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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아니었다. 온통 비난이었다. 그 모든 것
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고 나는 그러한 명랑함과 고요함에 끼어들 수가 없었
다. 나는 내 구두에다 더러움을 뭍혀왔다. 발깔개에 문질러 닦아낼 수 없는 더러
움이었다. 고향의 세계는 알지 못하는 그림자를 나는 끌고 왔던 것이다. 이제까
지 얼마나 많은 비밀과 두려움을 가졌던가.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내가 오늘 이
공간으로 끌고 온 것에 비하면 놀이이 섹밤  가까오떡 고 장난이었다. 운명이 뒤쫓아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알아 섹밤  가까오떡 서는 안 되는 손들이, 그 앞에서는 어머니도 나를 보호할 수 없는
손들이 나에게로 뻗쳐오고 있었다. 이제 내 범행이 절도였든 거짓말이었든(나는
하느님과 목숨을 걸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나의
죄악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었다. 나의 죄악은 내가 악마에게 손을 내밀었
다는 사실 자체였다. 왜 나는 함께 갔던가? 왜 나는 일찍이 아버지 말에 귀기울
인 것보다 더 크로머의 말에 귀를  섹밤  가까오떡 기울였던가? 왜 나는 저 도둑질 이야기를 지
어내고 영웅적 행위라도 되는 양 범행을 뽐냈을까? 이제 악마가 내 손을 잡았
다. 이제 적이 나를 뒤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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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나는 더 이상 내일의 공포를 느낀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나의 길이
이제 점점 더 비탈로, 암흑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무서운 확신을 느꼈다.
나는 똑똑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나의 잘못에 이제 새로운 잘못들이 뒤이어질
게 틀림없다는 것, 누이들 곁에 내가 나타나고, 부모님께 인사하고 키스하는 것
이 거짓이라는 것, 나만이 아는 운명과 비밀 하나를 지니게 되리라는 것을.
아버지의 모자를 보자 한순간 신뢰와 희망이 내 마음속에서 번쩍 떠올랐다.
아버지께 모든 이야기를 하리라. 아버지의 판결과 아버지의 처벌을 바아들이고
아버지를 내 비밀의 공유자이자 구원자로 만들리라. 그것은 내가 자주 감내해
냈던 참회 하나에 불과하리라. 힘들고, 가혹한 시간, 힘들고 후회에 찬 용서를
구함에 불과하리라.
이런 생각은 얼마나 달콤하게 들렸던가? 얼마나 아름답게 유혹했던가! 그러나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내가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엇다. 내
가 지금 하나의 비밀을, 하나의 죄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나 혼자 스스로 삼
켜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바로 지금 갈림길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이 시각부터는 영원히 나쁜 것에 소속되고, 나쁜 사람들과
비밀을 공유하고, 그들에게 종속되고, 그들에게 복종하고, 분명 그들 같은 사람
이 되리라. 잠시 어 섹밤  가까오떡 른 행세를, 영웅의 연기를 했었다. 이제 나는 그 결과를 감당
해야 했다.
내가 방으로 들어섰 섹밤  가까오떡 을 때, 아버지께서 내 젖은 구두만 보신 것이 나에게는 다
행이었다. 그것이 관심을 돌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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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는 더 나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셨다. 그 정도 비난은 견딜 만했다. 그
비난을 나는 남몰래 다른 것과 연관시켰다. 그 비난을 나는 남몰래 다른 것과
연관시켰다. 그때 마음속에서 이상하게도 새로운 느낌 하나가 불꽃처럼 번득였
다. 뽑히지 않는 미늘들이 가득 박힌 듯한 날카롭고 불길한 느낌이었다. 나는 내
가 아버지보다 우월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한순간, 아버지의 무지에 대해 약간의
경멸을 느꼈던 것이다. 젖은 장화에 대한 비난은 내게는 소소해 보였다. <아버
지가 아신다면!> 하고 나는 생각했는데, 살인죄를 고백해야 되는 판에, 조그만
빵 하나를 훔친 죄로 심문을 받는 범죄자처럼 내 자신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것
은 추악하고도 꺼림직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강렬했으며 깊은 매력을 지니고 있
었다. 그 느낌은 그 어떤 다른 생각보다도 더 단단하게 내 비밀과 죄에 나를 결
박하였다. 어쩌면 지금쯤 그 크로머 녀석은 벌써 경찰한테로 가서 내 이름을 댔
겠지. 천둥 번개가 이제 내 머리 위로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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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반쯤 내리깐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다시 웃었다.
「그렇게 멍청하게 굴지 마!」 그는 선심이라도 쓰듯 말했다. 「너도 나처럼
훤히 알잖아. 난 이 마르크를 벌수 있어. 그리고 난 그런 돈울 내던져버릴 수 있
는 부자가 아니고 말이야. 그건 너도 알지. 그런데 넌 부자야. 시계도 있잖아. 넌
나한테 이 마르크를 주기만 하면 돼. 그럼 끝이지」
나는 그 논리를  섹밤  가까오떡 . 그러나 이 마르크라니! 이 마르크란 나한테는 심 마
르크, 백 마르크, 천 마르크나 마찬가지로 도달할 수 없는 큰 돈이었다. 나는 돈
이 없었다. 어머니 곁에 놓아둔 저금통이 있었다. 거기에는 아저씨가 오신다든지
그럴 때 받은 몇 개의 십 페니히 혹은 오 페니히 짜리 동전이 들어 있엇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나이에는 아직 용돈은 받지 않았던 것이다.
「난 아무것도 없어」 내가 슬프게 말했다. 「난 돈이 없어. 그러나 그 밖에는
네게 뭐든 다 주겠어. 내게는 인디언 책이 있고, 병정들이 잇고, 나침반도 하나
있어. 그걸 가져다주겠어」
크로머는 다만 뻔뻔하고 심술궂게 입을 움칫하며 바닥에 침을 탁 뱉었을 뿐이
었다.
