새로운 비축없이 집에서 쌓았던 지식만 소모해 나갔다.
이 학급은 전에 다니던 학교에 비해 약간 진도가 뒤처져 있었고, 나는 내 또래
들을 다소 경멸적으로 어린아이들로 보는 습관을 길렀다.
한 해 남짓 그렇게 지나갔다. 방학이 되어 처음 집으로 다니러 왔을 때도 새
로울 게 없었다. 기꺼이 다시 떠났다.
십일월 초였다. 날씨가 어떻든 짧은 산책을 하며 생각에 잠기는 습관이 들었
다. 그런 산책길에 자주 희열 같은 것을 맛보았다. 우수와 세상에 대한 경멸과
자신에 대한 경멸로 가득 찬 희열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저녁 축축하고, 안개
낀 어스름에 도시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닐었다. 시립 공원의 넓은 가로수 길
이 완전히 버려진 소라넷채 나를 부르는 듯했다. 길에는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나는 어두운 쾌락을 느끼며 낙엽들을 바로 헤집었다. 축축하고 쌉쌀한 냄새가
났다. 멀리 있는 나무들이 안개를 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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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물었다.
여기서 코블렌츠까지, 그리고 나중에는 제네바까지 갔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당신도 몇 번 걸려들었겠군요?
꼭 한 번 두르라흐에서 그랬습니다.
상관없다면 내게 한번 얘기해 주십시오. 언제 술집에서 만날까요?
글쎄요, 언제든 일이 끝나신 후에 제게 들르셔서 형편을 물어 주시면
됩니다. 농담이 아니시라면.
며칠 후 엘리자베트 집에 모였던 날 저녁이었다. 나는 길가에 서서 그
목수한테 가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목수를 찾아갔다. 나무공장은 이미 닫혀일본섹스 오랄섹스져
컴컴했다. 나는 더듬더듬 어두운 현관과 좁은 안뜰을 지나 집안의 층계를
오르내리다가 결국 목수의 문패가 붙은 문을 발견했다. 돌어섰더니 곧
거기에 아주 작은 부엌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느 바짝 마른 부인이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좁은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장난하는
세 아이를 감시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 부인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어두컴컴한 창가에서 목수가 신문을 읽고 앉아 있는 옆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는 나를 귀찮은 손님으로 알고 무어라 웅얼거렸으나
나중에 나를 알아 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놀라서 당황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아이들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아이들이 부엌으로 달아]났으므로 나는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부엌에서는 부인이 쌀로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니 움브리아에
있는 파드론의 집 부엌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때
그와같은 실패를 하고 있었다. 나는 요리하는 데 한몫 끼었다.
그곳에서는 쌀로 요리를 할 줄 몰라서 일종의 풀을 만들어 아무 맛도 없고
끈적끈적하여 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때
그와 같은 실패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곧 냄비와 주걱을 맡아일본섹스 오랄섹스 내가 직접
요리를 함으로써 식사를 실패에서 구할 수 있었다. 부인은 내게 모든
것을 맡겨 버리고는 내가 하는 일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쌀 요리는 꽤
훌륭했다. 우리는 그것을 방에 옮기고 등불을 켰다. 나도 한 그릇
차지하였다.
부인은 그날 저녁 요리 이야기에 나를 몰아 넣어 주인과는 말할 틈을
주지 않았으므로 여행 이야기는 다른 날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 부부는 내가 외면으로는 신사지만 실은 농부의 아들이요, 가난한
집안의 출생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고는 첫날 저녁부터 벌써 친밀해졌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같은 처지의 출생이라는 공감을 가졌고, 나도 어려운
가정 속에서 소시민의 고향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는 치장을
한다든지 잘난 척하거나 희극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교양이나
고급스런 취미의 옷을 두르지 않은 엄하고 어려운 생활이 행복하고 좋아서
굳이 아름다운 말로써 꾸밀 필요가 없었다.
나는 종종 이 목수집에 찾아가서 가엾고 재미없는 사교를 잊었을 뿐
아니라, 내 슬픔과 어려움까지도 잊었다. 나는 한 조각의 유년시절이
나를 위해 여기에 보존된 듯한, 또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 신부들이
파괴해 버린 생활을 여기에서 다시 되찾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찢어지고 땀이 배어 누렇게 찌들은 오래된 지도 위에 허리를 굽히고,
목수와 나는 함께 거닐어 본 모든 도시의 성문과 거리를 헤매며 즐겼고,
직공들의 농담을 새롭게 했으며, 때로일본섹스 오랄섹스는 젊은 방랑자의 노래를 몇 곡 함께
부르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수공업의 괴로움이며 가족과 아이들과 도시에
관한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다가 점점 주인과 나의 구실이 바뀌어
나는 그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그는 나에게 주는 자, 가르치는 자가
되었다. 나는 여기에서 사교적인 것이 아니라 진실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자녀 중에 다섯 살 난 여자아이가 특히 여위어 눈에 띄었다. 그
애의 이름은 아그네스인데 아기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금발에 얼굴은
창백하고 여위었으며, 수줍은 큰 눈을 가졌고, 동작은 부드럽고 겁이 많아
보였다. 어느 일요일날 그 가족과 소풍을 가려고 들렀더니 아그네스는
앓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그 어머니가 그 애 곁에 남아 있었고, 그
나머지들은 천천히 걸어 거리를 빠져나왔다. 우리는 성 마가레테 교회
뒤꼍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았다. 어린아이들은 돌, 꽃, 갑충 등을 찾아
헤매고 우리 어른들은 여름철의 목장이며, 빈닝그의 묘지며, 유라 산의
푸르고 아름다운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수는 피로하고 괴로운지
묵묵히 앉아만 있어 무슨 근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가 아프시오?
아이들이 꽤 멀리 갔을 때에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는 멍하니 슬픈
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애가 죽어 갑니다. 나는 벌써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자란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눈에 늘 죽음의 기운이 드러나 있어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죽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를 위로하려 했으나 곧 입을 다물고 말았다.
보시오.
그는 슬픈 빛으로 웃었다.일본섹스 오랄섹스
당신도 그 애가 회복되리라고는 믿지 않으시겠지요? 나는 독실한
신자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나는 교회에도 잘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이 나에게 한마디 하시려 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아직 어린애라 늘 건강하지 못합니다만 그 애는 다른 애들을 다 합친
것보다 귀여웠습니다.
아이들은 기쁘게 고함을 지르며 몰려와서 나를 둘러싸고 많은 질문을
하였다. 꽃과 풀의 이름을 묻고, 나중에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꽃과 나무와 숲에 관한 이야기며, 그것들에게도
어린이들처럼 각각 혼이 있고, 자기의 천사를 가졌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들의 아버지도 듣고 웃으며, 이따금 가볍게 그렇다고 내 말에 보증을
해 주었다. 우리들은 산이 어둑해지는 것을 보고,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돌아왔다. 목장 위에는 붉은 놀이 걸려 있고 먼 교회의 종탑들이 따뜻한
공중에 작고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여름 하늘가의 푸른 빛은 아름다운
초록과 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나무들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피로해선지 잠잠히 있었다. 아이들은 겨자꽃,
카네이션, 풍령초의 천사들을 생각하였고, 우리 어른들은 영혼에 날개가
돋쳐 근심하는 우리들의 작은 무리를 떠나려고 준비하는 작은 아기의 일을
생각했다.
다음 두 주일간의 경과는 좋았다. 소녀일본섹스 오랄섹스의 병은 회복되는 것 같아, 몇
시간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 있을 수도 있었고, 찬 이부자리 속에서
지금까지보다 더 귀엽고 명랑하게 보였다. 그러더니 며칠 밤 열이 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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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의 생명이 수일이나 수주일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단 한 번 그 애 아버지는 거기에 대한 말을
하였다. 그것은 일하는 장소에서 였다.
아무래도 곧 해야 될 것이니까요.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일을 마친 후에 자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나는 한쪽 대패판 위에 앉았고, 그는 다른 대패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판자에 대패질을 다하고 나서 그것을 자랑삼아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아름답고 건장하게 자라난 흠이 없는 전나무 목재였다.
못은 하나도 박지 않고 부분 부분을 잘 맞춰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튼튼해서 오래갈 테니까요. 그러나 오늘은 그만 하렵니다. 자,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시죠.
뜨겁고 상쾌한 여름날이 연이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매일 한두
시간씩 작은 아기의 곁에 앉아서 아름다운 목장과 숲에 관해 이야기해
주며, 그 애의 작고 여윈 손을 내 큰 손으로 꼭 쥐고 마지막날까지 그
애의 사랑스럽고 명랑한 애교를 마음껏 즐겼다.
그후 우리는 불안과 슬픔에 싸여 작고 여윈 몸뚱이가 강한 죽음과
싸우기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으는 것을 보았다. 죽음은 빨리 그리고
쉽게 그 애를 정복하였다. 어머니는 묵묵히 참고 있었으나. 아버지는
침대 위에 쓰러져서 몇백 번이나 작별을 하고 금발을 쓰다듬어 주며 숨이
끊어진 딸을 위로하고 있었다.
소박하고 간단하게 장례식이 끝나자, 옆 침대에서 자던 아이들이 밤마다
울어 가슴이 답답했다. 이윽고 아름다운 성묘날이 와서 우리들은 새
무덤에 나무를 심고는 묘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죽은 아기의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우리들이 사랑하던 아기가 잠들고 있는 땅이며,
그 위에 자라던 나무와 잔디며, 자유롭고 즐겁게 조용한 무덤의 정숙을
깨뜨리며 날고 있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한편 빡빡하고 부지런한 날은 이제 달아나 버리고, 아이들은 다시
노래를 부르고 씨름을 하며,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그리고 일본섹스 오랄섹스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아기를 영 보지 못해도 아름답고 작은 한
천사를 천국에 모시는 데 익숙해졌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아는 교수집의 모임에 더 참석하지
못하였고, 또한 엘리자베트의 집도 몇 번밖에 방문하지 못하였는데,
그때에도 이야기꽃이 피는 도중에 나는 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슴
답답함을 느꼈다. 지금 내가 두 집을 찾아가니 모두 문이 닫혀 있고,
그들은 벌써 시골로 가고 없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목수집과 가까이
교제하며 어린애의 병을 돌보는 사이에 무더운 여름과 피서할 생각을 전혀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이전에는 7월과 8월에
시내에 남아 있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었다.
나는 잠시동안 그들과 작별하고 슈바르츠발트, 베르그슈트라쎄,
오덴발트 등지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경치좋은 곳에서 바젤의
목수집 아이들에게 그림엽서를 보내며, 이르는 곳마다 나중에 아이들과
그의 아버지에게 어떻게 여행 이야기를 해 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프랑크프르트에서는 예정일보다 며칠 더 있기로 했었다. 아사펜브르그,
뉴른제르그, 뮌헨 그리고 울름에서는 새로운 기쁨으로써 고대미술품을
감사하였고, 마침내 아무 생각도 없이 취리히에서 발을 멈추었다.
지금까지 몇 해를 두고 무덤을 피하듯이 이 도시를 피하고 있었으나, 지금
나는 낯익은 거리를 헤매며 옛날의 술집과 화원을 다시 찾아 아무
괴로움도 없이 지나간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다. 여류화가
아그리에티는 결혼을 했었는데, 그녀의 주소를 알려 주는 사람이었었다.
나는 저녁 때에 그곳으로 가서 그 집 현관 문앞에 붙어 있는 그 여자
남편의 이름을 일고 창문을 올려다보곤 들어가기를 주저하였다. 그때
옛날이 생생하게 돌이켜지며 청춘의 사랑이 가벼운 쓰라림으로써
깨우쳐졌다일본섹스 오랄섹스. 나는 발길을 돌려 일찍이 사랑한 이탈리아 여인의 아름다운
영상을 무익한 재회로써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당시
예술가들이 여름밤의 축제를 가졌던 호반의 집을 찾고, 어느덧 즐겁게
흘러가 버린 삼 년 동안을 살았던 그 집의 고미다락방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뜻밖에도 모든 추억에 앞서 엘리자베트의 이름이 입술에 떠올랐다.
새로운 이 사랑은 그 이전의 낡은 사랑보다도 강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도 지금에 와서는 역시 더욱 고요하고 슬프고 괴로우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좋은 기분을 지속시키려고 나는 보트를 타고 따듯하고 밝은 호수 위를
고요히 저어 나갔다. 황혼이 짙어오고 있었다. 하늘에는 아름답고
눈처럼 흰 구름이 한 점 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구름을 쳐다보며
유년시절에 구름을 사랑했던 것을 회상하고, 엘리자베트를 생각하며, 또한
엘리자베트가 그때 그렇게도 아름다움에 취해 그앞에 멍하니 서 있던
세간티니의 구름의 그림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때처럼
엘리자베트에게 언어와 불순한 욕망에 흐리지 않은 사랑을 그토록
행복스럽고 순수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것은 구름을 바라보며
조용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좋았던 모든 것을 더듬으며, 이전의
혼란과 정열 대신에 유년시절의 동경을 느낀 까닭이었다. 그러나
유년시절의 동경도 지금은 더욱 무르익고 더욱 침착한 것이 되어 있었다.
이전부터 나에게는 보트를 저으며 조용한 박자 맞추어 무엇을 읊든가
노래하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도 나는 고요히 노래를 부르며 그것이 시가
되어 있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취리히의 아름다운 호수의 저녁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것을 수첩에 적어 넣었다.

하늘 높이 머물러 일본섹스 오랄섹스있는
흰 구름같이
밝고 아름답고 먼
너, 엘리자베트.

구름은 가고 방황하나
거들떠보지 않는구나.
그러나 어두운 밤이면
그대의 꿈길을 걸으리.

거룩하게 가고 반짝이어
그후부터 안식을 잃고
흰 구름따라
그리워 한숨짓노라.

바젤로 돌아오자 앗시시에서 내게 한 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그것은
아눈치아타 나르디니 부인에게서 온 것으로 기쁜 소식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 여자는 재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 내용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존경하고 친애하는 페터 님!
당신의 충실한 여자치구가 이 글을 올리는 자유를 허락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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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마테오 슈피넬리란 녀석이 정말 악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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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 갔는데, 왜냐하 면 빵장수인 자기 아버지의 돈을 12리라나
훔치고, 거지 지안지아코모의 개에게 독약을 먹인 까닭입니다.
끝으로 당신에게 하느님과 성자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당신을
만나 뵐 날을 기다리며.


