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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가지 일에서 조숙하고, 다른 수백 가지 일에서 몹시 뒤처지고 무력한
열여덟 살의 평범치 않은〉젊은이에게 피스토리우스는 말한다.〈다시 한번 무엇
인가 정말 근사한 생각 혹은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누군가를 죽
이거나 그 어떤 어마어마한 불결한 짓을 저지르고 싶거든, 한순간 생각하게. 그
렇게 자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은 압락사스라는 것을! 자네가 죽이고
싶어하는 인간은 결코 아무아무개 씨가 아닐세. 그 사람은 분명 하나의 위장에
불과할 뿐이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
@p 230
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
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
지 않아.〉싱클레어는 결판이 나도록 싸워야 하는 정신/신 앞에 선 듯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런 친구이자 스승과도 파국이 와 결별이 이루어지고, 한때
자신이 데미안을 따랐듯 자기 자신을 따르는 친구와의 만남도 거치며 싱클레어
는 더 나아간다. 자신의 내면에서는 인도자의 모습을 본다. 다시 데미안이 보인
다.〈데미안을 닯았으며 그 눈에 내 운명이 적혀 있었다.〉
제7장「에바 부인」은 만남과 공동체에 대한 성찰이다. 데미안은 마침내 자신
이 그린 꿈의 영상의 현실의 모습을 찾아낸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다.
데미안을 다시 만난다. 에바 부인 주변의〈자신의 길을 가는〉뛰어난 사람들도
만난다. 그러나 이 행복에는 그늘이 드리워진다. 허약한 사람들은 어디서나〈두
려움에서, 무서움에서, 당황에서 만든 공동체〉를 만드는데 그런 공동체는 패거
리짓기일 뿐이며, 내부가 상해 있고, 곧 무너질 것 같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사
람들은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싱클레어는 지금의 공동체들
이 와해되고 나면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말의 예감 속에서 싱클레
어는 푸른 혼돈을 떨치고 큰 날갯짓으로 짙게 구름 낀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새
의 영상을 본다. 낡은 오피걸  오피방한 세계의 와해를 피부로 느낀다.
이 대목에서 보이는〈희망〉인 뛰어난 개인들과 〈절망〉인
@p 231
사회의 간극은, 자신의 길을 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무리짓기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한 이 작품의 씌어진 시기의 전쟁에 임박한 혼돈기 사회
에서 속출한 단체들, 이합집산하는 동맹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실
제로 작가 헤르만 헤세는 전쟁이 터지자 곧 자원했으며 부적격 판정으로 실전에
는 참전하지 못했지만, 스위스에서 전쟁포로들과 억류자들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온갖 신문 잡지에의 기고, 호소문의 작성은 물론, 스스로 출판사를 만
들어《억류자들을 위한 잡지》를 스물두권이나 냈다.(이 활동을 위하여 팔려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제8장「종말의 시작」에서 싱클레어는 마음속으로 에바부인을 부른다. 에바
부인은 말했던 것이다.〈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그러나 에바 부
인 대신 데미안이 달려와 싱클레어에게 전쟁이 터진 것을 알려준다. 사태는 급
격히 진전되어 데미안이 전장으로 나가고, 싱클레어 역시 전장으로 나간다. 겨울
전장에서 부상당한 싱오피걸  오피방클레어는 데미안을 다시 한번 만난다. 그의 키스와 그를
통한 에바 부인의 키스를 받지만, 다음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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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깨어 보니 이미 데미안은
거기 없다. 그러나〈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닮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한다. 이제〈자신 속에오피걸  오피방 있는 뛰어난 존재〉와 하나가 된 것이다.
@p 232
헤세는 구도자 싱클레어의 모습을 마지막에서는 2차 세계대전과 연결시키기도
했지만, 그 대부분의 과정은 낭만주의 및 고대 신화세계와 결합시켰다. 이 결합
은 시대 착오적이며 실패라고도 평가된다. 명료하지 못한 언어와 지나친 상징성
이 비판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일어권의 작품들 중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가 헤세 자신의 성가도 아직도 독일보다 독일 국
외에서 오히려 더 높다.) 헤세의 대 주제〈자신에 이르는 길〉은 그만큼 범세계
적인 관심사인 것 같다.
대한 신입생들에게 이런저런 책을 읽히는 일을 십 년쯤 한 적이 있다.「데미
안」에 대하여 젊은이들이 썼던 빛나는 글귀들이 떠오른다. 사실 이 작품 내용
의 해설은 그런 이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그 고통스러운 성장의 세계를 방
금 뒤로 했거나 바로 그 한가운데 있는 젊은이들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나를
찾아가는 길〉을,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고 하여도 그 누구도 근본에서 피해 갈
수 없는, 한 시절의 아픈 방황과 그 끝을 이 책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이 번역된 작품을 다시 번역한다는 것이 많이 망설여졌었다. 그러나
바로 젊은이들에게 얼오피걸  오피방마나 중요한 작품인지 아는 터라, 이 작은 책에다 그 어떤
대작의 번역보다도 더 힘을 쏟았다. 지나친 유문을 피하고 다소 건조하더라도
가급적 원문에 밀착하도록 번역하였다. 두어 가지만 예를 들면〈Der Vogel
kampft sich aus dem Ei〉라는 핵심적인 문장을〈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대신
아주 오랜 고심
@p 233
끝에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로 원어에 가깝게 바꾸었다. 기존
번역의 매끄러움과 유연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원어에 담긴 치열함을 살려내
고 싶었기 때문이다. 껍질을 깬다는 단어가 독일어에 있지만 헤세가 굳이〈투쟁
〉이라는 단어를 썼고, 껍질을 벗어나는 과정이 그야말로〈투쟁〉으로 표현되었
으며, 더구나 그 고통스러운 투쟁의 기록이 바로 이 작품 전체이기 때문이다. 반
면 프롤로그에 나오는 인간에 대한 설명인〈자연의 투척der Wurf der Natur〉
같은 경우는〈자연이 던진 돌〉로 풀어 옮겼다. 홍수 이후 살아남은 남녀가 등
뒤로 던진 돌이 인간이 되었다는, 로마 신화의 창조 설화가 배경에 있기 때문이
다.
다양한 연령층의 젊은이들이 읽어주어 문장을 다듬는 일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정현규 군, 최귀범, 홍오피걸  오피방기윤, 김소니, 김동자 양에게 감사한다. 몽당연필로 까맣게
고쳐놓은 세인이에게도, 이〈글씨 많은〉책의 원고를 꼼꼼이 읽고 고쳐준 세건
이에게도 감사한다. 새로운 번영 정본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민음사
식구들의 세심한 도움과 인내에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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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헷세 Hermann Hesse 1877 - 1962는 독일의 낭만주의 경향을 띠고
있는 소설가이며 시인이다.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며 방랑과 자유를
즐기는 서정적인 문학을 출발로 하는 그는 신낭만주의 문학의 완성자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헷세의 소설이나 시는 모든 이의 고향과 같아서 인간의 진실되고
아름다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구름, 산천, 바람 바다 등을 배경으로
자신의 내면적 생활의 변화와 성장을 깊이 관찰하여 표현하는데서 그의
소설은 모두가 예술적 오피걸  오피방향기가 강하게 풍긴다.
대표작 : 향토, 수레바퀴 밑에서, 크눌프, 청춘은 아름다워라, 황야의
이리, 나르찌스와 골드문트

향수

1. 태초에 신화가 있었다. 일찍이 위대하신 하느님은 인도인, 그리스인
그리고 게르만인들의 마음속에 시를 쓰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모든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시를 쓰고 계시다.
그때 나는 어렸기 때문에 고향의 호수와 산과 시내들의 이름은 잘
몰랐었다. 그러나 나는 청록빛의 잔잔한 호수면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그 주위를 빙 둘러싼 험한 산들과 산꼭대기로부터 눈에 덮여
반사되는 계곡, 작고 좁은 폭포들 그리고 그 아래 과일나무와 오두막집과
잿빛의 알프스 젖소들이 떼지어 풀을 뜯고 있는 비탈진 목장을 보았다.
이때 내 가난한 어린 영혼은 아직 텅빈 채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호수와 산의 정령들이 찾아와 내 어린 영혼 속에 아름답고 대담한
영혼들을 기록해 넣는 오피걸  오피방것이었다. 가파른 낭떠러지와 절벽들은 거만하게,
그러나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럽게 그들이 태어난 그대의 상처를 아직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땅은 갈라지고 굽어지고 진통으로 괴로운
태 속에서 산봉우리와 산등성이가 태어난 그때를 말해 주었다. 돌산은
폭음과 함께 울부짖으며 솟아나서 어느 결에 봉우리가 되고 꺾이어
골짜기가 되었다. 쌍둥이 화산은 절망적인 몸부림 속에 자리를
다툼으로써 결국 한쪽이 승자가 되어 높이 솟고, 다른 한쪽은 패자가 되어
밀려 부서지고 말았다. 그 태고 이래 지금도 여기저기 높이 솟아 있는
계곡 위에는 부서진 봉우리와 밀려나고 깨어진 바위가 걸리어, 해동할
무렵이면 폭포의 분류는 집채만한 바위를 굴려 유리그릇 부수듯이
산산조각 내든가 아니면 대번에 산 아래의 푸른 목장으로 밀어버리든가
하는 것이었다.
그 돌산들은 언제나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첩첩이 꺾이어
구부러지고 깨어져 모두 입을 벌린 상처를 가지고 있는 험상궂은 절벽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은 몸서리쳐지는 큰 괴로움을 겪었어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오피걸  오피방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괴로움을 겪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비록 늙긴 했지만 아직도 건장한 무사처럼 당당하게
그리고 준엄하게 분개하여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은 무사였다. 나는 이른 봄, 밤마다 미쳐 날뛰는 열풍이
돌산의 허술한 꼭대기 근처에서 울부짖으며, 그 옆에 격류가 있는
튼튼하고 성긴 바윗돌을 마구 뽑아 낼 때에 그들이 폭풍과 물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밤이면, 그들은 분개하여 숨을 죽이고 튼튼한
뿌리로 완강히 버티고 서서 바람에 시달린 암벽과 돌뿌리를 폭풍을 향하여
잔뜩 내밀고는, 온갖 힘을 다하여 굳건히 맞서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분개와 격노의 처참한 전락의 소리를 내었고, 그
무서운 신음은 다시금 다른 먼 계곡에까지 단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목장과 비탈과 흙에 묻힌 바위들이 옛날 통속적인 말로
기묘하고 불길한 예감을 주는 이름을 가진 풀과 꽃과 이끼들로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산의 아들이요 손자인 이 초목들은 다채로운 빛깔로
천진스럽게 자리를 잡은 채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매만지고
바라보고 향기를 맡으오피걸  오피방며, 그 이름을 하나 둘 익혀 갔다. 나무를 바라볼
때에는 진실하고 경건해지곤 했다. 나는 나무들이 저마다 고립적 생활을
하며 독특한 형태와 모자를 만들어 각기 특이한 그림자를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내게는 그 나무들이 산과 인연이 깊은 은사나 투사처럼 보였다.