「헛소리 집어치워!」 그가 명령하듯 말했다. 「네 고물 잡동사니들은 너나 가
지고 있어. 나침반이라고! 날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말아. 잘 들어. 돈을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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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돈이 없는 걸, 나는 돈을 받아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할 길이 없
어!」
「내일 나한테 이 마르크를 가져오는 거야. 학교가 끝난 뒤 저 아래 시장에서
기다릴게. 그럼 끝이야. 만약 네가 돈을 안 가져오면, 알지!」
「알겠어, 하지만 대체 어디서 돈을 가져오란 말이야? 하느님 압소사, 난 돈이
없는데」
「너네 집에는 돈이 충분히 있잖아. 가져오고 안 가져오고는 네 일이지. 그럼
내일 학교 끝나고다. 말해 두ㅈ만, 만약 안 가져오면.....」 그애는 무서운 눈길로
내 눈을 쏘아보고, 또다시 침을 뱉고는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나는 계단을 올라갈 섹밤  가까오떡  수가 없었다. 나의 이생이 산산이 부수어져 있었다. 달아
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거나 물에 빠져 죽을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러면 어떨
지는 똑똑하게 더오르지 않았다. 어둠 속 계단 매ㄴ 아리칸에 앉았다. 한껏 웅크
리고 앉아 불행에 몸을 내맡겼다. 장작을 가지러 광주리를 들고 내려오던 리나
가 내가 울고 잇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리나에게, 위에 가서는 아무 말도 말라고 부탁하고 올라갔다. 유리문 곁
의 옷걸이에는 아버지의 모자가 걸려 있었다. 어머니의 양산도 걸려 있었다. 이
모든 물건으로부터 왈칵 고향과 애정이 나에게로 밀려왔다. 나의 마음은 뭉클하
게 그것들을 반겼다. 애원하며 감사하며, 탕아가 옛 고향의 방을 보고 냄새 맡으
며 그러듯이. 그러나 그 모든것은 이제 내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아버지
와 어머니의 ㅏㅂㄺ은 세계였으며 나는 깊이 죄 지은 채 낯선 홍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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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겨 있었다. 모험과 죄악에 얽혀들어, 적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위험, 불안,
치욕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와 양산, 오래된 질 좋은 사암 바닥, 마루 장식장
윙 걸린 커다란 그림, 그리고 그 안쪽 거실에서부터 들려오는 누나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위로가 아니었으며 확실한 자산도 아니었다. 온통 비난이었다. 그 모든 것
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고 나는 그러한 명랑함과 고요함에 끼어들 수가 없었
다. 나는 내 구두에다 더러움을 뭍혀왔다. 발깔개에 문질러 닦아낼 수 없는 더러
움이었다. 고향의 세계는 알지 못하는 그림자를 나는 끌고 왔던 것이다. 이제까
지 얼마나 많은 비밀과 두려움을 가졌던가.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내가 오늘 이
공간으로 끌고 온 것에 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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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대한 깊은 후회 못지 않게 컸다. 반면, 아
무리 비참했어도, 나는 다 뉘우치지는 않았다. 적어도 늘 다 뉘우치지는 않았고,
이따금씩은 모든 것이 이럴수 밖에 없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 위에 어떤 숙명이
드리워져 있고 그것을 깨뜨리려는 시도는 소용없는 일 같았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상황으로 적지 않게 괴로우셨을 것이다. 낯선 귀신이 들
려 내가 그토록 친밀했던 우리들의 공동체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공동체를 향하여 마치 잃어버린 낙원을 향한 것 같은 격렬한 향수가 자주 엄
습했다. 특히 어머니는 나를 악동이라기보다는 환자 취급을 하셨다. 그러나 상황
이 진짜 어땠는지는 두 누이들의 태도에서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매우 아끼면
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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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끝없이 비참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태도 속에서, 내가 일종의 신들린 사
람이라는 것, 자신의 상태로 하여 비난당하기보다는 탄식을 받아야 할 사람, 그
러나 그 속에 바로 악이 둥지를 틀고 앉은 사람이라는 것이 똑똑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여느 때와는 다르게 기도하는 것을 나는 느꼈고,
이런 기도가 부질없음도 느끼고 있었다. 안도에의 동경, 제대로 된 고해에의 욕
구를 나는 자주 타는 듯 느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 일을 다정하게
받아들이고 나를 몹시 아껴주며 실로 유감스러워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그 모든 것이 운명이었는데, 사람들은 일종의 궤도
이탈로나 보리라는 것을.
아직 열한 살도 안된 아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할 사람들도
더러 있을 줄 안다. 섹밤  가까오떡  그런 사람들에게는 내 일을 이야기하지 않겠다. 인간을 보다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겠다. 자신의 감정들의 한 부분을 생각속에서 수정
하기를 익힌 어른은, 어린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생각을 잘못 측정하고, 이
런 체험들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그 당시처럼 깊게 체험했
으며 괴로워했던 때도 드물다 한 번은 비 오는 날이었는데, 나의 박해자로부터
성 앞 광장으로 나오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였다, 나는 광장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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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기다리며, 흠뻑 젖은 검은 나무들에서 떨어지는 축축한 마로니에 이파리를
두 발로 헤집고 있었다. 돈은 못 가지고 왔고, 크로머에게 뭐라고 줘야 하겠기에
케이크 두 조작을 가져와 들고 있는 참이었다.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그렇게 어
딘가 한구석에 서서 오래도록 그애를 기다리는 데 익숙해 있었다. 그리고 사람
이 어떻게 바꿀 도리가 없는 것은 하는 수 없이 접어두고 받아들이게 마련이듯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침내 크로머가 왔다. 그 날 그애는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애는 내 가슴팍
을 주먹으로 가볍게 몇 대 치고는 웃었고, 케이크를 받고, 심지어 축축한 담배
를, 내가 받지는 않았지만. 권하기까지 했다. 유별나게 친절했다.
「그래」그가 떠나면서 말했다. 「내가 잊지 않으려고 해두는 말인데 말이야,
다음번에는 누나를 데려와라, 큰누나쪽으로 말이야. 누나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전혀 이해를 못했고 대답도 못했다. 그냥 어리둥절해하며 그애를 물끄러
미 바라보았다.
「못 알아듣겠어? 네 누나를 데려오라구」
「알아들었어 크로머. 하지만 그건 안 돼. 그런 걸 내가 해서는 안 돼. 누나도
결코 나하고 오지 않을 거고」
나는 그것 역시 늘  섹밤  가까오떡 것처럼 다만 농간이고 구실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
고 판단했다. 그는 자주 그런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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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이 순간이 중요한 순간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성함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내 유년 생활엘 떠받치고 있는, 그
리고 누구든 자신이 도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
다. 우리들 운명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은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칼자국과 균열은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혀지지
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 살아 있으며 계속 피흘린다.
그 새로운 느낌에 곧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나는 곧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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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엎드려 아버지의 발에 키스라도 하여 사죄하고 싶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사죄할 수 없는 법. 어린 아이도 그쯤은 어떤 현자 못지않게 느
끼고 안다.
내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일 일에 대해 이리저리 궁리해 볼 필요성
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 저녁 내내 나는 오로지 우리 거
실의 달라진 공기에 익숙해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벽시계와 테이블, 성경과 거
울, 벽에 붙은 책 선반과 그림들이, 말하자면 나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나
의 세게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의 삶이 과거가 되며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나는 얼어붙는 가슴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빨아들이는
새 뿌리가 되어 바깥에, 어둠과 낯선 것에 닻을 내리고 붙박혀 있는 것을 감지
해야만 했다. 처음 섹밤  가까오떡 으로 나는 죽음을 맛보았다. 죽음은 쓴맛이었다. 왜냐하면 그
것은 탄생이니까, 두려운 새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니까.