당신의 충실한 여자친구

아눈치아타 나르디니

P.S : 우리들의 수확은 꽤 되었습니다. 포도는 흉작이었고 배도 잘
되지는 못했습니다만 레 몬은 대풍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싸게
팔 수밖에 없었어요. 스펠로에서는 대참극이 일 어났답니다. 한
청년이 자기 동생을 괭이로 찍어 죽였어요. 잘은 몰라도 친형제이지만
아마 질투심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섭섭하게도 나는 이 마음이 끌리는 초대에 응하지 못했다. 나는 축사를
쓰고 내년 봄에 방문하일본섹스 오랄섹스겠다고 약속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와
아이들에게 주려고 뉴른베르그에서 가져온 선물을 들고 목수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서 나는 예기치 못했던 큰 변화가 생긴 것을 보았다. 책상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창문을 향해 기괴하게 구부러진 사람의 자태가 의자
속에 앉아 있었다. 그 의자에는 아이들의 의자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가
가슴 앞에 가로 붙여져 있었다. 그는 목수의 처남인 보피로 불쌍한
반신불수의 곱사등이였다. 최근에 늙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갈곳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라 했다. 그런데 앓고 있는
불구자가 항상 눈앞에 있다는 것이 공포처럼 가정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아직 그에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를 무서워하였고,
어머니는 내내 동정과 낭패와 침울한 표정이었으며, 아버지는 분명히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보피는 목이 그 속에 묻혀 보기 흉한 두 개의 살뭉치 위에, 넓은 이마와
큰 코와 괴로운 듯 일그러진 입을 가진 묵직한 머리를 얹고 있었다. 눈은
고요하고 맑았으나 근심스럽게 뜨여 있었고, 어울리지 않게 작고 흰
귀여운 손을 언제나 가로놓인 좁은 나무 위에 조용히 얹고 있었다. 나
또한 당황하였고, 이 불쌍한 침입자에 대하여 불쾌감을 가졌다. 그러나
목수로부터 이 환자의 짧은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 이
환자는 옆에 앉아서 아무와도 말을 주고받지 못하고 자기 손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불구자였지만 국민학교는 졸업하였다.
그리고 수년간은 밀짚모자를 만드는 일을 하여 다소 생활에 보탬이
되어왔었으나, 거듭 일어나는 중풍의 발작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후부터 수년 동안 쭉 자리에 누워 있었고, 때로는 묘한 의자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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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불러보고 했었으나 몇 해 동안은 들을 수 없었고, 이 집에 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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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그는 거기에 앉은 채로 꿈벅꿈벅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곧 작별을 하고 나와 며칠 동안은 그 집을 멀리 하였다.
나는 평생 강하고 건강하여, 아직 한 번도 병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병자, 특히 불구자에 대하여 동정은 하였으나, 약간 경멸하는 태도로 보곤
하였다. 그러므로 목수 집에서 갖는 나의 유쾌하고 명랑한 생활이 이
비참한 존재의 불쾌한 중압으로 인해 부서지는 것을 보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 그리하여 다시 방문하는 것을 하루하루 연기하고, 어떻게 하면
불구자인 보피를 내쫓을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였다. 적은 비용으로
어떤 병원이나 요양원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듯했다. 그것을
상의하기 위하여 나는 여러 번 목수집을 방문하려고 마음먹었으나 그 말을
꺼내는 것을 두려워했고, 또한 병자와 만나는 것을 어린애처럼
무서워했다. 언제나 그를 봐야 하고 그와 악수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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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싱클레어!”
그가 따라왔다. 우리 하숙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학생, 알폰스 벡이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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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대체 무얼 하지?” 더 큰 사람들이 이따금씩 자기보다 어린 애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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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까, 너 시를 지었지?”
“그런 생각 안했는데”나는 무뚝뚝하게 잘랐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내 곁에서 걸으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가 전혀
익숙지 않은 방식으로였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 싱클레어, 내가 이해를 못할까 하고 말이야. 사람이 이
렇게 안개 속을 걷는다면, 이렇게 가을 생각에 일본섹스 오랄섹스겨서 말이야, 그럼 뭐가 있는
거야. 그럴 때는 즐겨 시를 짓지. 난 벌써 알고 있어. 물론 죽어 가는 자연에 대
하여 그리고 자연과 닮은 잃어버린 청춘에 대하여 시를 짓지. 하인리히 하이네
를 봐”
“난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아”하고 내가 막았다.
“그럼 좋도록 하지! 그렇지만 이런 날씨에는 내 생각에는 말이야, 술 한 잔
아니면 그 비슷한 것이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는게 낫겠어. 같이 가지 않겠어?
나는 지금 아
@p 96
주 아주 외롭거든. 싫은 거야? 네가 굳이 모범생이록자 한다면, 이봐, 너를 유
혹할 마음은 없어.”
그 뒤 곧 우리는 어느 조그만 교외 술집에 앉아, 품질이 수상한 포도주를 마
시며 두꺼운 유리잔을 부딪쳤다.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건 뭔가 새로운 소라넷것이기는 했다. 나는 술에 익숙지 않은 터라, 곧 몹시 말이 많
아졌다. 내 속에서 창문 하나가 활짝 열린 듯했다. 세계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끔찍하게 오래 나는 영혼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가! 나는 상상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고, 그 한가운데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화젯거리로 내놓았다.
벡은 즐겁게 내 말에 귀기울였다. 마침내 누군가가 내 말에 귀기울이고, 그에
게 내가 무언가를 주는 것이었다! 그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를 굉장한 녀석이
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일본섹스 오랄섹스하고 싶고 뭔가를 전하고 싶은 고이고 고인 욕
구를 실컷 쏟아내는 기쁨에, 인정을 받는다는 기쁨에, 연장자에게서 다소 인정받
는다는 기쁨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가 나를 천재적인 멋들어진 녀석이라고
불렀을 때는 그 말이 감미로운 독주처럼 영혼 속으로 번졌다. 세계는 새로운 색
깔로 불타고 있었다. 생각들이 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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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부인이 그 약혼시절을 말하듯이 혹은
노인이 소년시절을 말하듯이 소리높여 말할 것이다.
나는 한평생을 다만 고뇌와 사랑으로 살았던 한 인간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린애같이
아양을 떠는 소리를 들었다. 나에게 동정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용기를 주고, 고투와 고뇌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에 있는 가장
좋은 것만은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을 내게 보여 주기 위하여 심한 고통
속에서 그의 눈길이 나를 찾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의 눈은 컸으나
쇠약해진 얼굴은 더 볼 수가 없었고, 단지 눈만 크게 빛나고 있었다.
무엇을 해 줄까, 보피?
내가 맥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데 무척 애를 썼다. 그런데
그가 듣지 않고 자는 줄만 알고 이야기를 끊었다. 그때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이야기를 더 계속하여 맥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삽살개, 나의
아버지, 불량소년 마테오 스피넬리, 엘리자베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말, 그 여자는 바보와 결혼해서 그렇게 된 거야, 페터!
가끔 그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농담이 아냐, 페터. 아무리 괴로운 일도 죽음만큼 괴롭지는 못해.
그러나 사람은 결국 죽어야 해.
또는 이렇게도 말하는 것이었다.
괴로움을 이겨내면 나는 웃을 수가 있어. 그러나 내 경우는 죽는 편이
낫지. 적어도 곱사등이, 짧은 다리, 못 쓰는 허리를 면할 수 있거든.
자네와 같이 널찍한 어깨와 아주 튼튼한 다리를 가진 사람에게는
안됐지만.
그리고 마지막 며칠동안 한 번은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아주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목사가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천국은 없어. 천국은 훨씬 더
아름다워, 훨씬 더.
목수의 부인은 자주 찾아와서 슬퍼하며 자상하게 도와주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대단히 섭섭한 것은 목수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우연히 보피에게 이렇게 물었다.
천국에도 맥이 있을까?
물론이지.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동물이 다 있지, 염소까지도.
크리스마스가 되자, 우리는 그의 침대 옆에서 간단하게 축하를 하였다.
심한 추위가 왔다가 다시 풀어지고 빙판 위에 첫눈이 내렸으나, 나는
그러한 일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또한 엘리자베트가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것도 곧 쉽게 잊어 버렸다.
나르디니 부인에게서 재미있는 편지도 왔으나, 대강 훑어보곤 옆에 놓고
말았다. 나는 일각이 삼추 같은 의식을 언제나 가지고 재빨리 일을
해치우고 나서 쫓기듯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면 거기에는 밝은
고요함이 있어 나는 꿈 같은 깊은 평화에 싸여 반나절을 보피의 병상 옆에
앉아 지내곤 하였다.
보피는 죽기 직전에 며칠은 병세가 좋았었다. 이상하게도 지금 막
지나간 시간은 그의 추억에서 사라진 것 같고, 그는 과거에 살고 있었다.
그는 이틀 동안이나 어머니 얘기만 했다. 물론 오래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나 몇 시간씩 이야기가 중단되는 동안에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자네에게 어머님 얘기를 너무도 하지 않았어.
그는 탄식하였다.
그러나 내 어머님의 일을 하나도 잊어서는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님의 일을 알고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고 말
걸세. 모두 그런 어머님을 가졌으면 좋을 텐데, 페터. 어머님은 내가
전혀 일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나를 구빈원에 넣지 않았어.
그는 누워서 괴로운 듯이 심호흡을 하였다. 한 시간쯤 지나자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어머님은 자식들 중에서 나를 제일 사랑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떼어 놓지 않았어. 형제들은 모두 외국으로 가고 누님은 목수와 결혼
했으나, 나만은 집에 남았어. 어머님은 그렇게도 어려우셨으면서도 내게
일을 시키진 않았어. 자네는 내 어머님을 잊지 말게, 페터. 나의
어머님은 참으로 작으셨어. 어쩌면 나보다도 작으셨을 거야. 나와
악수를 하면 아주 작은 새가 그 위를 앉는 것 같았으니까.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옆집 류티만은 어린애 관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보피에게도 역시 어린애 관으로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작은 모양을 한 깨끗한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의 손은 길고 여위었으며 희고 약간 굽은 것이 부인 환자의 손처럼
보였다. 그는 한참동안 어머님의 환상을 좇다가 중지하고, 그 대신 나를
생각하게 됐다. 마치 내가 옆에 앉아 있지 않은 것처럼 그는 나의 일을
말하였다.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내야. 그러나 어쩔 수 없었어,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셨으니까.
아직 나를 알겠나, 보피?
나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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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었다.
싫지만 할 수 없이 보피와 악수를 하였다. 목수는 화가나 있었으므로
나는 소풍을 가자고 했다. 그는 이 끝없는 비참한 일에 싫증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내 제의를 들어 줄 것을 알고 기뻐하였다.
목수의 부인은 집에 남아 있으려고 하였으나 불구자는 혼자서도 잘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같이 가자고 권했다. 한 권의 책과 물 한 잔만을 그
옆에 놔두면 혼자 남아서 염려없이 집을 잘 본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꽤 선량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던 우리들은 그를 가두어 놓고
소풍을 갔다. 우리들은 즐거웠고,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아름다운 금빛
가을 햇살을 즐기며 아무도 뉘우침이 없었고, 반신불수를 집에 혼자
내버려 두고 온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들은
오히려 잠시나마 그를 피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맑고도
따듯한 태양의 햇살을 마시며, 하느님의 일요일을 이해와 감사로써 즐기고
있는, 은혜를 아는 성실한 가족 같은 광경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렌짜하의 헤른 거리에서 포도주를 한 잔 마시기 위해 뜰안의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는데 먼저 목수가 보피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귀찮은 손님을 탄식하고, 생활의 곤궁과 생활비가 늘어감을
걱정하며 허탈하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맺었다.
어쨌든 그 자식의 방해를 받지 않고도 아직 한 시간을 더 즐길 수
있어!
이 경솔한 말에 나는 갑자기 불쌍한 반신불수를 생각하게 되었다.
애원하고 괴로워하는 그, 사랑하기는커녕 우리가 피하려고 하는 그,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버림을 받은 채 홀로 갇혀 저물어 가는 방안에
외롭고 슬프게 앉아 있는 그를 생각하였다. 곧 어두워질 것이나 그는
불을 켜지도 못할 것이요, 그렇다고 창으로 가까이 갈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이곳에서 술을 마시며 웃고 즐기고 있는 동안
그는 책을 옆에 밀어 놓고 반쯤 어두워진 방 속에서 말할 사람도 없고
아무 위안도 없이 홀로 앉아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일찍이 앗시시에서
이웃사람들에게 성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해 준 일이며, 이 성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떠들어대던 일을
생각하였다. 여기에 불쌍하고 의지할 곳 없는 한 사람이 있어 내가
그것을 알고 위로해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거기에 누워 그냥
괴로워해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성자의 생애를 연구하고, 그의
거룩한 사랑의 노래를 암송하며, 움브리아의 언덕으로 그의 종적을
찾아갔던가?
보이지 않는 힘찬 손이 내 가슴 위에 놓이며, 나의 가슴을 억눌러 나를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가득차게 해, 마침내 나는 전율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신이 지금 나와 더불어 말씀하시려는 것을 알았다.
너, 시인이여!
신은 말하였다.
너, 움브리아 성자의 제자여,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예언자여! 바람과 물속에서 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몽상가여! 너는 친절한 대접을 받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을
사랑하고 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 내가 들러도 좋으리라고 생각한 바로 그 날에, 너는 그
집을 빠져나가 나를 내쫓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 성자!
예언자! 시인이여!
나는 마치 깨끗이 닦여진 거울 앞에 서서 그 속에 거짓말쟁이로서,
허풍쟁이로서, 비겁한 자 그리고 식언자(약속한 말을 지키기 아니하는
사람)으로서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슬프고
괴롭고 또한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 내 마음속에서 부서지고
괴로워하고 상처를 입은 것은 결국 파괴되고 멸망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억지로 급히 작별을 하고, 술과 빵을 식탁 위에 그대로 남겨둔 채
거리로 돌아왔다. 나는 흥분되어 무슨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억제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불이 일어났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보피는 의자에서 떨어져
괴로워하며 마루에 죽어 넘어져 있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넘어져
쓰러진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는 그 곁에 서서 불구자의 눈초리에서
무언의 비난을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숨쉴 틈도 없이 그
집으로 달려가서 총총걸음으로 층계를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잠깐 문
앞에 서서 비로소 열쇠가 없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의
불안은 금방 가라앉았다. 그것은 내가 부엌 문에 이르기 전에 안에서
노래소리가 들려온 까닭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순간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숨을 죽이고 어두컴컴한 계단 중턱에 서서, 조용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갇혀 있는 불구자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낮은
음성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한탄하듯이 통속적인 연애노래인 〈꽃은
희고 붉다〉의 일절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감동하여 그가 그의 식으로 즐기려고
이 조용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을 깨닫고는 몰래 엿들었다.
어떻든 그런 것이다. 인생은 엄숙한 사건과 깊은 감동에다가 익살을
덧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하여 나는 내 처지의 웃음과 부끄러움을
체험하였다. 갑자기 불안해져 나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막
달려와서는 열쇠가 없어서 부엌 문 앞에 서 있다. 물러가든지 잠긴 두
개의 문틈으로 불구자에게 나의 호의를 소리쳐 말하든지 해야 한다.
불쌍한 그를 위로하고 동정하며 그를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는
층계에 서 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안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만일 내가 부르거나 문을 두드려 알리면 그는 반드시 놀라고 말
것이다.
나는 그냥 떠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일요일답게
번화한 거리를 헤매이고 나자 그 가족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보피와 악수하는 데 아무 힘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 말을
건네며 지금 읽고 있는 것을 물어 보았다. 그에게 책을 빌려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는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내가 그에게
예레미아스 고트헬프를 추천하였더니 그는 이 작가의 작품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고트프리트 켈러는 모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책들을 빌려 주겠다고 말했다.
그 조그마한 불구자는 그의 큰 머리를 약간 내게로 돌려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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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머리를 돌린다는 것은 그에게는 큰 일로,
그것은 건강한 사람의 열 번의 포옹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의 눈은
매우 맑고 어린애같이 아름다워 내 얼굴은 부끄러운 마음에서 핏기가
올랐다.
그런데 아직 목수와 이야기해야 할 괴로운 일이 남아 있었다. 어제의
나의 불안과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그에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섭섭하게도 그는 내 마음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내 말을
알아듣기는 했다. 그리하여 둘이 공동의 손님으로 병자를 집에 둘 것과
그 부양의 비용을 같이 부담하여 마음대로 보피의 곁을 출입하여 그를
친형제처럼 돌볼 수 있도록 승낙을 얻었다.
그 해 가을은 유난히 오랫동안 날씨가 좋고 따뜻했다. 그래서 보피를
위해 내가 맨 먼저 해 준 일은 휠체어를 사서 매일 그를 태우고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8. 생활에서나 친구들에게서나 항상 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받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다. 리하르트나 엘리자베트나 나르디니 부인이나
목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했거니와, 지금 난 성숙한 나이가 되어
충분히 자존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비참한 곱사등이에 대하여
경탄하며 감사하는 제자가 되었다. 만일에 일찍이 시작한 나의 문학을
완성하여 남길 날이 실지로 온다면 그 속에 있는 좋은 것은 모두
보피에게서 배운 것일 것이다. 나에게는 평생 풍부한 양식을 삼을 수
있게 된 기쁘고 좋은 시절이 시작되었다. 질병도 고독도 빈곤도 학대도
가볍고 유유히 지나가는 구름처럼 그 위에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는
훌륭한 인간의 영혼을 나는 지금 분명하고 깊게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의 아름답고 짧은 생애를 방해하고 타락시키는 모든 작은 악덕,
분노, 성급함, 불신, 거짓―우리를 추악하게 하는 이러한 불쾌하고 불결한
모든 화근은 이 곱사등이에 있어선 길고 심각한 고뇌로 말미암아 아픔속에
불살라지고 말았다. 그는 현자도 천사도 아니었으나, 크고 무서운 고뇌와
부자유 때문에 부끄러움 없이 자기의 약함을 느끼고 신의 팔에 몸을 맡긴,
분별과 귀의심에 가득찬 사람이었다.
나는 언젠가 어떻게 괴롭고 약한 신체를 지탱해 나가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거야 퍽 간단한 일이지요.
그는 정답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저와 병과는 영원한 전쟁을 하고 있지요. 어떤 때는 제가 이기고 어떤
때는 지기도 하고 이렇게 전쟁을 계속하지요. 그러나 종종 쌍방이
조용해져서 휴전상태로 들어갑니다만 서로 감시하고 있다가 어느 한 쪽이
다시 오만해지면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지요.
나는 지금까지 내가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나는 훌륭한
관찰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보피는 그 점에 있어서도 놀랄 만한
나의 스승이었다. 그는 자연, 특히 동물을 대단히 좋아했기 때문에 가끔
그를 동물원에 데리고 갔다. 거기서 우리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보피는 곧 모든 동물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빵과
과자를 가지고 갔었기 때문에 많은 동물들도 우리를 알아보았고,
그리하여 우리들은 모든 우정을 맺었다. 특히 우리가 좋아한 것은
맥(맥과에 속하는 동물의 총칭. 원시적인 척추동물로서 온몸에 빳빳하고
짧은 털이 났으며, 주둥이가 코끼리 모양으로 늘어졌고 꼬리는 몹시
짧으며, 등은 위로 굽었음)이었다. 이 동물의 독특한 점은 그와 비슷한
다른 동물이 가지지 못하는 결백성이었다. 그밖에는 자만심이 많고, 약간
지성적이며 불친절하고 은혜를 모르는 대식가였다. 다른 동물들, 가령
코끼리, 사슴, 염소 그리고 천한 들소까지도 받아먹은 과자에 대하여
우리들을 친밀하게 바라보든지, 아니면 가만히 쓰다듬게 내버려 두어 항상
어떤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맥은 털끝만큼도 그러는 점이
없었다. 우리들이 가까이 가면 그놈은 재빠르게 울 앞으로 다가와서
우리가 준 것을 천천히 다 먹어 치운 후 자기에게 주어질 것이 더 없음을
알았을 때에는 조용히 물러가고 마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거기에서 맥의
긍지와 성격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놈이 애걸하지도 않고 감사해
하지도 않으며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다는 식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놈을
세금장이라 불렀다. 보피는 대체로 자기가 직접 동물에게 먹일 수
없으니까, 맥은 그만 주라든가 혹은 좀더 주라든가 하여 우리들 사이에
종종 말다툼이 일어났다. 우리들은 마치 그것이 나라 일이나 되는 것처럼
실지의 경우와 사태를 잘 검토하며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어느새 우리가
맥의 곁을 지나버렸을 때 보피는 맥에게 과자를 한 개 더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돌아갔으나 그동안 짚으로 만든 자리로
돌아가 버린 맥은 거만하게 눈만 꿈벅거리며 울 앞으로는 오지 않았다.
용서하십시오, 세리님.
보피는 맥에게 말하였다.
저, 과자가 한 개 틀린 것 같군요.
그 다음에 코끼리한테로 갔다. 코끼리는 벌써 기대에 차서 왔다갔다
하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따듯한 코를 내밀었다. 코끼리에게는
보피가 직접 먹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큰 짐승이 부드러운 코를 굽혀
그의 손바닥에서 빵을 집어, 쾌활하고 작은 눈을 교활하게 뜨고 기분이
좋아서 바라보고 있는 모양을 보피는 어린애같이 좋아하며 바라보았다.
나는 동물원 감시원에게 상의하여, 내가 보피 곁에 남아 있을 시간이
없을 때에는 휠체어에 그대로 태운 채 원내에 두어 햇볕을 쪼이며 동물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나중에 그는 자기가 본 것을 모두 말해 주곤
하였다. 특히 수사자가 암사자를 정중하게 대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명깊었던 모양이었다. 암사자가 누워서 쉬고 있자 수사자는 암사자를
다치게 하지도 않고, 방해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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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넘지도 않으며 쉴새없이
왕복하는 방향을 지키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물개를 보는 것이었다. 자기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
머리와 팔을 움직이는 데도 힘이 들었으나, 이 날쌘 동물의 부드러운
수영술과 체조술을 구경하며 명랑한 기쁨을 가짐으로써 피로한 줄을
몰랐었다.
그해 가을 맑게 개인 어느 날 나는 보피에게 내 연애담 두 가지를 말해
주었다. 우리는 이제 대단히 신뢰하는 사이가 되어서 기쁘지도
명예롭지도 않은 내 체험을 더이상 감추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묵묵히
앉아 다정한 미소를 띤 채 열심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흰구름 같은 엘리자베트를 한 번 보고싶다며 언제 길에서 만나거든 꼭
가르쳐 달라고 그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기회는 오지 않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해 나는
엘리자베트를 찾아가 가련한 곱사등이를 한번 기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여자는 친절하게도 나의 청을 들어 주어, 나는 날을 정해
그녀와 함께 보피가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동물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아름답게 잘 차려입은 훌륭한 부인이 몸을 조금 굽혀
악수를 하자, 그 가련한 보피는 기뻐서 얼굴을 붉히고 감사하듯 애정에
넘친 크고 착한 눈을 그 여자에게 던졌다. 그때 바로 그 순간 나는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아름답고 더 내 마음에 가까이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친절하게 몇 마디 말을 건넸는데, 불구자는 그동안 내내
여자에게서 반짝이는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옆에 서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좋지 못한 환경을 서로 사이에 두고 삶을 달리하며 내
앞에서 손에 손을 잡고 있는 순간을 보는 것이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보피는 그날 오후엔 엘리자베트 이야기만 하여, 그녀의 아름다움, 고상함,
친절함, 그녀의 옷, 노란 장갑과 푸른 구두, 그녀의 걸음걸이와 눈매,
그녀의 음성과 아름다운 모자를 끊임없이 칭찬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나는 나의 애인이 내 친구에게 동냥을 주던 것을 본 일이 슬프고도 우습게
생각되었다.
이런 일이 있는 동안 보피는 『녹색의 하인리히』와 『셀도빌라의
사람들』을 읽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유일무이한 책의 세계에
친밀하게 되어, 우리는 화 잘내는 판크라츠, 알베르트스 쯔비한, 그리고
빗 만드는 정직한 직공을 공동의 사랑하는 벗으로 가지게 되었다. 한때
나는 C. F. 마이어의 작품도 좀 빌려 줘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는
마이어의 너무도 압축된 순러시아어적인 정확성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고, 또한 이 고요하고 명랑한 눈앞에 역사의 심연을 펼쳐 보이는 것에
대해 좀 주저하게 되었다. 그 대신 나는 그에게 성 프란시스 이야기를 해
주고, 메리케의 단편들을 읽게 하였다. 만일 그가 종종 물개가 있는 연못
옆에 앉아서 여러 가지 동화 같은 물의 공상에 잠기지 않았던들 아름다운
라우의 이야기는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고백을 듣고 나는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점점 친밀해져서 너와 나로 통하게 된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내가 그것을 제의하고 그가 수락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로 그렇게 말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된 것인데, 어느 날
그것을 깨닫고 웃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후부터는 항상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다가오는 겨울이 우리들의 외출을 불가능하게 하고, 다시금 내가 저녁에
보피의 자형 방에 오래 앉아 있게 되었을 때에, 난 차츰 나의 새로운
친교가 아무 희생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목수가 자주 불평을 하기 시작하였고, 불친절하며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필요없는 식객이 눈앞에 앉아 있을 뿐 아니라 나와 그와의
관계가 오랫동안 그를 불쾌하게 하였다. 어느 날 저녁 늦게까지 내가
불구자와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으려니까 목수는 화가 나서 신문을 펴들곤
옆에 앉아 있었다. 또한 매우 참을성있는 부인과도 사이가 나빠졌는데,
그것은 보피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주인의 주장을 부인이 끝끝내 듣지
않은 까닭이었다. 여러번 나는 그를 부드럽게 하려고 했고, 새로운
제의를 하려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더욱 화를 내고 나와
불구자와의 친교를 비웃으며, 그 때문에 그로 하여금 생의 괴로움을
느끼게 하기 시작했다. 물론 병자와 매일 그 곁에 오래 앉아 있는 나는
어려운 가정에 큰 짐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수가
우리들의 편이 되어 병자를 사랑할 때가 언젠가는 오려니 하고
희망하였었다. 그러나 목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고 보피에게 해롭지
않도록 행동하기는 나로선 불가능하였다. 나는 무엇이나 급히 무리를
하며 일하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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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철철 솟는 샘에서 나와 흘러갔다. 속에
서 정기와 주정의 뜨거움이 활활 타올랐다. 선생님들이며 친구들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했는데, 서로 근사하게 통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리스에 대해서 그리고
이교에 대하여 이야기했고, 벡은 나더러 사랑의 모험에 대하여
@p 97
무조건 털어놓게 소라넷. 그런데 그 점에서는 내가 함께 이야기할 게 없었다. 경
험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려줄 아무 경험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
고 내가 마음속에서 느끼고,, 구성하고, 상상의 날개를 편 것, 그것은 불타듯 내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술로도 풀리지 않았으며 전달할 수 없었다. 여자에 대해
서 벡은 훨씬 더 아는게 많았다. 그리고 나는 열이 올라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
들에 귀기울였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나는 거기서 들었다. 결코 가능하다고 여기
지 않았던 것이 밋밋한 현실 속으로 들어왔고 자명해 보였다. 알폰스 벡은 아마
열여덟 살일텐데 벌써 경험이 많았다. 그 가운데는 소녀들과의 일이 이러저러하
다는 것도 있었다. 소녀들은 자기들에게 아첨하고 예절 바르게 구는 것만 바라
는데 그거야 실로 근사하지만, 진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큰 성공은
나이든 부인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문구점을 하는 야
겔트 부안, 그 부안히고는 이야기가 통하는 것 같으며 그 가계 계산대 뒤에서
벌써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책에서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완전히 매료되어 몽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튼, 나라면 야겔트 부인을 곧
바로 사랑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거기에는 내가 한 번 꿈꾸어 본 적도 없는 원천이, 적어도 좀더 나이든 사람들
에게는 솟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 틀린 대목이 있기는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맛은 내가 생각했던 사랑의 맛보다는 보잘것없고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어