그것은 모든 나무가 - 특히 산에 높이 서 있는 나무는 물론이고 - 생존과
성장을 위하여 바람과 기후와 돌과 조용히 끈기있는 투쟁을 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모든 나무는 자기의 무거운 짐을 지고 찰싹 달라붙어 있어야
했고, 그리하여 각기 독특한 모양과 특수한 상처를 입어야만 했다. 폭풍
때문에 한쪽밖에 가지를 갖지 못한 소나무도 있고, 붉은 밑동이 뱀처럼
바위 비탈을 기어올라 나무와 바위에 짓눌려 서로 의지하고 있는 소나무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무사처럼 나를 바라다보며 내 마음속에 공포와
존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의 남자들과 여자들도 그 나무들처럼 딱딱하고,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이고 말수가 적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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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좋을수록 더욱 말수가 적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나무나 돌처럼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어, 조용한
백송(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 교목) 이상으로 그들을 존경하거나
사랑하지는 않았다.
우리들의 니미콘 마을은 산줄기가 둘로 갈라진 끝에 끼여 있는 호수에
접한 경사진 삼각지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 길은 근방의 수도원으로
통하였고, 또다른 길은 마을에서 네 시간 반쯤 걸리는 이웃마을로
통하였으며, 호숫가에 있는 다른 여러 마을에는 수로로 내왕하였다.
마을의 집들은 구식 목조건물들로 일정한 연대라는 것이 없었다. 새로운
건물이라고는 거의 없었고, 필요하면 부분적으로 - 금년에는 마루를
고치고, 다음 해에는 지붕을 오피걸  오피방고치는 식으로- 고쳤을 뿐이다. 이전에는
바람벽에 쓰였던 작은 각재와 많은 판자가 지금은 지붕의 서까래로
쓰였다. 그리고 서까래로 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불을 때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경우에는 가축우리나 헛간의 수선 또는 현관 입구의 가로목으로
사용되는 형편이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비슷했다.
모두 자기의 소임을 다할 수 있을 동안, 그대로 있다가 주저하면서
쓸데없는 무리 속으로 물러나 결국 그리 눈에 띄지도 않게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타향에 있다가 돌아온 사람은 낡은
지붕이 몇 개 새로 수리되고, 새로 올렸던 몇 개의 지붕이 조금 낡아 있는
것을 보게 될 뿐이었다. 예전에 있던 노인들은 세상을 떠났으나 다른
새로운 노인이 생겨나서 같은 시골집에 살고, 같은 성을 부르고, 같은
검은 머리의 어린아이를 돌보며, 그 얼굴이나 거동에 있어서도 전혀
별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은 신선한 피와 생명이 외부로부터 들어와 섞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꽤 건강한 종족인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밀접한
인척관계를 맺고 있어, 그 사오피걸  오피방분의 삼은 카멘친트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교회의 명부를 여러 장 차지하고 있는 것도, 묘지의 십자가에 씌어있는
것도, 집집마다 페인트로 새겨 쓴 문패에도, 마차나 물통이나 호수의
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카멘친트라는 성이었다. 또한 아버지의
집 현관에도 이 집은 요스토와 프란체스카 카멘친트가 세웠다라고 씌어
있는데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의 조부 즉 나의 증조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지식도 없이 언젠가 죽는 날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던 집이 그때까지 남아서 지붕을 남겨놓는다면, 이 낡은
집에는 다시금 다른 카멘친트 성을 가진 사람이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이토록 단조롭게 보이나, 우리 마을 사람들 중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귀한 사람과 천한사람, 권세있는 사람과 보잘것 없는
사람이 있고, 바보들은 계산에 넣지 않더라도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과
함께 꽤 재미있고 익살맞은 사람들이 있다. 어디에서도 그런 것과 같이,
그것은 대세계의 축도로 부자와 빈민, 교활한 자와 익살스러운 자들이
서로 얽히어 인척관계를 맺고오피걸  오피방 있어, 대단한 교만과 우매한 경솔이 종종 한
지붕 밑에서 동시에 일어났으므로 우리의 생활은 인생의 깊이와 희극을
충분히 엿볼 수 있게 하였다. 다만 감추어졌거나 혹은 의식되지 않는
압박의 영원한 면사포가 그 위에 덮여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이 자연의 힘에 지배를 받고, 빈곤이 온갖 애를 쓰나 날이 갈수록
점점 쇠퇴해 가는 우리 족속에게 우울한 기분을 불어넣어주는 까닭이었다.
이러한 우울은 저 날카롭고 근엄한 얼굴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밖에는 별다른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였고, 이렇다 할 무슨
즐거운 효과라고는 전혀 나타내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을에
몇몇 바보가 있어 다소 진실한 점이 있기는 하였으나, 어쨌든 좀 색다른
웃음거리와 비웃을 만한 사건을 일으키면 사람들은 그처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 중의 누가 어리석은 일로 소문거리가 되면, 니미콘 마을
사람들의 주름잡히고 햇볕에 그을은 이마 위에 전광처럼 기쁜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우스운 일 자체를 향락하는 동시에, 또한
양념으로써 자기 우월감의 기쁨이 가미되어, 자기들이라면 그러한 과오와
실책을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오피걸  오피방 것이라고 만족한 기분으로 혀를 쯧쯧 차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옳은 자와 죄인의 중간에 서서
양자에게서 즐거운 것을 취하여 즐기려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무슨 웃음거리가 일어나면 아버지는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시며 그 당자와 동감이 되어 감탄하시든가 아니면 자기에게는 그런
결점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시든가 하여, 우습도록 두 감정 사이를 오가는
것이었다.
나의 백부 콘라트는 이러한 웃음거리의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아버지나 다른 잘난 사람들보다 머리가 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교활한 사람이었고, 그의 끊임없는 발명 정신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물론 성공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일없이 우울해지는
법이 없이 언제나 다시 새 일을 시작하고, 자기 계획의 희비극에 대하여
묘하게 즐거운 기분을 가지곤 하는 점이 실로 그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우스운 일로 느껴져 사람들은 그를 웃음거리의
한사람으로 꼽았다. 나의 아버오피걸  오피방지와 그와의 관계는, 때로는 감탄하고
격려하고 때로는 경멸하는 관계를 항상 지니고 있었다. 백부의 새로운
계획은 무엇이든 아버지에게 호기심과 흥분을 일으키게 했다. 아버지는
조롱하는 듯한 질문과 비웃음으로써 그것을 감추려고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럴 때 백부가 꼭 성공할 것이라 믿고 위대한 사람처럼
행동하시면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호기심에 가득찬 친밀감을 가지시고 이
천재의 편이 되어 주셨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실패로 백부가 어깨를
움찔하시면 아버지는 노하셔서 조소와 모욕을 동시에 퍼부으시며, 몇 달
동안이나 말씀도 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에서 처음으로 돛단배를 구경하게 된 것도 백부의 덕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나의 아버지의 작은 배가 이용되어야 했었다. 돛과 닻줄은
백부가 달력에 그려진 목조범선을 보고 훌륭하게 만드셨으나, 우리의 작은
배가 돛단배로 되기엔 너무나 작았던 것은 결코 백부의 탓이 아니었다.
그 준비에 수주일이 걸렸는데, 그때 아버지는 긴장과 기대와 초조함으로
수은처럼 거의 안정하지를 못하셨고, 마을의 다른 사람들 또한 콘라트
카멘친트의 새로운 계획에 관오피걸  오피방해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 돛단배가 어느 바람부는 늦은 여름날 아침에 처음으로 호수 위로
미끄러져 나갔을 때 그날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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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게 있어서는 기념할 만한 날이었다.
아버지는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날는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에서 멀리
떨어져 서서 내가 그 배에 타는 것을 한사코 말리셨으므로 나는 너무나
슬펐었다. 다만 빵집 아들 피슬리만이 이 돛단배의 명수와 동행되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전부 호숫가 자갈밭과 작은 뜰안에 서서 이
전대미문의 장관식에 참석하였었다. 호숫가 멀리에서 동풍이 솔솔 불고
있었다. 처음에 배가 미풍을 오피걸  오피방받을 때까지는 빵집 아들이 노를 저여야
했다. 곧 돛은 바람을 모아 안았고, 따라서 배는 의기양양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감탄하여 배가 곧 가까운 산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솜씨 좋은 백부가 돌아오면
승리자로서 그를 대하고 우리들이 실없이 얕잡아 본 것을 뉘우치리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밤중에 배가 돌아왔을 때에는 돛은 없어지고, 배를
탔던 두 사람은 살아 있다기보다 죽어 있다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빵집
아들은 기침을 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일요일날에는 송장 두 개를 치울 뻔했어요. 여러분은 대단히 재미있을
뻔했는데······.
아버지는 배 밑창의 판자 두 개를 새로 갈아넣어야 했다. 그러고 그후
다시는 푸른 호수 위에 돛이 떠 있는 일이 없었다. 콘라트가 무슨 일을
급하게 하고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그의 뒤로 가서 꽤 한참 동안이나
놀려대는 것이었다.
돛을 달아야지, 콘라트!
아버지는 분노를 누르시고 오오피걸  오피방랫동안 불쌍한 백부를 만나실 때마다
외면을 하시며, 말로써는 할 수 없는 경멸의 표시로서 활을 그리시듯
멀찍이 침을 탁 뱉으시는 것이었다. 이 일은 어느 날 콘라트가 불에 잘
견디는 빵 굽는 가마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타났을
때까지 계속되었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착상은 발명자에게 끝없는 조소를
받게 하였고, 아버지에게는 현금 4 탈레르를 손해보게 하였다.
아버지에게 이 4 탈레르 사건을 회상하게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화를
입었다. 오랜 후의 어느 날, 집에 돈이 옹색해졌을 때에 어머니는 우연히
그때 쓸데없이 써 버린 돈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아버지는 성이 머리끝까지 났으나 꾹 참으시고, 다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요일날 하루 실컷 술이라도 마셔버렸더라면 좋았을 걸.
겨울이 지날 무렵이면 언제나 열풍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불어닥쳤다.
이 바람은 알프스 사람들이 공포와 전율로써 듣는 것이며, 그들이 타향에
있을 때는 뼈저린 향수로써 그리는 것이었다.