마침내 침대에 눕게 되었을 때 나는 기뻤다! 조금 전에 마지막 연옥의 불로서
저녁 기도가 내 몸을 휘감고 지나갔던 것이다. 거기다 노래까지 하나 불렀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의 하나였다. 아, 나는 함께 노래하지 못했다. 음 하나
하나가 나에게는 쓸개즙이자 독약이었던 것이다. 나는 함께 기도하지 않았다. 아
버지가 축복을 내리며 「저희 모두와 함께 하소서!」 하고 끝내실 때, 그때 내
몸을 스쳐간 경련이 나를 단번에 이 테두리에서 몰아냈다. 하느님의 은총이 식
구들 모두와 함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와 함께 있지는 않았다. 몹시 지쳐 떨
며 나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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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내가 누워 있었던 침대 속에서, 따뜻함과 안정감이 다정하게 나를 감
쌌을 때, 나의 마음은 다시 불안 속을 헤매었고, 지나간 일 주위를 불안하게 퍼
덕였다. 어머니는 ㄴ내게 늘 그러듯이 잘 자라는 말을 했다. 어머니 발소리의 여
운이 아직 방안에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들고 계신 촛불 빛이 아직 문 틈에서
빛나고 있었다. 지금, 지금 어머니가 다시 한 번 되돌아오시면^36^어머니는 느끼
신 것이다. 나에게 입맞춤을 하시며, 물으시겠지. 너그럽게 희망을 주시며 물으
시겠지. 그러면 나는 울겠지. 그러면 내 목에 걸린 돌덩이가 녹겠지. 그러면 나
는 어머니를 껴안고 어머니께 말하겠지. 그러면 만사는 해결인데, 그러면 구원인
데! 문 틈이 다시 어두워지고 나서도 또 한동안 나는 귀기울이며 생각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꼭 일어나리라고.
그 다음 나는 당면 문제로 되돌아와 나의 적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는 실눈을 하고 있었고 입가에는 야비한 웃음이 감돌았다.
그리고 내가 그를 바 섹밤  가까오떡 라보며 피할 수 없는 일을 속으로 삼킴에 따라 그는 더 커
지고 더 추해졌다. 그의 사악한 눈은 악마처럼 번득였다. 그는 내가 잠들 때까지
바짝 내 곁에 있었다. 그러나 잠든 다음 그의 꿈을 꾸지는 않았다. 오늘에 대해
서도 꿈꾸지 않았다. 꿈에 보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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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없었다. 떠날 때의 이별은 아마
그녀보다 내가 더 쓰라렸을 것이다. 나는 이전에 고향에서 버렸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버렸다. 그리고 작별을 할 때에 이처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잡혀 본 일도 없었다. 사람들은 내게 과일,
포도주, 달콤한 워카, 빵 그리고 소시지를 선물로 기차까지 가져왔다.
그리고 나의 거취에 무관심할 수 없었던 많은 친구들과 작별한다는 것은
실로 섭섭한 일이었다. 아눈치아타 나르디니 부인은 떠날 때에 나의
양뺨에 키스를 하면서 눈에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전에 난 스스로 사랑함이 없이 남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은 특히
즐거울 것이라고 믿었었다. 이제 나는 사랑을 받고 그것에 보답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라는 가를 경험하였다. 또한
외국여성에게서 사랑을 받고 남편이 되기를 간청받았다는 것에 대해 약간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 조그마한 자만은 벌써 얼마만큼 내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르디니 부인에게는 미안한 일이나 이 일이 없었더라면 하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섹밤  가까오떡  점점 행복은 외적 희망의 실현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과 연애하는 청년의 번민이란 괴롭기는 해도 전혀 비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엘리자베트를 소유할 수 없었다는 것은
물론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나의 생활, 자유, 활동, 생각이
조금도 좁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멀리서 이전과 같이 내가
원하는 대로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과 움브리아에서의
수개월간의 간소하고 명랑한 생활이 대단히 나에게 효과가 있었다.
이전부터 나는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런 것에 익숙해져 있으면서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그것을 즐길 기분을 망치곤 하였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인생의 유머에 대한 눈이 뜨여서 나의 숙명과 화해하며 인생의 식탁에서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골라 먹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구나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오면 그런 생각이 든다.
주의라든가 편견은 문제도 안 되고, 점잖게 미소를 띠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스스로 멋진 처세술을 가진 듯이 느껴진다. 잠시
남국의 기분좋고 온화한 민중생활에 젖었다가 돌아오면 고국에서도 꼭
그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같이 생각된다. 이탈리아의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곤 했었으나, 이번에는 특히 더
그랬다. 바젤로 돌아와 옛날과 같은 빡빡한 생활이 그대로 불유쾌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을 대하자, 나는 명랑하고 높은 곳에서 무기력하고
불쾌하게 한 계단 한 계단씩 내려갔다. 그러나 거기에서 얻은 것들 중의
몇 개는 싹이 돋아서 그 이후 나의 작은 배는 낡은 물을 달리건 흐린 물을
달리건 적어도 다채로운 작은 깃발을 언제나 대담하고 정답게 날릴 수가
있었다. 섹밤  가까오떡 
또한 그밖에 나의 견해도 많이 변했다. 나는 이미 내가 유감스럽게도
청춘시절을 흘려보내고, 사람들이 내 생애를 짧은 행로라 여기며, 그
걸음걸이나 끝장의 종연까지도 그리 세상이 떠들썩하거나 돌봐줄 만한
사람이 못 되는 나그네라고 보기 시작하는 시기를 향해 성숙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시기가 되면 사람은 생의 목표나 사랑의 꿈을 잃게 되지는
않을지라도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는 생각지 않게 된다. 그리고
도중에서 종종 옛길로 들어서 양심의 가책없이 하루의 행로를 게을리
보내며, 풀숲에 뒹굴기도 하고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르며 흡족한 현재를
거리낌없이 즐기는 법이다. 나는 지금까지 짜라투스트라를 경배하지는
않았으나 본래 자주적이었으므로 자기를 존경하고 비속한 사람들을 경멸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인간들 사이에 결코 고정된 한계라는
것이 없으며, 비속하고 억압된 생활을 하는 가련한 사람들의 생활은
혜택을 받아 빛나는 사람들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다양할 뿐 아니라,
대개는 오히려 따뜻하고 진실하고 모범적이라는 것을 차츰 잘 알게
되었다.