@p 98
든 그것은 현실이었다. 삶이고 모험이었다. 그것을 이미 경험했고, 그것을 당
연한 일로 보는 사람이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약소라넷간 수준 낮은 것이었고, 무엇인가가 빠져 있었다. 나는 이
제 더 이상 천재적인 작은 사나이가 아니었다. 아직 그저 어른의 말에 귀기울이
고 있는 소년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몇 달 동안의 나의 삶보다는 근사했고
낙원 같았다. 그 밖에도 술집에 앉아 있는 것부터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까지 그 모든 것이 내가 비로소 서서히 느끼기 사작한 대로, 금지된 것이었다.
엄격하게 금지된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 가운데서 뜨거운 감정을 맛보고 혁
명적 파격을 맛보았다.
그날 저녁을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둘이, 느지막이 흐릿하게
타고 있는 가스등을 지나, 서늘하고 축축한 어둠 속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접어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취해 있었다. 근사하지는 않았다. 극도로 고통스러웠
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또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나의 매력, 감미로움이 있었
다. 그것은 반란이며 비의였다. 삶이며 정신이었다. 나보고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초보라고 호되게 욕하면서도 벡은 나를 용감하게 떠맡았다. 나를, 절반
은 떠메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집에 와서는 열린 복도 창문으로 나를 살짝 집
어넣고 자기도 그렇게 숨어 들어왔다.
잠깐 죽은 듯 잠을 잔 후 나는 고통스럽게 깨어났다. 술이 깨고 보니, 멍한 고
통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침대에
@p 99
앉아 있었다. 낮에 입었던 셔츠를 아직도 입고 있고, 내 옷가지며 신발은 바닥
에 널려 있고 담배 냄새와 토사물 냄새가 났다. 두통과 메스꺼움과 심한 갈증
사이에서 내가 오래 직시하지 않았던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고향과 부모님 집,
아버지, 어머니, 누이들과 정원이 보였다. 조용하고 아늑한 내 침실이 보였다. 학
교와 시장 광장이 보소라넷였다. 데미안과 견진성사 수업 시간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환했다. 모든 것이 흐르는 광채로 에워싸여 있었다. 모든 것이 놀라웠
다. 신성하고 깨끗했다. 그리고 모든 것, 모든 것이 어제만 해도 몇 시간 전만
해도 나의 것이었고, 나를 기다렸는데 지금은, 지금 이 시각에는, 타락하고 저주
받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나를 밀쳐내고 있었
다. 구역질을 내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가장 먼 유년의 황금빛 정원들까지 되
돌아가 부모님으로부터 경험한 모든 사랑스럽고 친근한 것, 어머니의 입맞춤 하
나하나, 성탄절 하나하나, 집에서의 경건하고 환한 일요일 아침 하나하나, 정원
의 꽃 하나하나, 이 모든 것이 황폐화되엇다. 모든 것을 내 자신의 두 발로 짓밟
아 버렸던 것이다! 지금 추적자가 와서 나를 묶어서 인간 폐물이며 신전 모독자
라고 교수대로 데리고 간다면, 나는 동의하고 기꺼이 따라갔으리라.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르고 합당한 처사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내면의 모습이 그랬던 것이다! 빙빙 돌며 세상을 경멸하던 나!
정신에 있어서 자부심이 충만했고 데미안과 생각을 함께 했던 나! 나의 모습이
그랬다, 취하고
@p 100
더럽혀지고 구역질나고 비열한 인간 폐물이자 잡놈, 야비한 충동의 기습을 받
은 살벌한 야수였다! 모든 것이 정결함, 광채 그리고 우아한 사랑스러움인 저 정
원에서 온 내가, 바하의 음악과 아름다운 시를 사랑했던 내가! 아직도 속이 메스
껍고 격분한 내 귀에 자제력 없이 멍청하게 헉헉 터뜨려대는 취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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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들을 겪는 것에는 상당한 쾌감이 있
었다. 그토록 오래 내가 맹목적이고 둔감하게 웅크리고 있었기에 그토록 오래
내 마음은 침묵하고 가난해져 구석에 앉아 있었기에 그리하여 이러한 자기 고
발, 이 전율, 이 모든 영혼의 불쾌한 감정도 환영받았던 것이다. 감정이 있었다!
불꽃이 솟았다. 그 속에서 심장이 경련하였다! 나는 비참의 한가운데서 해방이자
봄같은 그 무엇을 혼란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밖에서 보면 그동안 나는 착실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처음으로 취한 것
이 곧 처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술집 출입이 잦았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가담하는 학생들 가운데 나는 제일 어린 축에 들었다. 그
러나 나는 더 이상 ‘끼워주는’어린애가 아니라 주모자요 스타였다. 유명한, 대
담무쌍한 술집 출입객이었다. 나는 다시 어두운 세계, 악마 소속이었고, 그 세계
에서 나는 명사였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참담했다. 나는 자신을 파괴해 가는 방탕 속에서 살아갔다.
학교에서는 지도자이자 굉장한 녀석으로, 대단히 과단성있고 위트 있는 녀석으
로 인정받았
@p 101소라넷
던 반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두려우멩 가득 찬 영혼이 불안으로 퍼덕이
고 있었다. 어는 일요일 오전에 어느 술집을 나오다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눈물 흘렸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환하고 즐겁게, 갓 빗질
한 머리에 일요일 정장을 차려입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보잘것 없는 술집의
더러운 테이블, 맥주가 쏟아져 고인 곳에서, 내가 전대미문의 냉소주의로 내 친
구들을 놀리고 놀라게 하는 동안에도, 실제로 나는 내가 냉소를 보내는 모든 것
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음속으로 울며 내 영혼 앞에서, 내 과거 앞에서,
우리 어머니 앞에서, 신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번도 내 동행자들과 하나가 되지 않았다는 것, 그들 가운데서 늘 외로
웠고 그래서 그렇게까지 괴로웠다는 것,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
는 술집의 영웅이었지만 아주 거친 것은 심정적으로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총기가 있었고 선생님들, 학교, 부모, 교회에 대해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는
패기를 과시했다. 직접 하지는 못했지만 음담패설도 태연히 들었다. 그러나 내
패거리들이 여자들한테로 갈 때 함께 간 적은 없었다. 나는 혼자였고 사랑에 대
한 타는 그리움으로, 절망적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을 누가
들으면 나는 분명 후안무치한 향락자였을 텐데, 그 누구도 나만큼 쉽게 상처받
지 않앗고 그 누구도 나만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때 양가 소녀들이
귀엽고 깨끗하게, 환하고 우아하게 내 앞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아도 그들은 나
에게 놀라운, 깨
@p 102
끗한 꿈이었다. 나보다 천 배는 더 선하고 너무 깨끗했다. 한동안 나는 야겔트
부인의 문구소라넷점에도 갈 수 없었다. 그 여자를 보고, 알폰스 벡이 그 여자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새로운 친구들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외롭고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
면 알수록, 그만큼 더 나는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 못했다. 술 퍼마시고 허풍치는
것이 나에게 그때 즐거운 일이기나 했는지 그것도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마시
는 일에도 결코, 번번이 고통스러운 결과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일종의 강압같았다.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을 했다. 달리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오래 혼자 있는 것이 두려
웠다. 늘 거기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느끼는, 그 많은 부드럽고, 부끄럽고, 은밀한
감정의 내습이 두려웠다. 그토록 자주 엄습하는 연연한 사랑의 생각이 두려웠다.
내게 가장 결핍된 한 가지, 그건 친구였다. 내가 바라보기를 아주 좋아하는 두
셋의 친구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착한 사람들에 속했고, 나의 악덕은 오
래전부터 이미 그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피했다. 모든 학우
들에게서 나는 두 발 밑의 땅이 흔들거리는, 희망 없이 노는 학생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나는 몇 차례 엄하게 벌을 받
았고, 최종적으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만 남았는데 그건 내 쪽에서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내 자신도 알고 있었다. 나
@p 103
는 벌써 오래전부터 더 이상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퇴학당하기까지 그리 오
래 걸리지 않으리라는 느낌으로 근근히 건들건들 헤쳐가고 있었다.
신이 우리를 외롭게 만들어 우리들 자신에게로 인도할 수 있는 길은 많이 있
다. 그런 길을 그때 신이 나와 함께 갔던 것이다. 악몽과도 같았다. 더러움과 끈
적거림 너머로, 깨진소라넷 맥주 잔과 독설로 지새운 밤 너머로 내 모습이 보였다. 내
가, 주문에 걸린 몽상가가, 추하고 더러운 길을 쉬지 않고 고통당하며 기어가는
모습이. 공주님을 찾아가는 길인데, 오물 웅덩이에, 악취와 쓰레기 가득한 뒷골
목에 박혀 있는 그런 꿈들이었다. 내 형편이 그랬다.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이런
식으로 나는, 외로워지도록, 그리고 무정하게 환히 웃는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는
잠긴 낙원의 문 하나를 나와 유년 사리올 세우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시작
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향수의 눈뜸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하숙집 주인의 편지로 경고를 받아 성 00시에 처음 나타나 느
닷없이 나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나는 놀랐고 움칫했다. 저 겨울 끝무렵 아버지
가 두번째로 오셨을 때 나는 벌써 냉혹하고 무관심했다. 아버지께서 욕을 하시
다가 애원을 하시다가 어머니를 상기시키셨을 때도 모른 척했다. 아버지는 마지
막에는 몹시 격분하여, 내가 달리 안 된다면, 수모와 창피를 무릅쓰고 학교에서
나를 끌고 나와 감화원에 처넣겠다고 하셨다. 그러시라지! 그때 아버지가 떠나시
자 마음이 안됐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셨다. 나에게로 오는 어떤
길도 찾아내지
@p 104
못하셨다. 그리고 어떤 때는 일이 그렇게 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내가 무엇이 되건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특별하고 별로 곱지 못한 식으
로, 술집에 앉아 의기양양하게 굴면서 나는 세상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
다. 그것은 내 나름의 저항의 형식이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망가뜨렸고, 이따
금씩은 내 일을 대략 이렇게 보았다. 세상이 나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면, 나 같은 사람들에게 줄 좀소라넷더 나은 자리, 좀더 높은 과제를 갖고 있지 못하다
면, 이제 나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망가지는 거라고. 세상이 손해를 보겠지 뭐.
그 해의 성탄절 휴가는 즐겁지 않았다. 나를 다시 보았을 때 어머니는 놀라셨
다. 더 키가 컸고, 살은 늘어지고 눈 가장자리에 염증이 난 내 마른 얼굴은 잿빛
이고 황폐해 보였다. 콧수염이 돋기 시작한데다 얼마 전부터 쓴 안경이 나를 그
들에게 더욱 낯설어 보이게 만들었다. 누이들은 뒤로 물러나 킬킬거렸다. 모든
게 유쾌하지 않았다. 서재에서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가 씁쓸하였으며 유쾌하지
않았다. 몇몇 친척들의 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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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인사도 유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탄절 저
녁이 유쾌하지 않았다. 성탄절이란 내가 태어난 이래, 우리 집에서 가장 성대한
날이었다. 잔치 분위기, 사랑과소라넷 감사의 저녁, 부모님과 나 사이의 유대를 새롭게
하는 저녁이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이 다만 마음을 짓누르고 당황하게 만들 뿐
이었다. 여느 때처럼 우리 아버지는 벌판의 양치기에 관한 복음서를 읽으셨다.
‘그들은
@p 105
바로 그곳에서 양떼를 지켰다.’ 여느 때처럼 누이들은 환히 웃으면서 그들의
선물을 늘어놓은 탁자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음성은 즐겁지 않았고,
얼굴은 늙고 짓눌려 보였으며, 어머니는 슬퍼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는 모든 것,
선물과 덕담, 복음서와 크리스마스 트리 그 모두가 거북하고 또 원하지 않은 것
이었다. 후추와 꿀이 든 랩 케이크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났고, 그보다 더 감미로
운 추억의 뭉게구름이 콸콸 흘러 나왔다. 전나무는 향기를 냈고 이제는 존재하
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저녁과 휴일의 나날이 어
서 끝나기만 바랐다.
온 겨울이 그렇게 갔다. 바로 얼마전에 나는 교무회로부터 심각한 경고를 받
았다. 퇴학의 위험이 임박해 있었다. 오래는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 좋으실
대로, 나야 별로 이의가 없었다.
막스 데미안에게는 특별한 유감이 있었다. 그를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성 00시에서의 학창시절 시초에 두 번 편지를 썼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방학 때도 찾아가지 않았다.
가을에 알폰소 벡과 만났던 그 공원에서 초봄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소녀가
내 눈에 뜨인 것은 가시나무 울타리가 막 초록이 되기 시작했을 때였다. 꺼림칙
한 생각과 근심으로 가득 찬 채 소라넷나는 혼자 산책하고 있었다. 건강이 나빠진 데
다 그 밖에도 지속적으로 돈에 쪼들렸기 때문이다. 학우에게 빚을 지고 있었는
데, 집으로부터 또 조금 받아내
@p 106
자면 필요 불가결한 지출을 꾸며내어야만 했는 데다가, 몇몇 가게에 담배값이
나 뭐 그 비슷한 물건들의 외상도 불어가고 있었다. 이 근심이 몹시 심각해지지
야 않겠지만. 머지않아 여기 있는 것도 끝이 나고 내가 물 속으로 들어가든지
교화 기관으로 보내지면, 이 몇 가지 소소한 일들도 결코 문제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내내 그런 아름답지 못한 일들과 똑바로 대면하며 살았고
그것들에 시달렸다.
그 봄날 공원에서 나의 시선을 몹시 끈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날씬했으며, 멋진 옷차림이었고 영리한 소년의 얼굴이었다. 첫눈에 곧바로
그녀는 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유형으로 나의 상상력을 바쁘게 했다.
그녀는 나보다 별로 나이가 더 들어 보이지 않았지만, 훨씬 성숙하고 고상하고
윤곽이 뚜렷하고, 벌써 완전히 숙녀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지독하게 좋아하던 오
만과 소년다움의 흔적이 얼굴에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을 빼앗긴 여성에게 접근하는 것에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이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인상은 이전의 모든 여성들보다 더 깊었고,
이번에 빠진 사랑이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했다.
갑자기 다시 하나의 영상이 존경할, 드높은 영상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아, 그
런데 나의 내면에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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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욕구도, 그 어떤 충동도 외경과 숭배만큼 깊고
격렬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주었다. 단테는 읽지
않았지만 베아트리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p 107
어느 영국 그림에서 봤는데, 그 복제품을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 그 그림은 영
국 라파엘 전파의 소녀상으로 팔다리가 몹시 길고 날씬하며 얼굴도 작고 길었으
며 두 손과 표정은 영혼이 깃들이 분위기로 표현되어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날
씬한 자태와 소년다움을 보여주고 있고 영혼이 깃들인 분위기를 얼굴에 조금 띠
고 있었어도 나의 아름다운 젊은소라넷소녀는 그 소녀상과 아주 똑같지는 않았다.
베아트리체와 단 한마디도 말을 나눈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시 나에
게 지극히 깊은 영향을 주었다. 자신의 영상을 내 앞에 내세워 보여준 것이다.
나에게 성소를 열어 주었다. 나를 사원 안의 기도자로 만들었다. 그날로 나는 술
집 출입과 밤에 나돌아다니는 일로부터 멀어졌다. 나는 다시 혼자 있을 수 있었
다. 다시 즐겨 책을 읽었고, 즐겨 산책하였다.
나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충분한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숭배해야 했다. 다시 하나의 이상을 가진 것이었다. 삶은 다시 예감과
비밀에 찬 영롱한 여명이었다. 그 점이 나를 조소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로 편안히 안착했다. 비록 오로지 존경하는 영상의 노예이자
봉사자가 되어서라도.
얼마만큼의 감동 없이는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없다. 나는 더없이 열렬한 노력
으로, 부서진 삶의 한 시기의 폐허들로부터 자신을 위하여 ‘환한 세계’하나를
지으려 다시 노력해 봤다. 다시 나는 내 속의 어둠과 악을 떨치고 완전히 빛 속
에, 신들 앞에 무릅 꿇고 그대로 머물려는 단 하
@p 108
나의 욕구 속에서 살았다. 하여튼 지금의 이 ‘환한 세계’는 어느 정도는 내
자신의 창조였다.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책임없는 아늑함 속으로 다시 도망쳐 가
고 기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 의하여 창안되고 요구된 새로운 예배, 책
임과 자기 기율이 있는 예배였다. 내가 시달렸으며 자꾸만 도피했던 성 문제는
이제 이 성스러운 불 속에서 정신과 기도로 승화되었다. 캄캄한 것은 아무것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어떤 추한 소라넷것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신음하며 지샌 밤들
도, 방종한 영상들 앞에서 뛰던 심장의 고동도, 금지된 문 앞에서의 도취도, 육
욕도. 그 모든 것 대신 베아트리체의 영상으로 나는 나의 제단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을 그녀에게 바침으로써 자신을 정신에 그리고 신들에게 봉헌했다. 어두운
힘들에서 내가 뺏어낸 삶의 몫을 나는 환한 힘들에게 제물로 바쳤다. 나의 목표
는 쾌락이 아니라 정결함이었다. 행복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정신성이었다.
이 베아트리체 예배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어제만 해도 조숙
한 냉소주의자였는데, 나는 지금 성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지닌 사원의 하인이었
다. 나는 내가 익숙했던 평범한 삶을 떨쳤을 쁜만 아니라, 모든 것을 바꾸려고
했다. 모든 것에 정결함, 고귀함, 품위를 부여하려 했다. 먹고 마시면서도 말을
하고 옷을 차려입으면서도 나는 그 생각을 했다. 냉수욕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심하게 자신을 다스려야 했다. 진지하고 품위 있게 처신했으며, 몸을
꼿꼿이했고, 나의 걸음걸이를
@p 109
좀더 느리고 품위있게 했다. 구경꾼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내면에서 그것은 모두 예배였다.
이 모든 새로운 연습들 중 하나가 내게 중요해졌다. 거기에서 나의 새로운 신
념을 위한 표현을 찾아낸 것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영국 베아트리체 상이 저 소녀와 충분히 닮지 않았다는 데서 시작된 일
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그녀를 그리고 싶었다. 아주 새로운 기쁨과 희망
을 가지고 나는 얼마 전부터 갖게 된 내 방에 아름다운 종이, 물감과 붓을 모아
들였고, 팔레트, 유리잔, 도자기소라넷접시, 연필을 가지런히 해놓았다. 그 중에는 크롬
옥시드 그린이 있었다. 그 불타는 초록 물감이 처음 하얀 작은 접시에서 빛을
발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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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을 그리는 것은 어려워, 우선 다른 걸로 시험해 보
았다. 장식품, 꽃 그리고 작은 상상의 풍경, 예배당 곁ㅇ에 선 나무 한 그루, 사
이프러스 나무들이 있는 로마의 다리를 그렸다. 때로는 이 장난 짓에 완전히 정
신없이 빠져들어, 크레파스를 선물받은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했다. 마침내 나는
베아트리체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뭇잎 몇 개는 완전히 실패하여 버려버렸다. 때때로 거리에서 마주쳤던 그
소녀의 얼굴을 떠올려보려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잘되질 않았다. 마침내 나는
소녀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그소라넷냥 얼굴 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환상에 따라,
시작만 해놓고는 붓 가는 대로, 물감과 붓에서 저절
@p 110
로 나오는 선에 따라 그렸다. 거기서 나온 것은 꿈꾸었던 얼굴이었다. 별로 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즉시 시도를 계속했다. 새로운 종이 한 장
한 장이 그 무엇인가를 더 분명하게 말했다. 비록 결코 실물에 가깝지는 않아도
그 유형에는 가까워져 갔다.
나는 점점 더 몽환적인 붓놀림으로 대상이 없는, 장난 같은 더듬음에서, 무의
식에서 나오는 선을 긋고 면을 채우는데 익숙해져 갔다. 마침내 어느 날 거의
의식 없이 얼굴 하나를 완성했는데, 전에 그린 것들보다 더 강하게 나에게 말을
던져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소녀의 얼굴은 아니었고, 결코 그럴 수도 없었
다. 무엇인가 다른 것,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
치가 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녀의 얼굴이기보다는 오히려 청년의 머리처
럼 보였다. 머리카락은 나의 예쁜 소녀처럼 환한 금색이 아니고 불그스름한 기
운이 도는 갈색이었고, 턱은 강하고 윤곽이 뚜렷했으며, 입은 붉게 꽃피고 있었
다. 그 모든 것이 다소 뻣뻣하고 가면 같았지만, 인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생명으
로 가득 차 있었다.
완성된 그림 앞에 앉아 있자니, 기이한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신
상 혹은 성인의 가면처럼 보였다.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 나이가 없고, 의
지가 굳세면서도 몽상적이며, 굳어 있으면서도 남 모르게 생명력 있어 보였다.
이 얼굴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나의 일부였다. 나에게
요구를 내세웠다. 그리고 소라넷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와 비슷했다.
@p 111
그때부터 그 초상이 한동안 나의 모든 생각을 따라다녔고 나의 삶을 함께 했
다. 나는 그것을 서랍에 감추어 두었다. 아무도 그것을 훔쳐보고 그걸로 나를 비
웃게 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혼자 내 작은 방 안에 있을 때면 곧바로,
나는 그 그림을 꺼내어 들여다보곤 했다. 저녁에는 마주 보이는 침대 위쪽 벽지
에 핀으로 붙여놓고, 잠들 때까지 바라보았으며 아침이면 나의 첫 눈길이 거기
로 갔다.
바로 그 시절에 나는 어린아이였을 때 늘 그랬듯이 다시 꿈을 많이 꾸기 시작
했다. 여러 해 동안 꿈을 꾸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전혀 새로운 종류의 영상들, 그리고 자주 또 자주 그 초상이 꿈속에서 떠올랐다.
살아서 이야기하며, 친절하거나 혹은 적대적으로, 어떤 때는 얼굴을 찡그렸고 어
떤 때는 무한히 아름답고, 조화롭고, 고귀했다.
그리고 어느 아침, 그런 꿈들을 꾸다 깨어났을 때, 나는 갑자기 그 그림의 실
체를 알아보았다. 그 그림은 참으로 기막히도록 친숙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어머니처럼, 아득한 시절
부터 내내 나를 향해져 있었던 것 같았다. 가슴이 뛰며 나는 그림을 응시하였다.
숱 많은 갈색 머리카락을, 절반쯤 여자의 것인 입술을, 특별하게 밝은(저절로 그
렇게 말랐다)뚜렷한 이마를, 그리고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을, 재발견을, 앎을 느
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얼굴 앞에 서서 아주
@p 112소라넷