열풍이 가까워져 올 때에는 남오피걸  오피방녀 할 것 없이, 그리고 산과 야수와
가축들까지도 몇 시간 전부터 그것을 느끼게 된다. 언제나 앞서 서늘한
역풍이 불어옴으로, 따듯하면서도 세찬 알 수 없는 수선함이 그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청록색의 호수는 순식간에 먹을 머금은 듯 검어지고,
갑자기 흰 물결이 급하게 머리를 쳐든다. 그리고 몇 분전까지만 해도
소리없이 평화롭던 호수가 곧 바다처럼 성난 물결로써 언덕을 울리면
동시에 온 산천이 전전긍긍하여 서로 모여든다. 그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산봉우리 위에 있는 돌을 지금은 셀 수 있게 되며, 갈색 점들같이
멀리 떨어져 보이던 마을의 지붕들, 덧문, 창까지 지금은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산, 목장, 집 할 것 없이 모두가 놀란 가축처럼 모여든다. 그리고
나서 멀리 들려오는 우뢰소리 같은 수선함이 일어나고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채찍에 쫓기는 호수의 물결은 일직선으로 공중을 달리어
물보라로 안개를 일으키며, 그리고 끊임없이, 특히 밤에는 폭풍과 산들의
절망적인 싸움의 소리를 사람들은 듣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개천,
집이 무너지고, 배가 부서지고, 아버지와 형제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이 마을에서 마을로 퍼진오피걸  오피방다.
유년시절에 나는 이러한 열풍을 무서워하고 싫어했었다. 그러나
장난꾸러기 소년이 되면서부터는 나는 이 반역자, 영원한 젊은이, 용감한
투사 그리고 봄의 안내자인 열풍을 사랑하게 되었다. 열풍이 생명의
발랄함과 희망에 가득차서 덤비고 웃고 신음하며, 거친 싸움을 시작하여
울부짖으며 산골짜기를 달려 산마다 쌓인 눈을 헤집고, 굳센 늙은 백송을
난폭한 손으로 비틀어 신음하게 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후
나이를 먹을수록 열풍에 대한 사랑은 깊어져서 결국 산에 부딪쳐
부서지고, 나중에는 평탄하고 찬 북국에 피로를 느끼어 죽어버리는 열풍
속에서 언제나 기쁨과 따듯함과 아름다움이 샘처럼 솟아나는, 감미롭고
아름답고 풍부한 남쪽나라를 느낄 수 있었으므로 나는 열풍을 환영하게
되었다. 열풍의 계절에 있어서는 산골 사람들, 특히 부인들을 습격하여
그들의 수면을 빼앗아 가고, 모든 감각을 쓰다듬어 자극시키는, 이
감미로운 열풍병보다 신기하고 귀중한 것은 없었다. 열풍은 메마르고
초라한 북국의 가슴에 끊임없이 불타는 몸을 던져, 가까운 자색의
이탈리아 호반에는 이미 다시오피걸  오피방금 앵초와 수선(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과
편도의 가지에 꽃이 피어 있다는 것을 눈 덮인 알프스의 마을 마을에
알리는 남국의 사자였다.
열풍이 그치고 마지막 더러운 눈덩이가 녹아버리고 나면, 곧 더할
나위없는 아름다운 계절이 찾아온다. 산기슭 사방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목장은 이내 노란빛 향연이 벌어지고, 눈이 쌓인 봉우리와 빙하와
맑고 우뚝 솟아오른 호수는 푸르고 미지근해져서 태양과 구름의 왕래를
반영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유년시절은 물론이고 때에 따라서는 일생을 기쁨에
차게 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모든 것이 인간의 입에 오르지 아니한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말해 주는 까닭이다. 유년시절에 이 말을 들은
자에게는 일생동안 그 여운이 달콤하고 강하고 무섭게 남아서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산을 고향으로 하는 자는 몇해 동안
철학과 자연사를 연구하는 데서 낡은 신을 버리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열풍을 느끼고, 눈덩이가 숲을 헤치고 녹아내리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의 가슴은오피걸  오피방 다시 심장이 뛰며 하느님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의 아버지의 오두막집은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뜰에 접해 있었다. 뜰
안에는 신선한 살라트와 빨간무와 카베츠가 심겨져 있었고, 또 한쪽에는
어머니가 놀랄 만큼 작고 초라한 화단을 만드시어 장미가 두 그루,
다알리아가 한 그루, 목서초가 한 움큼 쓸쓸히 시들어 가고 있었다.
이 뜰에 인접하여 더욱 작은 자갈밭이 호수에까지 이어졌다. 그곳에는
부서진 물통 두 개와 몇 개의 판자와 말목이 놓여 있었고, 물 위에는 당시
몇 해마다 새로 수선하여 콜타르 칠을 한 작은 배가 매어져 있었다. 배를
수선하고 콜타르 칠을 하던 그때가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그것은 첫여름
더운 오후의 일로, 유황색의 나비가 햇빛에 하늘거렸고, 호수는 기름처럼
미끄럽고 푸르고 조용히 반짝였으며, 산봉우리에는 안개가 끼었고, 작은
자갈밭에선 페인트와 콜타르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후
여름내내 작은 배는 콜타르 칠 냄새가 났었다. 몇 해 후 어떤 바닷가에서
물의 향기와 콜타르 친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를 때마다 나의 눈에는 이
호수의 자갈밭이 나타나고, 오피걸  오피방또한 아버지가 소매를 걷으신 채 털솔을
움직이고 계실 때 그의 파이프에서는 잿빛 연기가 조용한 여름의 대기
속으로 피어오르고, 노랑나비가 겁을 집어먹은 듯 불안하게 날아 다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날에는 아버지는 매우 기분이 좋으셔서
멋들어지게 휘파람을 부시며, 또한 아마도 그가 아시는 유일한 노래인
짧은 민요의 일절을 나지막하게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 어머니는
저녁을 맛있게 준비하시곤 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남편 카멘친트가 제발
오늘 저녁에는 술집에 가지 말았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에서 그렇게 하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날도 어김없이 주막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양친이 내 어린 감정을 발전하도록 특별히 촉진시켰다든가 혹은
방해하였다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어머니는
항상 손이 쉴새없이 바쁘셨고, 아버지는 세상에서 교육문제처럼 등한히
여기시는 문제는 없으셨다. 그는 몇 그루의 과일나무를 손질하시고,
감자밭을 가꾸시고, 마른 풀을 보살피는 것으로써 충분히 바쁘셨다.
그러나 가끔 몇 주일에 한 번씩은 저녁에 외출하시기 전에 내 손을
잡으시고 묵묵히 외양간 위에오피걸  오피방 있는 마른 풀이 놓여져 있는 헛간으로 끌고
가시곤 하셨다. 그리고 거기에서 묘한 징벌과 속죄의 행위가 이루어져서
나는 회초리로 무참하게 맞는 것이었으나, 아버지나 나 자신도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보복의 여신인 네메지스의 제단에 올리는
조용한 희생의식으로 아버지께서는 특별히 꾸짖으시는 것도 아니셨고,
그렇다고 내쪽에서 울며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었으며, 다만 어떤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그에 대한 당연한 제물처럼 올리는 행위였다.
후일 맹목적 운영 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언제나 이때의 이상한
장면이 다시금 머리에 떠올라 이 개념의 구체적인 표현처럼 느끼곤
하였다. 선량한 아버지는 부지불식중에 인생 자신이 스스로 우리에게
가하여지는 소박한 교육법을 쓰셨다. 즉, 인생은 우리의 개인 하늘에
때때로 뇌우를 보냄으로써 우리가 무슨 잘못한 일을 하였기에 하늘이
그렇게 벌을 내리시나 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을 우리에게 밭기는
그러한 교육법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것을 생각해 보는
일이란 거의 아니면 전혀 없었고, 이 세금을 바치는 듯한 징벌을 받게
되면 반성을 하기는커녕 오히오피걸  오피방려 태연히 혹은 반항적으로 받고 나서, 그날
저녁에는 세금을 바쳤으므로 다음 또 세금을 바칠 때까지 몇 주일 동안은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기쁘게 생각하곤 하였다. 이렇게 나는 나에게 일을
가르쳐 주시려는 늙은 아버지의 행위에 대하여서는 퍽 완강히
반항하였었다. 알 수 없는 낭비적인 자연은 두 개의 모순된 선물, 즉
건강한 체력과 함께 유감스럽게도 일을 싫어하는 선물을 동시에 주었다.
아버지는 나를 쓸모있는 아들뿐만 아니라 조력자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시었으나 나는 모든 꾀를 다 부려 맡은 일을 회피하였으며,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그 유명한 어려운 노동을 강제로 맡았던 고대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대단히 동정하였다. 그 당시 나는 무엇보다도 바위
위나 목장 또는 호숫가를 일없이 헤매는 것을 즐겁게 생각했었다. 산과
호수와 폭풍과 태양이 나의 벗이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말하고 나를
길러주고, 또 오랫동안 어떤 사람이나 인간의 운명보다도 내게 한결
부드러웠고 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빛나는 호수와 슬픈 백송과 햇빛이
내리쬐는 바위보다도 더 사랑스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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름이었다.
이 광활한 세계에 나보다 더 구름을 알고, 나보다 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든 내게 알려다오! 또한 이 세계에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거든 내게 보여다오! 구름은 오락이요 눈을 즐겁게 해주는 위안물이고,
구름은 축복이요 신이 준 선오피걸  오피방물이며, 구름은 분노요 죽음의 힘이다.
구름은 갓난애의 영혼처럼 연약하고 부드럽고 평화로우며, 구름은
고상한 천사처럼 아름답고 윤택하고 마음이 곱고, 또한 구름은 죽음의
사자처럼 험상궂고 피할 수 없고 용서가 없다. 구름은 엷게 둥둥 떠서
은빛을 띤 채 떠돌고, 구름은 금빛 테를 두른 흰돛처럼 순하게 달리며,
누렇고 붉고 엷은 푸른 빛을 띤 채 편히 쉰다. 구름은 자객처럼 사뿐사뿐
어둠에 스며들고, 구름은 달리는 기수처럼 고개를 숙이고 줄달음질치며,
구름은 우울한 고독자처럼 창공에 슬피 명상하며 떠 있다.
구름은 행복스런 섬의 모양을 할 때도 있고, 아름다운 천사의 모양을 할
때도 있으며, 구름은 사람을 해하려는 손 같고, 활짝 편 돛 같기도 하며,
훨훨 날으는 학도 같다. 구름은 거룩한 하늘과 가련한 지구 사이의 모든
인간에게 동경의 아름다운 상징처럼 더러운 혼을 거룩한 하늘로 인도하는
대지의 꿈처럼 떠돌고 있다.