아무튼 꼭 알맞게 바젤에 돌아와서 그동안 결혼한 엘리자베트가 벌이는
밤의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여행의 뒤끝이라 즐거웠고, 아직
기운이 있었으며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작고 재미있는
기념품을 많이 가지고 갔었다. 아름다운 부인은 잔정을 보이면서 나를
환대하려고 하였다. 나는 때를 놓친 구혼의 창피를 폭로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었던 나의 행복을 밤새도록 즐겼다. 그 이유는 이탈리아에서와 같은
경험도 없지는  섹밤  가까오떡 않았으나 나는 여전히 여성들은 자신들을 사랑한 남자가
절망적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잔인하게도 즐거워하는 것 같은 불신을
남모르게 품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내가 일찍이 다섯 살 난 어린이의 입에서 들은 유치원시절의 한
조그마한 이야기는 이런 굴욕적인 괴로운 상태를 가장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 어린이가 들어간 유치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상징적이며 묘한
풍습이 있었다. 어떤 어린이가 지나친 장난을 저질러 볼기를 맞게 되면
여섯 명의 계집애가 반항하는 그 아이를 의자에 꼭 앉아 있도록 붙잡고
있게 명령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붙잡고 누르고 있다는 것이
무상의 쾌락이요 큰 명예로 생각해 당시의 가장 모범생인 온순한 여섯
계집애들만이 이 참혹한 기쁨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재미있는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내 자신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고 몇 번이나 내
꿈속에까지 나타나서 나는 적어도 꿈의 경험에 비추어 그러한 상태에
놓이게 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7. 나의 문필업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아무런 관심도 존경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고, 약간의 저축도 할 수
있었으며, 부친에게도 얼마간의 돈 송금할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부친 돈을 가지고 기뻐하시며 술집으로 가셔서 갖은 자랑을 늘어놓으며
나를 칭찬하셨고, 또한 송금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시는
것이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신문에 기고를 해서 생활을 해나간다는
말을 한 번 부친에게 했었다. 그래서 부친은 나를 지방신문에 있는
편집자나 통신원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세
번씩이나 아버지다운 편지를 써서 중대한 신문기사거 섹밤  가까오떡 리로서 돈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사건을 알려주셨었다. 첫번은 곡창에 불이 난 사건이었고, 두
번째는 등산가의 조난사건이었고, 세 번째는 동장 선거의 결과를 알려 준
것이었다. 이 보고들은 모두 괴상한 신문체 문장으로 씌어져 있었고,
사실 나를 기쁘게 하였다. 그 이유는 이 사실이섹밤  가까오떡   부친과 나 사이의 친밀한
결합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수년 이래 고향에서 처음 받은 편지였던
까닭이었다. 이러한 편지들은 나의 문필생활에 대한 본의 아닌 조소로써
나를 통쾌하게 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다달이 나는 그 중요성과 결과에
있어 부친이 알려 준 시골사건보다도 훨씬 못한 책들을 논평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때 바로 내가 취리히에서 알게 되었던,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두 명의
서정시인이 쓴 책이 두 권 있었다. 한 사람은 베를린에서 살고 있어
대도시의 바와 유곽의 추악한 상태를 묘사할 줄 알았다. 또 한 삶은
뮌헨의 교외에 사치스런 집을 짓고 숨어 살고 있어 노이로제 환자 같은
내관적인 상태와 심령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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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쪽에서 왔다. 동시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의 삶
안으로 들어왔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계속 작용하고 있다.
우리 라틴어 학교에는 그 얼마 전에 학생이 한 명 새로 들어왔다. 우리 도시
로 이사온 어는 유 섹밤  가까오떡 복한 미망인의 아들로, 옷소매에 검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
는 나보다 한 학년 높았으며 나이도 몇 살 더 들었지만, 곧 모든 학생들처럼 나
도 그를 주목했다. 이 이상한 학생은 보기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든 것 같았고, 그
누구에게도 소년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어른처럼, 아니 그냥 어른이라기보
다는 신사처럼 낯설고도 성숙하게 우리 유치한 소년들 사이를 오갔다. 인기 있
지는 않았다. 놀이에 끼지 않았고 싸움질
@p 37
에는 더더욱 끼지 않았다. 다만 선생님들에게 맞서는 그의 자신감 있고 단호
한 어조가 다른 학생들 마음에 들었다. 이름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간혹 그러듯. 무슨 이유에선가 매우 넓은 우리 교실에 또
한 반이 들어와 앉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데미안네 반이었다. 우리 어린 학생들
은 성경 이야기 시간이었고, 큰 학생들은 작문을 해야 했다. 우리들이 카인과 아
벨의 역사를 배우는 동안, 나는 독특하게 나를 매료시키는 데미안의 얼굴을 자
주 건너다보았다. 그 총명하고, 환하고, 엄청나게 단호한 얼굴이 작문 과제 위로
주의 깊고도 명민하게 숙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전혀 숙제를 하고 잇는
학생처럼 보이지않고, 자기 자신의 문제들에 전념하고 있는 연구자 같았다. 사실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반대로 왠지 거부감을 주었다. 그는 나보다 우월하고 침
착했다. 그 본질에 있어서 너무나도 도전적일 만큼 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의 눈은 아이들이 결코 좋아하지 않는 어른이 표정을 띠고 있었는데, 약간 슬픈
냉소를 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를 줄곧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호감을
주었던 것 같기도 하고 반감을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그가 내 쪽으로
눈길을 들었는데 나는 놀라서 얼른 눈길을 돌렸다. 지금 와서 그가 학생으로서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생가해 보면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는 어느 점에서 다른
학생들과 달랐으며 전적으로 특별하고 개 섹밤  가까오떡 인적 특징이 뚜렸하게 나타나 있어 그
때문에 눈에 띄었다고. 동시에 그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온갖 노
@p 38
력을 했다. 몸가짐이 마치 농부들 가운데 있으면서 그들과 같아보이려고 갖은
애를 다 쓰는 변장한 왕자님 같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그가 내 뒤에서 왔다. 다른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
지고 나자. 나를 따라잡더니 인사를 했다. 이 인사도, 그가 학생다운 말투를 따
라했는데도, 무척 어른스럽고 공손했다.
「잠깐 같이 갈까?」그가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아첨을 받은 듯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내가 어디 사는지 자세히 말해 주었다.
「아, 거기구나?」그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 집은 내가 벌써 아는 걸. 현
관문 위에 붙여놓은 기묘한 것이 곧바로 내 관심을 끌더라」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나는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우리 집을 나보
다 더 잘 아는 것 같아 놀라울 뿐이었다. 아마도 대문 위 아치형의 돌림 띠를
마무리하는, 맨꼭대기에 박힌 돌로 된 일종의 문장(紋章)을 말한 것 같았는데,
그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편편해지

가까오떡 
아메센터  

이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결국 아름다운 풍경에도 사람이
필요하며, 또한 이 사람을 자연스럽고 충실하게 묘사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등한시했던 많은 것을 도로 찾아야
했고, 지금도 그것 섹밤  가까오떡 을 찾는 중이다. 이제와서 나는 추상적인 인류 대신에
개개의 사람을 알고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를 배워 내
수첩과 기억은 전혀 새로운 형상으로 채워졌다.
이러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대단히 기뻤다. 나는 단순한 무관심의
상태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자명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었는가를 알게 되었고, 또한 많은
방랑과 시찰이 나의 눈을 열어 주고 예민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나는 아이들과 자주 사귀었다.
언제나 구름과 파도를 관찰하는 편이 사람을 연구하는 것보다 기뻤다.
나는 사람이 위선의 미끈한 탈을 쓰고 있는 점에서 다른 자연과 구별되는
것을 인정했고 또 놀랐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현상을
보았다. 그것은 누구나가 자기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서 한 인물, 한
분명한 자태를 나타내야 하는 사정에 있는 까닭이다. 나는 나 자신에
있어서도 똑같은 사실을 이상한 기분으로 인정했었고, 지금은 인간의
핵심에 육박하려는 일을 포기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탈이 더욱 심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서까지도 이미 도처에서
그것을 발견하였다. 아이들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알 수 없으나
전혀 숨기지 않고 본능적으로 자기를 나타내는 것보다 한 연극 같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 나는 자신이 더 전진하지 못하는 것 같은, 그리고 헛된
개개의 일 때문에 타락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나는 먼저 그 잘못을
나 자신에게서 구했으나, 나의 실망과 내가 찾는 그러한 사람들을 내
주위에서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흥미로운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전형적인 인물이 필요했었다.  섹밤  가까오떡 그러나
대학생에게서도 사회인에게서도 그러한 인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탈리아를 회상하였고, 나의 많은 도보여행의 유일한 친구였으며
동반자였던 그때의 견습직공들을 열심히 회상하였다. 그때 나는
견습직공들과 많이 방랑하였고, 그들 중에서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발견했었다.