가까이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게 뜬, 초록빛 도는 굳은 두 눈을 들여다보
았다. 그 오른쪽 눈이 다른 쪽보다 약간 더 높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오른쪽
눈이 찡긋했다. 가볍고 섬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찡긋했다. 그리고 이 찡긋거
림으로써 나는 그림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내가 그걸 이렇게 늦게야 비로소 찾아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데
미안의 얼굴이었다.
후에 나는 이 그림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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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서 찾아낸 데미안의 진짜 표정과 자주 비교
했다. 비슷하기는 해도 똑같은 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데미안이었다.
언젠가 어느 초여름 저녁, 태양소라넷이 비스듬히 붉게, 서향인 내 창으로 비쳐들고
있었다. 방 안은 어스름해졌다. 그때, 베아트리체, 혹은 데미안의 초상을 창살이
교차하는 창문 가운데에 핀으로 꽂아놓고, 석양이 거기로 비쳐들면 어떤지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윤곽이 흐릿해 졌지만, 불그스름하게 테 둘린 눈,
환한 이마와 진홍의 입이 종이 면으로부터 튀어나와 속속들이 야성적으로 작열
하였다. 빛이 사라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
런데 차츰차츰 이것은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니며 나라는 느낌이 왔다. 그
그림은 나를 닮지 않았으며 그럴 리도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삶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내면, 나의 운명 혹은 내 속에 내재하는 수호신이
었다. 만약 내가 언젠가 다시 한 친구를 찾아낸다면, 내 친구의 모습이 저러리
라. 언제 하나를 얻게 된다면 내 애인의 모습이 저러리라. 나의 삶
@p 113
이 저럴 것이며 나의 죽음이 저럴 것이다. 이것은 내 운명의 울림이자 리듬이
었다.
그 몇 주 동안 나는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하였는데, 전에 읽은 모든 것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도 책을 그렇게 경험한 일은 드물었다. 어쩌면 니
체나 그랬을지. 그것은 노발리스의 책으로 편지와 잠언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이 나를 매혹시켰고 긴
장시켰다. 잠언 하나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 잠언을 펜으로 초상화 밑에 적어놓
았다.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에 붙여진 두 개의 이름이다’ 그 말을 내가
그때 이해했던 것이다. 베아트리체라고 부른 소녀는 여전히 자주 마주쳤다. 이제
는 아무런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소라넷 그러나 늘 한 가닥 부드러운 일치감, 한가닥
감정 넘치는 예감을 느꼈다. 넌 나와 연결되어 있어. 그러나 네가 아니고, 네 영
상만 말이야. 넌 내 운명의 일부거든.
막스 데미안에 대한 나의 그리움이 다시 거세어졌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몇 해째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꼭 한 번 방학 때 그를
맞닥뜨렸다. 이 짧은 만남을 내 기록에서 일부러 빠뜨렸다는 것을 지금 알겠다.
그것이 부끄러움과 허영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도 알겠다. 만회해야겠다.
한 번은 방학중에, 권태롭고 늘 다소 피곤한 얼굴로, 즉 술집을 드나들던 시절
의 얼굴로 고향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산책용 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속물들의
변함없이 똑
@p 114
같은, 경멸스러운 늙은 얼굴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때 내 옛 친구가 마주
오는 것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나는 움칫했다. 그리고 번개처럼 재빨리 나는 프
란츠 크로머를 생각했다. 데미안이 그 이야기를 정말로 잊어버렸기를! 그에 대해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은 무척 불쾌했다. 사실 정말이지 멍청한 어린애들 이야
기였다. 그래도 마음의 빚이 있기는 했다.
내가 그에게 인사하려는 것인지 아닌지, 데미안은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될 수 있는 대로 태연하게 인사를 하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다시금 그
다운 악수였다! 그렇게 굳고,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서늘하고, 남자다웠다!
그는 주의 깊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 컸구나, 싱클레어” 그 자
신은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똑같이 나이 들고, 똑같이 어렸다. 언제나 그렇
듯이. 소라넷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산책을 하며 온통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고,
그 당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언젠가 몇 번 편지를
썼는데 답장은 못 받았던 생각이 났다. 아, 그가 그것도 잊어버렸으면 좋을 텐
데, 그 멍청한, 멍청한 편지들을! 그는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당시에는 베아트리체도, 초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내 황량한 시절
한가운데 있었다. 교외에서 나는 그에게 함께 술집에 가자고 했다. 그가 따라왔
다. 떠벌리면서 나는 술 한 병을 시키고, 따르고, 잔을 부딪치며 대학
@p 115
생식 음주 관습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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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첫 잔을 단숨에 비우기도 했
다.
“술집에 많이 가는 구나?”그가 나에게 물었다.
“아, 그래”내가 굼뜨게 대답했다. “달리 무얼 하겠어? 그게 결국은 그래도
늘 제일 신나는 일이잖아.”소라넷
“그렇게 생각해? 그럴 수도 있겠지. 그것에도 아주 멋진 면이 있긴 해. 도취,
바커스적인 것! 하지만 내 보기에 그런 멋진 요소는 술집에 많이 앉아 있는 대
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아. 바로 술집 출입이야말로 뭔가 정
말 속물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래, 하룻밤, 불타는 횃불을 들고, 제대로 된
멋진 도취와 비틀거림으로! 그거야 좋지. 하지만 그렇게 홀짝홀짝 한 잔 또 한
잔을 마셔대는 것은 아마 진짜가 아닐걸? 이를테면 저녁이면 저녁마다 단골 술
집 식탁에 앉아 있는 파우스트를 상상할 수 있겠어?”
나는 마셨고 적의에 차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지만 누구나 파우스트 같은 사람은 아니지”하고 짧게 말했다.
그는 약간 어리둥절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웃었다. 예전의 신선함과 우월함을 보이며.
“자, 무엇 하러 그런 걸 가지고 너와 다투겠니? 아무튼 술꾼이나 방탕아의
삶은 아마도 나무랄 데 없는 시민의 삶보다 생기있겠지. 그런데, 언젠가 읽었는
데 말이야, 방탕아의 삶은 신비주의자를 위한 최고의 준비의 하나라는군. 예언자
가 된 성 아우구스틴 같은 그런 사람들이 늘 있
@p 116
기도 하고 말이야. 성 아우구스틴은 한 때 향락주의자이자 방탕아였지”
나는 미심쩍었으며 결코 그로부터 훈계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권태롭다
는 듯 말했다. “그래, 누구든 자기 취향에 따르겠지! 털어놓고 고백하면, 나는
예언자나 그런 무엇이 되는 일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어” 데미안이 가느스름하
게 뜬 눈으로 알겠다는 듯 나를 소라넷쏘아 보았다.
“이봐 싱클레어”그가 천천히 말했다. “너한테 유쾌하지 않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어. 아무려나 어떤 목저긍로 네가 지금 네 잔을 마시고 있는지, 그것은
우리 둘 다 알 수 없어. 하지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
는 것 말이야. 미안하지만 난 집에 가봐야겠다.”
우리는 짧은 작별을 했다. 나는 몹시 기분이 언짢은 채 그대로 앉아 내 잔을
다 비웠다. 술집을 나설 대 데미안이 벌써 계산을 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이 나
를 더욱 화나게 했다.
내 생각은 다시 이 작은 사건에 머물렀다. 내 생각은 데미안으로 가득 찼다.
그가 저 교외 술집에서 한 말들이, 기이하게도 신선하게 고스란히 다시 내 기억
속에 떠올랐다.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p 117
창문에 걸려 있는 이제는 완전히 빛이 사라진 그림을 쳐다보았다. 빛이 사라
졌는데도 나는 보았다. 두 눈은 아직도 활활 타고 있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시선
이었다. 혹은 내 속에 있는 사람, 모든 것을 아는 그 사람이었다.
데미안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건, 아마도 지금은 어딘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것, 그의 김나지소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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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건, 아마도 지금은 어딘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것, 그의 김나지움 시절이 끝나고 나서 그 어머니가 우리 도시를 떠났다
는 것 뿐이었다.
크로머와의 이야기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내 마음속에서 막스 데미안에 대한
모든 추억을 찾았다. 얼마나 많은 것이 그때 다시 울리기 시작했는지. 그가 언젠
가 나에게 해준 말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이 오늘까지도 의미가 있었고, 당면 문
제였으며, 나에게 관계되었다!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우리들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가 방탕자와 성인에 대하여 말한 것도 갑자기 내 영혼 앞에 환하게 떠올랐다.
나에게도 꼭 그렇게 된 것이었을까? 나는 취기와 더러움 속에서, 마비와 상실
속에서 산 것이 아닐까. 마침내 소라넷새로운 인생의 충동으로써 바로 반대의 것이, 정
결함에의 욕구, 성스러움에의 동경이 내 마음속에서 살아날 때까지?
그렇게 계속 기억을 따라갔다. 벌써 오래전에 밤이 되었고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도 빗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로니에 나무들 밑,
그가 언젠가 프란츠 크로머 때문에 나한테 캐어묻고 나의 첫 비밀들을 알아맞혔
던 때였다. 하나하나가 나타났다. 학교 길에서의
@p 118
대화들, 견진성사 수업 시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스 데미안과의 맨 마지막
만남이 떠올랐다. 거기서는 무엇이 문제되었던 것인가? 나는 얼른 대답이 떠오
르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했다. 그 생각에 완전히 침잠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떠오른다. 그것도. 우리들은 우리 집앞에 서 있었다. 그가 나에게 카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알려준 뒤였다. 거기서 그는 우리 집 현관문 위에 붙어 있는, 밑
에서부터 위쪽으로 넓어지는 마감석이 속에 새겨진, 오래되어 마모된 문장에 대
해서 말했다. 그는 말했었다. 그 문장이 흥미롭다고, 그런 것들에 유의해야 한다
고.
그날 밤 나는 데미안과 문장 꿈을 꾸었다. 문장은 끊임없이 모습이 바뀌었다.
데미안이 그것을 두 손에 들고 있었다. 작고 회색인가 하면, 거대하고 여러 색깔
이다. 그러나 데미안은 이것이 그렇지만 언제나 똑같은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나에게 억지로 문장을 먹였다. 그것을 삼키자, 삼킨 문장이
내 속에 살아 있어, 나를 다 채우고 안에서부터 나를 파먹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져 나는 엄청나게 놀랐다. 죽음의 두려움에 가득 차 나는 펄쩍 뛰어
일어나며 잠에서 깨었다.소라넷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한방중이었다. 방 안으로 비가 들이치는 소리가 들렸
다. 나는 창문을 닫으려고 일어났다. 그러나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 환한
것을 밟았다. 아침에 보니 그것은 내가 그린 그림이었다. 그림은 종이가 축축해
져서 방 바닥에 놓여 있었고 불룩하게 뒤틀려 있었다. 마르라고 그림을 압지 사
이에 끼워 무거운 책 속에 퍼
@p 119
넣었다. 다음날 다시 찾아보니, 말라 있었다. 그러나 그림이 달라져 있었다. 붉
은 입이 바랬고 약간 좁아져 있었다. 이제 완전히 데미안의 입이었다.
새 종이에 문장의 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새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제
는 똑똑히 알 수 없었고 거기서 몇가지는 내가 아는 바로는, 가가이에서도 이제
잘 알아볼 수 업기도 했다. 문장이 낡은 데다가 자주 페인트를 덧칠했기 때문이
었다. 그 새는 무엇인가의 위에 서 있거나 아니면 앉아 있었는데, 어쩌면 한 송
이 꽃 아니면 광주리나 둥우리, 혹은 화관 위였는지도 모른다. 그걸 더 신경 스
지 않고, 뚜렷한 표상을 가진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명확하지 않은 욕구에 따라
나는 즉시 강한 색채로 시작했다. 새의 머리는 내 도화지 위에서 황금빛이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계속해서 며칠 내로 완성시켰다.
이제 그것은 날카롭고 대담한 매의 머리를 가진 한 마리 맹금이었다. 그의 몸
절반은 어두운 지구 땅덩이 속에 박혀 있는데, 커다란 알에서부터인 듯 땅덩이
에서 나오려고 푸른 하늘 바탕 위에서 애쓰고 있었다. 그림을 꽤 오래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점점 더, 마치 내 꿈 속에서 나타났던 색깔 있는 문장인 것 같
았다.소라넷
데미안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나로서는 불가능했던 것 같다. 설령 어디로 보
내야 하는지 알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매사를 그렇게 처리했던
것과 똑같이 꿈같은 예감에 사로잡혀, 일단 보내고 나서 그림이 그에게 닿든 안
닿든 간에 그에게 매를 그린 그림을 보내기로 결
@p 120
정했다. 겉봉에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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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쓰지 않았다. 내 이름도 쓰지 않았다. 가장자리들
을 조심스럽게 잘랐고, 커다란 종이 봉투를 사서 그 위에 내 친구의 예전 주소
를 적었다. 그리고는 보냈다.소라넷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여느 때보다 더 학업을 위해 공부해야만 했다.
내가 형편없는 방황을 갑자기 청산하고부터 선생님들이 너그럽게도 나를 다시
받아들이셨다. 당시도 나는 훌륭한 학생은 아니겠지만, 나도 또 다른 누구도, 반
년 전에 나에게 벌로 내려졌던 정학 처분이 누가 봐도 잇음직한 일이엇다는 생
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도 이제는 비난도 위협도 없이 다시 전 같은 어조로 편지를 쓰셨다. 그
렇지만 나는, 아버지에게나 그 누구에게 어떻게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는지 설명
할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 이 변화가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소망과 일치한
것은 우연이었다. 이 변화는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데려간 것이 아니었다. 나
를 그 누구에게도 접근시키지 않았다. 나를 오직 더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 어딘가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데미안을, 먼 운명을, 내 스스로야 몰랐다. 그
한가운데 있었잖은가. 베아뜨리체로 일은 시작되었으나, 얼마 전부터 나는 그림
그려진 종이를 그리고 데미안에 대한 나의 생각들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얼마
나 완벽하게 비현실적인 세계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 바아뜨리체마저 시야에서
생각에서 까마득히 사라졌다. 내 꿈들, 내 기대들, 내 내면의 극심한 변화에 대
해 나는 아무에게도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설령 그렇게 하고
@p 121
자 했더라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 원할 수 있었겠는가?
@p 122
새는 알에서 나오려소라넷고 투쟁한다.
내가 그린 꿈 속의 내 친구를 찾아 날아가고 있었다. 너무 놀랍게도 나에게로
답장이 왔다.
학교 우리 반 교실 내 자리에서, 한 번은 쉬는 시간이 끝난 뒤 다음 수업이
미처 시작되기 전에 쪽지 하나가 내책에 꽂혀 잇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우리
반 학생들이 수업 시간중에 몰래 서로 쪽지 편지를 보낼 때 흔히 접는 것과 똑
같이 졉혀 있었다. 내가 놀랐던 건 다만, 누가 나한테 그런 쪽지를 보냈을까 하
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어떤 학우와도 그런 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
문이다. 나야 끼지 않을 테지만, 그 어떤 학생다운 장난을 하자는 것이겠거니 하
고 족지를 읽지도 않은 채 앞쪽 책속에 끼워 넣었다. 수업 도중에 우연히 그 쪽
지가 다시 손에 들어
@p 123
왔다.
종이를 만지작거리다 아무 생각 없이 펴게 되었는데 그안에 몇 마디 말이 적
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위로 한 번 시선을 던지고는 말 하나에 사로잡혀 버렸
다. 놀라 읽었다. 그사이 나의 가슴은 운명 앞에서, 큰 추위가 닥친 때처럼 오그
라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
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이 글줄을 몇 차례 읽은 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떤 의심도 불가능했
다. 이건 데미안이 보낸 답장이었다. 나소라넷와 그 말고 그 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이 있을 수 없었다. 내 그림을 그가 받은 것이다. 그는 이해하였고 내가 풀이하
는 것을 도운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서로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
리고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압락사스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수업을 조금도 듣지 못한 채 그 시간이 갔다. 다음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전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 시간은 젊은 보조 선생님 담당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했
는데, 그렇게 젊다는 것, 그리고 우리들에 대해서 거짓 품위를 보이려 들지 않았
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우리들의 호감을 산 분이었다.
우리들은 그 플렌 선생의 지도로 헤로도투스를 읽고 있었다. 이 강독은 내가
흥미를 가진 몇 안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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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밤
아찔한밤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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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자닷컴소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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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톡 
레드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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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의 하
@p 124
나였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정신이 딴데 팔려 있었다. 기계적으로 책을 폈으
나, 번역을 따라가지 않고 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무려나 나는 데미안이 그때
종교 수업 시간에 말했던 것이 얼마나 옳은지 이미 몇차례 경험을 통해 알고 있
었다. 사람이 충분히 강렬하게 소망하는 것, 그것은 정말 이루어졌다. 수업중에
내가 아주 강렬하게 내 자신의 생각에 열중하고 있으면, 선생님도 나를 그대로
내버려둘 만큼 열중해 있으면, 나는 조용히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 산만하거나
졸고 있을 때는 선생님이 갑자기 거기 와 계셨다. 여느 때 나도 겪던 일이다. 그
러나 정말 생각하고, 정말 침잠해 있을 때, 그럴 때는 지켜져 있었다. 뚫어질 듯
바라보는 일은 나도 벌써 시험해 보았고 믿을 만한 것임을 알았다. 그때 데미안
과 만나던 시절에는 되질 않았었는데, 이제는 자주, 시선과 생각으로 아주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소라넷 것을 느꼈다.
그때도 나는 그렇게 앉아 헤로도투스로부터 그리고 학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
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선생님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내 의식을 치고 들
어왔다. 화들짝 깨어났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 곁네 바싹 다가와
서 계시는 것이었다. 내 이름을 부르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나를 보시지 않았
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목소리는 커다랗게 (압락사스) 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 부분은 내가 듣지 못했는데 폴렌 선생은 계속 설명
@p 125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저 종파의 세계관과 고대의 신비주의적인 합일을, 합리
주의적인 관찰의 입장에서 보듯이 그렇게 단순하게 상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날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학문이란 고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대신 아
주 고도로 발달되었던, 철학적 신비주의적 진실들을 다루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부분적으로는, 아마 자주 사기와 범죄로도 이어지는 주술과 게임도 나
왔습니다. 주술에도 고귀한 유래와 깊은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앞서 예로
들었던 압락사스 학설도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이 이름을 그리스의 주
문과 연관지어 일컫습니다. 오늘날도 미개 민족들이 믿고 있는 마술 부리는 악
마의 이름쯤으로 생각하는소라넷 것입니다. 그러나 압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
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의 이름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 조그만 학식 많은 분은 섬세하고도 열정적으로 계속 이야기를 해나갔다.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압락사스라는 이름이 더 이상 나
오지 않자, 나의 주의력도 내 자신 안으로 가라앉았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다)는 말의 여운이 귀에 남아 있었다. 여기
서 나는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그말은 우리 우정의 맨 마지막 시절 데미안과 나
누었던 대화들에서 친숙한 것이었다. 데미안은 당시에 말했었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존경하는 신 하나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는 함부로 갈라놓은 세계의 절
반만 나타낸다고 (그것은 공
@p 126
식적이고, 허용된 (환한) 세계였다). 그러나 세계 전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
다고. 그러니까 악마이기도 한 신 하나를 갖든지, 아니면 신에 대한 예배와 더
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압락사스는 신이
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신이었다.
한동안 나는 아주 열성적으로 계속 그 자취를 찾았다. 진전은 없었다. 압락사
를 찾아 온 도서관을 성과없이 뒤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기껏해야 손 안에 든
돌 한나에 머물러 있는 진소라넷실만을 찾아내는 식의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탐구에 나
의 본질이 깊이 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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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69   