구름은 모든 방랑과 탐구와 갈망과 향수의 영원한 상징이다. 그리고
구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수줍어하고 동경하며 굳세게 붙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 또한 시간과 영오피걸  오피방
오, 구름, 아름다우리만큼 쉬지 않고 방랑하는 자여! 나는 그때 철없는
소년이었었고, 그리고 구름을 사랑하고 쳐다보며 자랐다. 그러나 나 또한
구름처럼 방황하며 집착함이 없이 시간과 영원 사이에 떠돌며 인생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었다.
어릴 때부터 구름은 나의 사랑스런 여자친구였고 자매였다. 내가 길을
걸어갈 때면 우리는 어느새 서로 머리를 숙이어 인사하고, 잠시동안 눈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었다. 또한 나는 그때 구름에게서 배운 것, 즉 구름의
형태나 빛깔, 행동과 유희, 원무와 댄스, 휴식 그리고 기묘하리만큼
지상적이며 천국적인 이야기들을 잊을 수 없다.
특히 눈아가씨의 이야기는 잊을 수 없다. 이 이야기의 무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산이고, 때는 초겨울 따뜻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눈아가씨는 몇 사람의 시종을 거느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와
넓고 편편한 곳이나 넓은 산마루에 쉴 곳을 찾았다. 이때 아주 심술궂은
북동풍이 쉬고 있는 천진하기만 한 눈아가씨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더니
살그머니 탐을 내어 혓바닥을 날오피걸  오피방름거리며 산으로 불어올라와 갑자기
거세고 난폭하게 습격하였다. 북동풍은 눈아가씨에게 찢어진 검은 구름을
퍼부으며 조소하고 욕을 하여 쫓아버리려고 하였다. 눈아가씨는 잠시동안
불안해하였으나 꾹 참고 기다리며 의아스러운 듯이 머리를 여러 번
기웃거리고 나서는 비웃는 듯한 얼굴을 하고 고요히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리고 눈아가씨는 급히 떨고 있는 시녀들을 주위로 불러모아 놓고는
눈부신 듯한 얼굴에 위엄있는 표정을 나타내더니 갑자기 찬 손을 들어
괴물스런 바람에게 퇴거를 명하였다. 바람은 퇴거를 명하였다. 바람은
저주를 퍼부으며 소리를 지르고 도망갔다. 그리고 나서 눈아가씨는
조용히 옆으로 누워 창망한 안개 속으로 자리를 넓히며 몸을 감추었다.
그리고 안개가 개일 때에는 눈아가씨는 산의 편편한 곳과 산마루의 맑고
반짝이는 곳에 순수한 하얀 첫눈에 덮여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어떤 숭고함 같은, 어떤 미의 혼과 승리 같은 것이
담겨 있어, 그것이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고, 내 작은 마음을 어떤 기쁜
비밀을 가졌을 때처럼 감동시켰다.
얼마 안 되어, 내가 구름을 가까이하고, 구름 속에 들어가서 흩어진
구름떼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때가 있었오피걸  오피방다. 우리의 니미콘 마을이
그 밑에 놓여 있는 젠알프스 봉이라고 부르는 첫째 봉우리에 올라간 것은
내가 열살 되던 해였다. 그때에 나는 처음으로 산의 두려움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보았다. 얼음과 눈녹은 물이 넘쳐 흐르는 깊이 패인 계곡들,
푸른 유리 같은 빙하, 눈에 녹은 무서운 바윗돌, 그 위에 종처럼 높이
둥글게 열린 하늘을 보았다. 십 년 동안이나 산과 호수 사이에 끼여
살고, 겹겹이 둘러싼 가까운 산들 속에 갇히어 산 자는 자기 위에 크고
너른 하늘이 보이고, 앞으로는 끝없는 지평선이 벌어져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본 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법이다. 아래에서 익숙하게
보아오던 낭떠러지와 절벽이 올라가면서 내리누를 듯이 큰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압도되어 불안과 환호 속에서 갑자기 놀랄 만한
광활한 경치가 앞으로 다가서는 것을 보았다. 이토록 세계는 말할 수
없이 넓었던가! 밑에 보이는 우리 마을 전체는 그 중에서 다만 밝고 작은
한 점에 불과하였다. 지금 보니 골짜기 아래에서 봤을 때 서로 밀접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 봉우리들은 서로 몇 시간 걸려야 갈 수 있도록
멀리 떨어져 있었다.오피걸  오피방이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세계를 작은 눈으로 보아왔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조금도 확실하게 보아오지 못하였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가 보는 세계 밖에도 산이 있고, 산이 무너지고, 또한 소식이
벽촌인 우리 마을까지 올 수 없는 대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내 마음속에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아득히 먼곳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힘차게 떨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한 구름이 무한히 먼곳을 방황하고 있음을 앎으로써 비로소
구름의 아름다움과 우울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두 어른은 내가 잘 따라 올라온 것을 칭찬하고,
얼음같이 찬 산마루에서 잠시 쉬면서 내가 미칠 듯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껄껄 웃었다. 그러나 나는 딱 한 번 크게 경탄하고 나서 기쁨과 흥분으로
인하여 소처럼 큰 목소리로 맑은 대기를 향하여 높이높이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아름다움을 향하여 내가 최초로 부르짖은 나의 음절없는
노래였었다. 나는 세찬 메아리가 울려 올 것을 기대하였으나, 내
목소리는 약한 새소리 모양 고요한 산속으로 오피걸  오피방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몹시 부끄러워 가만히 서 있었다.
이날은 내 생애에 하나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그것은 그후부터
사건이 차례차례로 일어난 까닭이었다. 우선 나는 등산을 자주 다녔는데,
특히 아주 힘든 등산까지도 따라다니게 되어 가슴벅찬 쾌감을 맛보면서
산의 위대한 신비를 헤치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나는 염소를 지키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내가 언제나 염소를 몰고 가는 산기슭 한 곳에는 코발트
빛깔의 과남풀과 담홍색의 범의귀가 무성한, 무척 아늑한 장소가 있어
나는 그곳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였다. 그곳에서는 마을은 보이지
않았고, 호수도 바위 위로 멀리 가느다랗게 반짝이어 마치 허리띠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대신 꽃은 미소를 머금은 듯 신선한 빛으로 타는 듯이
펴고, 푸른 하늘은 뾰족한 설봉 위에 천막처럼 덮여 있고, 산양의
방울소리와 함께 그곳에서 멀지 않은 폭포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었다.
내가 그곳 양지 쪽에 누워 흰 구름이 가는 곳을 바라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염소들도 나의 게으름을 눈치채고 금지된 장난과
오피걸  오피방 하여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주일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나는
잃어버렸던 한 마리의 염소와 함께 낭떠러지에 떨어져 나의 게으른
천국생활에 신랄한 틈이 생기게 되었다. 염소는 죽었고, 나는 머리가
깨어졌으며, 뿐만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매를 호되게 맞고 가까스로
도망을 쳤으나, 그후 애걸복걸하여 다시 집으로 들어갔었다.
이러한 모험은 한 번 하고 다시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랬었더라면 이러한 소설은 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또한 그밖의
여러 가지 고생과 어리석은 일도 없이 평안하게 지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은 어느 이웃집 여자와 결혼을 했든가 아니면 어떤 외떨어진 빙하
속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을 앞으로 일어날
일과 비교해 보는 것은 내가 할바가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종종 웰스도에르프 수도원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편찮으셔서 못 가신다고 나에게 그곳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가지 않고 이웃집에서 종이와 펜을
빌려오피걸  오피방서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보내는 정중한 편지를 써서 심부름하는
여자에게 부탁하여 보내고 나서는 혼자 작정하고 산으로 갔었다.
다음 주일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거기에 신부 한 사람이 와 앉아서
편지를 잘 써보낸 장본인을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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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었다. 나는 약간 근심이
되었으나, 그는 나를 칭찬하며 나의 아버지에게 자기 곁에서 나를
공부시키게 하도록 권하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백부 콘라트는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시던 무렵이라 아버지의 의논을 부탁받았다. 백부는 물론
내가오피걸  오피방공부하고 또한 연구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찬성이었다. 끝내 아버지는 설복되셨다. 그리하여 내 장래는 불에 잘
견디는 빵 굽는 가마와 돛단배와 도한 그러한 여러 가지 그의 공상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백부의 계획의 하나가 되었다.
곧 맹렬한 공부가 시작되었고, 특히 러시아어, 성서 이야기, 식물, 지리
공부를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목에 대한 취미가 나중에 고향을 떠나 아름다운 청춘을
잃어버리게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성서 이야기에 나오는
유명한 인물을 앞뒤로 모두 왼다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으므로 내가
러시아어를 잘했다는 것만이 아버지가 나를 농부로 만드시지 못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현명한 아버지는 내 본성을 밑바닥까지 뚫어보시고는
어찌할 수 없는 나태함이 내 마음의 중심을 이루어 아주 주요한 부덕이
깃들어 있음을 아신 까닭이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일을 피해 산과
호수로 달려가거나, 산기슭에 숨어 누워서 책을 읽거나, 몽상에 잠기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하였다. 이런 것을 아시는 데서 아버지는 결국 농부로
만드오피걸  오피방시는 것을 단념하시고 공부하도록 놓아 주신 것이었다.
이 기회에 나의 부모에 대하여 간단하게 몇 마디만 하고 넘어가자면,
어머니는 이전에는 꽤 미인이었으나 지금은 다만 튼튼하신 체격과
부드러운 검은 눈 속에 그 자취가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키가 훨씬 크고, 대단히 힘이 세며, 또한 부지런하시고 조용하셨다.
아버지만큼 현명하시고 기력 또한 아버지보다 좋으셨으나 집안 일에
대해서는 아버지에게 모두 맡기셨다. 아버지는 중키에 손과 발은 가늘고
연약하였으며, 완고하고 빈틈없는 머리에 얼굴에는 잘 잡혔다 펴졌다 하는
잔주름살 이 잔뜩 있었다. 게다가 이마에는 세로로 짧은 주름살이 있어
눈썹이 움직일 때마다 그것이 흐려져서 꼭 근심에 싸인 얼굴처럼 보였다.
또한 그것은 무슨 대단히 중요한 일을 생각해내려고 하는데 그러시지
못하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실로 그에게서 우울한 점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아무도 그것에 주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우리
지방의 주민들 모두가 언제나 긴 겨울과 여러가지 위험과 궁핍한
생활투쟁과 세상과 동떨어져 사는데서 오는 가벼운 우울에 사로잡혀 있는
까닭이기도 했다.오피걸  오피방
양친에게서 나는 내 성질의 중요한 부분들을 물려받았다.