고향의 직공 숙박소와 몇 곳의 하숙집을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무리들은 내게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당분간 어린이들과 놀거나 술집을 많이 헤매였으나 물론 아무것도 얻은
것은 없었다. 몇 주일 동안은 무척 우울하였다. 그동안 나는 나를
의심하였고, 내 희망과 소원이 어리석게도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여
정처없이 밖을 헤매였고,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었다.
나의 책상 위에는 몇 묶음의 책이 모여 있었는데 그것은 헌책방에
보내지 않고 고이고이 간직해 두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책장에는
더이상 넣어 둘 장소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것을 넣기 위해
조그마한 목수집을 찾아가서 책장의 치수를 재달라고 부탁하였다.
키가 작고 조심성 있어 보이는 행동이 느린 한 목수가 집으로 왔다.
그는 책장 놓을 자리를 재며 마루에 무릎을 꿇기도 하고, 미터 자를
천장으로 뻗치기도 하고, 갖풀 냄새를 풍기며 인치의 큰 숫자를 일일이
정성껏 수첩에 적어 넣었다. 이렇게 분주하게 일하는 동안에 우연히 그가
책을 쌓아 놓은 의자를 건드렸다. 몇 권의 책이 밑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주우려고 그는 허리를 굽혔다. 그 책 중에 목수들이 사용하는
말을 모아 놓은 소사전이 있었다. 그것은 독일의 모든 직공들이
하숙집에서 흔히  섹밤  가까오떡 발견할 수 있는 두꺼운 표지의 재미있는 책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실례입니다만 이 책은 저도 잘 아는데, 선생님은 정말 이 책을
읽으셨습니까?
예, 나도 떠돌아다니는 직공들의 말을 조금 배웠습니다. 알맞은
표현법을 찾는다는 것을 정말 재미있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럼 선생님도 직접 여행을 하신 일이 있으시군요?
그는 이렇게 외쳤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지는 몰라도 나도 꽤 여행을 즐겼고,
하숙집에서도 많이 자 보았습니다.
그동안 그는 책을 다시 쌓아 놓고 나가려고 하였다.
당신은 그때 어디를 여행하였지요?

아메센터  

늘 놀라게 하는 크로머의 후파람 소리가
그 어딘가로부터 울려와, 줄을 탁 끊었고, 상상들을 짓부수었다. 그러면 나는 가
야 했다. 나쁘고 추한 곳들로 나의 고문자를 따라가야 했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아야 했고, 돈 때문에 경고를 받아야 했다. 그 모든 것이 불과 몇 주일 지
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여러 해처럼, 하나의 영원처럼 느껴졌
다. 내게 돈이 있는 적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오 페니히짜리 하
@p 34
나 혹은 십 페니히 하나가 있었다. 리나가 장바구니를 놔두면 부엌 식탁에서
훔진 것이었다. 섹밤  가까오떡  번번히 나는 크로머로부터 욕을 먹었다. 내게로 경멸이 퍼부어졌
다. 그를 기만하고 그의 당당한 권리를 유보하려 한 것이 나였고, 그의 몫을 가
로챈 것이 나였고, 그를 불행하게 만든 것이 나였다. 괴로움이 그렇게 심장 가까
이로 치솟은 적은 살면서 거의 없었다. 더 큰 절망, 더 큰 예속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저금통은 장난감 돈으로 채워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었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
하여 묻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이든 발각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자주 크
로머의 거친 휘파람 소리 이상으로 어머니를 무서워했다. 어머니께서 나직이 내
게로 다가서실 때면, 저금통에 대해서 물어보시기 위하여 오신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내가 여러 번 돈을 못 구한 채 내 악마에게 갔기 때문에, 그는 나를 다른 식
으로 괴롭히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위해 일해야만 했다. 그애는 자기
아버지 심부름을 해야 했는데 그 심부름을 그애를 대신하여 내가 해야했다. 혹
은 그애는 나에게 무언가 힘든 것을 하도록 시켰다. 십 분 동안 외발뛰기를 하
게 한다든지 지나가는 사람 저고리에 종이 쪽지를 붙이게 한다든지. 여러 날 밤
꿈속에서도 이 괴로움은 계속되어 나는 악몽의 땀에 흠뻑 젖어 누워 있곤 했다.
한동안 아팠다. 자주 토했고, 쉽게 오한이 났으며, 밤에는 땀과 열에 젖어 누
워 있었다. 어머니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느끼셨는지 많은 관심을 보이셨
는데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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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괴롭혔다. 어머니의 관심에 신뢰로 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저녁에. 내가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때, 어머니가 초콜릿 하나를 가져
오셨다. 저녁에, 그날 하루를 착 섹밤  가까오떡 하게 보냈으면 잘 자라고 상으로 그런 위로의 주
전부리를 받곤 하던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는 일이었다. 이제 어머니가 거기 서
서 나에게 초콜릿 조각을 내밀고 계셨다. 나는 어찌나 괴로운지, 다만 고개를 가
로 저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뭐가 잘못되었느냐고 물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
으셨다. 나는 간신히 「아니오! 아니오! 아무것도 먹지 않겠어요!」라고 할 수
있었을 뿐이다. 어머니는 초콜릿을 침대머리 탁자에 놓고 가셨다. 다음날 어머니
께서 그일을 두고 캐물으려 하셨을 때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
다. 한번은 의사를 데려오셨다. 의사는 나를 친찰하고 아침에 차가운 물로 몸을
씻도록 처방을 내렸다.
그 시절 내 상태는 일종의 착란이었다. 우리 집안의 정돈된 평화의 한가운데
서 나는 소심하게, 그리고 고통받으며 유령처럼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
활에 관여하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자신을 잊는 일은 드물었다. 자주 흥분하여
해명을 요구하시는 아버지에게는 마음을 닫고 냉정했다.
@p 36

제이제이닷컴 
제이제이닷컴  

이야기를 이끌어낸 것, 그건 표적이야. 어
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얼굴에, 다른 사람들을 겁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
어. 사람들은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어. 그가 그들을 압도했던 거야, 그와 그
의 자손들이. 어쩌면, 아니면 분명히, 그것은 편지에 찍히는 소인처럼 정말로 이
마에 찍힌 표적은 아니었을 거야. 사람 사는 데 그렇게 단순한 일 섹밤  가까오떡 은 드물어. 오
히려 그건 뭔가 거의 알아볼 수 없는 무시무시하 그 무엇이었을 거야. 그것은
오히려 시선에 담긴 비범한 정신과 담력이었을 거야. 그 남자에게는 힘이 있었
고 사람들은 그를 겁냈어. 그는〈표적〉하나를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사람들
〉은 언제나 자기들한테 편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원하지. 사람들은
카인의 자손들이 무서웠어. 그들은 〈표적〉하나를 기지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표적을, 그것의 원래 모습인 우월함에 대한 표창으로 설명하지 않
고, 반대로 설명한 거야. 사람들은 말했지, 이 표적을 가진 녀석들은 무시무시하
다고, 또 그들이 실제로 그렇기도 해어. 용기와 나름의 개성이 있는 사람들은 다
른 사람들한테 늘 몹시 무시무시하거든. 겁없고 무시무시한 족속 하나가 돌아다
닌다는 것은 몹시 불편한 일이었지. 그래서 이제 이 족속에게 별명 하나와 우화
하나를 덧붙여놓은 거야. 복수하려고, 견뎌낸 무서움을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약
간 해롭지 않게 억제해 두기 위해서. 이해되니?」
「응. 그러니까 카인은 그럼 전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단 말인 거야? 성경에
있는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그렇게 오래된, 해묵은 이야기들은 늘 사실이
야. 그러나 언제나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언제나 사실대로 설명되지도
않지. 간단히 말해서, 내 생각은, 카인은 늠름한 젊은이였는데 그저 사람들이 그
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그에게 이 이야기를 매달아놓은 거라는 거지. 이야기는
그냥 하나의 소문이었어. 사람들이 온 사방에 떠들고 다니는 그런 무엇이었지.