하지는 못했다.
얼마 동안 내내 그토록 열중히 존중했던 베아트리체의 영상이 이제 서서히 가
라앉았다. 아니면 오히려 천천히 나로부터 떠나갔다. 점점 더 지평선에 접근해
가서, 더 그림자 같고, 더 멀어지고, 더 빛 바래 갔다. 이제는 영혼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제 특이하게 나 자신 속소라넷으로 자아넣은 현존 속에서, 내가 몽유병자처럼 영
위하고 있는 현존 속에서, 새로운 형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삶에의 동경이,
아니 그보다는 사랑에의 동경이 내 안에서 꽃 피었다. 그리고 한동안 베아트리
체 숭배를 통해 해소되ㄹ 수 있었던 성욕이 새로운 영상과 목표를 요구하고 있
었다. 아직 여전히 그 어떤 성취도 이루지 못했다. 동경을 기만하고 내 친구들이
그들의 행복을 찾는 그런 소녀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은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불가능했다. 나는 다시 심하게 꿈을 꾸었다. 그것도 밤보다 낮에
더 많이, 상상들이, 영
@p 127
상들 혹은 소망들이, 내 안에서 솟아올라 나를 바깥 세계로부터 분리시켰다.
현실의 환경보다 내 마음속의 이 영상들, 이 꿈들 혹은 그림자들과 더 현실적으
로, 더 생생하게 교류하며 살았다.
특정한 꿈, 혹은 거듭 나타나는 환상의 유희 하나가 나에게는 극히 중요해졌
다. 이 꿈,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불길한 꿈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내가 부모님 댁으로 간다. 현관문 위에는 문장의 새가 푸른 바탕 위에서 노란색
으로 빛을 내고 있다. 집 안에서는 어머니가 나를 향해 오신다. 그러나 내가 들
어서며 어머니를 포옹하려 했을 때,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
는 인물이었다. 키 크고 힘있는 인물, 막스 데미안이나 내가 그린 그림과 비슷한
데도, 또 달랐다. 그리고 힘이 있는데도 완전히 여성이었다. 이 인물이 나를 자
기에게로 끌어당겨 전율을 일으키는 깊은 사랑의 포옹을 했다. 희열과 오싹함이
뒤섞였다. 나를 포옹한 인물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너무 많은 추억, 내 친구 데
미안에 대한 너무 많은 추억이 유령처럼 서려 있었다. 그 인물의 포옹은 모든
경외심을 배척했으나, 그럼에도 축복의 희열이었다. 자주 나는 깊은 행복감을 느
끼며, 죽음의 두려움과 격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무서운 죄악에서 벗어나듯
이 꿈에서 깨어났다.
다만 서서히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이 완전히 내면적인 영상과 바깥으로부터
내게로 온, 찾아야 할 신에 대한 신호 사이에서 하나의 결합이 이루어졌다. 그리
고 이 결합은
@p 128
그 후 더 긴밀해지고 더 내밀해졌으며 나는, 내가 바로 이 예감의 꿈속에서
압락사스를 불렀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희열과 오싹함이 섞이고, 남자와 여자가
섞이고, 지고와 추악이 뒤얽히고, 깊은 죄에는 지극한 청순함을 통해 충격을 주
며, 나의 사랑의 꿈의 영상은 그러했다. 그리고 압락사스도 그러했다. 사랑은 이
제 더이상, 처음에 겁을 먹고 느꼈던 것처럼 동물적인 어두운 충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또한 더 이상 내가 베아뜨리체의 영상에다 바친 것 같은 경
건하게 정신화된 숭배 감정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 둘 다였다. 둘 다이며 또 훨
씬 그 이상이었다.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였고, 인간
과 동물,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 악이었다. 이 양극단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보였
다. 나는 운명을 동경했고소라넷, 운명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은 늘 거기에 있었다. 늘
내위에 있었다.
이듬해 봄에 나는 김나지움을 떠나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아직 어디서 무얼
해야 할 지 몰랐다. 코 밑에는 작은 수염이 자랐다. 나는 성인이었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무력했고 목표가 없었다. 단 한 가지, 내 속의 목소리, 그 꿈의 영상만
확실했다. 그 영상의 인도에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임무를 느꼈다. 그리고
날마다 나는 반항했다. 내가 돌았나보다고 때때로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걸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해내는 것은 나도 모두 할 수
있었다. 약간
@p 129
열심히 애쓰면 플라톤을 읽을 수 있었고, 삼각법 과제를 풀거나 화학 분석을
따라갈 수 있었다. 단 한 가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어둡게 숨겨진 목
표를 끌어내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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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그려내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며,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장점들을 가질 것인지 정확하게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려내는 일, 그것은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무엇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내가 그걸 안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찾고
또 계속 찾아야겠지. 여러 해를, 그러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하겠지. 어쩌면 나도 나도 하나의 목표에 이르겠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자주 나는 내 꿈속 강렬한 사랑의 영상을 그려보려 했다. 그러나 한번도 성공
하지 못했다. 성공했더라면 나는 그 그림 종이를 데미안에게 보냈을 텐데.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알 지 못했다. 내가 아는 건 오직, 그가 나와 결합되
어 있다는 것뿐. 언제 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베아트리체 시절의 저 몇 주일, 몇 달의 다정한 안정이 오래전에 사라졌다. 하
나의 섬에 도달했고 평화를 찾아냈다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늘 그랬다.
하나의 상태가 나에게 좋아지자마자, 하나의 꿈이 내게 편안해지자마자, 그것은
어느새 벌써 시들고 흐려졌다. 부질없다. 그 뒷모습을 보며 탄식함은! 나는 이제
가라앉지 않은 욕
@p 130
망, 팽팽한 기대의 불 속에 살고 있었다. 그것은 자주 나를 완전히 난폭하게
미치게 만들었다. 꿈의 여인의 영상이 자주 살아있는 연인의 모습보다 더 똑똑
하게 눈앞에 보였다. 내 자신의 손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 그 영상과 더불어 나
는 이야기 했고, 그 앞에서 울었고, 거기서부터 도피했다. 나는 그것을 어머니라
고 부르고 그 앞에서 눈물를 흘리며 무릎 꿇었다. 연인이라고 불렀고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그 성숙한 입맞춤을 예감했다. 그것을 악마며 창녀, 흡혈귀며 살인자
라고 부르면, 그 영상은 더할 나위없이 애정어린 사랑의 꿈으로 파렴치한 황음
으로 나를 유혹했다. 그 무엇보다도 그 영상에게는 지나치게 선하고 귀하지 않
았다. 그 무엇도 너무 나쁘고 저열하지 않았다.
온 겨울을 나는 묘사하기 어려운 내면의 폭풍속에서 보냈다. 외로움에는 오래
전부터 익숙해 있었다. 외로움은 나를 짓누르지 않았다. 나는 데미안과, 새와, 내
운명이자 내 연인이었던 위대한 꿈속의 영상과 함께 살았다. 그 안에서 살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이 위대함과 광대함을 지향하고 있었고, 모든 것이 압락사스의
암시였다. 그러나 이 꿈들 중 어느것도 나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어느 것도 내가
부를 수는 없었다. 그것들이 와서 나를 가졌다. 나는 그것들의 다스림을 받았다.
그것들에 의해 살았다.
바깥으로는 내가 아마 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
것을 내 학우들도 알아서 내게 남모
@p 131
르는 존경을 보내어, 자소라넷주 나의 미소를 자아냈다. 원한다면 나는 그들 대부분
을 아주 잘 꿰뚤어볼 수 있었고 이따금씩 그렇게 해서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었다. 다만 내게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드물게 생기거나, 전혀 생기지 않았
다. 나는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제 마침내 한 번
인생의 한 토막을 살아보기를, 나에게서 나온 무엇인가를 세계 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다. 이따금씩, 저녁에
거리를 걸을 때 그리고 초조로 자정까지도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 때, 그럴때
나는 이따금씩 생각했다. 지금, 바로 지금 틀림없이 나의 연인이 내게로 오고 있
을 거라고, 다음 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거라고, 그 모든 것이 때로는 견딜 수 없
이 고통스러워 죽어버릴 작정도 했었다.
당시에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서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
이 자신에게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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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습소라넷
@p 155
한번도 안 해봤어?」
그 연습에 대하여 호기심어린 질문을 하자 그가 처음에는 뭔지 숨기는 듯 알
수 없이 굴어서, 마침내 나는 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가 주섬주섬 털어놓
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내가 잠들고자 하거나 또는 집중하고자 할때, 나는 그런 연습을
해. 그 무엇인가를, 예를 들면 단어하나 혹은 이름 하나 혹은 기하학 도형 하나
를 생각해 그 다음에는 그것들을 생각하면서 몸 속으로 집어넣어. 할 수 있는
한 한껏 집중해서, 그것들이 내 안에, 내 머릿속에 있다고 상상해 보려 해. 마침
내 내 몸 안에 있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그런 다음 그것이 목에 걸렸다고 생각
하지. 그런 식으로 마침내 내 몸이 완전히 그것으로 가득 찰 때까지 생각해. 그
다음에는 완전히 확고해지지. 그러면 그때부터는 그 무엇도 나를 안정에서 벗어
나게 하지는 못하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정
작 하고 싶은 말은 아직도 딴데 있다는 것이 잘 느껴졌다. 그는 기이하게 흥분
해 있었고 조급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질문을 가볍게 해주려고 했다. 그러자 곧
그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를 들고 왔다.
「너도 금욕을 하지?」그가 나에게 불안스럽게 물어왔다.
「무슨 뜻이지? 성문제 말인가?」
「그래, 그래. 나는 지금 이 년째 금욕을 하고 있어, 그학설에 대해 알고 난
다음부터야. 그 전에는 죄를 지었더랬어. 너도 벌써 알겠지만. 너는 그러니까 여
자하고 잔 적이 없지?」
@P 156
「없는데」내가 말했다.「그럴 상대를 못 찾았어」
「그러나 만약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아내고 맞는 상대라면, 그렇다면 그 여
자하고 자겠구나?」
「그래, 물론이야. 그 여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말이야」내가 약간 비꼬듯 말
했다.
「오, 그 점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 거야! 내면의 힘은 완전히 금욕을 할 때만
키울 수 있어. 나는 그렇게 했어. 이 년 동안. 이 년하고도 일 개월 조금 더 됐
지! 그건 참 힘들어! 어떤 때는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야」
「아봐, 크나우어, 난 금욕이 그렇게 대단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도 알아」그가 방어했다.「다들 그렇게 말하지. 그래도 너는 안 그럴 줄
알았어. 좀더 높은 정신적인 길을 가는 사람은 늘 몸이 정결해야 해, 반드시!」
「그래,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해! 하지만 난 이해하지 못하겠어. 자신의 성을
억누르는 사람이 왜 다른 사람보다 <더 정결하다>는 건지. 아니면 너는 성을
모든 생각과 꿈에서도 배제해 버릴 수 있다는 거니?」
그는 절망적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소라넷! 하느님 맙소사, 그렇지만 그래야만 해. 나는 밤에
꿈을 꿔, 나 자신한테조차도 이야기 할 수 없는 꿈을 꾸는 걸! 무서운 꿈이라구!