어머니로부터는 천성적인 처세의 재주와 약간의 신앙심과 말수가 적은
조용한 성품을 이어받았고, 이에 반하여 아버지로부터는 결단력이
부족하고, 돈을 처리하는 데 무능력하고, 술을 즐기며 많이 마시는 성품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술 마시는 맨 나중의 성품은 어린시절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었다. 표면상으로 나는 아버지에게서는 눈과 입을,
어머니에게선 정중하고 참을성있는 걸음걸이나 건강한 체격 그리고 질기고
힘찬 근육을 물려받았다. 아버지와 일반적인 우리 족속에게서 나는
나면서부터 농부들이 가지는 빈틈없는 이해력과 또한 음침한 성품과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한 데로 치우치는 성품을 이어받았다.
나는 오랫동안 타향의 낯선 사람들 틈에서 방랑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그러한 성질 대신에 약간 활달하고 줌 쾌활한 명랑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편이 훨씬 이로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러한 성품을오피걸  오피방 가지고 한 벌의 새로운 복장을 차려입은
나는 인생의 나그네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고향을 떠나서부터는 세상에서
혼자 살았기 때문에 양친에게서 받은 성품이 차차 증명되었다. 그러나
학문과 생활로써 보충할 수 없는 한 가지 결함이 내게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내가 이전처럼 산을 정복할 수 있고,
열 시간 동안 계속하여 걸을 수도 있고, 노를 저을 수도 있고, 필요하면
맨손으로 한 사람쯤 때려눕힐 수는 있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처세술에는 능하지 못한 까닭이다. 일찍부터 흙과 식물과 동물하고만
편벽되게 교제해 온 것이 나로 하여금 사회적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하였고, 그리고 지금도 내가 꿈꾸는 내용은 유감스럽게도 내가 얼마나
순수한 동물적인 생활에 애정을 느끼는가를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즉
나는 종종 동물, 대개는 물개가 되어 호숫가에 누워 있는 꿈을 꾸며,
그리고 거기에서 큰 기쁨을 느끼다가 깨어나서는 다시금 사람의 신분이
되어 있는 것에 기쁨과 자랑오피걸  오피방을 느끼기보다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흔히 있는 방법으로 어떤 고등학교에서 수업료를 면제받고
식비 또한 면제받으면서, 교육을 받은 후에는 언어학자가 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었다. 그렇게 쓸모없고, 권태를 주고,
또한 나에게 인연이 먼 학과는 정말 없었다.
학교시절은 비교적 빨리 지나갔었다. 격투와 수업을 하는 틈틈이
향수에 가득차는 때도 있었고, 대담한 미래의 꿈으로 가득찬 때도 있었고,
학문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며 숭배하는 심정으로 가득찬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나의 천성인 나태함이 종종 고개를 들어 여러가지
불평을 지니게 되었고, 벌을 서게 되었으며, 그리고 나서는 어떤 새로운
것에 다시 열중하곤 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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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리스어 선생이 말했다.
넌 고집쟁이에다 이상한 오피걸  오피방. 언젠가는 한번 그 고집 때문에
큰코 다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안경을 쓴 뚱뚱한 그를 바라다보고 설교를 들으며 우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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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게으른 데는 아주 천재야. 영점보다 더 아랫점수가 없는 것이
유감이지. 오늘의 네 성적은 -2.5다.
나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 그의 눈이 사팔뜨기인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대단히 지루한 선생이라고 생각했었다.
페터 카멘친트
하고 한번은 역사 선생이 말했다.
넌 좋은 학생은 아니야. 그러나 장차 훌륭한 역사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게으르긴 하지오피걸  오피방만 큰 일과 작은 일을 구별할 줄을 알거든.
이것 또한 나에게는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들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것은 선생님들은 지식의 소유자로
생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지식에 대하여 막연하게 큰 경의를
가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선생들 간에 내가 게으름뱅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되긴 했었으나, 어쨌든 나는 진급되었고, 석차는 중위권
이상이었다. 학교나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보잘것 없는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후에 계속될 것을 기다렸다. 나는
이러한 현재의 준비와 까다로운 일 뒤에 있는 순 정신적인 것, 의심할
나위 없이 확실하면서도 참다운 지식을 예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역사의 애매한 분쟁과 제민족의 싸움과 각 개인의 마음속의
불안한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욱
강하고 생생한 동경이 또 하나 있었다. 나는 실로 벗을 하나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오피걸  오피방
그때에 나보다 두 살 위로 갈색머리를 가진 착실한 카스파 하우리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착실하고 조용하였으며, 어른같이 엄숙하게
머리를 바로 들고 친구들과도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나는 몇 달 동안이나
대단히 존경하는 눈길로 그 애를 바라보았고, 한길에서는 그 애의 뒤를
따라가며 은근히 눈치채어 주기를 바랐다. 난 그 애가 인사하는 모든
애들과, 그 애가 출입하는 것을 보게 되는 모든 집에 대해서까지 질투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그 애보다 두 학급이 아래였었고, 또한 그 애는
동급생에게 대하여서도 이미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듯싶었다. 우리들
사이에선 말 한마디도 건네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 애 대신 병이 있는 한
작은 소년이 내가 별로 잘해 주는 것도 없는데 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어리고 수줍음 잘 타고, 이렇다 할 재주도 없었으나 애수에 찬
아름다운 눈과 용모를 지녔었다. 그는 병약하고 약간 곱사등이여서
동급생에게 여러 모로 놀림거오피걸  오피방리가 되었으므로 건강하고 세력있는 나를
보호자로 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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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중병에 걸려서 더이상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나는 그 애를오피걸  오피방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으므로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 반에 금발의 장난꾸러기가 있었다. 그는 요술쟁이요,
음악가요, 배우요, 어릿광대였다. 나는 무척 애를 써서 그와 친하게
되었다. 그 애는 키는 작았으나 쾌활했으며,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는데도
나에게 약간 보호자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한 친구를
가지게 되었다. 난 그 애의 방으로 찾아가서 함께 책을 몇 권 읽거나 그
애의 그리스어 숙제를 해주고, 그대신 그 애는 나의 산수공부를
도와주었다. 또한 우리들은 함께 산책도 했는데, 그때는 아마 곰과
족제비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애는 언제나 말을 잘하였고, 쾌활하고
재치가 있어 결코 당황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애의 말을 잘
듣는 자였고, 잘 웃었고, 그 애와 같은 쾌활한 친구를 가진 것을
기뻐하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우연히 오피걸  오피방난 이 작은 어릿광대가 학교 복도에 서서
몇 명의 친구들 앞에서 그 애가 잘하는 어릿광대짓을 멋들어지게 하는
꼴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바로 어느 선생의 흉내를 내고 난 후였는데
이번에는,
이것이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 큰소리로 호머의 시를 몇 구절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그대로 흉내내었다. 나의 머뭇머뭇하는 태도, 나의
애쓰며 읽는 모양, 나의 산골지방의 거친 발음, 또한 주의할 때에 언제나
짓는 얼굴표정, 눈을 깜빡깜빡 하거나 왼 눈을 감는 것 등 나 그대로였다.
그것은 여간 우습지 않았다. 그리고 대단히 재치있게 계속해서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그 애가 책을 덮고, 거기에 해당한 박수갈채를 받았을 때에, 나는 뒤로
그에게 달려가서 복수를 하였다. 적당한 말은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전신의 분개와 수치와 노여움오피걸  오피방을 뺨을 한 번 힘껏 때리는 것으로써
표시하였다. 곧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선생은 내 친구가 훌쩍훌쩍 울고
있고 뺨이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애는
그 선생이 몹시 사랑하는 애였다.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느냐?
저 카멘친트가요.
카멘친트, 앞으로 나와! 그게 정말이냐?
네.
저 애를 왜 때렸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랬느냐?
네.
이리하여 나는 심한 벌을 받으며, 죄없이 박해받는 자의 쾌감을 깊이
느꼈다. 그러나 나는 스토아 오피걸  오피방학파도 아니고 더군다나 성자도 아닌 한
학생에 불과하였으므로 벌을 받고 나자, 적을 향하여 될 수 있는 한 길게
혀는 쏙 내밀었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선생은 놀라서 내게로 달려왔다.
너는 부끄럽지도 않느냐? 그게 뭐하는 것이냐?
저기 저 자식은 비열한 자식이라서 비웃은 거예요. 그리고 또 저
자식은 비겁한 자식이에요.
이리하여 그 어릿광대 소년과의 교제는 끝나고 말았다. 그는 다시
친구를 가지지 못했고, 그리고 나 또한 수년 동안 단 한 삶의 친구도 없이
성숙기를 보내야만 했었다. 그후 나의 인생관과 인간관은 몇 번이나
변하였으나, 그 따귀를 갈긴 일을 회상할 때마다 대만족감이 일어나곤
하였다. 그 금발머리 소년도 그 일을 또한 잊지 않을 것이다.
열일곱 살 되던 때에 나는 어느 변호사의 딸을 사랑하였다. 그 소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내 생애에 있어 언제나 대단히 아름다운
여성들만을 사랑한 것에 대해오피걸  오피방 무척 자랑으로 생각한다. 그 소녀 때문에
그리고 그외의 다른 여성들 때문에 고민한 사실에 관해서는 뒤에 말하기로
하겠다. 그 소녀의 이름은 로에지 기르타네르였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서 지금도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때 나의 온몸에는 새로운 청춘의 힘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많이 싸웠었고, 그밖에 격투자, 테니스 선수, 육상선수, 보트
경주의 제일인자임을 자랑으로 여긴 반면에 늘 우울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연애 이야기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초봄의 달콤한
우울에 불과하였으나 그 우울은 무엇보다도 나를 강하게 붙잡았고, 따라서
나는 슬픈 상상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비관적인 상상을 즐겨하곤 했었다.