그러나 카인과 그 자손들이 정말로 일종의 〈표적〉을 지녔고 대부분의 사람들
과는 달랐다는 것은 완전히 사실이야」야
나는 몹시 놀랐다. 섹밤  가까오떡 
「그렇다면, 동생을 쳐죽인 일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나는
충격을 받아 물었다.
「아니지! 죽인 건 분명 사실이야. 강한 사람이 약한 사
@p 42
람 하나를 쳐죽였어. 그것이 정말 자기 형제였는지 그거야 의심할 여지가 있
지. 정말 형제였는지 아니였는지는 중요하진 않아. 결국 모든 인간이 형제잖니.
그러니까 어떤 강한 사람이 어떤 약한 사람 하나를 때려죽인 거야. 어쩌면 그건
영웅적 행위였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 어쨌든 다른 약한 사람들
이 이제 잔뜩 겁이 난 거야. 그들은 몹시 탄식을 했지. 그런데<왜 너희들도 그
사람을 그냥 쳐죽이지 않는 거지>라고 누가 물으면 그들은 <우리가 겁쟁이이기
때문이죠>라고 말하지 않고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표적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느님이 그에게 그려주신 겁니다!>라고 말했지. 대략 그런 식으로 그 사기는
이루어졌을 게 틀림없어. 자야, 내가 널 오래 붙들고 있구나 그럼 안녕!」
그는 나를 내버려두고 알트 가세로 접어들었고, 혼자 남은 나는 그 어느 때보
다 혼란스러워져 있었다. 그가 가버리자마자 내게는 그가 했던 모든 말이 터무
니없어 보였다! 카인이 고귀한 인간이고

유흥천하 
유흥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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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이 비겁자라구! 카인의 표 섹밤  가까오떡 적이 표
창이라구! 그건 어처구니없는 얘기였다. 신성모독이고 극악무도였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어디 가버리신거야?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던가, 아벨을
사랑하시지 않았던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리하여 나는 데미안이 나
를 놀렸으며 나늘 골탕먹일 속셈이었다고 추측했다. 실로 빌어먹게 영리한 녀석
이었다. 말은 잘도 추측했다. 실로 빌어먹게 영리한 녀석이었다. 말은 잘도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 아니다....
어쨌든 나는 아직 한 번도 그 어떤 성서 이야기나 다른
@p 43
이야기에 대해 그렇게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한 번도, 저녁
내내 여러 시간을, 프란츠 크로머를 그렇게 완전히 잊어버린 적은 없었다. 집에
서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통독했다. 성경에 써 있는 그 이야기는 짧고 분명했
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남모른는 특별한 풀이를 해본 다는 건 완전히 미친 짓
이었다. 데미안의 말대로 라면 사람을 쳐죽인 자도 스스로를 하느님이 사랑하시
는 사람이라고 선언할 수도 있었다! 아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데
미안이 그이야기를 하는 태도가 세련되었을 따름이었다. 마치 모든 것이 자명한
일이나 되듯 그렇게 쉽고 멋지게, 그리고 거기다 그런 눈으로 말하다니!
물론 나 자신도 아주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심지어 몹시 혼란에 빠져 있
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밝고 깨끗한 세계에서 살아왔다. 나 자신이 일종의 아벨
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이토록 깊이 <다른> 것에 박혀 있었다. 이렇게 심하
게 떨어지고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이런 것에
그렇게 찬성할 수 없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단 말인 섹밤  가까오떡 가? 그렇다. 그때 마음
속에서 기억 하나가 번쩍 떠올라, 한순간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비참한 이 상
황이 시직되었던 저 고약한 저녁, 그때 나는 한 순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밝은
세계 그리고 지혜를 문득 꿰뚫어본 듯 경멸했다! 그렇다, 그때 나는 카인이었
고, 그의 표적을 달았던 나는 이 표적은 치욕이 아니라고, 이건 표창이라고 함부
로 상상했다. 악의와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내가 우리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곳에,
선하고 경건한 사람
@p 44
들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다고.
내가 당시 이렇게 명확한 사고의 형태로 그 일을 체험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러나 이 모든 것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다만 느낌들이 한 번 타오
른 것일 뿐이었다. 아픔을 주지만 그래도 나를 자랑으로 채웠던 기이한 움직임
들에 의하여 온갖 느낌드링 한꺼번에 타오른 것일 뿐이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얼마나 이상하게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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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탑 
섹밤  

페인트로 자주 덧칠된 것으로 우리나 우리
가문과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 섹밤  가까오떡 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데」내가 수줍게 말했다. 「그건 새이거나 뭐
그 비슷한 거야, 분명 아주 오래되었어. 건물이 예전에 한때 수도원의 일부였대

「그럴 수도 있겠군」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잘봐! 그런 것들은 대부분
아주 재미있단다. 그건 매 암놈일거야」
@p 39
우리는 계속 걸었다. 나는 몹시 당황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데미안이 웃었다.
마치 뭔가 재미나는 것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그래, 내가 그때 너희 반에 있었지」그가 활기 있게 이야기 했다. 「이마에
표적을 단 카인의 아야기였지, 그렇지? 그 이야기 마음에 들었니?」
아니었다, 우리가 배워야 했던 것들 중 그 무엇도 내 마음에 드는 일은 드물
었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마치 어른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
았던 것이다. 그 이야기가 썩 마음에 든다고 나는 말했다.
데미안이 내 어깨를 툭툭 두르렸다.
「나한테는 그럴듯하게 꾸며댈 필요 없단다, 얘야.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정말로
특이해. 그 이야기는 수업시간에 나오는 대부분의 다른 이야기들보다는 훨씬 특
이해. 선생님은 거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시지 않고, 그냥 신과 죄악에 대한
다들 아는 이야기 따위만 하셨어. 그렇지만 내 생각으로는 말이야」그가 말을
끊고, 미소를 띠더니 물었다. 「그런데 너 이런 거 관심 있니?」
「그래, 그러니까 내 생각으로는 말이야」그가 계속했다. 「카인에 관한 이야
기를 완전히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어. 우리가 배우는 대부분의 것들은 분명 완
전히 진실이고 올바른 것이지만, 그것 섹밤  가까오떡 들 모두를 선생님들이 보시는 것과는 다르
게 볼 수도 있어. 그러면 대체로 훨씬 나은 뜻을 갖게 되지. 예를 들면 카인이나
그의 이마에 찍힌 표적에, 우리가 설명 들은 대로 만족할 수는 없잖니. 너도 그
런 것 같지 않니? 어떤 사람이 싸우다가 자기 형제를 때려죽이는 일은 분명 일
어날 수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이 나중에는 더럭 겁이 나 굴복하게 된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러나 그의 비겁함에 대하여 일부러 훈장을 주어 표창하
였는데 그 훈장이 그를 보호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니, 그거 정말
이상하잖니」
「물론이야」내가 흥미있게 말했다. 그 일이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던 것이
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어떻게 다르게 설명하라는 거지?」
그는 내 어깨를 쳤다.