나는 피스토리우스가 나한테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의 말이 참으로 옳다는
것을 느끼는데도, 그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다. 내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으
@P 157
며, 그것을 따르기에 나 자신이 아직 성숙해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충고를 남에
게 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가 나에게서 충고를 구
했는데, 아무런 해줄 말도 없다는 사실에 굴욕을 당한 느낌이었다.
「나는 별별 시도를 다 해봤어!」 크나우어가 내 곁에서 탄식을 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냉수욕, 안력 훈련, 체조, 달리기. 그러나 다 아무 소용 없었
어. 밤마다 생각도 해서는 안 되는 꿈을 꾸다가 화들짝 깨어나곤 해. 끔찍한 것
은, 그러다 보니 내가 정신적으로 배워놓은 모든것이 내게서 차츰 다시 없어지
는 거야. 그러고 나면 그때부터는 아무리해도 집중하거나 잠들 수 없어. 자구 누
워서 밤을 꼬박 새워. 그것소라넷을 결코 오래 견뎌내지 못하겠어. 마침내 내가 그 싸
움을 해낼 수 없으면, 내가 항복하여 다시 자신을 더럽히면, 그 다음에 나는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나빠. 이해하겠니?」
나는 끄덕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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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
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두세 번 시내를 오가는 길에 어느 교외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 소
리를 들었다. 거기 머물지는 않았었다. 다음번에 지나갈 때, 그 소리를 또 들었
다. 그리고 바하가 연주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문으로 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그리고 골목에는 거의 사람이 없어 교회
@p 132
옆 방충석에 앉아 외투 깃을 세우고는 귀귀울였다.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
은 오르간이었다. 그런데 연
주가 놀라웠다. 최고도로 개인적인 의지와 끈질김의 표현이어서 마치 기도처럼
들렸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그 음악 안에 보물
하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얻듯 이 보물을 얻어내
려고 구하고, 가슴 뛰고, 애쓰고 있다고. 나는, 테크닉면에서는 음악을 별로 많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바로 이런 영혼의 표현은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이해했
으며 내 마음속에서 음악적인 것을 자명한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음악가는 이어서 현대음악도 연주했다. 레거의 곡인 것 같았다. 교회는 거의
완전히 어두웠다. 다만 아주 엷은 빛줄기 하나가 바로 옆 창문을 뚫고 들고 있
었다. 음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다음에는 이리저리 거닐고 있자니 마침
내 오르간 연주자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보다 나이가 들었어도 아직 젊은 사
람이었다. 체격이 다부지고 땅딸막 하였는데, 힘차면서도 내키지 않는듯한 걸음
으로 급히 그곳을 떠났다.
그때부터 이따금씩 니는 저녁시간에 그 교회 앞에서 앉아 있거나 오락가락했
다. 한 번은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오르간 연주자가 높은 곳에 매달린
빈약한 가스등 불빛 속에서 연주를 하는 동안, 나는 떨면서도 행복하게 반 시간
을 교회 회중석에 앉아 있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내가 들은 것은 그 사
람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것이 자기들끼리 밀접한 관계를 맺
고 있
@p 133
는 듯했다. 남모르는 연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것에
신앙심이 담겨 있었다. 헌소라넷신적이고 경건했다. 그러나 교화 가는 사람들이나 목사
님들처럼 경건한 것이 아니라 중세의 걸인 순례자처럼 경건했다. 모든 종파를
초월하는, 세계 감정에의 남김없는 헌신으로 경건했다. 바하 이전의 대가들, 그
리고 옛 이탈리아인들의 음악이 노련하게 연주되었다. 그리고 모든 연주곡들이
한결같이 같은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 음악가의 영혼속에 담긴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움, 더없이 열렬한 세계의 포착, 세계와의 가장 난폭한 재
결별, 자신의 어두운 영혼에 대한 절실한 귀기울임, 헌신에의 도취와 경이로움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한번은 교회에서 나오는 오르간 연주자를 몰래 따라 갔는데, 멀리 도시 외곽
의 작은 선술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음에 맞서지 못하고 이끌린 듯 그를
뒤따라갔다. 거기서 처음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똑똑하게 보았다. 작은 술집 한
모퉁이에 있는 주인 맞은편 테이블에, 머리에는 까만 펠트직 모자를 쓰고, 포도
주를 한 잔 앞에 놓은 채 그는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같았다. 못생겼고, 약간 거칠었으며, 탐색적이고,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의지에
차 있었다. 그러면서도 입 주위는 부드럽고 어린아이 같았다. 남성다운 강함은
모두 눈과 이마에 모여 있었다. 얼굴의 아래 부분은 여리고 미완성이었다. 자제
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약간 약했다. 우유부단함이 여실히 보이는 턱은, 이마나
시선과는 대조적으로 소년다
@P 134소라넷
웠다 자부심과 적의에 찬, 짙은 갈색 눈이 호감을 주었다.
말없이 나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술집에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쫓아 버리려는 듯이, 그는 나를 쏘아 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버텨냈으며 마침내
그가 우악스럽게 툴툴거릴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
엇 때문에 그렇게 빌어먹게 쏘아본단 말요, 나한테 원하는 거라도 있소?”
“선생님한테 원하는 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벌써 선생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요”
그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래, 음악 팬이오? 음악에 얼빠지는 것이 난 구역질나는데”
나는 놀라 물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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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에게 그다지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것에 내
심 놀랐다. 나의 느낌은 다만, 난 너를 도울 수 없어, 라는 것이었다.
그가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슬프게 말했다. 「그러니까 넌 전혀 모르는 거지?
전혀 모르겠다고? 그래도 뭔가 길은 분명 있을 거야! 넌 대체 어떻게 하지?」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있는 게 없구나, 크나우어. 사람들은 그런 일에서는 서
로 도울 수가 없단다. 나를 도와준 사람도 아무도 없었더. 네 스스로 생각해 내
려고 애써야
@P 158
해, 그러고는 정말로 네 본소라넷지로부터 나오는 것, 그걸 하면돼. 다른 길은 존재하
지 않는단다. 네가 네 자신을 찾아낼 수 없으면, 다른 영들도 찾아낼 수 없다고
생각해」
실망하여 갑자기 말을 뚝 끊더니 그 작은 녀석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의 시선이 갑작스러운 증오의 빛을 띠며 이글이글 타올랐다. 나에게
얼굴을 찡그리더니 노하여 소리쳤다. 「아, 너야 멋진 성인이시지! 너도 죄를 짓
겠지, 알아! 너는 마치 현인처럼 굴면서 남몰래 나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더러
운 것에 매달리는 거지! 넌 돼지야, 돼지,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다 돼지
야!」
나는 그를 세워둔 채 떠났다. 그는 두세 걸음 나를 따라오더니, 그 다음에는
그대로 뒤를 멈추었다가, 몸을 돌려 달아났다. 연민과 혐오의 느낌으로 속이 메
슥거렸다. 마침내 집에 와 내 작은 방에서 내 그림들 몇 개를 주위에 둘러세우
고 더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내 자신의 꿈들에 열중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 느낌
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자 곧 나의 꿈이 다시 또올랐다. 현관문과 문장에
대한, 어머니와 낯선 여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 여성의 표정이 어찌나 또렷하게
보이는지, 그날 저녁에 그녀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며칠 뒤 이 스케치가 완성되자 의식을 잃은 듯 몽환적인 상태에서 칠까지 하
여, 저녁에 벽에 걸고, 독서 등을 그앞으로 밀어놓고는 결판이 나도록 싸워야 하
는 신 앞에 선듯 그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은 얼굴이었다. 전의 것과 비
@p 159
슷하고, 내 친구 데미안과소라넷비슷하고, 몇몇 표정에서는 나자신과도 비슷했다. 한
눈이 다른 눈보다 눈에 뜨이게 높이 달려 있었고, 침잠하여 응결되고 운명에 가
득 찬 채 시선은 나를 넘어 어딘가로 행해 있었다.
그림 앞에 서서 나는 내적인 긴장으로 가슴속까지 써늘했다. 그 그림에게 나
는 물었다. 그림을 비난했다. 그림을 애무했다. 그림에게 기도했다. 나는 그 그림
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연인이라고 불렀다. 창녀고 매춘부라고 불렀다. 압락사스
라고 불렀다. 그 사이로 피스토리우스의 말이 - 아니면 데미안의 말이었을까?-
떠올랐다. 언제 그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야곱과 천사의 싸움에 대한 말이었다. <나에게 축복을 내리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는 그 말.
그려진 얼굴은 램프 빛 속에서 그때그때의 간청에 따라 변했다. 환하게 밝아
지다가 까맣게 어두워지고, 꺼져 하는 눈 위로 파리한 눈꺼풀을 감다가는 다시
떠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그것은 여자였다. 남자였다. 소녀였다. 어린
아이였다. 동물이었다. 얼룩으로 흐렸다가 다시크고 뚜렷해졌다. 끝에 가서 나는
마음속에서 들리는 뚜렷한 부름을 따르며 눈을 감았고, 이제 그 그림을 내 마음
안에서 보았다. 다욱 강하게 더욱 힘있게. 나는 그림 앞에 무릅을 끓으려 했다.
그러나 그림이 어찌나 나의 안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그것을 나 자신과 갈라놓을
수 없었다. 마치 그림이 온통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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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았다.
“벌써 선생님 음악을 들었습니다. 저 바깥 교회에서요” 내가 ㅁ말했다. “아
무튼 귀찮게 해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선생님 곁에서 어쩌면 무얼 찾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뭔가 특별한 것,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선생님
께서는 제 말은 전혀 듣고 싶지 않으신 것 같군요! 저는 선생님께 귀기울이는데
요. 교회에서 말입니다”
“난 언제나 문을 잠그느데”
“최근에 그걸 잊어버리셨습니다. 저는 안에 앉았구요. 보통 때는 바깥에 서
있거나 방충석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요? 다음번에는 들어오시구려, 안은 한결 따뜻하오. 그럴 때는 그냥 문
을 노크하시오. 노크는 힘차게 해야
@p 135
해요. 내가 연주하는 동안은 하지 말고. 자 시작합시다. 무슨 말을 하려 했소?
아주 젊은 사람이로군. 아마 학생이거나 대학생이겠군. 음악가요? ”
“아뇨. 음악을 즐겨 소라넷. 그러나 그냥, 선생님이 연주하시는 것 같은 거
요. 아주 절대적인 음악을요. 거기서는 한 인간이 천국과 지옥을 흔들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런 음악을요. 음악이 몹시 좋아요. 음악은 별로 도덕적이 아니기 때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도덕적이지요. 저는 도덕적이지 않은 무엇
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도덕적인 것에는 늘 시달렸거든요. 자신을 잘 표현
할 수가 없는데요. 아시죠,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인 신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
그런 신이 있었다지요. 그런 이야길 들었습니다”
음악가는 넓은 모자를 약간 뒤로 젖히고 검은색 머리카락을 넓은 이마로부터
흔들어 쓸어냈다. 그러면서 나를 꿰뚫듯 바라보며 테이블 넘어 나에게로 얼굴을
숙이는 것이었다.
나직하면서도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조금전에 말한 신의 이름
이 뭐요?”
“유감스럽게도 그 신에 대해서는 거의 모릅니다. 사실 이름밖에 몰라요. 그
이름은 압락사스입니다”
음악가는 미덥지 않다는 듯 주위를 둘러 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엿듣
기라도 하듯이. 그러더니 나에게로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려니 했소.
당신은 누구요?”
“저는 김나지움 학생입니다”
@p 136
“압락사스는 어디서 알았소?”
“우연히 알았습니다”소라넷
그는 테이블을 쳤다. 그의 술이 잔에서 넘쳤다.
“우연이라구?... 멍청한 소리 하지 말아, 이 사람아! 압락사스는 우연히 알게
되는 게 아니야. 알아두게. 압락사스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할테니. 난 압락사스에
대해 좀 알거든”
“그가 입을 다물고 자기가 앉은 의자를 뒤로 밀었다. 잔뜩 기대에 차서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서는 아니고 다음번에 그때 들으시오”
그러면서 그는 벗어 놓은 자기 외투 호주머니를 뒤져, 군 밤 몇개를 내게로
던졌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서 먹엇고 매우 만족했다.
“그러니까!” 그가 한참 뒤에 나직이 말했다. “어디서 알았소, 그에 대해서?
” 나는 망설이지 아노고 말했다.
“저는 혼자였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때 예전의 친구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아는 게 많다고 생각했던 친굽니다. 무언
가를, 새 한마리를 그려 놓았거든요. 지구를 뚫고 나오려는 새였습니다. 그 그림
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얼마 뒤, 이제 답장을 받으리라고 기대도 안하게 되었을
때 쯤, 쪽지 하나를 손에 받았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새는 알에
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p 137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소라넷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라고요”
그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 우리는 밤 껍질을 벗겨 포도주에 곁들여 먹었다.
“한 잔 더 할까?” 그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는 다소 실망하여 웃었다.
“좋으실 대로! 난 술을 좋아하지. 난 여기 좀더 있을테니 먼저 가보시오!”
그 다음번 오르간 음악이 끝난 뒤 그와 함께 걸었을 때, 그는 별로 이야기하
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어느 오래된 골목 안, 낡았지만 위풍 있는 집 위층
으로 인도해 올라갔다. 커다랗고, 다소 황량하고 지극히 볼잘것 없는 방안으로,
거기에는 피아노 한대 외에는 음악과 상관있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커다란 책장과 책상이 있어 무언가 학자의 방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책이 참 많으시군요!‘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 일부는 우리 아버지 장서요. 아버지 댁에 살고 있거든. 그래, 젊은이, 난
아버지 어머니 집에 살아. 그러나 자네를 부모님께 소개할 수는 없어, 나의 교우
관계가 여기 집안에서는 큰 존중을 못 받거든. 나는 버려진 자식이오, 아시겠지.
우리 아버지는 빌어먹게 존경할 만한 분이시지, 이 도시에서 유명한 신부님이고
설교자시지. 그런데 나는, 바로 환히 알아두시도록 말하자면, 그 분의 재능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드님이시고, 그러나 궤도를 벗어나 어느 정
@p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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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어버린 듯이.
그때 마치 봄의 폭풍인 듯 어둡고, 무거운 포효 소리가
@P 160
들렸다. 나는 형언할 수 없이 불안과 체험의 새로운 느낌에 휩싸여 몸을 떨었다.
별들이 내 앞에서 번쩍거리다가 꺼졌다. 최초의, 아주 잊혀진 유년으로까지, 실
로 전생과 생성의 초기 단계까지 이르는 거억들이, 콸콸 흘러 나를 스쳐 흘러갔
다. 나의 온 생애를, 가장 비밀스러운 것까지 되풀이하는 듯한 기억들은 어제 오
늘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계속 나아갔고, 미래를 비추었고, 나를 오늘로부터
낚아채어, 새로운 삶의 형식들 속으로 넣었다. 그 새로운 삶의 영상들은 엄청나
게 환하고 눈부셨으나 그 중 어느 것도 나중에는 제대로 기억 할 수 없었다.
밤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비스듬히 걸쳐 누워 있
었다. 불을 켰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생각해 내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몇 시간 전의 일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불을 켰다. 차츰 기억이 돌아왔다.
나는 그림을 찾았다. 그림이 이제는 벽에 걸려 있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여 있
지도 않았다. 확실치 않았지만, 내가 그것을 불태워 버린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면 내가 그것을 내 속으로 불태소라넷우고 재를 먹어버린 것이 꿈이었을까?
몸이 푸들푸들 떨리는 큰 불안이 나를 몰아댔다. 어떤 강압을 받는 듯이, 모자
를 쓰고 집과 골목을 지나쳤다. 폭풍에 불려가듯, 거리와 광장들을 빠른 걸음으
로 내처 걸었다. 내 친구의 어두운 교회 앞에서 귀를 기울였고, 어두운 충동에
휩싸여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는 채 찾고 또 찾았다. 사창가들이 있는 교외를 지
나갔다. 그곳은 여기저기
@P 161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더 멀리 바깥에는 공사중인 건물들과 기왓장 더미가 놓
여 있었고, 일부는 충충한 눈으로 덮여 있었다. 몽유병자처럼 알 수 없는 힘에
눌려 이 활량한 곳을 해매다보니, 언젠가 나의 고문자 크로머가 처음으로 계산
을 하자고 나를 끌고 갔던 고향 도시의 공사장 생각이 났다. 비슷한 공사장이
잿빛 어둠 속에서 내 앞에 있었고, 검은 문 구멍들이 내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
었다. 그것이 나를 안으로 끌었다. 물러서려다가 모래와 허섭스레기에 걸려 비틀
거렸다. 충동 쪽이 더 강했다. 나는 들어가야 했다.
판자와 짓부숴진 벽돌들 너머로 나는 비틀비틀 그 황량한 공간 속으로 들어갔
다. 축축한 냉기와 돌 냄새가 침침하게 났다. 모래 더미가, 좀 밝은 잿빛인 지점
이 한 군데 있었다. 그 밖에는 온통 캄캄했다.
거기서 놀란 목소리 하나가 나를 불렀다. 「맙소사, 싱클레어, 어디서 내게로
온 거야?」
그러면서 내 곁 소라넷어둠 속에서 사람 하나가, 작고 마른 사내가 유령처럼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놀랐지만 그것이 내 학우
크나우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네가 여기로 온 거야?」 흥분으로 제정신이 아닌 듯 그가 물었다.
「어떻게 네가 나를 찾아낼 수 있었지?」
나는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난 너를 찾지 않았어」 내가 당황하여 말했다. 말 하나하나가 힘들어, 그 말
은 얼어붙은 듯 무겁고 죽은 입술 사
@P 162
이로 가까스로 나왔다.
그가 나를 응시했다.
「찾지 않았다구?」
「찾지 않았어. 이끌려 온 거야. 네가 나를 불렀니? 네가 나를 부른 게 틀림없
어. 넌 여기서 대체 뭘 했어? 밤인데」
그가 가는 두 팔로 나를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그래 밤이야. 머지않아 틀림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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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돌아버린 아들이지. 나는 신학도였는데 국가고시 직전에 그놈의 답답한 대
학을 그만두어버렸오. 사실 개인적인 연구를 얘기한다면, 나는 여태도 신학도인
데 말이오. 때에 따라 사람들이 어떤 신들을 그때그때 생각해 내었는지, 그것이
나에게는 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소. 그 이외에 나는 지금 음악가이며, 곧 자그
마한 오르간 연주자 자리를 얻게 될 것 같소. 그러면 나도 다시 교회에 돌아가
게 되는 거지“
나는 꽂힌 책들을 작은 스탠드의 약한 불빛이 비쳐주는 데까지 죽 살펴보았
다.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책 제목들이 보였다. 그 사이 그 사람은 벽 곁
방바닥 캄캄한 데 엎드려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이리 와보시오” 그가 한참 뒤에 말했다. “우리 지금 철학 좀 해봅시다. 철
학한다는 건(아가리 닥치고 배깔고 엎드려 생각하기) 라고 하오”
그는 성냥을 켜서 그의 앞에 있던 벽난로 속의 종이와 장작에 불을 지폈다.
불꽃이 높이 솟았다. 소라넷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불을 쑤석였다. 나는 그 곁, 낡아 올
이 풀린 양탄자 위에 드러누었다. 그는 불을 응시했다. 불은 내 마음도 끌어당겼
다. 우리들은 말없이 아마 한 시간은 배를 깔고 타닥거리는 장작불 앞에 엎드려,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싯싯거리고 가라앉아 휘어지고 가물거리고 움칫거리다 마
침내는 사그라진 조용한 화염 속에서 잦아드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배화는 인간이 창안해 낸 것 중 가장 멍청한 짓만은 아니었어” 그는 혼자
서 한번 웅얼거렸다. 그 밖에는 우
@P 139
리들 누구도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굳어진 눈으로 불을 응시하며 꿈과 정적
속으로 침잠하며, 연기 속에서 어떤 영상들을 보았고 재 속에서도 영상들을 보
았다. 한 번은 내가 화들짝 놀랐다. 함께 불을 보고 있던 그 사람이 이글거리는
불 속에 송진을 조금 던졌던 것이다. 조그맣고 날렵한 불꽃이 솟았다. 그 속에서
나는 노란 색 매 머리를 가진 그 새를 보았다. 꺼져 가는 난롯불이 황금빛으로
작열하는 실 가닥을 한데 모아 그물로 만들었다. 문자와 영상들이 나타났다. 문
득 정신이 들어 상대방 쪽을 바라보자 그는 턱을 두 주먹 위에 놓은 채, 몰두하
여 신들린 듯 재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가야겠는데요” 내가 소라넷 말했다.
“그럼, 가시오. 또 봅시다”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등불이 꺼졌기 때문에 어두운 방과 어두운 복도며 계
단을 간신히 지나, 그 저주받은 낡은 집을 더듬어 나왔다. 거리에서 멈추어 그
낡은 집을 쳐다보았다. 어느 창에도 불빛이 없었다. 주석으로 만든 작은 문패가
문 앞의 가스등 불빛 속에서 반짝였다.
(수석 신부 피스토리우스)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혼자 내 작은 방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압락사
스에 대해서도, 피스토리우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듣지 못했으며 우리가 주고
받은 말이 열마디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집을 찾아갔던
것에 아주 만족했다. 게다가 그 다음번에는 아주
@p 140
뛰어난 오래된 오르간 작품인 북스테우데의 파사칼리아를 들려주겠다고 약속
했던 것이다.
나는 몰랐지만, 내가 그와 함께소라넷 벽난로 앞 그의 침울한 은둔자 방의 바닥에
누워 있던 그때 오르간 연주자 파스토리우스는 나에게 첫 수업을 해준 것이었
다. 불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나는 기분 좋았다. 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지만 사실 한 번도 보살핀 적이 없었던 내면의 성향들을
강화하고 확이시켜 주었다. 차츰 내게는 부분 부분 그것들이 명확해졌다.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나는 때때로 기괴한 형태를 가진 자연물을 바라보는 버
릇이 있었다. 그냥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유한 마력, 그 얽히고 설킨 깊은
언어에 깊이 몰두하여 관찰했다. 고목처럼 드러난 길다란 나무 뿌리, 암흑 속의
색색깔 광매, 물 위에 뜬 기름 얼룩, 유리에 난 금- 그런 것들이 종종 나에게 커
다란 마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물과 불, 연기, 구름, 먼지, 그리고 눈을 감으면 보
이는 아주 특별하게 선회하는 색 얼룩이. 피스토리우스를 처음 찾아간 뒤 며칠
동안 그런 것들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왜냐하면 그 이후 내가 느낀 활기와 기
쁨, 내 감정의 고조는 그대로 드러난 불을 오래 응시한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차
렸기 때문이다. 불을 응시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기분 좋고 풍요로워지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소라넷
내가 그때까지 본래의 삶의 목표로 가는 길에서 찾아낸 얼마 안 되는 경험들
에 이 새로운 경험이 추가되었다. 그
@p 141
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비이성적이고, 얽히고 설킨, 기이한 자연의 형
태들에 몰두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서, 이 영상을 이루어지게 한 우리 내면의 의
지와의 일치감을 낳는다.- 우리는 곧 그 일치감을 우리들 자신의 기분으로, 우리
들 자신의 창조로 여기려는 유혹을 느낀다- 우리는 우리와 자영 사이의 경계가
흔들리고, 흐려지는 것을 보고, 분위기를 알게 된다. 그 분위기 속에서 우리 망
막 위의 이 영상들이 바까ㄷ의 인상들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내면의 인상에서 비
롯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 어디에서도 이런 연습에서처럼 간단하고
쉽게 발견해낼 수 없다. 우리가 얼마나 창조자인지, 우리 영혼이 얼마나 지속적
으로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관여하는지를. 우리들 안에서 그리고 자연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오히려 똑같은 불가분의 신성이다. 바깥 세계가 몰락한다 하여도
우리들 중 하나는, 그 세계를 소라넷다시 세울 능력이 있다. 산과 강, 나무와 잎, 뿌리
와 꽃, 자연의 모든 영상이 우리들 마음속에 미리 만들어져 있어서 영혼에서 나
오기 때문이다. 영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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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될 거고. 오, 싱클레어, 네가 나를
잊지 않았다니! 날 용서할 수 있겠니?」
「데체 뭘 용서하지」
「아, 내가 그처럼 추하게 굴었잖아!」
비로소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났다. 삼사 일 전이었던가? 나에게는 그
ㄸㅒ 이후 한 평생이 지나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모든 것
을 알았다. 우리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뿐만 아니라, 왜 내가 이리로 오게
되었으며 크아우어가 여기 바깥에서 무엇을 하려했던가도.
「너 그러니까 죽으려 했구나, 크나우어?」
그가 추위와 두려움으로 몸을 덜덜 떨었다.
「그래, 그러려고 했어. 그럴 수 있었을지 없었을지는 모르겠어, 아침이 될 때
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어」
나는 그를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수직의 첫 새벽 빛이 잿빛 공중에서 말할
수 없이 차갑고 냉담하게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얼마간 뒤 그의 팔을 잡고 데리고 갔다. 나에게서 말이 나왔다. 「에제 집으로
가, 그리고 아무한테도 무슨 말 하
@P 163
지 말아! 넌 길을 잘못 들어 해맸던 거야. 그냥 길을 잘못 들었던 거라구! 그리
고 우린 네 생각처럼 돼지가 아니야. 우린 인간이야. 우린 신을 만들고 신들과
싸우지. 그러면 신들이 우리를 축복해」
말없이 더 걷다가 우리는 소라넷갈라져 갔다. 집으로 돌아오자 날이 완전히 새어 있
었다.
그 시절 성 OO시에서 내게 주어진 최고의 것으 피스토리우스와 오르간 곁에
서 혹은 벽난로 앞에 서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압락사스에 대한 그리스어 텍
스트를 함께 읽었다. 그는 나에게 베다 경들에서 번역의 부분부분들을 읽어주었
고 나에게 신성한 <옴 Om>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가르쳐주었다. 그사이 나를
내면적으로 키워준 것은 학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기분 좋았던 것은,
나 자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감이었다. 나 자신의 꿈, 생각, 예감에 대한 커가는
신뢰였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한 늘어나는 앎이었
다.
피스토리우스와 더불어 나는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을 이해했다. 나는 다만
그의 생각을 강하게 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는, 그 자신이나 혹은 그가
보내는 인사가 나에게로 온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는 그에게, 데미안에게 그랬듯
이, 그 자신이 거기 없어도 무얼 물어볼 수 있었다. 그의 모습을 집중해서 그려
보기만 하면 되었고 나의 물음들을 집중해서 그에게로 향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물음 안에 담은 모든 영혼의 힘이 대답이 되어 내 마음속으로 되돌아왔
다. 다만 내가 상상한 것은 피스토리우스라는
@p 164
인물이 아니었다. 데미안이라는 인물도 아니었다. 내가 불러야 했던 것은 내가
꿈꾸고 그린 그림, 남자면서 여자인 영상, 내 수호신의 영상이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내 꿈속에서만 살지 않았으며 종이 위에 그려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마음속에 소망의 상이 되어, 내 자신의 상승이 되어 살고 있었다.
자살 실패자 크나우어가 나와 맺게소라넷 된 관계는 특이하고 이따금씩은 코믹했다.
내가 그에게로 보내졌던 밤부터 그는 나에게 매달려 있었다. 충직한 하인이나
개처럼. 그의 삶을 나의 삶에 연결시키려 하고 맹목적으로 나를 따랐다. 더할 나
위 없이 놀라운 물음들, 소망들을 들고 그는 나에게로 왔다. 영들을 보려고 했으
며 카발라를 배웠고 내가 그런 모든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에게 단언
해도 나를 믿지 않았다. 나에게는 무슨 힘이든 다 있다고 그는 믿었다. 그러나
기이했던 것은, 자주 그가 놀랍고도 멍청한 질문들을 들고 나를 찾아오는 것이
바로 내 마음속에서 그 어떤 매듭 하나가 풀려야 할 때였다는 점과 그의 변덕스
러운 착상들과 관심사들이 나에게는 자주 화두이자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충직한 그가 종종 귀찮아 보내버리면서도, 그 또한 나에게 보내진 사람
임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준 것이 갑절이 되어 그에게서도 나와
내 마음속으로 되돌아옴을, 그 또한 나에게는 하나의 인도자이고, 하나의 길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그속에서 자신의 구원을 찾았고 또 나한테로 들고 오는
놀라운 책들과 글들은 나에게, 내가 순간에 통찰할 수 있었던
@p 165
이상의 가르침을 주었다.
이 크나우어가 나중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길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와
는 대결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와는 필요했다. 이 친구
와 함께 나는 성 OO시에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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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영원이며, 그 본질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본질은 대개 사랑하는 힘과 창조력으로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주어진다.
몇 해가 지나서야 나는 어느 책에서 이 관찰을 뒷받침할 여러 근거들을 발견
하였다. 즉 많은 사람들이 침을 뱉어 놓은 담벼락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훌륭
하고 깊이 자극을 주는지에 대해서 언젠가 이야기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축축
한 담벼락에 있는 그 얼룩들 앞에서 그는 피스토리우스
@p 142
와 내가 불 앞에서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느꼈다. 우리들이 다음번에 함께
있게 되었을 때 그 오르간 연주자는 설명했다.
“우리는 우리의 개성의 경계를 늘 너무나도 좁게 긋고 있어! 우리는 늘, 우리
가 개인적인 것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상이하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하나하나가 말이야.
그리고 우리 몸이 진화의 계보를,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훨씬 멀리까지,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일찍이 인간 영혼들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을 지니고 있지. 그리스인들이나 중국인들에게서든 아프리
카 토인들에게서든 일찍이 존재했소라넷던 모든 신과 악마, 모두가 우리들 속에 있어.
거기 있는 거야.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 인류가 멸종하고, 아무런 교육
도 받지 않았지만 상당한 재능을 지닌 어린아이 하나만 남는다면, 이 아이는 사
물들의 전체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야. 그애가 신이 되어 수호신, 낙원, 계율과
금기, 신약과 구약, 모든 것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 거야”
“좋습니다” 내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어디에 개인의 가치가 있습니
까?”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들 속에서 이미 완성된 상태로 가지고 있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죽는 거지요?“
“그만” 페스토리우스가 격하게 외쳤다. “세계를 그냥 자기 속에 지니고 있
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기도 하느냐, 이게 큰 차이지. 미친 사람이 플라톤을 연상
시키는 생각을
@p 143
내놓을 수 있고, 헤른후트파 학교의 신앙심 깊은 조그만 학생이 영지파나 조
로아스터에서 나타나는 심오한 신화적 연관을 창조적으로 숙고할 수도 있어. 그
러나 그들은 세계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몰라. 한그루 나무거나 돌인 거지.
기껏해야 동물이고. 그 사실을 모르는 한에서는 말이야. 그러나 이런 인식의 첫
불꽃이 희미하게 밝혀질 때, 그때 그는 인간이 되지. 자네는 그렇다고 모두를,
저기 거리를 걸어다니는 두 발 달린 것 모두를, 그들이 똑바로 걷고 새끼를 아
홉 달 뱃속에 품고 있다고 해서 인간이라고 여기지는 않겠지?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고기거나 양, 버러지거나 거머리인줄은 아시겠지. 얼마나 많은 사
람들이 개미들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별들인지! 자아, 그들 하나하나 속에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지. 그러나 각자소라넷가 그 가능성들을 예감함으로써, 부분적으
로는 심지어 그것들을 의식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그 가능성들은 자기 것
이 되는 거라네”
우리의 대화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대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 전적으로 놀
라운 것이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모두가, 가장 진부한 대화도, 나직하고
꾸준한 망치질로 내 마음속의 한 점을 계속 두드렸다. 모든 대화가, 나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모든 대화가 내 허물을 벗는 일에, 알 껍데기를 부수는 일에 도
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화 하나하나에서 짓부수어진 세계의 껍데기를 뚫
고 마침내 나의 노란색 새가 머리를 조금 더 높이, 조금더 자유롭게 쳐들어, 그
아름다운 맹금의 머리를 불쑥 내미는 것이
@p 144
었다.
빈번히 우리들은 서로의 꿈을 이야기했다. 피스토리우스는 꿈 풀이를 할 줄
알았다. 놀라운 예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날 수 있는 꿈을 꾸었
다.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어느정도 큰 도약으로 대기를 가르고 내던져
졌다. 이 비상의 느낌은 기운을 복돋우는 것이었으나, 내가 의지도 없이 위태로
운 고공을 홱홱 날게 되자 그것은 곧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러나 호흡을 멈추었
다가 한꺼번에 힘껏 토하는 식으로 나의 상승과 하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구원
같은 발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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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학생 시절이 끝나갈 무렵에 또 한번 특이한 체
험을 했다.
악의 없는 인간도 살면서 한 번쯤 혹은 몇 번은 경건과 감사라는 아름다운 도
덕과 갈등에 빠지는 일을 겪게 마련이다. 누구든 한 번은 자신을 아버지로부터,
스승들로부터 갈라놓는 걸음을 떼어야 한다. 누구든 고독의 혹독함을 조금은 느
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잘 견딜 수 없어 다시 밑으로 기어든다 하더
라도. 내 부모님들과 그들의 세계, 내 유년의 <환한> 세계로부터, 격렬한 싸움
속에서 결별하지 안혹 천천히 거의 눈에 뜨이지 않게 그들로부터 멀어지고 낯설
어졌다. 마음이 안됐었다. 그래서 고향을 찾아 갈 때면 자주 씁슬한 시간들이 있
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속까지 가지는 않았다. 견딜 만했다.
그러나 우리가 습관에서가 아니라 지극히 고유한 욕구에서 사랑과 경의를 표
했던 곳, 우리가 더없이 진정으로 사도이자 친구였던 거기-바로 그곳에 씁쓸하
고 무서운 순간이 온다. 우리들 마음속의 소라넷이끌어가는 물결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부터 멀러져 가려함을 갑자기 알아차렸다는 생각이 들 때 말이다. 거기서는 친
구이자 스승을 거부하는 생각 하나하나가 독침으로 우리 자신의 심장을 찌른다.
거기서는 방어의 타격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의 얼굴에 적중한
@P 166
다. 거기서는 유효한 도덕 하나를 자신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
에게 <충직하지 못함>과 <배은망덕>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치욕적인 기억과
낙인처럼. 놀란 가슴이 거기서는 두려움에 차 유년의 미덕들이 있는 아늑한 골
짜기로 도망쳐 돌아가며 이런 결렬이 이루어지고, 이런 끈도 끊어져 버려야 한
다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내 마음속에서는 느낌 하나가, 내친구 피스토리우스를
그렇게 절대적으로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에 저항했다. 내 청년 시절 극히 중요
한 몇 달 동안 내가 체험했던 것은 그와의 우정이었고 그의 충고, 그의위로, 그
의 친근함이었다. 그를 통해 신이 나에게 말했다. 그의 입으로부터 내 꿈들이 나
에게로 되돌아왔다. 밝혀지고 해석되어서, 그는 나에게 나 자신에게로 가는 용기
를 선사했다. 아, 그런데 이제 서서히 자라가면서 나는 그에 대한 저항을 감지한
것이다. 이제 들으니 그의 말에는 지나치게 많은 가르침이 담겼고, 그가 완전히
이해하는 건 나의 한 부분뿐이라고 느껴졌다.
우리들 사이에 다툼은 없었다. 요란한 장면도 없었다. 결론도, 청산조차도 없
었다. 나는 그에게 다만 단 한마디의, 사실은 무해한 말을 했다. 그러나 그 해롭
지 않은 한마디가 던져진 바로 그 순간 우리들 사이에 있었던 환상이 색색깔 조
각으로 깨어져 흩어졌다.
어떤 예감이 이미 한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것이 분명한 느낌으로 구
체화된 것은 어느 일요일 그의 낡은 서재에서 였다. 우리들은 불 앞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그는
@P 167
비밀 의식과 종교 형태들을 이야기했다. 그런 것들을 그는 연구하고 명상하며,
그 가능한 미래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인생을 결정
할 만큼 중요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기이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에게는
그저 현학적인 과시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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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는 말했다. “자네를 날게 만든 도약, 그것은 누구
나 가지고 있는 우리 위대한 인류의 재삼이지. 그것은 모든 힘의 뿌리와 연결되
어 있다는 느낌이지. 그러나 그러면서도 곧 두려워져! 그것은 빌어먹게 위험하
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듯 차라리 날기를 포기하고 법 규정에 따라
인도 위를 걷는 쪽을 택하지. 그런데 자네는 아니야. 자네는 계속 날고 있어. 유
능한 젊은이에게 합당한소라넷 대로 말이야. 그리고 보게. 자네는 놀라운 것을 발견하
네. 자네가 점차 그 주인이 된다는 것을 말이야. 자네를 계속 낚아채 가는 커다
랗고 알 수 없는 보편적인 힘에다가 하나의 섬세하고 작은 자신의 힘이 더해지
는 것을 발견하네. 하나의 기관, 하나의 방향키 말일세! 이건 대단한 거야. 그것
이 없다면 그냥 공중에 떠 있을 테지. 미친 사람들이 그렇듯 말이야. 자네에게는
인도를 걸어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보다 더 깊은 예감이 주
@p 145
어졌어. 그러나 거기에 맞는 열쇠와 방향 키가 없어. 바닥 없는 곳으로 솨악
빨려들고 있지. 그러나 자네는 말이야, 싱클레어, 자네는 그 일을 하고 있어! 그
런데 어떻게냐구? 그건 자네가 아직 전혀 모르겠지. 자네는 그것을 새로운 기관,
즉 하나의 호흡조절기를 가지고 하고 있어. 이제 자네의 영혼이 근본에 있어서
얼마나 (개인적) 이지 못한가를 알 수 있을 거야, 이런 조절기를 고안해 낸 게
자네의 영혼은 아니니까 말이야. 조절기란 새로운 게 아니야! 그것은 일종의 차
용이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하는 거야. 그것은 물고기의 평형 기관- 부레지. 실
제로 부레가 동시에 허파여서 상황에 따라서는 정말로 숨 쉬는데 부레를 이용하
는, 진화가 덜 된 희귀한 물고기 몇몇 종류가 오늘날에도 있지. 그러니까 자네가
꿈에서 날 때 비행용 기포로 사용한 허파와 한 치도 안 틀리고 똑같이 말이야!