물론 염가판으로 된 하이네의 소곡집을 읽어 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것은
이미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공허한 시구 속에 나의 넘쳐흐르는
마음을 불어넣어 같이 번민하고, 같이 시를 짓고 그리고 정서적인 정열
속에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오피걸  오피방그것은 아마 셔츠를 입은 돼지처럼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순수문학 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레나우와 쉴러를 읽고, 그리고 나서 괴테,
셰익스피어를 읽음으로써 갑자기 문학이라는 엷은 환상이 위대한 신과
같은 괴물로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러한 책들 속에서 이때까지 지상에 없었던, 그러나 진실한 나의
감동된 마음속에 물결을 치며 그 운명이 체험되는 듯한 생명의 향기로운
서늘한 공기가 내게로 향하여 흘러들어 오는 것을 달콤한 전율로써 느끼는
것이었다. 내가 독서하는 곳인 조용한 고미다락방에서는, 다만 가까운
종탑에서 때를 알리는 종소리와 그 근처에 집을 짓고 있는 백조의 메마른
울음소리가 들릴 뿐이었으나, 괴테와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이 무시로 내
곁에 드나들었다. 나는 점점 인간 본성의 신성한 것과 우스꽝스러운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우리들의 분열된,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의 수수께끼와
세계사의 깊은 본질과, 또한 오피걸  오피방우리들의 짧은 생애를 정화시키며 인식의
힘을 통하여 우리들의 작은 실존을 필연과 연원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정신의 큰 비밀을 알게 되었다. 좁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면 지붕들과
좁은 가로 위로 태양이 빛나고, 노동과 일상생활의 혼잡에서 오는 작은
소음들이 이상하게 들려오며, 위대한 사람들의 정신으로 가득찬 내 방의
고독과 신비가 이상한 아름다운 동화처럼 나를 둘러싸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독서를 하면 할수록, 또 지붕과 가로와 일상생활을
내려다보고 감동하면 할수록 점점 내 마음속에는 나도 아마 위대한 시인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세계는 그 속에 있는
보물의 일부를 끌어내어 우연과 비속의 면사포를 벗기고, 발견된 것을
시인인 나의 힘으로 불멸하고 영원하게 만들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압박을 느끼며 떠오르는 것이었다.
조바심을 가지고 나는 시를 조금 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몇 권의
노트가 시와 초안과 단편으로오피걸  오피방 차여졌다. 그것들은 지금 없어졌거나 또는
거의 가치가 없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나에게 심장을 뛰게 하고
남모를 기쁨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러한 시를 쓰는 데 뒤이어
비평과 자기 반성을 하게 되었으나, 나는 최고 학년에 가서야 비로소
필연적인 최초의 큰 실망이오게 되었다. 나의 처녀작의 시들을
집어치우고 나의 글쓰는 것을 전반적으로 불신하기 시작하였을 때에, 나는
우연히 고트프리드 켈러의 작품 몇 권을 입수하여 두 번 세 번 읽게
되었다. 그러는 데서 나는 나의 미숙한 몽상이 얼마나 진실되고 준엄하고
진정한 예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갑자기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시와 단편을 불살라버리고, 괴로운 감정으로 냉정하고
슬프게 세상을 바라보았었다.
2. 연애에 관한 일을 말하자면 ― 그 점에 있어서 나는 일생동안
어린애에 불과했다. 내게 있어서 여자에의 사랑은 언제나 우울한 불꽃이
곧게 피어오르며, 기도의 손오피걸  오피방이 창공을 뻗치는 순결한 예배와도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로부터 타고난, 그리고 또한 나 자신의 막연한 감정에서
나는 여자를 전반적으로, 한갓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수수께끼 같은
족속으로서 타고난 미와 본성의 통일로 인하여 남성보다 나으며, 별과
푸른 산처럼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 신에게 가깝게 보이는 이유로
하여금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여야 할 족속으로서 존경하였다. 그러나
거친 삶이 많은 겨자를 거기에 치는 데서 여자에 대한 사랑은 감미로운
동시에 괴로운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즉, 여자는 여전히 높은 자리에
서 있으나 기도하는 사제의 엄숙한 것이 어릿광대의 괴롭고
우스꽝스러움으로 손쉽게 변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나는 매일 식사하러 갈 때마다 로에지 기르타네르를 만났다. 몸이
탄력있고 날씬한 17살의 소녀였다. 갈색을 띤 갸름하면서도 신선한
얼굴에는 조용하면서도 윤기가 도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소녀의
어머니도 그러했고, 조모와 오피걸  오피방증조모도 그러했다. 이 축복받은 전통있는
고귀한 가문에서는 대대로 많은 미인이 계속해서 배출되었다. 모두
조용하고 귀족적이며, 생생하고 고귀하고 흠없는 미의 소유자였다.
16세기에 어떤 무명화가가 그린 푹게르 씨 집안의 소녀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런데 기르타네르
씨 집안의 부인들은 그 그림과 비슷하였었고, 또한 로에지도 그러하였다.
물론 그때에는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었다. 나는 다만
그 소녀가 조용하면서도 고상한 태도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소박한
성질을 가진 우아한 점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저녁이 되면
나는 생각에 잠겨 그 소녀의 모습을 뚜렷이 눈앞에 그리며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 감미로운 그윽한 전율이 소년인 나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기쁨의 순간은 흐려지고 쓴 괴로움이 엄습하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그 소오피걸  오피방녀는 남이며 나를 모를 뿐 아니라 나에 관해
묻는 일도 없고,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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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그렇게 예민하고 괴롭게 느끼면
느낄수록 눈앞에 그 소녀의 모습이 언제나 사실처럼 생생하게 나타나 내
심장에는 검푸르고 뜨거운 파도가 넘쳐흐르며, 맥박의 말초신경에
이르기까지 이상하게도 따끔따끔 아파오는 것이었다.
한낮의 수업시간중에 또는 막 싸울 때에도 이 물결이 다시 일곤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눈을 감고 팔을 늘어뜨리고 따뜻한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가다가, 선생이 부르든가 아니면 친구의 주먹에 한 대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곤 하였다. 친구들을 피하여 밖으로 뛰어나가 이상한 꿈을
꾸는 듯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갑자기 모든 것이 아름답게
빛나 보이고, 빛과 호흡이 오피걸  오피방 흘러들어 강은 밝은 푸른 빛을 띠며,
지붕은 붉고 산은 푸르러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위의
아름다움도 나의 기분을 말끔히 씻어 주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조용하고도 슬프게 그 아름다움을 맛보았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나에겐 상관없고 인연이 먼 것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나의
막연한 생각은 다시금 로에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만일 이
시간에 죽는다면 그 소녀는 알지도 못할 테지. 그것에 대하여 물어보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리라!
그러나 그 소녀는 내 마음을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소녀를
위하여 깜짝 놀랄 일을 하고 싶었다. 또한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도
모르게 선물을 하나 보내고도 싶었다.
사실 나는 그 소녀를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마침 짧은 휴가를
받아 나는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을 로에지에게 바칠
생각으로 매일 여러 가지 힘오피걸  오피방든 일을 했다. 험한 산봉우리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호수 위를 작은 배를 타고 돌아와서 목이
타고 배가 고파도 밤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견디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로에지 기르타네르를 위해서였다. 나는
그 소녀의 이름과 칭찬을 멀리 떨어진 산등성이와 사람이 가보지 못한
계곡에까지 가지고 갔다.
동시에 교실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의 소년시절은 이러한 일로 인하여
흐뭇한 쾌감을 느꼈었다. 나의 양쪽 어깨는 떡 벌어졌고, 얼굴과
목덜미는 햇볕에 갈색으로 그을렸고, 근육은 모두 발육되어 단단해졌다.
휴가가 끝나는 전날, 나는 애써 얻은 꽃을 내 사랑에 바쳤다. 나는
유혹적인 여러 산허리에 있는 허리띠처럼 좁은 흙 위에 은설초가 서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 향기도 빛깔도 없는 병적인 은빛 꽃은 내게는
넋이 없는 것 같아서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몇
군데 여기저기 한 송이 두 송이 피어 있는 오피걸  오피방알프스의 들장미를 알고
있었다. 낭떠러지 바위틈에 여기저기 흩어져 피어 있어 매우 꺾기 힘든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렇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청춘과
사랑에는 불가능한 게 없으므로 나는 손등을 찢기며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위험한 곳에 있었으므로 환성을 지를
수는 없었으나, 조심조심 억센 가지를 꺾어 그것을 손에 잡았을 때는
심장은 뛰었고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꽃을 입에 물고 뒷걸음질하여
내려와야 했다. 나는 그만큼 대담한 소년이었으나 내가 어떻게 해서 절벽
밑까지 내려왔는지는 하느님밖에 모를 일이었다. 산 전체에 알프스
들장미꽃이 피는 계절은 벌써 지나서, 내가 꺾은 것은 그해 마지막으로
봉오리를 피우고 있는 들장미였었다.
그 이튿날 고향을 떠나고 무려 다섯 시간 동안이나 나는 그 꽃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처음에 내 심장은 아름다운 로에지가 있는 거리를
향하여 힘차게 뛰었으나, 높은 산들이 멀어오피걸  오피방지는 데 따라 나의 향토적인
사랑도 위로 점점 사라져 갔다. 그때의 기차여행을 나는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젠알프스 봉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톱날같은 그 앞의
산들 또한 멀어지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엷은 우수를 띠고 내 마음에서
떠나갔다. 이윽고 고향의 산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지고, 너르고 낮으며
옅고 푸른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첫번째 여행은 나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치 형벌을 받아 평지로 평지로
하염없이 떠나감으로써 고향의 산들과 시민권마저 영원히 잃어버린 채
다시 찾을 수 없을 듯한 불안과 동요와 비애에 사로잡혔다. 동시에 내
눈앞에는 아름답고 가냘프며 분노와 비통에 싸여 숨이 끊어질 듯하게
만드는, 냉정하고 무관심한 어여쁜 로에지의 얼굴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뾰족하게 높이 솟은 탑들과 흰 지붕이 행복스러워 보이는
깨끗한 마을들이 연달아 창을 스쳐 지나가고, 사람들은 오르내리며,
말하며, 인사하며, 웃으며 혹은 담배를 오피걸  오피방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재치있고 싹싹하고 세련된 평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산골의 평범한 젊은이인 나는 묵묵히 쓸쓸한 모습으로 심술궂게 속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이미 향토에 있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영원히 산에서
떠나버렸으나, 평지 사람들처럼 쾌활하고 재치있고 원만하며 자신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런 사람이 늘 나를 비웃고,
언젠가는 기르타네르와 결혼할 것이며, 또한 나를 언제나 방해하고,
나보다 한 걸음 앞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는 거리에 도착했다. 먼저 인사를 하고
고미다락방으로 올라가 나의 상자를 열고 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좋은 종이가 아니었다. 나는 거기에다 알프스의 들장미를 올려
놓고 집에서 가져온 노끈으로 정성들여 묶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랑의 선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진실한 마음으로 그것을 들고
기르타네르 변호사가 사는 집으로 갔다. 그오피걸  오피방리고는 가장 좋은 틈을 타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 저녁 어두컴컴한 현관에서 잠시 주위를 살피고
나서는 그 모양없고 볼품없는 꾸러미를 넓고 훌륭한 층계 위에 가만히
내려 놓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로에지가 과연 이것을 보았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집 층계에다 들장미 한 송이를 놓기 위해
절벽을 기어올라가는데 내 생명을 걸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쾌감과
비애와 시가 들어있어 나는 기쁘게 그 일을 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일에
쾌감을 느끼고 있다. 가끔 이 장미의 모험은 다만 모욕적인 때에만
그후의 내 연애사건과 마찬가지로 한 동키호테식 모험이었다고 느껴졌다.