「아주 간단해! 맨 처음에 존재하며

섹밤 
가까오떡 
가까오떡  

안은 겁없는 사람들과 비겁한 사람
들에 대하여 이야기 했던가! 얼마나 기이하게 그는 카인의 이마에 찍힌 표적을
풀이했던가! 그때 그의 눈, 그 독특한 어른의 눈은 얼마나 놀랍게 빛을 뿜었던
가! 그리고 어렴풋하게 이런 생각이 나의 뇌리를 꿰뚫고 갔다. 그 자신이, 데미
안이 카인 같은 존제가 아닐까? 그 자신이 그와 비슷하다고 섹밤  가까오떡  느끼지 않는다면
왜 그는 카인을 옹호했을까? 왜 그의 눈에는 그런 힘이 있는 걸까? 왜 그는 그
렇게 <다른> 사람들, 겁 많은 사람들, 사실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경건한 사람
들에 대하여 비웃음을 띠고 말했던가?
이런 생각을 나는 끝없이 했다. 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
의 젊은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긴, 몹시 긴 시간 동안 카인, 쳐죽임, 표적은
바로 인식, 회의 , 비판에 이르려는 나의 시도들의 출발점이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도 데미안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카인 이야기
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
@p 45
나 그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흥미를 끌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새로 온 애>
에 대한 소문들이 돌았다. 내가 다 알기만 했더라면, 어느 소문이든 풀이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가 알았던 것은, 처음에 데미안의 어머니가 매우 부자라고
소문 났다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교회에 가지 않고 아들도 그렇다는 말들도 했
다. 어떤 사람은 데미안 모자가 유태인인 걸 안다고 주장했지만, 어쩌면 그들은
은밀한 회교도일 수도 있었다. 막스 데미안의 신체적 힘에 대해서도 더 동화 같
은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그에게 싸움을 걸고는 그가 거절하자 비겁자라고 욕하
는 그 반의 가장 힘센 학생에게 그가 무섭게 굴욕을 주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거기 있었던 아이들 말에 의하면 데미안이 그냥 한손으로 덜미를 잡아 꽉 눌렀
을 뿐인데 그애는 창백해졌고 나중에는 슬금슬금 달아났는데 여러 날 팔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어다. 어느 저녁에는 심지어, 그가 죽었다는 말까지 돌았다. 별별
이야기가 한동안 주장 섹밤  가까오떡 되고 믿어졌다. 모두가 자극적이고 놀라운 소문들이었다.
그 다음 한동안은 잠잠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소문들이 우리
학생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데미안이 여자애와 사귀고 있으며 이미 <알건 다 안
다>는 소문이었다.
그 사이 프란츠 크로머와의 일은 불가피한 길을 계속 가고 있었다. 나는 그로
부터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애가 드문드문 며칠간 나를 가만히 내버려둔다 해도
나는 그에게 얽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내 꿈속에서 그애는 내 그림자처
@p 46

아메센터 
아메센터  

우리가, 부모님과 누이들과 내가 한 배를
타고 가는데 온통 휴일의 평화와 광채가 우리를 에워싸는 것이었다. 한밤중에
깨었는데, 그때까지도 그 행복의 뒷맛이 느껴졌고, 누이들의 힌 여름옷이 햇
@p29
빛 속에서 빛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모든 낙원으로부터 다시
현실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고, 다시 나는 사악한 눈을 가진 적과 마주 서 있었
다.
아침에, 어머니가 급히 오셔서, 벌써 늦었다고 왜 아직도 잠자리에 누워 있느
냐고 소리치셨을 때, 나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어디 아프냐고 물으시
자 토하고 말았다.
토하고 나니까 좀 나았 섹밤  가까오떡 다. 나는 몸이 약간 아플 때 아침 내내 카밀레 찻잔을
곁에 놓고 누워, 옆방에서 어머니가 방을 치우는 소리, 리나가 바깥 복도에서 고
기 팔러 온 사람과 주고받는 말을 듣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오전은 무언가 마력적이고 동화적인 것이었다. 그럴 때 햇살은 방 안으로 어른
어른 장난치듯 비쳐들었는데 학교에서 초록 커튼을 따라 떨어졌던 그 햇살이 아
니었다. 그런데 그것까지도 오늘은 맛나지 않았으며 다른 음조를 띠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그러나 나는 이미 자주 그랬던 만큼 단지 조금 몸
이 아플 뿐이었고, 그 정도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그 정도는 학교 가는 일
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기는 했지만, 결코, 열한시에 시장에서 나를 기다릴 크로
머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다정함도 이번에는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귀찮고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나는 곧 다시 잠든 척하며 곰곰이 생각했
다. 아무것도 소용 없었다. 열한시에는 시장에 가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열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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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말했다. 그런 경우에는 대개, 다시 잠자리로 가거나 아니면 오후에 학교로
가야 했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계획을 하나 짜놓았던 것이다.
돈을 안 가지고 크로머한테로 갈 수는 없었다. 내 작은 저금통을 가져와야 했
다. 충분한 돈이 들어 있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그래
도 얼마는 되었다. 빈 손보다는 조금이라도 들고 가는 것이 나으며 적어도 크로
머를 달래기는 할 게 틀림없다고 직감으로 느꼈다.
양말바람으로 살금살금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 책상에서 내 저금통을
집어들었을 때는 깁ㄴ이 섹밤  가까오떡  나빴다. 그러나 어제 일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가슴이
뛰어 숨이 막혔다. 계단 아래에 와서야 비로소 저금통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했
을 때도 여전히 가슴은 뛰고 있었다. 저금통을 깨뜨려 여는 것은 아주 쉬웠다.
얇은 양은 막대 ㅏ나만 두 동강 내면 되었다. 그러나 부서진 자리를 보니 마음
이 아팠다. 그것으로 나는 비로소 도둑질을 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다만 사
탕이나 과일 같은 주전부리에 입을 댔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비록 내 자신
의 돈이지만 훔친 것이었다. 나는 크로머와 그의 세계에 다시 한 발자국 더 다
가갔으며 이제부터는 일이 그렇게 시시각각 보기좋게 내리막으로 가리라는 것을
느꼈고, 거기에 저항했다. 그러나 악마가 데려간다 하더라도 이제 되돌아갈 길은
없었다. 나는 걱정스레 돈을 헤아렸다. 저금통 안에서는 그렇게 가득한 소리를
냈는데 손 안ㅇ 쥐고보니 비참하게도 얼마 안되는 액수였다. 육심오 페니히였다.