그는 나에게 동물학 책가지 한 권 가져와 그 진화가 덜 된 물고기들의 이름과
도판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한 가닥 특이한 전율을 느끼며 진화의 초
기 단계에서 나온 기능 하나를 생생하게 느꼈다.
@p 146

야곱의 싸움소라넷

특이한 음악가 피스토리우스로부터 압락사스에 대하여 들은 것을 짧게 다시
들려줄 수 없지만 그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 위의
또 한 걸음이었다. 나는 당시에 열여덟 살의 평범치 않은 젊은이였다. 수백가지
일에 조숙하고, 다른 수백가지 일에서 몹시 뒤처지고 무력했다. 때때로 다른 사
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자주 우쭐하고 교만했으나, 또 꼭 그만큼 자주 의기소
침하고 굴욕스러워했다. 어떤 때는 자신을 천재로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절반쯤 돌았다고 생각했다. 또래들의 기쁨과 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 잘 되질 않
았고, 자주 비난과 근심으로 자신을 소모했다. 마치 내가 절망적으로 그들로부터
떨어져 있기라도 하듯이, 마치 내게 삶이 닫혀져
@p 147
있기라도 하듯이.
그 자신이 성숙한 괴짜였던 피스토리우스는 내게 용기와 스스로에 대한 존경
을 간직하는 법을 가르쳤다. 내가 한 말들, 내가 꾼 꿈들, 나의 환상과 생각에서
늘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언제나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논평하면서 그는 나에게 예를 제시했다.
그가 말했다. “나에게 이야기 했었지.소라넷 음악을 사랑하는 건, 음악이 도덕적이
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야 아무래도 괜찮은 일이지. 하지만 자네 자신이 도덕주
의자가 아니기도 해야지!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돼, 자연이 자네를 박쥐로
만들어 놓았다면, 자신을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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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 말들고 해서는 안 돼. 더러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지. 그런
나무람을 그만두어야 하네. 불을 들여다보게.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
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물질랑 말
도록.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님 혹은 그 어떤 하느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
야. 그런 물음이 자신을 망치는 거야. 그런 물음들 때문에 인도로 올라서는 것이
며 화석이 되어가는 거지.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압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도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압락사
스는 자네 생각 그 어느 것에도, 자네 꿈 그 어느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결코 잊지 말게. 하지만 자네가 언젠가 나무랄 데 없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
렸을 때, 그때는
@p 148
압락사스가 자네를 떠나, 그때는, 자신의 사상을 담아 끓일 새로운 냄비를 찾아
그가 자네를 떠나는 거라네』
내 모든 꿈들 가운데서 저 어두운 사랑의 꿈이 가장 끈질기게 이어지는 꿈이
었다. 자주, 자주 나는 그 꿈을 꾸었다. 문장의 새 밑으로 해서 오래된 우리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를 포옹하려 했는데, 어머니 대신 키 크고, 절반은 남자
이고 절반은 어머니인 여자를 안는 것이었다. 그녀가 무서웠는데도 불타는 욕망
이 나를 그녀에게로 끌었다. 그런데 이 꿈은 내 친구에게 결코 이야기해 줄 수
없었다. 다른 모든 것을 그소라넷에게 열어보이고 나서도 이 꿈만은 간직해 두었다. 그
것은 나만의 모퉁이, 나의 비밀, 피난처였다.
마음이 짓눌릴 때면 피스토리우스에게 전에 들었던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
를 연주해 달라고 청했다. 그럴 때면 어두운 저녁 교회 안에서 나는 그 자체에
몰두하고, 그 자체에 귀기울이는 이 기이하고, 내밀한 음악에 몰입하여 앉아 있
었다. 그 음악은 번번이 기분 좋았고 나로 하여금 더욱더 영혼의 목소리들을 인
정할 준비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때로 우리는 오르간 소리가 잦아들고 나서도 한동안을 그대로 교회에 앉아 희
미한 빛이 뾰족한 아치형의 높은 창문을 통하여 비쳐들다가 가물가물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습게 들리겠지」 피스토리우스가 말했다. 「내가 한때 신학도였고 신부까
지 될 뻔했다는 게 말이야. 그러나 내가 당시에 저지른 것은 형식상의 오류였을
뿐이야. 사제라는
@p 149
것, 그건 아직도 내 직업이자 목표지. 다만 난 너무 일찍 만족했고 나를 마음대
로 쓰시도록 여호와에 맡겼지. 압락사스를 알기 전이었어. 아, 어느 종교든 좋아.
종교는 영혼이야. 기독교적 성찬을 들든지 메카로 순례를 가든지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사실 사제가 되실 수도 있었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아니, 싱클레어, 아니야. 난 거짓말을 해야만 했어. 우리의 종교는 마치 그것
이 종교가 아닌 것처럼 훈련을 받아. 종교가 인간 오성의 산물인 듯 취급되지.
카톨릭은 급하면 아쉬운 대로 괜찮을지도 몰라. 하지만 신교 목사, 아니! 진짜
신자들, 그런 사람들 몇을 내가 알고 소라넷있는데, 그들은 성경의 자자구구에 매달리
지. 그 사람들한테 그리스도는 나에게 그냥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영웅, 하나의
신화라고, 엄청난 그림자상이라고 말할 수 없어. 그 그림자 안에서 인류는 스스
로의 모습이 영원의 벽에 그려진 것을 보는데 말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똑똑
한 말 한마디를 들으려, 의무 하나를 완수하러, 아무것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등
등의 이유로 교회에 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내가 무얼 말할 수 있었을까? 그들
을 개종시켜
야 하나? 하지만 그건 전혀 내 뜻이 아니야. 사제란 개종시키려 하지 않아. 다
만 신자들 가운데서, 자기 비슷한 사람들 안에서 살려고 하지. 그리고 그것에서
우리가 우리들의 신을 만들어내는 그 감정의 보유자이자 표현이고자 하는 거야

거기서 그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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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에는 이전 세계들의 폐허를 뒤지는 고달픈
탐색의 소리가 거기서 들려왔다. 그리하여 문득 나는 이 모든 방식, 이런 신화
예배, 전승된 신앙소라넷 형식을 모자이크처럼 짜맞추는 유희에 대한 거부감이 느껴졌
다.
「피스트리우스」 내가 갑자기 말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악의가 담겨 있었
다. 「제게 다시 한 번 꿈 이야기를 들려주셔야겠어요. 밤에 꾸신 진짜 꿈 이야
기를요. 지금 말씀하시는 것, 그건 참 빌어먹게 골동품 냄새가 나네요!」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그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 자신도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번개같이, 내가 그에게로 쏘아버렸고, 그의 심장을 맞춘 화살이
그 자신의 무기고에서 꺼낸 것이었음을 수치와 충격으로 느꼈다. 그가 냉소적
음색으로 이따금씩 내뱉던 자기 비난의 어휘들을, 이제 악랄하게도 내가 그에게
한껏 극단화된 형태로 던졌던 것이다.
그도 그것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즉시 잠잠해졌다. 마음속으로 두려움
을 느끼며 그를 보고 있자니, 그는 무섭게 창백해지는 것이었다.
길고 무거운 침묵 후에 그가 새 장작을 불 위에 얹었고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
했다. 「자네가 전적으로 옳아, 싱클
@P 168
레어. 자네는 영리한 친구야. 나는 골동품으로 자네를 지켜주려는 걸세」
그는 매우 침착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가 입은 상쳐의 고통을 잘 느낄 수 있
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진심으로 그에게로 향하고 싶었다. 그에게 용서를 빌
고 싶었다. 그에게 나의 사랑, 나의 애정어린 감사를 확인해 주고 싶었다. 감동
적인 말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엎드려 불을 들여다
보며 말이 없었다. 그도 말이 없소라넷었다. 그렇게 우리는 누워 있었고 불은 타내려가
다 꺼졌다. 탁탁 튀기며 꺼지는 불꽃 하나와 함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름
다움과 친밀함도 다 타서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제 말을 잘못 이해사셨을까봐 두렵습니다」 내가 마침내 몹시 풀이 죽어 건
조하고 쉰 목표리로 말했다. 마치 신문연재 소설하울 둘오 냐숩알
「난 자네 말을 정확히 히해했네」피스토리우스가 나직이 말했다. 「자네가
옳아」 조금 뜸을 들인 다음 그는 천천히 계속했다.「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맞서 옳을 수 있는 바로 그만큼 말일세」
아니, 아니, 나는 마음으로 외쳤다. 제가 틀렸어요!라고. 그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단 한 마디 보잘것 없는 말로써 그의 본질적인 약점, 그의 괴로
움과 상처를 가리켜 보였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가 자신을 불신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그 점을 내가 건드렸던 것이다.
@P 169
그의 이상에서는 <골동품 냄새가 났다>. 그는 과거를 향한 구도자였다. 그는 낭
만주의자였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느끼게 되었다. 피스토리우스는, 그가 나에게
준 것을 그 자신에게는 줄 수 없었으며 내 눈에 비쳤던 그의 모습도 그의 실체
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는 길잡이인 자신도 넘어서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길
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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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그가 말을 뚝 끊었다. 그러더니 다시 계속했다.
@p 150
「우리가 지금 압락사스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우리의 새로운 신앙은 좋은 거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것이라네. 그러나 그는 아직 젖먹이지! 아직 날개가
돋아나지 않았어. 아, 외로운 종교, 그건 아직 진정한 종교가 아니야. 그것은 공
동의 것이 되어야 해. 예배와 도취, 축제와 비밀의식을 가져야 해………」
그는 생각하며 자신에 침잠했다.
「비밀 의식이라면야 혼자서도 혹은 아주 작은 범위 안에서도 행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내가 망설이며 물었다.
「할 수야 있지」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벌써 오래 그렇게 해오고 있
어. 예배를 드렸지. 만약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걸로 여러 해를 교도소에 박혀
있어야 할지도 모를 예배지. 알고 있어. 이 예배는 아직은 옳은 것이 아니야」
갑자기 그가 내 어깨를 쳤다. 나는 움칫 몸을 오그렸다. 「이봐」 그가 집요하
게 말했다. 「자네도 비밀 의식을 가지고 있군. 자네는 틀림없이 나한테 이야기
하지 않은 꿈을 꿀 게야. 알 생각은 없네. 그러나 말해 두겠는데, 그것을, 그 꿈
들을 그대소라넷로 살게, 그것을 유희하게, 그것에 제단을 세워주게! 그것은 아직 완전
하진 않지만, 하나의 길이야. 우리가, 자네와 나, 그리고 몇몇 다른 사람들이, 세
계를 한번 새롭게 개혁하게 될지 못하게 될지 그거냐 두고 봐야지. 그러나 저
안쪽 우리들 마음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
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걸 생각해 보게! 자넨 열여덟 살이네, 싱클레어.
길거리 창녀한테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사랑의 꿈, 사
@p 150
랑의 소망을 가져야 하네. 어쩌면 그 꿈들은, 자네가 무서워ㄴ하는 그런 것이겠
지. 무서워하지 말게! 그것들은 자네가 지닌 최상의 것이야. 나를 믿어도 되제.
나는 꿈을 많이 잃어버렸어. 자네 나이에 사랑의 꿈들을 능욕했지. 그래서는 안
되는데. 압락사스를 알면,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돼. 아무것도 무서워해선 안 되
고 영혼이 우리들 마음속에서 소망하는 그 무엇도 금지되었다고 해서는 안 되지

놀라서 나는 이의를 말했다. 「그러나 생각나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는 없잖아요! 어떤 사람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죽여서는 안 되잖아요」
그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상황에 따라서는 죽여도 돼. 다만 죽이는 건 대체로 오류지. 생각을 스쳐간
모든 것을 그냥 행동소라넷으로 옮기라는게 아닐세. 다만 좋은 뜻을 가진 착상들을 몰
아내고 그걸 이리저리 도덕화해서 해롭게 만들지 말라는 걸세.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대신 장엄한 사상의 잔으로 술을 마시면서 치르는 희
생의 비밀 의식을 생각할 수 있지. 그런 것도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거든. 다시
한 번 무엇인가 정말 근사한 생각 혹은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누군가를 죽이거나 그 어떤 어마어마한 불결한 짓을 저지르고 싶거든, 한순간
생각하게. 그렇게 자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은 압락사스라는 것을! 자
네가 죽이고 싶어하는 인간은 결코 아무아무게 씨가 아
@p 151
랑의 소망을 가져야 하네. 어쩌면 그 꿈들은, 자네가 무서워하는 그런 것이겠
지. 무서워하지 말게! 그것들은 자네가 지닌 최상의 것이야. 나를 믿어도 되네.
나는 꿈을 많이 잃어버렸어. 자네 아니에 사랑의 꿈들을 능욕했지. 그래서는 안
되는데. 압락사스를 알면,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돼. 아무것도 무서워해선 안 되
고 영혼이 우리들 마음속에서 소망하는 그 무엇도 금지되었다고 해서는 안 되지