이러한 나의 첫사랑은 끝맺음이 없이 의문을 가진 채 아직 미해결의
문제로 나의 청춘 속에 자취를 감춤으로써, 어느 조용한 누님 같은
모습으로 그후의 나의 사랑에 보조를 나란히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조용한 눈동자를 가오피걸  오피방졌던 그 명문 가정의 소녀보다 더 고상하고 순진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후 여러 해가 지나 뮌헨의 어떤
역사 전람회에서 저 이름도 없는, 이상하게도 사랑스러운 푹게르 가정의
딸의 초상화를 보았을 때에, 내 앞에는 열광적이고도 슬펐던 나의 온
청춘시대가 나타나서 말할 수 없는 깊은 눈으로 꿈을 꾸는 듯이 나를
바다라보는 것 같았다.
이러는 동안에 나는 점점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고 완전히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때에 찍은 나의 사진은 허름한 학생복을 입었고, 골격이 우뚝
나오고, 키가 크게 자란 시골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은 약간
피로해 보이고, 손발은 아직 성숙되지 않아 균형이 잡히지 못한 채로
있고, 다만 머리만이 약간 조숙하여 굳어진 것처럼 보였었다. 나는
한편으로 놀라면서 소년의 티를 벗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고, 막연한
즐거운 기대를 가지고 대학생활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취리히 대학에오피걸  오피방서 공부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성적이 특히 우수한
경우에는 연구 시찰도 하게 될 것이라고 나의 보호자들은 말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기대는 나에게 하나의 아름다운 고전적인 그림처럼 보였다.
나는 호머와 플라톤의 흉상이 있는 엄숙한 친밀감을 주는 정자 속에 앉아
허리를 굽혀 책을 읽고 있고, 사방으로는 넓고 밝은 거리, 호수, 산
그리고 아름다운 원경이 보이는 그러한 그림처럼 보였다. 내 마음은 좀더
냉정해졌고, 좀더 활기를 띠어 꼭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행복을 기뻐하고 있었다.
최고 학년이 되어 나는 이탈리아어 공부를 했고, 또한 고전작가들의
단편을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에 관한 근본적인 연구는
취리히 대학에 입학한 후 한 학기 초의 좋은 연구과제로서 보류해
두었었다. 급기야는 선생님들과 하숙집 주인과 작별할 날이 왔다. 나는
작은 상자에 짐을 싸서 못질을 한 후 섭섭하나 한편으로 즐거운 기분으로
작별인사를 하며 로오피걸  오피방에지의 집 근처를 서성거렸다.
이번 휴가는 나에게 인생의 쓴맛을 처음으로 알게 해 주었고, 내
아름다운 꿈의 날개를 어느새 갈갈이 찢어 놓았다. 먼저 나는 어머니가
앓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서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내가 돌아왔다고 해서 반가워하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나는 별로 불평은 하지 않았으나, 나의 기쁨과 청년다운 자랑을
거들떠보지 않는 데에는 무척 섭섭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가는 데는 아무 반대도 하지 않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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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히셨다. 적은 장학금으로 불충분할 때에는 필요한 만큼 스스로 벌어야
할 것이며, 지금 내 나이 때 아버지는 벌써 자기가 직접 벌어 쓰셨다는
등의 말씀을 하셨다.
이번에는 산책도, 노를 젓는 일도, 등산도 그리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집과 들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해야 했었고, 그나마 반나절 쉴 때에는
아무런 흥미도, 책을 읽으려는 흥미조차 일지 않은 까닭이었다. 평범한
일상생활이 입을 크게 열고 자기의 권리를 요구하며, 내가 가지고 온
원기와 자부심 등을 모두 삼켜버리는 것을 보는 것은 화가 나며 피로를
느끼게 하였다. 아버지는 돈 문제에 대해 한 번 말씀하신 후에는 여전히
무뚝뚝하시고 말이 없으셨으나, 그렇다고 불친절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오피걸  오피방 대해 어떤 기쁨도 느끼지 못하였다. 또한 나의 학교
교육과 책들이 아버지 마음에 남모르게 반경멸적인 존경을 일으키게 한
것도 나를 괴롭히고 슬프게 하였다. 그럴 때에 나는 종종 로에지를
생각했고, 또한 나같이 농촌에서 자라난 녀석은 다시 세상 에 나가서
착실하고 재치있는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완고하고 좋지 못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대로 남아 빈약한 향토생활의 음산한
압력 속에서 러시아어며 희망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며칠을 두고 생각하였다. 괴롭고 우울한 기분으로 이리저리 근방을
헤매였고, 앓고 계신 어머니의 병상 곁에서도 아무 위안이나 휴식을 찾기
못했다. 저 호머의 흉상이 있는 정자의 광경이 조소하듯 다시 나타나서,
나는 그것을 부서버리고 나의 일그러진 성질이 지닌 분노와 적의를 그것에
퍼부었다. 몇 주일이 견딜 수 없이 길었고, 이 분노와 분열과 실망의
기간에 나는 온 청춘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인생이 나의 행복스럽던 몽상을 한오피걸  오피방순간에 송두리째 부서버린 것에
대해 놀랐고 또한 화가 났으나, 한편으로는 현재의 고통 속에 그렇게 빨리
강한 정복자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은
지금까지 잿빛의 일상생활의 측면을 나에게 보여 주었으나 갑자기 영원한
깊이를 가진 것으로서 눈앞에 나타나 단순하나마 나의 청춘에 힘찬 경험을
갖게 하였다.
어떤 무더운 여름, 새벽에 나는 목이 말라 침대에서 일어나 언제나
찬물이 든 물통이 있는 부엌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래서 양친의 침실을
지나가야 했었는데, 그때 나는 어머니의 이상한 신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침대로 가까이 갔으나 어머니를 나를 보지도 않으신 채
아무 대답도 없이, 다만 풀이 죽은 모양으로 불안에 싸여 눈을 부르르
떨면서 창백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나는 좀 불안스러웠으나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음에 나는 이불 속에 고요히 잠들고 있는
자매와 같이 가지런히 놓여진 어머니의 양손을 보았다. 그 손에서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려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그 손이 살아 있는
사람의 손 같지 않고, 이미 묘하게 피로하여 생기를 오피걸  오피방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목마른 것도 잊어버리고 어머니 침상 옆에 꿇어앉아
어머니의 이마 위에 손을 얹고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이
나를 보았을 때에 그 눈은 부드럽고 아무 고통도 없어 보였으나, 여전히
빛을 잃고 계셨다. 나는 그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쿨쿨 주무시고
계시는 아버지를 깨워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렇게 거의 두 시간
동안을 꿇어앉아 죽음을 이겨내고 계시는 어머니를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조용하고 엄숙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참으심으로써
나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셨다.
방은 고요했고, 떠오르는 새날의 밝은 기운이 점점 가득찼다. 집도
마을도 아직 잠들어 있어, 나는 마음속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영혼을 좇아
집을 지나고, 마을을 넘고, 호수와 눈 쌓인 산을 넘어, 멀리 맑은
아침하늘로 서늘한 자유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나는 거의
고통을 잊었다. 그것은 커오피걸  오피방다란 수수께끼가 풀리며, 생명의 고리가 가만히
떨리며 닫히는 모양을 볼 수 있었던 경이와 두려움이 마음에 가득찼던
까닭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탄식없는 용감성은 또한 대단히 숭고하여
그 준엄한 영광에서 차고 맑은 한줄기 빛이 내 마음속으로 비춰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주무시는 것도, 신부가 와 있지 않은 것도,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올려 돌아가시는 영혼을 정화시켜야 하는 것도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는 다만 영원으로 식어가는 호흡이 점점
밝아오는 방안에 넘쳐서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눈은 이미 빛을 잃고 있었으나, 최후의 순간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의 싸늘하게 다문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러자 나는 그 접촉에서
이상하게도 싸늘함을 느껴 갑자기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서 서서히 주저하면서 큰 눈물방울이 뺨과 턱과 손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아버지가 눈을 뜨시고 내가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더니,
잠이 덜 깬 오피걸  오피방목소리로 웬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답하려 하였으나
아무말도 못하고 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돌아와 꿈을 꾸는 듯이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옷을 주워 입었다. 그러자 아버지 내게로 오셨다.
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넌 알고 있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를 깨우지 않았느냐? 그리고 신부님도 안 모셔오고! 참
넌······
하고 막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그러자 내 머리는 혈관이 터질 듯이 아파왔다. 나는 아버지 앞으로
가서 아버지의 양손을 꽉 잡고 ― 힘에 있어서는 아버지는 나에 비하면
어린애였다 ―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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셨다. 둘이 함께 어머니 있는 곳으로 갔을
때에, 죽음의 힘은 아버지를 꽉 붙잡아 아버지의 얼굴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엄숙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는 시체 위에
엎드리시고는 어린애처럼, 또한 새처럼 높고 약한 소리로 울기
시작하셨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을
알렸다. 그들은 내 말을 듣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다만 내 손을
붙들고 우리의 집안 일을 돕겠다고 했다. 한 사람은 신부를 모시러
수도원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이미 이웃여자 한 사람이 와서
외양간에 들어가 소를 오피걸  오피방돌봐주고 있었다.
신부가 오고, 마을의 부인들이 총출동하여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으므로 관까지도 우리의 손을 거치지 않고 준비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곤란한 경우엔 고향땅의 인정많은 작은 마을에 속해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후일에 나는 이것을 좀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을 것이다.
관이 축복을 받으며 매장되고 서럽도록 유행이 지난, 털이 부스스한
실크핼의 모자들이 자취를 감추고, 또한 아버지의 것과 다른 사람의
것들이 모두 각각 모자곽이나 의장 속에 치워지자 불쌍한 아버지는 갑자기
기가 푹 죽으셨다. 그는 갑자기 자기자신을 동정하기 시작하여 아내를
잃고, 게다가 또다시 자식을 멀리 타향으로 떠나보내게 된 자기의 비참한
심정을 거의 성경을 읽는 듯한 묘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끝이
없었고, 나는 그말을 듣고 두려워져서 집에 그냥 남아 있겠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올 오피걸  오피방.