나는 저금통을 아래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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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에 감추고 돈은 손에 꼭 쥐고 집을 나섰다. 내가 이 문을 지났던 그
어느 때와도 다르게. 위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부르는 것만 같았다.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달라진 도시의 골목들을 지나, 본적 없는 구름 아래로,
나를 유심히 바로보는 집들을 지나 나에게 혐의를 두는 사람들을 지나쳐, 살짝
돌아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도중에 학교 급우 하나가 가축시장에서 일 달러를
주웠던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이루어
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기도할 권리가 없었다. 설령
그럴 권리가 있었다 하 섹밤  가까오떡 더라도 저금통이 다시 온전해지지는 않았으리라.
프란츠 크로머는 멀리서 나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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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현실에서 나에게 저지르지 않은 것조차 꿈
속에서 자행하게 했다. 꿈속에서 나는 전적으로 그의 노예였다. 나는 현실에서보
다 더 많이 이 꿈들 속에서 살았다. 나는 본래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던 것이다.
이 그림자로 하여 나는 힘과 활기를 잃었다. 다른 꿈도 꾸었지만 크로머가 나를
학대하는 꿈, 나에게 침을 뱉고 나에게 올라타 무릎으로 짓누르는 꿈을 자주 꾸
었다. 그리고 더 고약한 것은, 심한 범죄를 저지르도록 나를 유혹하는 꿈이었다
―유혹했다기보다는 그의 막강한 영향력을 그냥 마구잡이로 행사하는 것이었다.
이 꿈들 중 가장 무서운 꿈, 내가 반은 미쳐서 깨어나는 꿈은 아버지를 습격하
여 살해하는 꿈이었다. 크로머가 칼를 갈아 내손에 쥐여주고, 우리는 어느 가로
수 길의 나무들 뒤에 서서 누군가를 노리고 있었다.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그러나 누군가가 오고 크로머가 내 팔을 누르면서 내가 찔러죽여야 하
는 것이 저 자라고 말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그러다 잠이 깨었다.
이런 일들 때문에 나는 카인과 아벨 생각을 그때까지도 하고 있었다. 그러난
데미안 생각은 별로 더 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다시 가까이 온 것은 이상하
게도 또 어느 꿈속에서 섹밤  가까오떡 였다. 나는 또다시 내가 견뎌낸 학대와 폭력의 꿈을 꾸었
다. 그러나 내 몸을 타고 앉은 것이 이번에는 크로머대신 데미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새로웠고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내가 크로머에 의하여 고통
과 저항가운데서 겪은 모른 것, 그것을 나는 데미안에 의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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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그리고 기쁨과 무서움을 똑같이 포함한 감정으로 겪었다. 이 꿈을 나
는 두 차례 꾸었고 그 다음에는 데미안의 자리에 다시 크로머가 들어섰다.
이 꿈들에게 내가 체험한 것 그리고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더 이상 정확하게 구분을 못한다. 어쨌든 크로머에 대한 나의 나쁜 관계는 나름
대로 진행되었고, 내가 작은 도둑질들을 해서 그애에게 빚진 돈을 마침내 다 갚
고 났을 때도 끝나지 않았다. 끝날 리 없었다. 그애는 내가 저지른 도둑질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늘 어디서 돈이 나오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단단히 그애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빈번히 그애는 아버지에
게 다 말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 그럴 때 나의 두려움은 내가 그 일을 처음
부터 스스로 하지 말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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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다. 그렇지만 아주 천천히 나에게 다가
왔고, 나를 눈여겨보지 않는 듯 굴었다. 가까이 왔을 때 그애는 자기를 따라오라
고 명령하는 눈짓을 하고는, 단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유유히 계속 갔다. 슈트
로 가세(Gasse, 골목)를 따 섹밤  가까오떡 라 내려가 좁은 판자 다리를 지나, 마침내 집들이 끝
나는 곳에서 공사중인 어느 건물 앞에 멈추었다. 그곳에서는 작업을 하지 않았
다. 벽들이 문도 창문도 없이 앙상하게 서 있었다. 크로머는 나를 돌아다보더니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그애는 벽 뒤로 가더니 자기한테로 오
라는 눈짓을 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거 갖고 왔지?」 그애가 싸늘하게 물었다.
나는 주먹을 꼭 쥔 손을 주머니에서 빼서 그애의 펼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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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돈을 쏟아 놓았다. 그애가 헤아렸다. 마지막 오페이히짜리의 챙그랑
소리가 잦기도 전에 「육십오 페니히로군」하며 그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수줍게 말했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야, 너무 적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이게 전부야. 더는 없어」
「네가 좀더 똑똑한 앤줄 알았는데」 그애는 거의 온화한 어조로 비난했다.
「명예를 아는 남자들 사이에는 질서가 있어야지. 난 정당하지 않은 건 아무것
도 가지지 않겠어, 그건 너도 알겠지. 네 쇠붙이들은 도로 가져가, 자! 딴데 가면
에누리 없이 몽땅 받을 수 있어」
「하지만 난 없어, 더는 없다구! 이건 내 저금을 통째로 가지고 온 거야」
「그거야 네 사정이지. 널 불행하게 만들 생각은 없어. 넌 나한테 아직 일 마
르크 삼십오 페니히 빚이 있어. 언제 내가 그걸 받지?」
「오, 반드시 줄게, 크로머! 지금은 모르지만^36^어쩌면 곧 더 생길 거야, 내일
아니면 모레. 내가 이 일을 우리 아버지한테 말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하겠지」
「그건 나하고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너한테 손해 끼칠 생각 없다고 했잖아.
난 내 몫의 돈을 오늘 오전 섹밤  가까오떡 중에 가질 수도 있어, 너도 알겠지, 난 가난하거든.
너 ㄴ멋진 옷을 입고 있고, 나보다는 점심으로 뭔가 더 좋은 걸 먹겠지. 하지만
난 아무 말 않겠어. 조금 기다려주겠다는 거야. 모레 휘파람을 불지, 오후에. 그
땐 제대로 가져와야 해. 내 휘파람 소리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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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앞에서 휘파람을 불어보였다. 여러 번 들었던 소리였다. 나는 말했다.
「응, 알고 있어」
나를 남겨두고 그애는 갔다. 섹밤  가까오떡  내가 자기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듯이. 그것은
우리들 사이의 거래였을 뿐, 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크로머의 휘파람 소리가 갑자기 다시 들린다면, 오늘일지라도 나는 놀라리라
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자주 그 소리를 들었으며 지금도 그 소리가 자꾸 들리는
것 같다. 나를 예속시킨, 이제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이 휘파람 소리가 뚫고 들
어가지 않는 장소도, 놀이도,  섹밤  가까오떡 일도, 생각도 없었다. 단풍이 곱던 어느 온화한 가
을날 나는 내가 아주 좋아한 우리 집 작은 화단에 있곤 했다. 특별한 충동이 나
로 하여금, 어린 시절의 소년들의 놀이를 다시 해보게 했다. 나는 얼마만큼은 나
보다 어린, 아직 선하고 자유롭고 죄없고 안정감 있는 소년의 역을 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로, 늘 예상하고 있음에 섹밤  가까오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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