놀라서 나는 이의를 말했다. 「그러나 생각나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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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그냥 행동으로 옮기라는게 아닐세. 다만 좋은 뜻을 가진 착상들을 몰
아내고 그걸 이리저리 도덕화해서 해롭게 만들지 말라는 걸세.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대신 장엄한 사상의 잔으로 술을 마시면서 치르는 희
생의 비밀 의식을 생각할 수 있지. 그런 행위 없이도, 자신의 충동과 유혹을 존
경과 사랑으로써 다룰 수 있어. 그러면 그것들이 그 의미를 내보이지. 그런 행위
없이도, 자신의 충동과 유혹을 존경고 사랑으로써 다룰 수 있어. 그러면 그것들
이 그 의미를 내보이지.그런 것도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거든. 다신 한 번 무엇
인가 정말 근사한 생각 혹은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누군가를 죽
이거나 그 어떤 어마어마한 불결한 짓을 저지르고 싶거든, 한순간 생각하게. 그
렇게 자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은 압락사스라는 것을! 자네가 죽이고
싶어하는 인간은 결코 아무아무개 씨가 아
@p 152 소라넷
닐세. 그 사람은 분명 하나의 위장에 불과할 뿐이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
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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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기 시작했다. 앗시시에서 내가
하숙하던 집 부인은 채소가게를 하는소라넷 수다스럽고 신앙이 깊은 부인으로서
성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몇 번 들려 준 것이 인연이되어 나와 친교를 맺게
되었는데, 내가 엄격한 카톨릭 교도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렸다. 이런
명예는 내게 적합하지 않았으나, 그로 말미암아 그들이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갖게 되는 이교도라는 의심을 받지 않고 친하게 교제할 수
있는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부인은 아눈치아타 나르디니라고 하는데
체구가 무섭게 큰 34세의 예절바른 미망인이소라넷었다. 그녀는 일요일이면
꽃무늬가 있는 화려한 빛깔의 옷을 입어 꼭 축제일 같았다. 그리고
귀걸이 외에 가슴에는 금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금줄에는 금으로
만든 납작한 메달이 죽 결려 있어 소리를 내며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은줄로 장식한 무거운 기도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가 읽기에는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또 은줄이 붙은 아름다운 흑백의 염주도 가지고
다녔는데 그것은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 이런 날 그녀가 두번째 교회에
가려는 틈을 타서 난간에 걸터앉아 감동하며 듣고 있는 마을 부인들에게,
오늘 나오지 않은 부인들의 죄를 늘어놓을 때의 그녀의 신앙심이 깃든
둥근 얼굴에는 하느님과 융합된 영혼의 표정이 떠도는 것이었다.
이 지방 사람들은 내 이름의 발음을 못했기 때문에 나는 다만 시니올
피에트로라고 불리었다. 화창하게 개인 저녁에는 우리들은 이웃 사람들과
어린이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작은 정자에 모여 앉거나 혹은 상점의 과일,
채소 바구니나 씨앗 상자 그리고 줄줄이 매달아 놓은 소시지 사이에
앉아서 서로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수확의 예상의 말하기도
했으며, 여송연을 피우거나 메론을 한 조각씩 받아 빨기도 하였다.
나는 성 프란시스의 일, 포르티운쿨라와 그 교회의 이야기, 성 클라라의
이야기 그리고 초기 수도사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열심히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잡다한 질문을 하며 성 프란시스를
칭찬하든가 또는 최근에 일어난 신기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토론도 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것은 도둑에 관한 이야기나 정치적
투쟁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들 주위에는 어린이들이나 고양이나 작은
개들과 함께 장난을 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놀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의 기쁨과 나에 대한 호평을 유지하려고 『성도전』중에서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두루두루 찾아내었다. 그리고 몇 권의 다른 책과
아놀드의 『제교부 및 제성도전』을 가지고 온 것을 기뻐하였다. 나는 이
책의 성실한 일화를 조금씩 변경시켜 통속적인 이탈리아어로 번역하여
말해 주었다. 그러면 길가던 사람들도 잠시 발을 멈추고 같이
떠들어대며, 종종 하룻밤에 3∼4회 가량 사람들은 바뀌어도 나르디니
부인과 나는 언제나 끝까지 남아 있어 빠지는 법이 없었다. 나는
그때마다 내 옆에 붉은 포도주병을 놓고 마시곤 했었으므로 영세민생활을
하는 그들은 놀라서 존경하는 마음을 품었다. 근처의 수줍어하는
처녀들도 점점 친밀감을 드러내며 이야기에 가담하여 내가 주는 그림책을
즐겁게 받게 되었고, 나의 경건심을 믿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쓸데없는
농담도 하지 않으며, 대체로 그들이 신용을 얻으려고 일부러 꾸미는 빛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페루지노의 그림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눈이 크고
몽상적인 미소녀들도 몇 명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다 맘에 들었고
사심없는 장난을 치는 그들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소녀들은 서로 하나같이 비슷하여 그들의 미는 언제나
종족적이고 개성적인 미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중 어느 아가씨와도
사랑에 빠진 일은 없었다. 마테오 스피넬리라는 빵집 아들도 종종
나타났는데, 그놈은 영악하고 재미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동물
흉내를 낼 줄 알았으며, 또 온갖 추문을 잘 알고 있었고, 대담하고, 또한
짓궂은 짓을 잘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내가 『성도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는 아주 경건하고 겸손하게 듣고있다가 나중에 가서 소박하지만
질 나쁜 질문을 해 비교하고 억측을 하여 성자들을 조롱하는데서 채소가게
부인을 놀라게 하였고,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말할 수 없이 즐겁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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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나는 혼자서 나르디니 부인의 상점에 앉아 그녀의 교훈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그녀의 인정스런 말을 듣고 인간적인 기쁨을 가졌었다.
주위 사람들의 어떤 과오나 죄도 그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의 연옥의 좌석까지 미리 정확하게 사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여 아무리 작은 체험이나 관찰이라도
감추지 않고 자세히 털어 놓았다. 내가 작은 물건이라도 무엇을 사면
뒤에 꼭 값을 묻고 내가 속지 않도록 주의를 시켰다. 내가 그녀에게
『성도전』을 가르쳐 주는 대신에 그녀는 내게 과일을 사고 채소를 고르고
부엌에 익숙해지는 비결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밤 우리들은 무너져가는 큰 정자 안에 앉아 있었다. 내가
스위스의 민요를 부르고 알프스의 목가를 불렀더니, 소년소녀들은 미칠
듯이 좋아하였다. 그들은 좋아서 몸을 꼬며 외국말을 흉내내고, 또한
내가 알프스의 목가를 부를 때에 어떻게 나의 목천도가 아래위로 우습게
움직이는가를 흉내내어 보여 주었다. 그때에 누군가가 사랑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소녀들이 킥킥웃으니까 나르디니 부인은 화가 나서
눈을 하얗게 뜨고 감상적인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결국 나로 하여금 내
사랑의 이야기를 하도록 나를 졸라댔다. 나는 엘리자베트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아그리에티와의 뱃놀이와 실패로 끝난 내 사랑의 고백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는 리하르트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남국적인 좁은 들길과 붉은 금빛 황혼이 덮여 있는
움브리아의 언덕을 마주 바라보면서, 호기심에 찬 움브리아 지방의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말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달리
생각 안하고 오래된 단편소설을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는 나의 심정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듣다가 웃고
조롱하지나 않을까 하고 몰래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 모든 사람들의 눈은 동정하듯 슬프게
나를 바라다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신데두--.
소녀들 중의 하나가 감격하여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신데 실연을 하셨다니!
나르디니 부인은 부드럽고 통통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나의 머리털을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가엾어라!
또다른 한 소녀는 나에게 큰 배를 주었다. 먼저 한 입 먹고 달라고
하였더니 그렇게 하고 나서 정색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소녀들에게도 한 입씩 베어물게 하려고 했더니 그 소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안 돼요, 그냥 잡수세요! 당신께 드린 거예요. 불행한 이야기를 해
주셨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은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계시겠죠?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포도지배인이 말했다.
아니오.
그럼, 아직도 그 몹쓸 에르미니아를 사랑하고 계십니까?
나는 지금 성 프란시스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내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들도, 페루지아
사람들도, 또한 여기 있는 이 어린이들도, 에르미니아의 애인까지도.
그러나 나르디니 부인이 내가 언제까지나 이곳에 남아서 자기와
결혼했으면 하는 절실한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이
평화스럽고 목가적인 생활에 어떤 혼란과 위험을 느끼게 되었다. 이
조그마한 사건은 나를 능력있고 꾀많은 외교가로 만들었다. 그것은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좋은 우정을 유지한 채 그녀의 이 꿈을 깨뜨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고향으로 돌아갈
일도 생각해야 했다. 미래의 문학에 대한 꿈과 절박한 금전의 곤란이
없었다면 나는 그대로 거기에 남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금전의
곤란은 나로 하여금 나르디니 부인과 결혼을 하게 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아직 가시지 않은 엘리자베트로 인한
비통과 그녀를 다시 만나려는 갈망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통통하게 살찐 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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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피스토리우스가 가장 은밀한 부분에서 나를 그토록 깊이 명중시키는 말을 나
한테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특별하게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이 위로가, 내가 여러 해전부
터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데미안의 말과 울림이 같다는 사실이었다. 피스토리우
스와 데미안은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둘이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한
것이다.
피우토리우스가 나직이 말했다.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
는 것과 똑같은 사물들이지. 우리가 우리들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
란 없어.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사는 거지. 그
들은 바깥에 있는 물상들만 현실로 생각해서 마음속에 있는 그들 자신의 세계가
전혀 발언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댜. 그러면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한
번 다른 것을 알면, 그때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겠다는 선택이
란 없어져 버리지.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쉬워. 우리들의 길은
어렵고. 우리 함께 가보세」
며칠 뒤, 두 차례 그를 기다렸으나 허탕을 친 다음, 저녁 늦게 길거리에서 그
를 마주치게 되었다. 추운 밤 바람
@p 153
속에서 그는 외롭게 모퉁이를 돌아 바람에 불려왔다. 비틀거리며 완전히 취해서.
나는 그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나를 보지 못한 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어두운 외침을 따르고 있기라도 하듯 이글이
글 타는 외로워진 눈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한 거리쯤 그를 뒤따라갔
다. 그는 마치 보이지 않는 철사 줄에 매여 당겨지는 듯 끌려갔다. 열광적으로
그렇지만 흐트러진 걸음걸이로 마치 유령처럼. 슬퍼져서 나는 집으로, 구제받지
못한 나의 꿈들에게로 돌아왔다.
「저렇게 그는 이제 자기 속의 세계를 새롭게 하고 있구나!」 나는 생각했으
며 또한 같은 순간에 그것은 저열하며 도독적인 발상이라고 느꼈다. 그의 꿈에
대해 내가 무얼안단 말인가? 그는 어쩌면 그렇게 술에 취해서, 불안에 휩싸인
나보다 오히려 더 안전한 길을 갔을 것이다.
수업 시간 사이 쉬는 시간에 이따금씩, 내가 한 번도 주의한 적 없었던 급우
하나가 내 가까이 오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 눈에 뜨였다. 작고, 허약해 보이는
가냘픈 젊은이로 붉은 빛 도는 숱 적은 머리에 행동에는 무언가 나름의 것이 있
는 친구였다. 어느 저녁, 내가 집으로 갈 때 그가 골목길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자기를 지나쳐 가게 놔두더니, 그 다음에는 다시 뒤쫓아와서 우리 집 현관
문 앞에 서서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너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니?」내가 물었더니 그는 수줍게 말했다.
@p 154
「너하고 그냥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어. 몇 걸음만 함께 걷자」
나는 그를 따라 걸었는데, 그가 몹시 상기되고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넌 심령술 하니?」그가 난데없이 불쑥 물었다.
「아니야, 크나우어」내가 웃으며 말했다. 「전혀 아니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럼 접신론 하니?」
「그것도 아니야」
「아, 그렇게 숨기지 마! 너한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느끼고 있어. 넌 그것을 눈에 담고 있어. 네가 영들과 교류한다는 걸 확실하
게 믿어. 호기심에서 묻는 게 아니야, 싱클레어. 아니야! 나 자신이 구도자이거
든. 그리고 난 너무도 외로워」
「이야기해 봐!」내가 그를 격려하였다. 「난 영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내 꿈속에서 살고 있어. 그걸 네가 감지했구나. 다른 사람들도 꿈속에서 살아.
그러나 자기자신의 꿈속이 아니야. 그게 차이지」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애가 나직이 말했다. 「어떤 종류의 꿈
속에서 살고 있느냐 그것만 문제라는 거지. 백주술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니?」
나는 아니라고 해야 했다.
「그건,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더라. 죽지 않을 수 있고 요
술도 할 수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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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신이나 아실 일! 나는 전혀 나쁜 뜻이
아니었고 파국의 예감도 없었다.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에도 무엇을 말하고 있
는 것인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를 입 밖에 내어버린 것이었다. 약
간 위트 있고 약간 악의 있는 소소한 착상 하나에 굴복해 버린 것이었다. 그것
이 운명이 되었버렸다. 나는 부주의한 작은 횡포를 저질렀는데 그에게는 그것이
심판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얼마나 간절히 소망했던가. 그가 화를 냈으면 하고, 그가 자신을
방어하고 나한테 소리쳐주었으면! 하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
을 내가 한 게 틀림없었다. 내 마음속에서 스스로 한 게 틀림없었다. 만약 할 수
만 있었더라면 그는 미소지었으리라. 그가 그럴 수 없었다는 것, 거기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심한 타격을 그에게 주었는지 가장 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피스토리우스가 주제넘고 배은망덕한 제자의 공격을 그렇게 소리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침묵하고 내가 옳다고 인정함으로써, 그가 나의 말을 운명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는 내가 나 스스로를 미워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나
@p 170
의 경솔함을 천배 더 크게 만들었다. 때리려 달려들었을때 나는 방어력 있는 강
한 사람을 쳤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맡은 사람은 인고하고 고요한 인간, 말없
이 항복하는 무방비한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 우리는 다 타버린 불 앞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불 속에서는 타
오르는 모습 하나하나, 구부러져 들어가는 막대 모양의 재 하나하나가 나에게
행복하고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시간들을 기억 속에 불러왔고 피스토리우스에게
내가 진 빛더미를 점점 더 크게 쌓아올렸다. 마침내 나는 더 견디지 못했다. 일
어서서 나왔다. 오래 나는 서 있었다. 그 집 문 앞에, 어두운 계단 위에, 집 바깥
에서, 그가 혹시 와서 나를 따라오지나 않을까 한동안 더 기다리며. 그 다음에는
계속 걸었다. 몇 시간이고 시내와 교외, 공원과 숲을 돌아다녔다. 저녁까지. 그리
고 당시에 나는 처음으로 내 이마에 찍힌 카인의 표지를 느꼈다.
하지만 서서히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생각은 모두가 나 자신을 비난하
고 피스토리우스를 옹호하려는 뜻뿐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 반대로 끝나버
렸다. 수천 번이나 나는, 나의 경솔했던 말을 후회했고 다시 거두어 담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비로소 피스토리우스가 이해되
었다. 그의 모든 꿈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이런 꿈이었다. 사제가 되어 새로운
종교를 알리는 꿈, 찬양, 사랑과 예배의 새로운 형식을 주고 새로운 상징들을 세
우려는 꿈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의 직분이 아니
었다. 그는 너무
@p 171
도 편안하게 이미 존재하는 것 속에 머물렀다. 그는 너무도 정확하게 예전의 것
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집트에 대해, 인도에 대해, 미트라스에 대해, 압락사스에
대해 너무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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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취리히 시대에 리하르트는
나에게 느림뱅이 페트루스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었다.) 몇 주일
기다리면서 한쪽 혹은 자칫하면 양쪽의 우정을 잃지 않을까 하고 항상
걱정하였다.
이러한 친밀하지 못한 관계에서 생기는 불쾌함으로 인해 난 다시
술집으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굉장히 불쾌한 사건으로 더욱
분개하여 나는 어느 작은 버트런드 술집으로 가서 이 불쾌한 기분을 씻어
버리려고 몇 릿트르의 술을 들이켰다. 2년 이래 처음으로 나는 꼿꼿이
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데 힘이 들었다. 그 이튿날은 폭음 후에 늘
그랬듯이 기분이 가라앉고 좋아져서 용기를 내어 이 희극을 끝맺기 위해
목수를 찾아갔다. 나는 그에게 보피를 내게 맡기라고 제의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며칠 생각한 후에 쾌히
승낙하였다.
그후 곧 나는 가련한 곱사등이를 데리고 새로 빌린 집으로 이사를 갔다.
지금까지 독신생활을 하던 방에 정식으로 두 사람이 작은 살림을 하게
되니 나는 마치 결혼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살림살이의
실수로 좋지 않았으나, 그럭저럭 잘 해나갔다. 청소와 빨래는 일하는
여자아이가 와서 해 주었고, 식사는 집으로 날라다 먹으면서 우리는 곧
공동생활에서 아주 따듯하게 잘 지냈다. 이제부터는 마음놓고 하던
가깝고 먼 모든 여행을 단념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당장은 염려되지
않았다. 일을 할 때에도 오히려 그가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마음을
가라앉게 하며, 일도 촉진시켜 준다는 것을 느꼈다. 환자를 돌보는 것은
나로선 처음하는 일이라 옷을 벗기고 입히는 일들이 처음에는 귀찮았으나,
보피가 잘 참고 고마워하는 데서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를
세심히 돌보아 주는 데 힘썼다.
그 교수집에는 별로 가지 못했으나 엘리자베트의 집에는 여러 가지 다른
사정이 있더라도 항상 매력에 이끌려 자주 갔다. 그럴 때 나는 거기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포도주를 한 잔씩 마시며 그녀가 주부노릇을 하는
것을 구경하며, 때때로 조소하는 마음으로 마음속에 일어나는
베르테르적인 감정과 싸워야 할 것 같은 감상적인 발작의 습격을 받았다.
그러나 여성적이고 청년다운 연애의 이기주의는 내게서 사라졌다.
그리하여 고상하고 친밀한 교전상태가 우리들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되어, 만나기만 하면 대단히 친밀하게 논쟁을 하곤 하였다. 이 총명한
부인은 쾌활하고 여자다우며 약간 응석이 섞인 이해력을 가지고 있어
연애하는 초라한 나의 마음과 전혀 맞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또한 우리는
서로 마음깊이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작은 일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욱 열을 내어 논쟁하였다. 특히 그녀―얼마 전까지도 생명을
내걸고 결혼을 하겠다던 그 여자―앞에서 독신생활을 변호하는 것은
우스웠다. 선량한 젊은이요, 자기의 영리한 아내를 자랑하고 있는 그의
남편과 한패가 되어 그녀를 야유하기까지도 하였다.
남몰래 예전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이전의 원하는 것이 더 많던 불꽃은 아니었고, 마음을 젊게 하며 희망을
잃은 늙은 독신자가 겨울 저녁에 가끔 손을 쪼일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따뜻한 난롯불에 불과하였다. 특히 보피와 친해져서 끊임없이 성실하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이상한 의식에 싸이게 된 이후부터 나는 나의 사랑을
다만 한 편의 청춘과 한 편의 시로서 안심하고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엘리자베트는 때때로 참으로 여자다운 심술로 내 마음을
차게 하여 마음속 깊이 독신생활을 즐기게끔 하였다.
가련한 보피와 함께 살 게 된 후부터 나는 엘리자베트의 집에도 점점
방문하는 횟수가 드물게 되었다. 나는 보피와 책을 읽었고, 여행 앨범과
일기를 뒤져보며 도미노 놀이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또한 심심풀이로
삽살개를 길렀고, 창 밖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풍경을 내다보며 매일 여러
가지 지혜롭고 어리석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탁월한 세계관과
재치있는 유머가 섞인 실제적인 인생관을 체득하고 있어, 나는 매일
거기에서 배우는 점이 많았다. 많은 눈이 내려 겨울이 창 밖에 순결한
미를 전개시켰을 때에 우리는 소년 같은 환희로 난로 곁에 앉아 고요한
실내의 목가를 즐겼다.
이 기회에 내가 오랫동안 구두창이 닳도록 헛되이 돌아다니며 배우려던
세태인정을 아는 기술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고요하고 예민한
방관자로서 보피가 이전의 생활환경에서 얻은 여러 가지 체험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놀랍도록 잘 말해 주는 까닭이었다.
이 불구자는 평생에 3타스 이상 되는 사람을 알지도 못했고, 또한 인생의
큰 흐름을 누구와 같이 헤엄친 일도 없었지만, 그는 나보다 더 많이
인생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그가 지극히 작은 것에도 모든 사람에게서
체험과 즐거움과 인식의 샘을 발견하려고 노력한 까닭이었다.
우리들의 오락은 여전히 동물의 세계를 즐기는 것이었다. 더 방문할 수
없게 된 동물원의 동물에 관하여 우리들은 여러 종류의 이야기와 우화를
생각해 내었다. 그 대부분을 우리는 말로 하지 않고 즉흥적인 대화로써
표시하였다. 가령 두 마리 앵무새의 사랑의 고백, 여우의 가정분쟁,
산돼지들의 저녁의 오락 같은 것이었다.
족제비님, 좀 어떠십니까?
고맙소, 여우님. 그저 그럭저럭 지내오. 아시다시피 붙잡혀 올 때에
사랑하는 마누라를 잃어서,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름이 핀젤슈반츠였는데,
당신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정말 진주였지요, 아주 보기드문--.
이웃양반, 그 옛이야기는 그만하시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마 그 진주 얘기를 수백 번은 더 했을 것이오. 젠장, 잠깐동안
한 번 사는 목숨이니 놀구나 지냅시다.
용서하십쇼. 여우님. 당신이 내 마누라를 알 수 있었다면 내 심정을
잘 이해했을 것이오.
그야 그렇지요, 그렇구말구요. 부인의 이름이 핀젤슈반츠라고
하셨지요? 참 아름다운 이름이어서 쓰다듬어 주고 싶어요!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옳지, 그렇군. 당신은 그 얄미운 참새들이
몹시 못 살게 구는 것을 아시겠지요?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작은 계획을
세웠지요.
참새 일로서요?
네, 참새일로서요. 보시오,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지요. 빵을 조금
쇠우리 앞에 놓고 우리가 누워서 조용히 그놈들을 기다린단 말이오.
그렇게 해서도 그놈들을 못 잡는다면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지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훌륭한데요. 여우님.
자, 그럼 빵을 놓으시오. 네, 됐어요! 그런데 그것을 좀 바른편
쪽으로 옮겨 놓으시오. 그러면 우리들에게 서로 좋을 테니까요. 내게는
지금 당장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럽니다. 네, 그만하면 됐어요. 자,
정신차리시오! 이젠 누워서 눈을 감고 있어야지요. 쉿, 벌써 한 마리
날아왔어요! (사이)
여보, 여우님, 아직 멀었나요?
성미도 급하시네! 생전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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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사냥을 하시는 분 같구료.
사냥꾼이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자, 다시 한 번!
아니 그런데 빵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뭐요?
빵이 없어졌어요.
설마! 빵이? 정말 없어졌네! 이상한 일인데! 아마, 그럼 또 저
몹쓸 바람이--.
아니, 내 생각에는 좀 전에 당신이 무엇을 먹는 것 같던데요.
뭐라구? 내가 무엇을 먹었다구요? 대체 무엇을 말이오?
아마 빵이겠지요.
그러한 추측은 분명히 모욕입니다. 족제비님, 이웃분의 말이니까
참아야겠지만, 그러나 너무한데요. 알겠어요? 정말 너무한데요. 나를
이해 못하시겠어요? 내가 빵을 먹었다구? 대체 뭘 보고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나는 당신의 진주에 관한 흥미없는 이야기를 몇천
번이나 들어야 했소. 그리고 나서 내가 좋은 생각을 해서 우리들은 빵을
놓지 않았소?
그건 나지요! 내가 빵을 놓았지요.
우리는 빵을 놓았단 말이오. 나는 누워서 감시를 하였소.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되었는데, 그때 당신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참견하지
않았소? 물론 새는 날아가고 사냥은 헛탕이지 뭐요. 그런데 이제 와서
나보고 빵을 먹었다구? 이봐요, 내가 다시 당신과 교제하기까지 참고
있어요.
이러한 대화를 하는 데서 오후와 저녁은 쉽게 지나갔다. 난 기분이
좋아 일을 재미있고 빨리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전에 그렇게도
게으르고 일에 성의가 없고 우울해 하던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리하르트와 지내던 가장 좋았던 시절도 밖에 눈이 훨훨 춤을 추고 난로
옆에는 삽살개와 같이 우리 둘이 정답게 앉아 있는 고요하고 명랑한
요즈음보다 더 즐겁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나의 사랑하는 보피는 전무후무한 어리석은 짓을 하였다.
만족한 나는 자연히 눈이 멀어서 그가 이때까지보다 더 괴로워하는 것을
몰랐었다. 그리고 그는 겸손과 사랑으로 이때까지보다 더 즐겁게 굴었고,
사실을 말하지도 않고 담배를 피워도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
누워서는 괴로워하며 기침을 하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옆방에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는 내가 벌써 잠이 들어 있는
줄 알고 안심하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나는 우연히 들었다. 내가 갑자기
등불을 들고 그의 침실로 들어가자 가련한 그는 깜짝 놀라 질겁을 하였다.
나는 등불을 옆에 놓고 그의 침대 옆에 앉아 심문을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피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자백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도--.
그는 주저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많이 움직이면 심장이 경련하는 것 같고, 그리고 때때로 숨을
쉬기에도--.
그는 병세가 더하는 것을 마치 죄나 지은 듯이 솔직히 사과하는
것이었다.
아침이 되자 나는 의사에게로 달려갔다. 날이 차차 맑고 아름다워
도중에서 나의 불안과 걱정은 좀 가셔져서 나는 크리스마스 생각까지도
하며, 무슨 선물로써 보피를 즐겁게 해 주나 하고 생각했다. 마침 의사가
집에 있어 나의 간절한 청을 듣고 함께 집으로 왔다. 우리는 의사의
편안한 마차를 타고 달려와서 층계를 올라와 보피의 방으로 들어갔다.
촉진, 타진, 청진이 끝나고 나서 의사가 약간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소리를 좀 부드럽게 하자, 나의 모든 즐거움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통풍, 심장쇠약, 중태―나는 의사가 말하는 것을 듣고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의사가 입원시키라고 말했을 때에 전혀 반대하지
않은 것은 나 자신도 이상한 일이었다.
오후에 침대차가 왔다.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삽살개는 뛰어들고,
환자의 큰 의자는 한구석에 밀쳐져 있었고, 옆의 침실은 텅 비어 있어
방안에서 나는 참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랑하는 것이란 그러한 것이다. 사랑은 비통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나는 그 뒤로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러나 비통은 괴로워하고 아니하고는
그리 문제가 아니다. 만일에 굳센 한 몸이 되는 생활만 있다면, 또한
모든 생명이 연결되는 긴밀하고 생생한 연줄만 느껴진다면, 그리고 오직
사랑이 식지만 아니한다면, 만일에 그때처럼 가장 성스러웠던 것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면, 일찍이 내가 가졌던 명랑한 날의 모든 사랑과 나의
모든 시적 계획을 함께 내동댕이쳐도 좋을 것이다. 눈과 마음은 몹시
아프고, 아름다운 긍지와 자부심은 산산이 상처를 입어도, 그렇게 되면
나중에 마음은 대단히 고요해지고 겸손해지며 성숙해지고 생생해지는
것이다.
이미 금발을 가진 아기로 인해 그때 벌써 나의 낡은 성질의 일부는 죽어
버렸었다. 지금 나는 나의 모든 사랑을 바치며 전생활을 같이 해오던
곱사등이가 고통을 받으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매일 나도 함께
괴로워하며 죽음의 모든 공포와 신성을 같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아직
사랑의 기술에 있어 초심자이며 동시에 죽음의 기술이라는 엄숙한 장을
펼쳐야 했다. 이 시기에 관해서는 나는 파리의 일처럼 침묵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시기만

밍키넷 
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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