그렇게 대답하려던 순간에 묘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갑자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고 원하고 동경하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홀연히 열린
내 마음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는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생각했다. 나는 열풍이
부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먼 호수와 언덕이 남국의 빛을 띠고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총명한 얼굴을 한 사람들과 아름답고 기품있는 부인들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고, 길이 뻗쳐 있고, 알프스를 넘어가는 고개와
기차들이 각국을 통하여 달리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이 동시에, 그러나
하나하나가 분명히 보였고, 그 뒤에 아득히 먼 지평선이 있어 흘러가는
빠른 구름에 스치고 있었다. 연구, 창작, 관조, 방랑, 그밖의 풍부한
생활이 은빛으로 빛나며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다시금 소년시절
때처럼 마음속에 광활한 세계를 향하여 무언가가 무의식적으로 힘차게
전율하고 있었다.오피걸  오피방
나는 입을 다물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대로 내버려둔 채 다만 꾹 참으며
아버지의 분노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아버지의 분노는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나는 아버지께 대학에서 공부하여
정신계에서 내 미래의 고향을 찾을 것이며, 또한 아버지에게 아무 원조도
바라지 않는다는 나의 굳은 결심을 분명히 말하였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더이상 나무라지 않으시고 울상를 하신 채 고개를 저으시며 나를 바라보실
뿐이었다. 그것은 아버지 또한 지금부터는 내가 나의 길을 걸을 것이고,
그의 생활에서 곧 아주 떠나버릴 것을 아신 까닭이었다.
오늘날 이렇게 글을 쓰며 그날의 회상하니 그날 저녁 의자에 앉아서
창가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날카롭고 지혜로운
농부의 머리가 가는 목위에 놓여 있고, 짧은 머리는 백발이 되기
시작했으며, 위엄이 굳어진 얼굴에는 고뇌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노령이 완고한 남성적인 것과오피걸  오피방어우러져 싸우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하여 그리고 당시 내가 집에 머물러 있던 일에 대하여 작인
일이나마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것이 남아 있다. 내가 출발하기 바로 전
주일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모자를 쓰시더니 문의 손잡이를 잡으며
외출하려 하셨다.
어디 가시려고요?
나는 물었다.
그래. 왜 그러냐?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상관없으시면 말씀해 주셔도 좋지 않아요?
이렇게 나는 말하였다.
그때 아버지는 웃으시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와도 좋다, 너도 이젠 다 컸으니까.
그리하여 아버지를 따라 나도오피걸  오피방 술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몇 명의 농부가
할라우 주 병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고, 다른 마을에 사는 마차꾼 두 명이
아브산 주를 마시고 있었으며, 한 테이블에는 젊은 패들이 가득 앉아
노름을 하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포도주를 한 잔씩 마시기는 하였으나 필요없이 술집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주정뱅이라는 것은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량도 많으시고 또한 잘 마시셨다.
그렇다고 집안 일을 등한히 여기시는 것은 아니었으나, 집 형편은 항상
어려워 절망적일 만큼 궁핍에 빠졌었다. 그런데 지금 주인과 손님들이
아버지에게 표시하는 존경의 정도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아버지는
버트런드 주를 한 릿트르 주문하여 가져오게 한 후, 나에게 따르라고
명하시고는 따르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먼저 나직하게 따르기 시작하여
그 다음에 나오는 술은 좀 길어지게 따르고 끝에 가서 다시 병을 한껏
낮추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오피걸  오피방그리고 나서 도시로 갔을 때나 혹은
이탈리아로 갔을 때 우연한 기회에 맛보셨었던 여러 가지 술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는 술을 세 종류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대단히
존경스러운 태도로 새빨간 벨틀린 주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낮고 힘찬
목소리로 어떤 병에 넣은 버트런드 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다. 나중에는
거의 속삭이듯이 그리고 동화를 말하는 사람의 표정을 지으면서 노이샤텔
주 이야기를 하셨다. 이 술은 아주 잘된 것은 잔에 따를 때는 거품이 별
모양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집게손가락에 술을 찍어서
테이블 위에 별을 그려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아직 마셔보진
못하였으나 한 병이면 두 사람이 녹초가 되어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샴페인의 성질과 맛에 관하여 엄청난 추측을 하시는 것이었다.
묵묵히 생각에 잠기듯이 아버지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셨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담배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아시고 여송연을 사라고 10라펜을
주셨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오피걸  오피방마주앉아 서로 얼굴에 연기를 끼얹으며
천천히 마신 술이 어느새 한 릿트르의 술을 다 마셔버렸다. 노란 빛깔의
자극적인 버트런드 주는 대단히 맛이 좋았다. 옆에 앉았던 농부들은 점점
말참견을 하기 시작하더니, 하나하나 기침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우리에게로 자리를 옮겨왔다. 곧 내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나의 등산가로서의 평판이 아직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대담한 등산과 난폭한 하산에 관한 이야기가
신비적인 안개에 싸여 꽃이 피며 반박도 되고 옹호도 되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벌써 또 한 릿트르의 술을 다 마셨으므로 나의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 성질과는 아주 반대로 음성을
높여서 자랑하기 시작했다. 로에지 기르타네르를 위하여 대담하게
젠알프스 꼭대기 절벽 위에 올라가서 알프스 들장미를 꺾어 온 이야기까지
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기에 나는 단언하였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그저 웃기만 오피걸  오피방. 나는 무척 화가 났다. 나는 내 말을
믿지 않는 자에게 싸움을 걸었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때려 눕히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때 허리가 굽은 한 늙은 노인이 안으로
들어가서 큰 사기 술병을 가지고 나오더니 그것을 테이블 위에 눕혀
놓았다.
왠지 알겠나?
그는 웃었다.
자네가 그렇게 힘이 세거든 이 병을 주먹으로 쳐서 깨뜨려 보게.
깨뜨리면 우리가 병에 들어갈 만큼의 술을 사겠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자네가 술값을 치러야 하네.
아버지는 그 말에 곧 동의하셨다. 따라서 나는 일어서서 손에 손수건을
감고 내리쳤다. 첫번 두 대에는 아무 효과가 없었으나 이윽고 세번째에
병은 깨어지고 말았다.
하하하, 술값을 물게나.오피걸  오피방
아버지는 고함을 치시며 기쁨에 차서 얼굴이 빛나셨다.
노인은 알았다는 듯이 종아 하고 말했다.
그 병에 들어갈 만큼의 술을 사지. 그러나 많이는 못들 것일세.
물론 깨진 병이라 반 릿트르도 채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손이
아팠고 게다가 조소까지 받았다. 아버지 또한 지금은 나를 보고
웃으셨다.
자, 이젠 당신이 이겼소.
나는 소리를 지르며, 병을 들어 깨진 조각에다가 술을 가득 따른 후
그것을 노인의 머리 위에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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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우리가 다시 승리자가
되어 손님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런 지나친 장난이 좀더 계속되었다. 나중에 아버지는 나를 집으로
끌고 가셨다. 집에 가서도 그대로 기분이 나빠서 욕을 해대며, 어머니의
관이 놓였던 지 아직 삼주일도 못된 방을 소란스럽게 지나갔다. 그날 밤
나는 죽은 듯이 잤는데도 그 이튿날 아침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기운이 나셔서 나를 놀리며 명랑해 하셨고, 확실히 자기의
우월성을 기뻐하고 계셨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는 과음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하고, 오로지 집을 떠나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그날이 와서 나는 출발하오피걸  오피방였으나 그 맹세는 지켜지지 못하였다. 그
이후 나는 노란 버트런드 주, 새빨간 벨틀린 주, 노이엔브르그의 별표주,
그밖에 많은 술과 친하게 되었고, 술의 좋은 벗이 되었다.
3. 고향의 무미건조하고 억누르는 듯한 공기에서 벗어나, 나는 기쁨과
자유의 커다란 날개를 활짝 폈다.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내 생활은 실패의
연속이었으나, 그러면서도 청춘시절의 특유한 공상적인 즐거움을 풍부하고
순수하게 맛보았었다. 꽃피는 숲기슭에 쉬고 있는 젊은 무사처럼 싸움과
희롱 사이의 즐거운 불안 속에 살았었고, 또한 예언자처럼 커다란 격류와
폭풍의 소리를 들으며 온갖 사물의 공명과 모든 생명의 조화를 듣기 위해
어두운 심연가에 서기도 했었다. 청춘의 넘쳐흐르는 잔을 마음껏
행복스럽게 마시기도 했고, 아름답고 수줍은 내 존경하는 여성으로 인해
남모르게 달콤한 괴로움도 겪었고, 또한 남성적이고 명랑하고 순진한
우정의 기품있는 젊은 행복을 근본적으로 맛보기도 했었다.
이제 나는 양피옷을 입고 책오피걸  오피방과 그밖의 것으로 가득찬 작은 트렁크를
들고, 한 세계를 정복하여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고향의 무골충(줏대가
없이 무른 사람을 욕으로 이르는 말)들에게 나는 다른 카멘친트들과는
재목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스스로 결심하며 거리에 도착했다. 3년
동안 난 멀리까지도 조망이 좋고 바람도 잘 통하는 고미다락방에 하숙하며
공부도 하고, 시도 짓고, 동경하며,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따듯한
친밀감을 갖고 나를 감싸주는 것을 느꼈다. 매일 더운 음식을 먹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매일 매밤 매시간을 강렬한 기쁨에 차서 노래하며 웃으며
울며 지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인생을 열렬히 동경하며 포옹했었다.
취리히는 백면서생인 페터라는 내가 본 최초의 큰 도시였다. 그리고
나는 몇 주일 동안이나 구경거리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곤 했었다. 나는
특별히 도시생활을 찬미하거나 선망하지는 않았었다. 그것은 내가
농부였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 거리와 집들과 사람들의 모양을
보고 즐겼었다. 나는 차가 왕래하는 거리며, 부두, 광장, 공원, 고층
건물, 교회 등을 구경하고, 또한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터로 떼를 지어
가고, 학생들이 걸어가고, 고귀한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가고, 멋쟁이들이
어깨를 버티고 다니며, 외국인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근대적이고
우아한 부잣집 부인들은 양계원의 공작처럼 어여쁘고 사랑스러웠으나 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나는 본래 수줍은 편은 아니었으나 강직하고
고집이 세어 도시의 이런 활기찬 생활에 근본적으로 익숙해져서, 훗날
자신이 그 속에 확고한 지위를 오피걸  오피방발견하게 되기에는 내가 너무나도
촌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름답고 젊은 청년이 내게 나타났다. 그는 나와 오피걸  오피방함께 이 도시에서
공부하며 내가 묵고 있는 하숙집 이층에 아담한 방 두 개를 빌려 살고
있는 청년이었다. 나는 매일 나의 방 아래층에서 그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가장 여성적이고 오피걸  오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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